도배질이란 말이 있다. 이제 여기서 오랜 산 사람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말이다. 한국에서는 방의 벽에다 벽지를 바르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예쁜 꽃무늬라든지, 부드러운 색의 벽지를 붙여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상하게 벽지를 별로 바르지 않는다. 그런 까닭인지 처음 이곳에 이민 왔을 때 방안이 썰렁하게 느껴졌다. 아직도 한국에선 집집마다 벽지를 바르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말은 신문에서 말하는 도배질이다. 큰 사건이 터지면 신문에서 한 가지 사건으로 지면을 채우다시피 하는 것을 도배질이라고 한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사건의 비중이 큰 만큼 독자들의 관심도 많다.
중요한 내용의 기사라면 일면 톱 기사에 사진도 크게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만큼 독자들이 궁금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신문도 아무래도 독자들이 알고 싶어하고 읽기를 원하는 기사를 중점으로 다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흔히들 독자들의 알 권리라고 말하기도 한다. 특히 한국 신문은 그런 현상이 심하다. 물론 여기 신문도 그렇지만, 여기 신문은 지면이 분명히 나누어져서, 그렇게 심한 편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 신문의 경우, 신문이 온통 한가지 기사로 덮을 때가 많다. 그 뿐만 아니라 다루는 내용조차 사소한 내용까지 다룬다. 그 현상을 어느 때 보다 잘 보여 준 것이 지난 연말이 아니었나 한다. 정윤회, 문고리 삼인방, 땅콩 부사장…한동안 신문만 펼쳤다면 그 기사였다.
여기 신문은 지면이 분명히 나누어져 그런 현상을 보기 힘든 이유도 있지만 하루 이틀 지나면 큰 사건도 밀리기 나름이다. 한국의 어떤 기사는 내 개인적인 생각이기도 하지만 너무 지나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사건이 과연 온 국민이 떠들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의문도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건을 그렇게 과대평가한 것이 언론의 지나친 반응이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한사람의 불행, 또는 실수를 놓고 온 국민이 씹으면서 대리 만족을 느끼려 하는 것은 아닌지? 그 보다 더한 문제들을 잊어버린 채, 또 정작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는 안보이고, 까발기는 자체에서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무서운 것은 다른 사건과 사고는 안 보이고 완전히 덮어버리고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정치하는 사람들은 큰 실수나 비리가 들통이 나면 다른 사고가 터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터트리는지 모른다. 어떤 사회건 여론 형성에 큰 힘을 가지고 있는 언론이 권력과 결탁하기는 쉬운 법이다.
대형 사고가 터져 자신의 비리를 덮어주기를, 그러나 사실 기다릴 필요가 없는지 모른다. 그가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그 어떤 사고가 당연히 터지는 것이 한국사회다. 신문을 도배질할 만한 사고가 터져 신문에 도배질을 하면, 국민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까맣게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다른 일이 터져 먼저 터진 일을 덮어버리는 셈이다. 사고가 사고를 해결해 준다고 할까? 그런 상황에서 먼저 터진 사고는 해결 된 것이 아니라 그냥 잊혀진 셈이다. 그리하여 같은 사고가 되풀이 돼도, 또 잊으면 그만이었다. 일반 시민들은 그 어떤 사고에 대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기보다 잊어버리는 것이 편한 셈이다. 그 어떤 사고가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에게 직접적인 피해만 안 준다면 그저 고마울 뿐이다.
그런 상황 아래서 아무도 문제의 원인이나 해결책을 묻지 않는다. 어느 일이 중요한가 물어 볼 여유도 없다. 새로 생긴 일이 지난 일을 덮어버릴 뿐이다. 오래된 벽지는 빛이 바랬고 단물이 빠졌다 할까? 오히려 지금 도배질한 사건을 보며, 눈 앞에 보이는 일에 필요 이상으로 흥분하는 것이다. 마치 이 사건 만이 전부인 양, 오히려 새로 터진 사건에 고마워하고 있다. 지난 사건들을 잊어버리게 해주어 고맙다고….
< 박성민 - 소설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동포문학상 시·소설 부문 수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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