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4월8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검찰 수사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측근이던 한 부사장 ‘성 전 회장이 횡령’ 검찰 진술에 배신감
‘구명 요청’ 거절당하자 정권 실세 8명 이름 담긴 메모 남긴 듯

“한 부사장의 진술과 왜 다른가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지난 3일 검찰에 소환돼 받은 질문이다. 그의 변호를 맡은 오병주 변호사는 “성 전 회장이 검찰에서 현장전도금 32억여원을 횡령한 것 아니냐는 질문을 듣고 당황해했다”고 말했다. 검찰에서 이런 진술을 한 사람은 이 회사 재무 담당 부사장이던 한아무개씨였다. 오 변호사는 “성 전 회장은 소환 조사를 받던 날까지도 한씨의 진술 내용을 몰랐다. 나중에 따로 복도에 나와 ‘한씨가 현장전도금을 횡령한 것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고 전했다.

성 전 회장은 한씨가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을 듣고 상당히 서운해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 전 회장의 한 측근은 “성 전 회장의 아들이 한씨와 갈등 끝에 회사에서 나갈 때도 성 전 회장은 한씨의 손을 들어줬었다. 하지만 조사 과정에서 한씨의 진술 내용을 전해듣고는 큰 배신감을 느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씨는 현장전도금 입출금 내역은 물론 성 전 회장과 나눈 대화의 녹취록까지 검찰에 제출해 자신의 혐의를 벗으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성 전 회장은 “회사 자금은 한씨가 담당했다”며 맞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내부자’ 덕분에 검찰 수사는 빠르게 진행됐다. 검찰이 경남기업을 압수수색한 것은 지난달 18일이다. 성 전 회장이 검찰에 출석한 것은 3일이다. 검찰이 매출 2조원 규모 기업의 수상한 자금 흐름을 포착해 총수를 부르는 데 걸린 시간은 16일에 불과했다. 포스코건설 비자금 수사와 견줘보면 속도 차이가 확연하다. 검찰은 경남기업보다 앞서 지난달 13일 포스코건설을 압수수색했지만 한달이 훌쩍 넘도록 정동화 전 포스코건설 부회장을 소환하지 못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살아있는 기업과 죽은 기업”이라는 말로 이 차이를 설명했다. 포스코건설의 경우 회사 관련자들이 입을 굳게 다물고 있지만, 경남기업 쪽에서는 ‘협조자들’이 있다는 의미다.

궁지에 몰린 성 전 회장은 해결책을 외부에서 찾으려 했다. ‘성완종 리스트’ 등장인물 등 박근혜 정부 실세들에게 직·간접적으로 구명을 요청했다. 숨지기 하루 전인 8일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다’는 취지의 기자회견까지 열며 대통령 측근들을 압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권력도 여론도 냉담한 반응을 보이자 이튿날 정권 실세 등 8명의 이름이 담긴 메모를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 정환봉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