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0일 오후 청년 기업가들로 구성된 국제 민간 봉사단체인 한국청년회의소 대표단(안영학 중앙회장)을 청와대로 초청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청년들 다 중동 갔다고 말하게…” 인터넷서 반응 싸늘
대통령의 인식, 현실과 다르다는 지적엔 반박도 못해


“대한민국의 청년이 텅텅 빌 정도로 한 번 해보세요. 다 어디 갔냐고, ‘다 중동 갔다’고 (말할 수 있도록).”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9일 제7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한 이 발언에 당사자인 청년들이 분노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청년 고급인력의 국외 진출 장려 방안의 하나로 ‘해외 일자리 포털 개설 및 스마트폰 앱 개발 계획’을 보고하자, 이에 화답하는 박 대통령 특유의 ‘썰렁 개그’였다. 박 대통령의 말에 회의장에는 웃음이 터지는 등 분위기가 좋았다고 한다. 청년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게 청와대 안팎의 대체적 해석이지만, 인터넷 공간에서 드러난 청년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16년만의 최고치를 기록중인 청년실업난에 허덕이는 청년들의 불안·불만·불신이 그만큼 깊다는 방증이다.

누리꾼들은 20일 ‘국내에서의 청년실업 대책에 대한 반성부터 하라’는 지적과, ‘중동붐에 대한 인식이 70년대에 갇혀있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한 누리꾼은 “한국 청년들 다 중동 갔다는 우스개소리로 웃고 떠드는 사이 한국 청년들은 오늘도 시급 5580원 알바를 한다. 저출산으로 한국 청년들이 텅텅 비겠지”(have****, 네이버)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아프리카 순방 다녀오면 아프리카 가라고 했을까? 일자리 만들 생각을 해야지 청년들에게 중동으로 가라니 제정신인가”(paul****, 다음)라고 꼬집었다. 한 트위터 이용자(@luna****)는 “유가가 사상 초유로 떨어진 상황에서 중동건설 붐 어쩌고 하는 게 넌센스”라며 “70년대엔 유가 급등으로 오일달러가 넘쳐나면서 무수한 건설발주가 이뤄졌지만, 지금은 정반대”라고 지적했다.


“유가 최저…중동 건설붐 넌센스”
“청년실업 대책 제대로 만들라”


이런 상황은 이달 초 중동 순방 뒤 ‘제2의 중동 붐’ 세일즈에 잔뜩 고무된 박 대통령의 ‘의욕 과잉’과, 불안한 미래 앞에 움츠러든 청년들의 정서가 충돌하며 벌어졌다. 더구나 박 대통령 발언은 15~29살 청년실업률이 1999년 7월 이후 최대치(11.1%)라는 통계청 발표(18일) 다음날 나온 것이다.

박 대통령은 중동 4개국 순방을 마친 직후 최근 2주 동안 마크 리퍼트 주한 미대사 위문 등을 빼고는 대부분의 공개 행사에서 중동 순방 성과를 강조해왔다. 지난 12일 국가조찬기도회에서는 “열사의 땅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았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제2의 중동 붐’이 ‘제2의 한강의 기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19일 무역투자진흥회에서도 1970년대 오일쇼크(기름값 인상)를 중동붐으로 극복한 사례를 언급하며 “경제 재도약을 간절하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염원하는데 그것에 대한 하늘의 응답이 지금 현실에서 벌어지는(중동 붐) 메시지”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청년들이 다 중동 갔다’고 할 정도로 해보라”는 이번 발언에 대한 논란에 대해 청와대는 ‘청년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걸 강조하기 위한 표현인데 꼬투리를 잡고 있다’며 억울한 표정이다. 하지만 ‘청년들의 중동 진출’이라는 박 대통령의 인식이 현실과 다르다는 지적에는 명확하게 반박하지는 못하고 있다. 최근 유가하락이 1970년대 상황과 다른 데다, 중동 시장에서 과열경쟁과 저가 수주로 기업 손실도 왕왕 벌어지는 상황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는 자국민 일자리를 위해 국외기업에 사우디아라비아 자국민을 우선 채용하지 않으면 과징금을 매기는 정책을 펴는 것도 청년들의 중동 진출이 말처럼 쉽지 않을 것임을 보여준다.
<정유경 석진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