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가 주최한 노동법률강좌의 마지막날이었다.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아 있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승객들이 대부분 구조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남아 있는 상황이어서 예정대로 강의를 진행했다.
진도에 내려간 사람들이 언론 보도와 전혀 다른 절망적 소식들을 전했지만 지금 우리가 알게 된 것처럼 국가의 재난 구조 시스템이 완벽하게 멈춘다거나 해경이 없었다면 오히려 어선들의 구조 활동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도저히 할 수 없었다.
세월호 사건은 노동자 밀집도가 가장 높은 도시에서 노동자 가족들에게 들이닥친 일이기도 했다. 잔업·철야·휴일특근 때문에 아이와 함께 보낸 시간이 적었다고, 일하느라 아이의 마지막 전화를 받지 못했다고, 사고 소식을 듣고도 회사 일은 마치고 가야 하는 줄 알았다고 가슴을 치는 부모들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체육관에 들어서니까 작업복 차림 부모들이 많더라구요. 그 옷을 며칠 동안이나 못 갈아입었어요”라는 얘기를 한참 뒤에야 들으며 함께 눈물지었다.
세월호 사건이 안산지역 노동자들에게 어떻게 다가왔는지를 잘 녹여낸 연극 <노란 봉투>를 보며 마치 그날 그 시간 안산시 단원구에 있었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팔에 소름이 돋았다.
지난 일요일 인천의 한 작은 교회에서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과 ‘리멤버 0416’ 봉사자 초청 대화모임을 마련했다가 경찰이 유가족들을 광화문 누각 앞 길바닥에 사흘 동안이나 고립시키는 바람에 취소했다. 행사 불과 몇 시간 전에 유가족들이 구출되다시피 빠져나올 수 있었는데 약속했던 분이 고맙게도 몸을 추슬러 와 주시겠다고 해서 어렵사리 다시 자리가 마련됐다.
아이의 학생증을 가슴에 단 엄마가 나와서 인사를 한다. “우리 아이는 그렇게 갔지만 저는 이제 죽을 때까지 이 세상 모든 아이들의 엄마로 살아야겠다… 그런 생각으로 왔습니다.”
처음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간 가족들을 산기슭 외딴곳 진도체육관에 고립시킨 이래 자신들은 1년 동안 정부와 언론 등에 의해 계속 고립돼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래서 이렇게 관심 가져주는 사람들이 귀하고 고맙다고 했다.
오로지 아이들만 위해 열심히 살았는데,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한 아이는 이미 없는데 왜 지금에야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일을 해야 하는지 너무 억울하지만 그 이유는 “여기 있는 여러분도 얼마든지 저처럼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이들 키우는 일만 열심히 하며 산 것이 좋은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는데… 노동자들이요, 그런 문제들에 관심을 갖지 않고 살아온 것이 너무 부끄럽고 아이한테 미안한 거예요.”
‘노동자들이요’ 그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아!’ 하고 신음소리가 나왔다. 고마웠다.
“경찰과 싸울 때 보면 우리 아이보다 불과 한두 살밖에 많아 보이지 않는 새파란 애들이 싸우다가 잡혀가는 거예요. 아이들이 그렇게 총알받이 노릇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가 될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관심 많이 갖고 도와주세요.”
새파랗던 20대에 광주민중항쟁을 겪었다. 그 사건이 내 삶을 규정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 뒤 오랜 세월 동안 ‘80년 5월 광주에 있었다면 총을 들었을까? 도청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을까?’ 하는 부채감이 자신을 다스리는 채찍 역할을 했다. ‘80년 5월 광주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하는 것이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됐다. 스스로 자신을 ‘80년 5월 광주 세대’라고 불렀다.
앞으로는 세월호 사건이 우리의 삶을 규정할 것이다. 침몰하는 세월호에 있었다면 “내 구명조끼 입어”라고 말하며 벗어준 학생이었을까? “선원은 맨 마지막이야”라고 말하며 끝까지 남은 선원이었을까? 이런 부채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세월호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하는 것이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이제부터 우리는 모두 ‘416 세월호 세대’이다.
< 하종강 - 성공회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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