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정부의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안 폐기를 요구하는 유가족 등 시민들을 향해 경찰이 최루액을 뿌렸다. 11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문화제를 연 유가족과 시민들이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려 하자 차벽을 설치하고 캡사이신 최루액을 뿌려 진압한 것이다. 경찰이 세월호 관련 집회에 대응해 최루액을 사용한 것은 처음이다. 참사를 애도하고 책임을 통감해야 할 공권력이 되레 추모 행렬에 주먹질을 한 셈이다. 참사 1주기가 다가오면서 정부가 내놓는 ‘세월호 인양 검토’ 등 온갖 유화 발언보다 이런 행동 하나야말로 세월호를 대하는 정부의 솔직한 속내를 드러내 보여준다.
경찰은 ‘집회 참가자들이 여덟 차례 해산명령에 불응하고 경찰 방패를 뺏는 등 폭력을 행사했다’고 이유를 댔다. 정당한 요구를 표출하는 시민들을 가로막은 뒤 충돌이 벌어지면 폭력행위자로 매도하는 낡은 수법이다. 유가족과 시민들의 평화로운 행진을 경찰이 폭압적으로 차단하지 않았어도 그런 충돌이 벌어졌겠는가. 나아가 정부는 시민들이 왜 분노하는지부터 헤아려야 했다.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안은 누가 봐도 진상 규명을 방해하는 독소조항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런 시행령안을 고치라는 요구를 보름 넘게 묵살해온 정부가 급기야 그 요구를 최루액으로 틀어막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어이없는 행보는 이뿐만이 아니다. 세월호 인양을 두고도 말이 뒤죽박죽이다. 모르쇠로 일관하던 박 대통령이 6일 “선체 인양을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밝히더니, 9일에는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이 인양의 위험성과 실패 가능성, 추가 비용 등을 고려해 인양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신중론을 폈다. 대통령과 장관의 말이 전혀 다른 뉘앙스다. 게다가 하루 뒤인 10일에는 해양수산부가 ‘세월호 인양이 가능하다’는 기술 검토 결과를 예정보다 이틀이나 앞당겨 급작스레 발표했다. 마침 ‘성완종 리스트’가 보도된 날이었다. 이렇게 속 보이는 태도를 취하니 정부의 진정성을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정부는 세월호 참사 1주기인 16일 당일 추모제 대신 ‘국민안전다짐대회’를 연다. 참사와 관련된 내용도 담지 않은 고색창연한 관변행사나 열겠다는 발상이 한심하다 못해 놀랍기만 하다. 반면 유족과 시민들이 참여하는 16일 추모집회에는 다시 경찰 차벽을 설치하겠다고 경찰청장이 나서 당당히 밝히고 있다. 박 대통령은 그날 외국 순방을 떠난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뻔뻔한 정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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