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부활한 백합과 측은지심

● 칼럼 2015. 4. 11. 17:55 Posted by SisaHan

부활절을 앞두고 어느 목사님이 예쁜 백합 화분을 하나 선물해 주셨다. 고맙고 기쁜 마음으로 집에 들고 와 백합이 든 비닐봉지를 꺼내놓는데… 이런! 봉오리 하나가 고꾸라져 있지 않은가. 운반도중 봉지 속에서 아마 상처를 입은 것 같았다. 3개의 봉오리 가운데 하나는 활짝 피어 우아하고 예쁜 자태를 뽐내며 잘 버티고 있는데, 통통해서 곧 피게 될 봉오리 2개 중 하나가 꽃대의 상처로 고개가 푹 꺾여진 것이다. 이를 어쩌나, 이 봉오리는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시들어버리게 될까. 가여운지고… 안타까운 마음에 응급조치를 해보기로 했다. 꺾인 꽃줄기 부분에 반창고를 두르고, 옆 꽃대에 고무줄을 걸어 버틸 수 있게 바로 세웠다.
그런데, 이렇게 반가울 수가! 꽃봉오리가 생기를 띄는 것 같더니 부풀어 올라 꽃잎을 내밀기 시작한다. 마침내 부활절 아침, ‘부활절의 꽃’ 답게 웃음 가득 머금은 곱고 뽀얀 얼굴로 활짝 피어난 것이다. 아이구 하나님, 감사합니다! 백합에게도 부활을 주셨군요!
하찮은 식물도 상처를 싸매는 작은 손길 하나가 부활의 기쁨을 안기는구나~. 신기함과 뿌듯함에 부활절의 의미가 더욱 새로워진 것은 물론이다. 죄악과 온갖 상처에 찌든 사람들에게 생명의 부활을 깨우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대속(代贖)이란…도저히 비교할 수야 없는 일이지만.

우리는 듣지도 보지도 말도 못하는 헬렌 켈러를 사랑으로 돌본 앤 설리반 선생의 이야기를 안다. 하지만 설리반 자신도 엄청난 상처와 장애를 극복한 인간승리의 주인공임을 아는 이는 많지않다. 설리반은 엄마가 죽고 아빠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보호소에 보내져 동생마저 죽자 그는 충격에 자살을 시도하고 실명과 정신이상이 됐다. 치료도 포기상태에서 로라 라는 한 간호사가 그녀를 자원해 돌보기 시작했다. 철벽처럼 닫히고 굳어진 설리반의 마음이 변하고 열린 것은 2년이라는 긴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그렇게 로라의 사랑의 손길은 그녀를 신앙으로, 또한 학교 우등생으로 부활시켰다. 그리고 설리반이 눈 수술로 시력을 되찾아 읽은 한 신문에서 ‘보도 듣도 말도 못하는 아이를 돌볼 사람을 구한다’는 구절을 읽고 “내가 받은 사랑을 갚겠다”며 찾아가 48년간이나 헌신해서 길러낸 인물이 바로 헬렌 켈러였던 것이다.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린 ‘생명을 구하는 포옹’(The Rescuing Hug) 혹은 ’사랑의 터치’라는 사진과 실화가 있다. 95년 미국 매사추세츠의 메모리얼병원에서 12주나 빨리 태어난 쌍둥이 조산아 자매가 서로 다른 인큐베이터에서 자라게 됐다. 그런데 심장에 문제가 있던 한 아이의 상태가 갈수록 나빠져 생명이 희미해져 갔다. 마침 오랜 경력의 간호사가 엄마 뱃속처럼 한 인큐베이터에 넣어보자고 제안해 같이 있게 했을 때,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아직 눈도 뜨지 않은 상태인데, 건강한 아이가 손을 뻗어 병약한 아이를 감싸 안았고, 죽을 고비를 헤매던 아이는 놀랍게도 호흡과 맥박이 정상으로 돌아와 나날이 호전되어 갔다. 이후 무럭무럭 자란 아이들이 꿈에 부푼 소녀들로 자랐다는 사실을 조엘 오스틴이 ‘긍정의 힘’에 소개해 세상에 감동을 전했다.

크든 작든 따뜻한 사랑의 손길이 사람을 살린 사례는 드물지 않다. 그 사랑의 힘은 우리가 함께 어울려 살아가며 서로 돌보고 서로 부축해 주어야 함을 일깨운다. 상처와 고통으로 낙심하고 절망하는 이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 힘과 용기가 되어주는 일. 눈물 흘리는 이들을 위로하고 감싸주는 마음, 그런 측은지심(惻隱之心)과 긍휼의 발로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가르친 예수는 원수도 사랑하라고 말씀했다. 맹자는 측은지심을 남의 불행과 어려움, 고통을 보면 불쌍히 여겨 도우려는 사람의 본성이라면서, 그런 마음이 없다면 인간이라 할 수 없다고까지 단언했다.
우리는 아주 작고 하찮은 손길에도 위대한 결실을 맺는 사랑의 힘을 목도하며 감동하곤 한다. 그런데도 말처럼 쉽지 않은 게 또한 사랑과 긍휼의 손길 내밀기다. 이런저런 형편 때문에, 바빠서, 내 일이 아니니까, 내편이 아니어서…, 그렇게 메마르고 무정할 때가 너무나 많다. 부족한 이들을 비웃고, 모자라다고 업신 여기고 짓밟고, 아파하는 이들의 가슴을 후벼파지 않으면‥그마나 다행일 정도다. 그런 매정함에 둔해져 가는 현실이 더 무섭다. 갈수록 인간다움을 잃어가며 삭막한 기계인간의 세상으로 달려가는 것은 아닌지, 두려움에 스스로도 자문해본다. 너의 측은지심은 살아있는가. 주변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는가. 사랑의 손길을 내밀 줄 아는가? 나의 작은 ‘사랑의 터치’가 언제 나에게 닥쳐올 ‘생명을 살리는 손길’이 될지 알 수 없다는 것을 아는가.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