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왜곡 중단을 촉구하는 일본 역사학자들의 성명이 25일 발표됐다. 최근 한-일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어서 더 뜻깊다. 아베 신조 일본 정부는 이를 계기로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과거사 해결에 적극 나서기 바란다.
성명에 참여한 단체는 역사학연구회 등 4개 대형 역사단체를 비롯해 16개 역사 연구·교육 단체를 망라한다. 반년 정도의 준비기간 동안 ‘일치를 본 의견’을 모았다고 하니 성명 내용에 무게가 느껴진다.
핵심은 위안부 강제연행은 역사적 사실이며 일본 정부는 이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은 인정하면서도 강제연행을 부정하거나 교묘하게 책임을 회피해온 아베 정부의 태도가 잘못이라는 얘기다. 이 성명은 지난 6일 지구촌 역사학자 187명이 낸 위안부 관련 성명과 맥락을 같이한다. 아베 정부는 자국 학자들도 인정하는 사실에 대해 애써 눈감으려는 자세에서 빨리 벗어나야 마땅하다.
아베 정부의 ‘과거사 뭉개기’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말 미-일 정상회담 등을 계기로 한-일 외교관계를 정상화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23일 일본 도쿄와 필리핀 보라카이에서 두 나라 재무장관 회담과 통상장관 회담이 열렸다. 둘 다 2년 이상 중단됐던 회담이다. 특히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박근혜 정부의 부총리급 이상 고위관료로는 처음 일본을 찾았다. 오는 30일에는 싱가포르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를 계기로 한-일 국방장관 회담이 열린다. 언뜻 보면 두 나라가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수순을 밟는 것 같기도 하다.
일본은 한-미-일 삼각 협력 강화를 추구하는 미국을 등에 업고 한-일 관계 개선을 밀어붙인다. 하지만 아베 정부가 과거사 해결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한 진정한 한-일 외교 정상화는 있을 수가 없다. 부분적으로 정경분리나 실용외교가 시도되더라도 일본의 진의에 대한 의심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가 과거사 문제에서 중립적인 듯하면서 사실상 일본 편을 드는 것도 잘못이다. 2차대전 이후 역사를 돌아볼 때 미국은 진실에 근거한 과거사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할 의무가 있다.
역사에 묶여 아무것도 못하면 안 된다는 말은 맞다. 과거보다 현실과 미래가 중요하다는 주장도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역사의 진실은 그 자체로 현실과 미래를 규정한다. 편법으로 구축된 관계는 사상누각처럼 기반이 취약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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