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민 왔을 때, 신기한 일 중의 하나는 여기 애들이 말을 할 때, ‘Thank You’ 와 ‘Sorry’를 너무 자주 그리고 쉽게 쓰는 일이었다. 정말 입만 벙긋하면 그 말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당시의 내 입에서는 정말로 감사하고 싶은 경우에도 쉽게 튀어나오는 말이 아니었다. 그 것이 우리 문화이기도 했다. 동시에 감사나 사과의 말을 너무 쉽게 하는 것은 그 진실성을 의심하게 만들기도 하고 사람을 가벼워 보이게도 했다. 그에 반해 내쉬는 숨소리처럼 해대는 이 곳 사람들을 볼 때 처음에는 참 예절이 바르고 매너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나아가서는 그 것이 가진 자의 여유이며 풍요로운 서양문화의 특징일 거라고 지레 짐작을 했다.
지금이야 그 단어들이 그냥 습관적으로 튀어 나오는 것이지, 진심이 담겨 있을까 의심해야 하는, 적지 않은 경우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 일상생활을 하며 어느 단어보다 자주 써야하는 단어가 아닌가 생각한다. 하루 살아가며 알게 모르게 자주 써야만 하기 때문이다.
학교 교실이나 직장에서 사소한 다툼이 있을 때,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한 쪽에서 ‘Sorry.’라고 하면 문제가 간단하게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나같은 경우는 분명히 내가 잘못한 일도 상대방에게 먼저 미안하다고 말 할 수가 없었다. 자존심 문제만은 아니고 그 간단한 말이 자주 하던 말이 아니어서 입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상대방이 먼저 손을 내밀며 미안하다 했을 때, 마지못해 손을 잡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의 유교 문화의 전통 때문이었을까? 나는 군자 내지는 선비의 후손? 왠지 먼저 사과를 하면 상대방에게 굽히고 들어가는 것 같았다.
사과의 말은 그렇다 치더라도 감사의 말, 고맙다는 말도 그때는 이상하게 입에서 잘 나오지 않았다. 제일 먼저 생각나는 일이 있다. 그 때 혼자 한국식당에 간 적이 있는데, 늦은 오후여서 손님도 별로 많지 않을 때였다. 마침 내 옆에 내 또래의 백인 녀석이 앉았다. 지금 같으면야 한국식당에 백인이 앉아있는 것이 흔한 일이었지만 그 때는 흔치 않을 때였다. 근데 이 녀석이 연신 ‘Thank you.’ 그러는 것이었다. 자리에 앉으면서 시작하여, 물컵을 받으면서, 메뉴판을 받아 들면서, 반찬, 음식, 계산서, 거스름돈…기타 등등, 처음에는 무심히 들어서 정확히 세어보지 않았지만, 적어도 10번은 넘게 말했던 것 같다. 나야 다 먹고 나오며 감사합니다 딱 한 번 했지만….., 나오면서 그는 도대체 식당에 밥을 먹으러 온 것인지 감사하다는 말을 하러 온 것인지 의문이 갔다.
가끔 지하철에서 보는 풍경이다. 특히 센트 조오지역에서 출입문이 바뀌는 것을 모르고 문을 가로 막고 있는 경우가 있다. 그 전 역인 스파다이나에서는 바깥 쪽 문이 열리지만, 안 쪽 문이 열린다. 그 사실을 모르고 친구와 이야기하며 서있는 경우가 있다. 짜증을 내는 사람도 잘못이지만 뒤늦게 알았으면 미안하다는 한 마디로 비켜서면 되는 것이다. 그냥 머뭇거리면 상대방은 인상을 쓰며 욕을 하고 나갔다. 지하철 역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도 그렇다. 오른 쪽으로 붙어 서있는 것이 예의다. 친구와 이야기 하느라 가로막고 있는 것은 실례다. 물론 두 경우 그 분들은 옷차림이나 한국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 이곳 실정에 밝지않은 분들 같았다. 그 상황에서 판단을 하여 ‘Sorry.’라고 한마디 했다면 욕을 먹는 일이 없었을 것이고 본인도 기분 상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몰랐기에 그런 상황이 벌어졌지만, 사과를 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여기 애들 같으면 Sorry라는 말이 거의 반사적으로 튀어나온다. 전혀 잘못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도….
나도 이제 오랜 이민생활 끝에 ‘Thank and Sorry’ 를 입에 달고 다닌다. 입만 열면 생각없이 반사적으로 튀어 나온다. 가끔 나는 살면서 만나는 많은 이들에게 감사하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 진심으로 하고 있는지 물어 보지만…., 아무튼 빈말을 하기 싫다해도,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 Thank you, Sorry는 적절히 사용해야 하는 것 같다.
< 박성민 - 소설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동포문학상 시·소설 부문 수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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