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 - 동서양 불문 ‘스테미나식’
바야흐로 굴의 계절이 돌아왔다. 굴만큼 전세계 미식가를 사로잡은 해산물이 또 있을까! 카사노바, 비스마르크, 발자크, 클레오파트라 등 역사적 인물들이 앉은 자리에서 수백 개의 굴을 먹어치웠다는 에피소드도 전해진다. 굴의 매력은 관능적인 식감과 바다 향을 온전히 담은 진한 맛, 영양소의 보물창고라는 데 있다. 열량은 낮지만 단백질, 글리코겐, 남성호르몬 분비를 촉진한다는 아연, 비타민 등이 풍부하고, 멜라닌 색소를 분해하는 성분까지 있어 여성에게도 좋다고 알려져 있다. 굴은 생굴 자체의 신선한 향과 맛을 즐기는 것을 최고로 치지만, 동서양에 따라 그 조리법과 식도락의 방식이 조금씩 차이 난다.
익힌 굴을 사랑하는 중국·일본
굴짬뽕, 굴튀김, 굴 도테나베… 이 음식들의 공통점은 굴을 익혔다는 것. 생굴을 즐기는 서양과 달리 동양은 익힌 굴 요리가 많다.
날생선 요리가 거의 없는 중국은 주로 굴을 말려서, 튀겨서, 소스로 만들어 즐겼다. 중국 굴소스는 ‘아시아 퀴진’을 대표할 정도로 유명하다. 신선한 생굴을 소금에 절였다가 발효시키는 소스로, 광둥식 요리에 주로 썼으나 지금은 대표 중식 소스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식문화는 시대에 따라 변하기 마련! 최근 중국은 세계 최대 굴 소비국으로 등극했다. 소득 수준이 향상된 중국인들이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서양식으로 굴을 즐기는 방식에 빠져든 것이다. 중국은 세계 최대 굴 생산국이기도 하다. 다만 연근해 수질이 좋지 않아 생굴로 먹지 않는다. 생굴은 수입에 의존하는데, 한국 통영산 굴도 대상이다.
일본에도 익힌 굴 요리가 많다. 일본 슈퍼마켓에는 생굴과 함께 ‘익혀 먹는 조리용 굴’ 코너가 따로 있다. 일본인은 굴튀김, 굴덮밥을 특히 좋아한다. 빵가루 입혀 튀겨내는 ‘가키 프라이’와 ‘가키 덴푸라’는 집에서도 쉽게 해 먹는다. 굴튀김은 바삭함과 보드라움이라는 극단의 식감을 모두 껴안아 경이로운 굴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일본 부침개 오코노미야키에 살짝 익혀 올린 굴 모양새는 보기만 해도 어깨가 들썩인다.
생굴에 사족 못 쓰는 프랑스
프랑스 화가 장 프랑수아 드트루아가 1735년에 그린 <굴이 있는 점심 식사>에는 굴껍데기를 바닥에 수북하게 쌓아놓고 굴을 먹는 귀족들이 보인다. 자고로 낭만적이다 못해 방탕했던 프랑스 귀족들의 애정사는 굴이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싶다. 여성들과의 데이트에 앞서 굴 수십개를 먹고 출동했다는 카사노바만 봐도 유럽에서 굴은 비아그라 대용품이었는지도 모른다.
프랑스는 브르타뉴 캉칼 지역이 굴 주생산지다. 프랑스인들은 별다른 조리법 없이 생굴 자체를 즐긴다. 굳이 뭔가를 넣는다면 레몬즙이나 다진 샬롯(적양파)과 와인식초 등을 섞은 소스(미뇨네트소스)를 뿌려 먹는다. 마리아주(음식과 와인의 조합)를 중요하게 여기는 프랑스인들은 굴을 화이트와인 샤블리나 샴페인과 곁들여 먹는다. 겨울비처럼 차가운 샤블리에 흥건하게 젖은 굴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면 그 관능적인 쾌락에 푹 빠진다.
프랑스는 손에 꼽히는 굴 생산국이자 소비국이다. 식중독의 위험이 있는 5~8월만 빼고는 굴을 입에 달고 산다. 겨울철 파리 레스토랑에서는 얼음바구니에 석화를 수북하게 꽂아두고 굴을 즐기는 이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뷔페 레스토랑에서도 굴은 인기다. 호텔 레스토랑에서도 여행객의 눈을 사로잡는 분홍빛 마카롱보다 더 먼저 동이 나는 것은 굴이다. 프랑스에 익힌 굴 요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음식은 국경을 넘어 씨앗을 뿌린다. 이탈리아식 그라탱이나 미국식 스테이크 등이 굴과 만난다. 프랑스 요리의 대부 조엘 로뷔송은 굴을 익힐 때의 주의사항을 ‘매우 짧은 시간에 굴을 그을리듯 익혀야 질겨지지 않는다’고 했다. 알려진 바와 달리 미식가도 대식가도 아닌 나폴레옹도 생굴만은 즐겼다고 하니, 생굴이야말로 프랑스를 대표하는 먹거리 중 하나다.
날로도 좋고 익혀도 좋은 한국
한국인이 먹는 굴은 수백가지 넘는 굴 종류 중 참굴로, 서해안에서 채취하는 자연산도 있지만 양이 적다. 대부분은 통영 등 대표적인 굴 생산지에서 양식하는 굴이다.
과거 기록을 살펴보면 한국인들이 굴을 즐기는 방식은 매우 다채로웠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익이 ‘입에 들어가면 몹시 입맛을 돋우어준다’고 표현했을 정도로 생굴로도 즐겼고, 꼬챙이에 꽂아 기름을 발라 구워 먹기도 했다. 매콤한 초장에 찍어 먹는생굴은 우리만의 자랑거리다.
서울로 여행 온 프랑스인들이 가장 놀라는 요리가 초장에 찍어 먹는 굴이라고 한다. 노릇노릇 익힌 굴전은 표현할 말이 없을 정도로 고소하다. 굴국밥, 굴죽 등 전국에 퍼진 굴 요리들을 연구할수록 그 가짓수에 놀란다. 우리 조상들이 굴을 익혀 먹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약식동원’(약과 음식은 그 근원이 같다)의 개념에서 출발해 음식도 음양의 조화가 중요하다고 봤다. 익히면 굴 특유의 냉한 성질을 보완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먹거리를 쾌락만 추구하는 대상이 아니라 우리 몸을 지키는 약으로 보는 철학이 깔려 있다. 굴이 남성 고환이 부었을 때 사용하는 구급약이었다는 기록도 있다.
지역마다 사람마다 즐기는 방식이 달랐던 한국의 굴. 그 다양성을 즐겨보자.
< 박미향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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