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발전 동포의 몫

● 칼럼 2016. 1. 8. 21:02 Posted by SisaHan

동포 애국심 밑거름 발전… 현실 한숨
이민 경륜·캐나다 선진문화 이전 노력을

신뢰의 신문을 향해 10년을 달려 온 시사 한겨례 다운 발상이라고 여겨지지만, 필자에게 주어진 제목이 너무 큰 것은 물론, 모국이 정의로운 나라로 도약해서 민주적인 선진문화를 확립하는데 캐나다 동포들이 어떤 몫을 해야 할 것인지를 제시하기란 사실 부담스런 일이다.


독일 통일의 교훈: ‘라인강의 기적’을 공부한다면서 독일에 유학간 필자는 동서독간 장벽을 뛰어 넘어 선물, 편지를 교환하는 것이 꿈 세계 같았다. 당시 동아일보 통신원으로 칼럼을 게재한 적도 있지만, 서독이 동독에 관용과 포용의 끈끈한 관계를 이어가며 ‘1민족 2국가’를 근간으로 한 브란트 수상의 ‘동방정책’을 발전시켜 1989년 11월 통일 성업을 성취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통일 독일이 세계 최강의 경제대국이 되고 캐나다의 20배가 넘는 100만명의 시리아난민을 받아들이는 점을 보면 유일한 분단 국가로 남은 우리 입장에서 진지하게 연구하고 꼭 본받아야 되지 않을가?


배달민족의 애국심 유전인자: 대학시절 어느 교수가 ‘수많은 타민족으로 구성된 미국인들의 애국심이 매우 큰것 같은데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봅니까?’ 라는 필자의 질문에 ‘첫째 국내에서는 노력한 만큼 잘 살수 있고, 해외에 나가서도 어떠한 불이익도 받지 않게 국가가 잘 보호해 주기 때문이지’라는 대답을 해준적이 있다.
우리 배달민족은 많이 다른 것 같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임금과 관료들이 자기들만 살겠다고 피난했을때 외적에 맞선 농민들이 의병을 일으켜서 나라를 구했다. 일제 침략자들에게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삶의 터전을 강탈당하고 만주 벌판으로 쫓겨간 농민들이 형언할수없는 비참한 새삶을 꾸려가면서도 재정적으로 독립군을 돕고 독립군으로 직접 자원하기도 했다. 역시 일제의 속임수에 빠져서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 노예노동자로 팔려갔던 조선인들이 미국에서는 물론 상해임시정부의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했음은 잘 알려져 있다. 우리 배달민족의 애국심과 민족사랑은 유대인들의 이스라엘 사랑에 버금가리만큼 남다른 것 같다. 아마도 우리 민족의 피속에는 애국적 유전인자가 담뿍 들어있음이리라.
그런데 1945년 해방이후 6.25 전후의 혼란기에 위정자들이 국민들의 애국심을 정치적 목적에 악용한 패단때문에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아니 21세기인 오늘날까지도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에서 처럼 그러한 폐습이 연장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우리의 조국은 남한만인가?: 90년대 중반 북쪽에 ‘사상 최악의 기근’을 만나 수백만명이 아사하고 있을 때 서방세계가 식량원조에 발벗고 나섰을때, 흥청망청 잘사는 남쪽에서는 버리는 음식물만도 1인당 하루 500그람이 넘는데도 굶어 죽어가는 동족을 모른체 외면했었다. 세계인의 눈에 이러한 남북관계와 한국인이 어떻게 인식되었을까?
박정희 개발독재시절 적정임금의 1/3이하를 지급한 노동자 임금착취, 한국의 젊은이들이 독일의 1000피트 지하광산, 베트남의 밀림전쟁터, 중동의 얼사에서 희생적으로 봉사한 덕택에 한국이 ‘한강의 기적’을 성취하고 이젠 잘사는 나라가 됐다.
그런데 중일의 틈바구니에서 한국은 갖가지 도전을 받고 있다. 뒤쫓아 오는 중국의 도전으로 그동안 3대효자 산업중의 하나였던 조선업이 선더미처럼 증가하는 적자로 반토막이 된 것은 노임격차가 그 원인이다. 남북간의 교류협력만이 그 해결책일 것이며, 개성공단이 입증하듯이 남쪽이 북쪽보다 수십배 더 큰 이득을 보게 될 것이다. 남북이 상호협력을 통한 공생공영의 길을 택하지 않을수 없는 숙명이라 하겠다.
다행스럽게도 2000년 6월 진보적인 DJ 정권이 남북 교류협력의 역사적인 물꼬를 트고 뒤이은 MH정권에서 계속해서 남북공생공영의 터전을 닦았다. 그러나 사상 최악의 무능부패 MB 정권이 분단 55년만에 트였던 남북협력의 물꼬를 다시 막아버리더니, 현 정권하에서도 적대적 대치상태가 더 악화되고 있다.


나누고 보살피는 선진문화사회 지향: 선진화를 추구하려는 한국이 북구나 캐나다를 모델로 삼아야 할가, 아니면 나라의 구석 구석 까지 만연한 갑질행패, 늘어나는 외국인 노동자는 물론 동족인 조선족과 탈북인들 까지 온갖 멸시와 차별을 다하면서 남북이 대치적인 공포정치체재를 계속 해야 할까?
캐나다 역시 유색인종은 물론 앵글로색손 이외의 모든 타민족에 대한 차별이 극심했던 국가였으나 생산인구의 필요성 때문에 1960년대에 이민법을 개정하여 모든 이민자를 환영하고 복합문화정책을 채택하면서 급변하게 되였다. 82년 획기적인 ‘인권헌장’을 헌법에 추가하므로서 인종차별을 헌법으로 금지한 후 지금은 11살때 아프가니스탄 피난민으로 캐나다에 정착한 ‘몬세프’라는 무슬림 여성 초선의원을 최근 투루도정부에서 31세의 최연소 장관으로 임명할 만큼 널리 포용하는 선진 복합문화국가로 변신했다.


캐나다 한인사회의 역할: 겨우 20만을 웃도는 캐나다 한인사회가 미국의 1/10에 불과하리 만큼 크지 않고 역사도 50여년 밖에 되지 않지만, 70년대의 한국 민주화운동 주도, 남북간의 첫 이산가족상봉이 성사된 2000년도 보다 21년 앞선 79년의 ‘이산가족상봉 사업’ 시작, 북미주에서 가장 먼저 신용조합 및 협동조합운동의 시작, 세계에서 유일하게 교민사회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캐나다 최고인 토론토대학에 한국학과를 성공적으로 설치한 ‘토론토대학 한국학과 후원재단’ 설림-78년, 북미주 최초의 ‘캐나다한인장학재단’설립-78년, 과 같은 사례가 입증하듯 이민1세들이 성공적으로 정착함은 물론, 2세, 3세 자녀들이 마음껏 능력을 발휘할수있게 된것이 캐나다의 포용적인 복합문화사회 덕택이겠다. 이러한 캐나다를 모국이 자진해서 선진화 모델로 삼으면 최상일 것이다.


캐나다 교민사회가 모국의 여러 분야에 스카웃된 전문인들과 수많은 유학생들을 통해서 모국의 캐나다형 선진화 노력에 벌써부터 상당한 보탬이 되고 있으리라. 초대이사장을 역임한 윤택순박사 같은 분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매년 30여명의 장학생을 배출함은 물론, 벌써 1.5세대로 주역의 세대교체까지 성공시킨 ‘캐나다한인장학재단’에서는 모국의 포항공대생 2명에게도 각 1만불의 장학금을 매년 지불하고 있다. 이재단에서 벌써 여러해전부터 시행하고 있는 ‘지도자양성 프로그램’을 크게 보강, 발전시킨다면 현지 캐나다 사회는 물론 캐나다의 선진문화를 모국에 이전하는 역할에도 큰 몫을 하게될 것이다.

< 김병권 - 무궁화사랑모임 창설, 전 평통지부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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