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진실로 깨닫기만 해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은 반으로 줄어들 것을…”
이동렬 교수, 시사 한겨레 창간 10주년 휘호로 축하
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세상에는 있다고 보면 있고 없다고 보면 없다.
「세상에는 있다고 보면 있고 없다고 보면 없다.」 (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심불재언 시이불견 청이불문).
영국의 극작가 세익스피어의 「햄릿」 (Hamlet)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이 세상에는 슬픈 일, 기쁜 일은 없다. 오직 슬픈 생각, 기쁜 생각이 있을 뿐이다.” 맞는 말이다.
우리 생각이 “슬픈 사건으로 규정하면 슬픈 일이지 사건 자체가 슬픈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노자(老子)는 자기 아내가 죽었을 때 항아리를 두드리며 노래했다지 않는가. 이성(理性)이 진리 여부를 지배하던 시대정신은 가고 개인의 경험이 진리 여부 규정에 참여하는 시대가 왔다.
일찍이 청나라 수도를 다녀와서 기행문을 남긴 조선의 선비 연암(燕岩) 박지원의 글에 ‘이명’(耳鳴) 이야기가 나온다. 이명이란 귀에서 소리가 나는 병으로, 본인에게는 분명 귀에 여러가지 이상한 소리가 들리나 옆 사람이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멀쩡하다. 춥고 배고프다고 신음을 계속 하는데도 옆 사람들은 지금 여기가 바로 천당, 얼마나 살기 좋은 세상이냐고 떠들어 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을까. 이쪽에서 보면 이 세상은 천당이나 저쪽에서 보면 지옥이다.
서로 생판 다른 경험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아가야 하는 사바(娑婆) 세계. 그래서 「아리랑」의 시인들은 노래했다. “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 우리네 살림살이 말도 많다”고. 내 주위에는 나의 형님 누나 동생을 포함해서 100사람이면 100사람 다 다른 사람으로 우글댄다. 나와 같은 생각, 같은 감정, 같은 걱정을 하고 있는 사람은 찾아 볼래야 찾아 볼 수가 없다. 하나의 난자와 정자의 결합으로 생긴 일란성 쌍생아(一卵性 雙生兒)도 심리적인 환경에 있어서는 서로 다르지 않는가. 그러나 연암의 이명 이야기처럼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설령 깨닫는다 해도 그들의 존재를 참거나 견디지 못하고 못마땅해 하거나 분해한다.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진실로 깨닫기만 해도 이 세상에 있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은 반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 나만 열심히 고물고물 살아가는 것이 오늘날과 같은 난세(亂世)를 살아 남는데 가장 필요한 처세술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소극적이랄까 이기적인 태도라는 생각이 슬며시 기어들어 온다. “근하신년”.
병신년 새해 아침에
청현산방주인 도천 (靑峴山房主人 陶泉)
< 이동렬 - 웨스턴 온타리오대 명예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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