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 소망] 복음의 능력

● 교회소식 2016. 2. 6. 19:55 Posted by SisaHan

복음은 ‘복된 소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말은 바울이 가장 많이 사용했는데, 바울은 누구보다 복음이 갖는 원래 의미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복음이라는 말은 기독교에서만 사용하는 전문 용어가 아니다. 바울 당시 이 말은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던 말이다. 특히 황제가 베푸는 선정이나 칙령이 복음이라는 말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황제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고, 그 명령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바울은 이것은 진정한 복음이 아니고, 거짓 복음에 불과한 것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그가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그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고,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복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들을 위해 베푸신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임을 전하게 되었다. 그것은 황제가 베푸는 복음과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생명과 복을 주는 유일한 것이기에 그는 담대하게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게 되었다.


그런데 바울이 이처럼 위대한 것으로 외쳤던 복음이 우리 시대에 와서 다시 퇴색해져버린 고물처럼 취급을 당하고 있음을 본다. 어떤 면에서 복음은 현대인을 좀 더 편하게 만들어주는 테크놀로지보다도 못한 것이 되어 버렸고, 사람들에게 완전히 무시당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났지만 애플의 전 CEO였던 스티브 잡스가 살아 있을 때 새로운 애플 제품을 가지고 발표회를 하는 것이 기억이 난다. 인터넷으로 생중계가 된다고 하는 예고가 나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새 제품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설렘으로 기다리고, 또 발표회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이윽고 그 제품이 나오면 새벽부터, 아니 전날부터 매장 앞에 줄을 서서 제품을 사기 위한 전쟁을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만일 예수님이 다른 한 곳에서 그와 같은 방법으로 복음을 선포하신다면 과연 사람들이 애플의 신제품을 기대하는 것처럼 기대할 것인가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복음은 구닥다리라고 여기고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당장 자기들에게 편함과 행복감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을 원하지, 영원한 세상을 보장해 준다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어서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다.


왜 이처럼 하나님의 복음이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지 못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복음이 얼마나 위대한 것이고, 복음이 주는 결과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에 대한 확실한 인식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복음 자체가 힘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애플 제품을 쓰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권하고, 때로는 그 제품을 사용하는 것을 특권처럼 여기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데 정작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에 대해 확실히 알지도 못하고, 그것을 확실하게 전하지도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만일 복음에 대한 바른 이해와 그 능력을 경험한다면 분명 이 땅에 엄청난 복음의 역사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교회는 올해 표어를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라’라고 정하고 주일마다 로마서를 강해하고 있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확실히 고백한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 1:16). 오늘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로마 황제가 주는 복음이 진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복음이 진짜라고 외치는 바울의 그 용기를 소유하게 되어서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꽃들이 활짝 피어나기를 소망한다.

< 손명수 목사 - 토론토 한인장로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