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 소망] 생각의 상자

● 교회소식 2017. 3. 28. 19:48 Posted by SisaHan

세상에는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알렉산더 워틀리는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는 평생 나무로 만든 작은 상자 안에서 살았다. 그 상자가 자신의 방이요 집이었다. 그 상자의 크기는 폭이 약 1m, 길이가 1.2m 높이가 1.5m 였는데, 그는 80세에 죽을 때까지 그 상자에 들어가 살았다. 돈이 없거나 도(?)를 닦기 위해 그런 곳에서 지낸 것이 아니다. 그는 그 상자 안에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여겼다. 밖으로 나가는 것을 몹시 두려워했다. 그의 생각이 그를 그 작은 상자에 갇혀 있게 했다.


우리는 이 사람을 비웃을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의 생각의 상자 안에 갇혀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장 좋은 길이라고 여겨지는 것을 끝까지 고집한다. 생각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생각을 더 바꾸면 더 좋은 길이 있는데도,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고집한다. 우리도 종종 작고 좁은 생각의 상자에 갇혀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못해, 나에게는 너무 벅차, 나에게는 너무 할 일이 많아, 난 자신이 없어.’ 이런 두려움과 어두운 생각의 상자들, 우리는 이 생각의 상자를 깨야한다. 그런데 이 생각의 상자를 깨는 일은 쉽지 않다.
줄탁동시(口卒啄同時)! 닭이 알을 깔 때에 알속의 병아리가 껍질을 깨뜨리고 나오기 위하여 껍질 안에서 쪼는 것을 ‘줄’이라 하고 어미 닭이 밖에서 쪼아 깨뜨리는 것을 ‘탁’이라 한다. 우리의 생각의 상자를 깨고 나오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의지로만 되는 것도 아니고 외부의 변화가 있다고 내 자신이 변하는 것도 아니다. 외부의 자극과 내 의지가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미국의 한 시립병원 정문에 누군가가 갓난아이를 버려두고 갔다. 이 아이는 모든 것이 비정상이었다. 우유를 물려주어도 우유조차 빨지 못했다. 아마 부모는 이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어서 버리고 간 모양이다. 병원에서는 이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회의를 했다. 그 병원에는 52세가 된 메이 램키라는 간호사가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그 아이를 키우겠다고 자원했다. 메이는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자신에게 보내셨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우유도 빨지 못하는 아이를 사랑으로 돌보면서 끈기 있게 기도했다. 메이는 이 아이를 레슬리라고 이름 붙였다. 레슬리는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생각도 못하는 아이 같았다. 무슨 말을 해도 반응이 없었다. 메이는 변함없는 사랑으로 레슬리를 돌보았다. 레슬리가 18세 되었을 때 어느 날, 메이는 처음으로 레슬리가 무엇엔가 반응하는 것을 보았다. 메이는 18세의 레슬리가 기타 줄을 손으로 튕기는 것을 보았다. 메이는 순간적으로 생각했다. ‘레슬리를 깨우는 것은 음악이다.’ 메이는 레슬리가 음악과 함께 살도록 늘 아름다운 음악을 틀어 놓았다. 그리고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레슬리를 피아노 앞에 앉혀 놓고, 그녀의 손을 들어 피아노 건반을 눌러 주었다. 그러나 기타의 줄을 한 번 튕긴 이 후로는 다른 변화가 전혀 없었다. 그래도 메이는 실망하지 않고 계속 기도하면서 그녀의 일을 계속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어느 날 새벽, 메이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그것은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연주곡이었다. 메이는 조심조심 거실로 나갔다. 거실의 피아노 앞에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그것은 놀랍게도 레슬리였다. 아무 생각조차도 할 수 없다고 여겼던 레슬리가 피아노를 치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나 놀라서 할 말을 잃고 서 있는 73세의 메이에게 레슬리가 다가와 그녀를 안고는 한 없이 울었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매스컴은 메이 할머니와 레슬리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제목을 ‘사랑과 기도의 기적’이라고 붙였다. 사랑의 기도, 포기하지 않는 믿음의 기도가 생각의 상자에 갇혀 있던 레슬리를 구한 것이다.
포기하지 않는 사랑과 간절한 기도는 우리의 좁고 어두운 생각의 상자를 깨는 힘이다. 지적과 폭력으로는 깨어지지 않는다. 헌신적 사랑과 간절한 기도, 지금 우리와 공동체에 절실히 필요한 힘이다.

< 문은성 목사 - 기쁜소래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