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기자협회 진상조사위 중간 발표
현장 기자한테 “녹음·녹취 등 취재 지시 있었다”는 증언 나와
도청 의혹 당시 KBS 내부 문건 확인했다는 증언도


2011년 <한국방송>(KBS)의 ‘민주당 도청의혹 사건’ 당시 취재기자에게 “녹음을 하든지 녹취를 하든지 취재해 오라”는 구체적인 취재 지시가 있었다는 사실이 처음 확인됐다. 도청 의혹이 불거진 뒤 민주당 비공개 회의 내용이 담긴 한국방송의 내부 문건을 확인했다는 고위 간부의 증언도 추가로 나왔다.

민주당 도청 의혹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한국방송 기자협회 진상조사위원회는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스카우트빌딩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케이비에스 장아무개 기자에게 취재지시를 내릴 수 있는 위치에 있던 중견 기자로부터 ‘내가 최대한 취재하라고 취재 지시를 내렸다. 녹음이라도 하든가 녹취가 가능하면 녹취도 하라고 했다’는 진술이 나왔다”고 밝혔다. 장아무개 기자는 당시 3년차 막내기자로, 회의를 도청한 당사자로 지목된 인물이다. 진상조사위는 이어 “당시 국장급 간부는 민주당 비공개 회의의 참석자, 핵심 발언내용, 그리고 이를 분석하는 내용이 담긴 내부 보고서를 확인했다고 진술했다”고도 했다.

민주당 도청 의혹 사건은 지난 2011년 6월23일 오전 손학규 당시 민주당 대표실에서 있었던 한국방송 수신료 인상 관련 비공개 회의 내용을, 이튿날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전체회의에서 한선교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구체적으로 공개하면서 불거졌다. 민주당 출입 장아무개 기자가 비공개 회의 내용을 몰래 녹취했고, 이 자료가 핵심 간부를 통해 한나라당까지 넘어갔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검찰 수사에선 핵심 증거물인 장 기자의 휴대전화과 노트북을 확보하지 못해, 그해 말 증거불충분으로 사건은 무혐의 처리됐다. 당시 보도본부장이 바로 고대영 사장이다.

진상조사위는 현장 기자에게 ‘녹음이나 녹취를 지시하는 등’ 구체적인 취재 압박이 있었다는 점이 처음 확인됐다고 강조했다. 정필모 진상조사위원장은 “당시 3년차 막내기자로 경험이 적은 기자에게 압박이 가해졌고, 때문에 상당한 부담을 가지고 취재를 하지 않았겠냐는 추정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정 위원장은 이어 “이같은 증언을 한 중견 기자는 본인이 취재 지시를 한 것인지, 아니면 본인도 윗선에서 취재 지시를 받아 이를 전달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고 있다”면서 “도청 의혹이 제기된 뒤엔 장아무개 기자가 본인이 아닌 고참급 기자와 사건 관련 대화를 더 많이 했다고 기억했다”고 전했다.

도청 의혹 사건 당시 고위 간부가 확인한 한국방송 내부 문건이 여러 형태일 수 있다는 추정도 나왔다. 진상조사위는 “해당 간부는 본인이 확인한 문건이 녹취록 형태의 문건이 아니라 일반적인 보고서 형태로 보였다고 증언했다”며 “원본·내부 보고용·회람용·사장 보고용 등 다양한 형태 가운데 하나일 것이라 평가했다”고 밝혔다. 다만 조사위는 “도청 의혹이 불거지기 전 이 내용이 어느 선까지 보고됐는지, 누가 한나라당쪽에 이 내용을 넘겼는지 등의 핵심 내용에 대한 간부급 증언이 더 필요한 상태”라고 밝혔다.

한국방송 기자협회는 지난 6월 민주당 도청의혹사건에 대한 진상조사위 추진을 의결한 뒤 7월부터 본격적으로 관련자 증언을 들으며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조사 내용을 정리한 최종 보고서는 이달 안에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민주언론시민연합과 전국언론노조등이 이 사건과 관련해 고대영 사장과 한선교 의원(자유한국당) 등 6명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면서 검찰 역시 6년만에 민주당 도청 의혹 사건 재조사에 나섰다.

<황금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