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끗 웃으며 지나가는 여인의 미소에 돌연 맥박이 빨라지는 남성들이 없지 않다. 어디 남성들 뿐이랴. 여성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늘 착각에 빠져 살아간다. 저 사람은 돈이 많으니 얼마나 행복할까? 그는 같은 학교 동창이고 동향이니 언제나 내편일 거야, 그 사람 얼굴이 잘 생겼으니 마음도 착하겠지, 믿음이 좋으니 늘 선행만 할거야…. 때로는 선입견 때문에 그렇게 믿어버리기도 하고, 반대로 늘 불신하고 미워해버리는 사례도 많다. 경험칙에서 비롯된 엉뚱한 단정과 착각도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냥 착각하고, 알고도 속으며 살아가기도 한다. 그런 착각 속에 믿었던 사람의 배신으로 괴로워하고, 목숨을 내놓는 경우도 있다. 친 아들처럼 아끼던 부루투스에게 살해당한 카이사르는 “부루투스, 너 마저도!”라는 역사적 외마디를 남기고 쓰러졌다. 왕위를 찬탈한 수양대군을 잡으려다 능지처참을 당한 사육신은 믿었던 동지 김질의 밀고로 천추의 한을 남겼다. 동학혁명의 전봉준도 믿고 아꼈던 부하 김경천에게 배신을 당해 붙잡혀 꿈이 짓밟혔다. 가롯 유다가 예수를 팔아 넘긴 것처럼 말이다. 그러고 보면 인간의 믿음이란 한낱 착각의 연장선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비단 인간관계에서 만이 아니다. 국가간 관계에도 그렇다. 일본은 조선 사람들을 수백년간 못살게 굴었으니, 무슨 일을 해도 밉고 괘씸하다. 도대체가 못믿을 존재라는 것이다. 반면 6.25 때 유엔군과 함께 달려와 구해준 미국은 ‘무조건’ 좋은 나라요 은인이라고 생각한다. 오죽하면 촛불집회 당시 이른바 ‘태극기 집회’에 성조기가 이례적으로 동반되었겠는가. 미국을 한국의 수호신처럼 생각하는 단정적인 믿음, 무조건 내 편이라는 선망기대치가 집합을 이룬 한국사람들의 의식구조다.
최근 북한의 핵실험으로 한반도정세가 날카로워진 와중에 미국, 엄밀히는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가 논란이 되고 있다. 북한의 벼랑 끝 전술에 놀아나며 국제적 위기의 변수로 되레 위상을 높여준 럭비공 같은 트럼프가, 대북 압박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한국을 비판하며 북핵공조와 동맹에 균열이 있는 것처럼 보인 것이다. 대화론이 잘못된 것이라느니, 한국과의 FTA(자유무역협정)를 폐기한다는 둥 그의 생뚱맞은 언설(言舌)들이 자극적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과연 불변의 혈맹이고 뗄레야 뗄 수 없는 한국의 수호국인 걸까? 그 답은 유감스럽게도 아니라는 것을 바로 트럼프의 언행들에서 확인하게 된다. 북한 핵 위기를 빌미로 한국에 막대한 무기를 사도록 만드는 장사꾼의 전형을 지적한 전문가들이 한 둘이 아니다.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 발언들이 한미동맹에 금을 가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실도 그렇지만 역사적으로 미국은 국익 추구의 실리와 실용의 나라다. 한국을 사랑하고 아끼며 위해서가 아니라,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국은 종속변수의 하나로만 취급하었음을 사실(史實)들이 증명해 준다.
조선말 미국은 필리핀에 대한 자신들의 지배권을 인정받는 대신 일본의 한국 지배를 인정해 주었다. 이른바 ‘카쓰라 태프트 밀약’이다. 나중 일본의 한국병합에도 한 몫을 한 미국의 기여가 됐다. 해방 이후는 어떤가. 미군정은 한국통치에 일본 잔재세력들을 끌어들였다. 친일청산이 아닌 친일세력들의 권력유지에 발판을 만들어 준 것이다. ‘애치슨 라인’은 북의 남침을 불렀다는 분석을 낳았고, 1951년에 맺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한국의 독도 영유권을 애매하게 만들어 일본이 두고두고 트집을 잡는 빌미가 됐다.
북한의 ICBM과 핵 위협이 자국 본토에 이를 만큼 커지자 신경에 거슬린 미국은 북폭 등 소위 선제공격의 유혹을 떨치지 못한 태도를 보인다. 한국이 싫다는 사드배치를 강박해 미국을 향하는 탄도탄 방공망을 강화하고, 전술핵 배치를 들먹이며 값비싼 무기들을 사라고 압박한다. 자국방어에 무기판매까지, 꿩먹고 알먹자는 이기적 보신(保身)의 민낯이 드러난다.
미국을 반대하고 적대하자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우리의 강력한 우방임에는 틀림없다. 여전히 상호 방위조약은 유효하다. 우리의 전시 작전지휘권을 쥐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다만 막연하게 저들이 전적인 수호자라는 의존감은 버려야 한다는 말이다. 미국은 미국의 국익이 최우선이고 미국에게 한국은 자신들이 전작권을 가진 만만한 나라, 전략적 최전선 방어기지의 하나로 인식할 수 밖에 없는 냉엄한 현실인식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의 살 길은 우리에게 전적인 책임이 있고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것은 너무나 명백한 상식이다. 그런데도 미국이 다 해주고 미국이 최고의 선인 듯 믿는 무조건의 확신에 빠진 한국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서 걱정이다.
< 김종천 편집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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