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보내드리고‥

● 칼럼 2017. 12. 6. 14:57 Posted by SisaHan

어머니를 하늘나라에 보내드리고 한국에서 50일 만에 돌아왔다. 이제 일상이 회복되고 있는데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는 실감은 여전히 와닿지 않는다. 돌아보면 마치 미리 예정됐던 일정이 하나씩 이루어진 것만 같았던 어머니와의 마지막 시간들은, 오묘하고 신기한 은혜의 체험들이었던 것 같다. 짧지만 강한 여운으로 뇌리에 남은 장례기(葬禮記)를 외람된 공유의 글로 올린다.

가까이서 모시지 못하는 죄스러움에 가능하면 매년 추석과 설 명절에 모국을 찾아 어머니를 모시고 여행을 가곤 했다. 하지만 요양병원에 입원하신 후에는 거동이 불편하셔서 여의치가 않았고 병원을 오가며 2~3주 돌봐드리는데 그쳐야 했다. 그마저 지난 설에는 가 뵙지 못했기에, 올해 추석에는 모처럼 아내와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만남은 언제나 기쁨과 안도감을 주어도, 작별은 미안함과 아쉬움으로 가슴을 짓누르곤 한다. 추석을 어머니와 함께 잘 보내고 난 후, 일 때문에 아내가 먼저 출국했고 이제 내가 어머니께 작별을 고할 시간이 이틀 후로 다가오고 있었다.
“앞으로 답답하고 무료한 나날을 또 어떻게 보내실까. 이젠 성경 보시는 것도 힘들어 지셨는데…” 그런 상념이 오갈 때였다. 갑자기 요양병원 간호사 연락이 왔다. 감기가 심해져서 폐렴으로 번진 것 같고, 열이 올라 의식이 없으셔서 어머니를 급히 집중치료실로 옮겼다는 것이다.
눈앞이 깜깜해진다. 밤새 안녕이라더니, 옆자리 할머니가 독감에 걸려 불안하긴 했었지만 하룻사이 옮아서 그렇게까지 나빠질 수가 있는지. 의식이 없으신 어머니 얼굴을 산소호흡기가 덮고 있다. 팔에는 몇 갈래 수액을 꽂고, 몸 곳곳에 부착한 센서들이 머리맡에 놓인 생체신호 계측기에 연결돼 숨가쁜 그래프를 그려내고 있었다. 주치의인 병원장 말로는 폐가 많이 상하셨고 대개 연만한 노인들은 진행이 빨라 회복을 장담을 할 수 없으니 “준비하는 게 좋겠다”는 것이다.

추석을 앞두고 모처럼 아내와 함께 어머니를 휠체어에 모시고 병원 밖으로 나갔었다. 자녀들이 모인 저녁식사에서 어머니는 이것저것 정말 잘 드셨다. 그리고 당신이 계시던 집에 오랜만에 돌아 와 하룻밤을 잘 묵으셨다. 내 집에 왔다는 편안함에 푹 젖어드신 걸까. 밤 사이 화장실 한번 안가고 단잠을 주무셨고, 아침에 정성껏 차려드린 곰국을 맛있게 드셨다. “너희들이 고생 많았다”고 나와 아내를 칭찬하시고는 “병원이 편하다”며 어서 가자고 하신지가 겨우 열흘 전. 그런데 이렇게 허망하게 무너지시다니…
내일로 닥친 비행기 출발을 허겁지겁 뒤로 미루고, 초초하게 어머니 병상 옆을 지키는 긴 시간이 시작됐다. 의식이 돌아 온 어머니는 식사도 좀 하시고 어눌하지만 “캐나다 왜 안갔어?” “밥 먹었어?” 하고 물으신다. 늘 하시던 아들 걱정을 다시 들으니 그저 너무 반가워 눈물이 난다. 하지만, 이튿날은 다시 종일 눈을 뜨지 못하는 상태에, 기관지로 넘어간 음식이 가래에 섞여 나오는 바람에 전면 금식 조치했다는 의료진의 설명으로 답답한 시간이 이어졌다.
병원장은 어머니가 ‘대단하시다’고 했다. 다른 90 넘은 노인 같으면 이미 가셨을 텐데, 잘 이겨내고 계시다는 것이다. “아직 살려는 의지가 강하시고, 아마 멀리 있던 아들이 옆에 와 있어서 그러시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럴 리가,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하지만 그는 임상경험으로 볼 때 그런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많은 자녀들이 나이든 부모가 위급해지면 연명치료를 하지 말라고 냉정하게 요청해 의사입장에서 갈등을 겪을 때가 많다는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비행기를 두차례 미루고 중환자실에서 희망과 절망을 오가기를 2주일 째 되던 날, 혹시 병원에서 긴급호출이 오지나 않을까 긴장 속에 밤 늦도록 토론토와 연락하며 신문 마감을 몇 시간 앞두고 있을 때였다. 자정을 넘긴 새벽 1시께 덜컥 비상이 걸렸다. 혈압이 떨어지고 숨도 이상하니 어서 와서 임종하시는 게 좋겠다…. 자녀들이 달려 와 눈물을 쏟고있을 때 어머니 교회의 목사 일행이 급히 도착해 임종예배를 인도해 주었다. 목사님은 시멘트 바닥에 무릎을 꿇고 침상의 의식이 없는 어머니 귀에 대고 성경을 봉독하며 영원한 천국의 삶을 열성을 다해 말씀으로 들려주어 감동과 위안을 주었다.
의료진이 강심제를 투여하기는 했지만, ‘예배의 기적’이 일어난 것인지도 모른다. 이후 호흡과 맥박, 모두가 정상으로 되돌아 온 것이다. 우리는 안도의 한숨들을 내쉬었고, 누나들은 마감을 앞둔 신문제작을 어서 끝내고 오라고 재촉했다. 그렇게 신문을 만들 수 있도록 무언의 배려를 해주신 어머니는 좀 호전 되어 눈을 뜨시고 고개도 끄덕이는 희망어린 이틀 뒤에 다시 반응이 없는 상태를 반복했다.

설마 했던 임종예배를 계기로 비로소 장례준비가 현실로 다가왔다. 원래 계시던 일반병실의 어머니 물품을 챙기고, 식장을 답사하고…. 병실 서랍에는 고이 모셔둔 찬송가가 있었다. 놀라운 것은 그 갈피에 끼워진 몇 장의 낡은 메모지였다. 거기엔 앞뒤로 빈틈을 찾을 수 없이 어머니가 쓴 성경구절로 뒤덮여 있었다. 마치 엽서에 깨알글씨로 옥중서신을 써보냈다는 어느 정치인에 비견해야 할지. 정성을 들인 작고 예쁜 글씨들이 행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빽빽하게 성구들을 적어놓고 있었다. 집에 보관해 두신 3차례 성경 필사본 10여권과는 또 다른 감동으로 밀려온다.
그런데 내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한 것은 다른 갈피에서 발견 된 ‘신앙고백’이라고 쓴 작은 쪽지였다. 거기엔 “밝고 아름다운 소식 널리 전하는 신문되길”이라는 친필 문구가 선명했다. 심장을 망치로 치는 듯한 글자 하나 하나. 신문을 만드는 아들을 얼마나 걱정하며 기도하셨기에 그런 글귀를 꾹꾹 눌러 써서 성경에 꼭꼭 간직해 두셨을까. 순간 가슴에 밀려드는 벅찬 회한이 주체할 수 없는 눈물로 솟아난다. 세상에 위대하지 않은 어머니는 없다지만, 위대하신 우리 어머니의 한없는 사랑을 깨닫기나 했던가, 평생 마음 편하게 해드리지도 못하고 늘 걱정만 끼쳐 드렸는데, 어머니는 몸이 불편해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시면서까지 날마다 성경을 붙들고 깨알 필사를 하면서 아들 걱정으로 지내 오셨으니, 어찌 그 보은을 다 한단 말인가.


어머니는 그렇게 며칠을 더 버티시다가, 10월31일 새벽 마침내 향년 92세로 하늘에 가셨다. 너무나 평온하고 깨끗한 얼굴로, 좋은 날을 택해서 떠나셨다. 집안에 보관돼 있던 수의를 꺼내보니 상자 겉면에 ‘2004년 10월31일’이라고 큼직하게 써있는 게 아닌가. 당신이 직접 수의를 마련하며 정확히 13년 후의 10월31일을 벌써 알고 계셨던 것처럼 놀랍게도 같은 날이었다.
어머니는 예감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멀리 갈 아들을 보내기 싫으셨고, 이틀 뒤 캐나다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 당신이 중환자실로 가는 극한상황으로 아들을 붙잡아 두신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20일간 폐렴과 씨름하며 아들을 옆에 두셨으니, 생의 마지막이 되신 꼭 40일간 사랑하는 아들에게 생전의 시중을 들게 하시고는 홀연히 가신 것이다. 시골 부농의 외동딸로 태어났지만 순탄치 않은 삶의 여정 가운데 고난과 시대적 아픔을 오직 신앙의 힘으로 이겨내며 살아오신 신실하고 강직하신 어머니-!,
교우들과 가족의 눈물 섞인 찬송가 고별로 하관을 마친 뒤, 놀랍게도 온화하던 날씨가 급변하더니 잠시 가을 비가 지나간다. 하늘의 복을 받은 분이라고들 했다. 잔디를 살릴 단비라며….
뒤이은 유품정리는 우리 자녀들에게 또 한번의 아픔이었다. 당신의 손때 묻은 가재도구와 남기고 가신 오밀조밀한 살림살이들…. 곳곳에 배인 어머니 숨결에 순간 순간 눈물을 쏟아야 했고, 삶을 향한 지혜와 열정을 떠올리며 어머니 재발견의 감탄과 그리움을 삭여야 했다. 그리고 어머니의 그런 사랑과 기도로 오늘 우리가 복을 누리는 거였음을 다시금 되새기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사랑하는 어머니를 허허로이 보내드리고, 나와 아내와 아들은 가슴에 어머니와 할머니를 품고 토론토로 돌아왔다.
이제 육신의 어머니는 흙으로 돌아가셨고 영의 어머니는 영원한 하늘 나라에 올라 가셨다. 밤낮없이 걱정하시며 진자리 마른자리 가리지 않고 챙겨주시던 어머니의 빈자리는 너무 크고 허전하다. 세상에 계실 때 좀 더 잘 해드릴 걸 하는 후회도 깊다. 멀리 있어도 늘 들려주시던 “건강 잘 챙겨라. 하나님만 의지하며 기도 열심히 하고”라는 귀에 쟁쟁한 육성은 이제 영영 들을 수 없게 되었다.
그렇지만 어머니가 남기신 삶의 발자취와 믿음의 유훈은 가슴에 살아 숨쉰다. 그 뜻과 유산을 열심히 받들고 살려나가는 모습들을 보실 때 우리 곁에 늘 살아계실 하늘의 어머니가 정말 기뻐하시리라는 믿음을 갖는다.
자랑스런 어머니의 천국 안식을 기원하며, 다시한번 절묘하고 빈틈없으신 하나님의 손길과 섭리에 감사와 찬송을 올려 드린다.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