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트럼프와 세계
중간선거 예정된 올해도 ‘흔들기’ 계속
미국과 국제사회에 중요 변곡점 될듯
세계가 ‘트럼프와 함께한 1년’이 가고 새해가 왔다. 지난 해는 트럼프와 함께할 2018년, 아니 그 이후까지 엿보는 프리즘이다. ‘미국 우선주의’를 당당히 외치면서 등장한 트럼프 시대는 미국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기존 질서를 허물고 있다. 동맹은 균열되고 곳곳에서 갈등의 불씨는 세차게 타오르는 중이다. 도날드 트럼프의 2018년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중동분쟁에 기름부어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을 방문해 플로리다 마러라고 골프리조트에서 정상회담을 하던 지난해 4월7일, 바샤르 아사드 시리아 정권의 공군기지에 대한 대규모 폭격을 단행했다. 민간인에 대한 아사드 정권의 화학무기 사용을 응징한다는 명분을 내건 이 폭격은 미국의 경쟁 국가인 중국 주석을 옆에 두고 단행했다는 점에서, 미국의 힘과 의지를 모든 국가에 경고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 폭격은 아사드 정권이 약화되거나 제어되는 효과는 전무한, 일회성 이벤트에 그쳤다. 오히려 난마처럼 얽힌 중동분쟁에서 트럼프의 전략과 미국의 입지는 더욱 모호해졌고, 행보가 전혀 반대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5월 첫 해외순방인 중동지역 방문 중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수니파 50여개 무슬림 국가의 지도자들과의 정상회의, 6월 사우디 등의 카타르 단교 조처, 10월 이란과의 국제 핵 협상 재승인 거부 선언, 12월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라는 선언 등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졌다. 이런 일련의 조처들은 기본적으로 중동분쟁의 큰 축을 사우디가 주도하는 수니파 국가 대 이란의 시아파 세력과의 대립으로 이동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예루살렘 선언으로 트럼프는 이슬람 세계 전역에서 미국의 외교적 지렛대를 외려 쇠퇴시키고 있는 형국이다.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의 중동 전략 핵심은 중동분쟁의 안정화를 통한 중동에서 미국의 개입 축소였다. 하지만 트럼프의 중동정책은 수니파와 시아파 국가 사이의 대립을 더욱 촉발해 분쟁을 격화시키면서도, 미국의 개입에 대한 청사진은 빠져 있다. 다만 트럼프는 사우디 방문에서 1100억달러 무기판매 계약을 체결하는 등 중동 지역의 수니파 국가들을 향해 무기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을 뿐이다.
이슬람국가가 사실상 소멸되는 공백을 틈타 아사드 정권의 세력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또 시아파인 후티 반군이 수도 사나를 장악한 예멘 내전 역시 격화되고 있다. 중동 분쟁은 이제 사우디 주도의 수니파 대 이란 주도의 시아파 분쟁으로 확장되고 있다. 트럼프는 여기에 기름을 붓고 있다.
동맹 체제의 갈등과 약화
“우리 유럽인들은 우리의 운명을 직접 결정해야 한다. (…) ”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트럼프가 유럽 순방을 마치고 돌아간 지난해 5월28일, 뮌헨에서 열린 한 정치집회에서 미국으로부터 유럽의 독립을 시사하는 충격적인 선언을 했다. 유럽연합을 주도하는 독일 정상의 이런 발언은 세계 질서를 주도하는 지렛대 구실을 하는 미국과 서유럽의 대서양 양안동맹의 위태로운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
트럼프는 대선운동 때부터 미국과 유럽의 군사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대한 폄하와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옹호, 독일 등 유럽의 미국 동맹국들을 자극했다. 메르켈의 이날 발언에 앞서 트럼프는 5월 유럽 순방에서 나토 및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기간 중 약속에 늦거나 폐막식에 불참하는 등 무례한 외교적 언행으로 일관했다. 특히 그는 나토 정상회의 연설에서 회원국 중 한 나라가 침공당하면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는 나토 헌장 제5조(집단방위 조항)를 재확인하지 않았다. 대신 “28개 회원국 중 23개국이 지급해야 할 비용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며 회원국 정상들을 되레 나무랐다.
워싱턴의 미국 주류 엘리트뿐만 아니라 트럼프 행정부의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나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등도 유럽과의 동맹체제 균열에 비명을 터뜨리고 있다. 영국의 탈퇴로 위기를 맞는 유럽연합을 이끄는 독일로서는 자연스레 러시아와의 타협과 중국에 대한 접근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유럽의 홀로서기는 결국 유럽에서 독일의 역할과 영향력 확장을 불러올 것이고, 이는 유럽과 세계질서에 새로운 파장을 예고한다. 대서양 양안동맹의 갈등이 앞으로 어디까지 진행될지는 미지수이나, 미국은 분명 스스로의 패권 기반을 허물고 있고, 2018년은 이 점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줄 것이다.
국제 합의 파기 반작용 불러
미국과 유럽의 갈등 배경에는 트럼프 행정부의 파리 기후변화협정 탈퇴 등 국제 합의 파기가 자리잡고 있다. 트럼프는 작년 5월 유럽 순방에서 파리 기후변화협정에 대한 지지를 확인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평소 기후변화 주장은 ‘중국이 만들어낸 사기’라고 말해왔다. 그는 귀국 직후인 6월1일 결국 기후변화협정 탈퇴를 공식 선언했다. 파리 협정이 미국의 주권을 제한하고 미국 노동자와 경제에 불이익을 준다며 탈퇴를 강행한 것이다. 이는 이란 핵협정 재승인 거부,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라는 선언와 함께 미국이 구축하고 주도한 국제 합의와 체제를 트럼프 미 행정부가 스스로 허물어뜨린 대표적 사례였다.
미국의 파리 협정 탈퇴로 다자간 합의에 기초한 국제질서는 퇴보하게 됐다. 국제사회는 당장 지구적 차원의 환경 악화에 실질적인 영향을 주는 기후변화에 손을 놓고 있을 처지가 됐다. 트럼프는 국내에서도 환경 악화 논란으로 유보됐던 키스톤 송유관 부설 승인, 탄광 개발 등을 승인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등이 앞장섰던 청정에너지 개발에도 제동이 걸렸다.
미국-중국-러시아의 관계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큰 틀에서 세계 패권 질서를 규정했다. 세 나라의 관계는 1960년대 중반까지의 반미 중소동맹→1970~80년대의 반소 중미연대→1990년대 미국 우위의 삼각관계→2000년대 이후 대미 중러협력으로 변해왔다. 특히 70년대초 미국과 중국의 화해는 소련의 붕괴에 결정적 역할을 했고, 미국은 그 후 세 나라 관계에서 주도권을 쥐어왔다.
트럼프의 등장은 세 나라의 관계를 다시 뒤흔들고 있다. 취임 이후 1년 동안 미국은 중국뿐만 아니라 러시아와도 최악의 관계를 보이고 있다. 외려 미국을 견제하는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이 더욱 강화되는 분위기다. 트럼프를 당선시킨 지난해 미국 대선 당시 러시아의 ‘개입’은 푸틴의 러시아와 관계를 개선하려는 트럼프의 발목을 잡고 있다. 미국의 주류 세력들은 트럼프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러시아의 미국 선거 개입을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중대한 사안으로 바라보는 편이다. 푸틴은 자신과 러시아를 놓고 극심한 이견을 보이는 워싱턴 내의 불화, 미국과 유럽의 갈등, 영국이 탈퇴한 유럽연합 분열상을 십분 활용해, 국제사회에서 러시아의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트럼프는 11월초 아시아 순방에서 중국을 견제하려는 새로운 전략 개념인 ‘인도-태평양’ 체제를 선보였다. 기존의 아시아-태평양 개념에서 인도를 포함시켜 확장한 인도-태평양 개념은 미국-일본-오스트레일리아-인도의 대중국 4자 연대를 상정한다. 4자 사이의 불균형 및 이해관계 차이로 인해 인도-태평양 개념에 바탕을 둔 대중국 포위망이 진전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갈수록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이라는 반작용을 부르고 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의 대결을 더욱 고조시킬 가능성은 높아졌다.
< 정의길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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