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온 세계가 한반도를 주목한다. 남북한 전쟁 상태가 종식되고 화해와 평화의 길이 어렴풋이 보인다. 70년 적대와 갈등을 끝내자는 숨막히는 순간이다. 이런 기회는 쉽게 오지 않으므로 물이 들어왔을 때 조심스럽게 노를 저어야 한다. 그동안 한국은 한반도 문제의 주인 노릇을 거의 할 수 없었지만, 이제 문재인 대통령의 ‘운전자론’이 현실화하고 있다.
남북 관계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우리가 흔히 분단체제라고 부르는 한반도 문제는 실제로는 분단/전쟁 체제이고 여기에는 식민지 청산(탈식민), 종전, 분단 극복, 통일, 동북아 평화 등 중첩되지만 별개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남북 분단이 과거 동서독처럼 단순히 이념 대립에 기인한 것이라고 보면 북한이 붕괴하거나 전쟁으로 이 상황을 끝낼 수 있다. 미국과 대부분의 서구 사람들이나 한국의 냉전 보수세력은 그렇게 기대하고 주장해왔다. 그것은 틀렸다. 그리고 가능하지도 않다.


한반도 분단은 일제 식민지 체제의 극복(자주독립국가 수립)의 실패를 의미한다. 지구적 탈냉전, 90년대의 심각한 경제위기와 기근을 겪고도 북한이 붕괴하지 않은 중요한 이유는 6·25 한국전쟁에서 미국에 맞서 체제를 지켰다는 기억과 민족주의의 힘 때문이다.
남북은 피비린내 나는 3년간의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었고, 그 이후 70년 가까이 (준)전쟁 상태에 있었다. 그래서 정전체제를 종식시키는 것이 남북의 소모적 대결을 끝내는 첫 단계다. 그런데 한국전쟁은 남북 간의 전쟁이 아니라 미·중이 개입한 국제전이었기 때문에 종전, 더 나아가 남북 화해와 평화 문제는 미·중이 가장 중요한 당사자다.
종전도 너무 엄청난 진전이지만, 그렇다고 종전이 곧 평화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종전이 한반도 평화 질서 수립으로 가기 위해서는 북-미 수교가 필요하고 남·북·미·중 4자와 더불어 일본과 러시아까지 포함한 동북아평화협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동북아평화협정이 맺어진다고 해서 그것은 항구적 평화도 아니고 한반도 분단의 극복 혹은 통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남북이 6·25 전쟁 이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48년에 수립된 적대적 두 분단국가 상태는 남는다. 그리고 남북한에는 과거의 베트남이나 독일과 달리 70년이나 지속되면서 이미 확고하게 다른 정치경제 체제가 정착했고, 상호 적대의식이 교육이나 미디어를 통해 국민들 마음에 매우 강하게 뿌리내려 있다. 즉 분단의 극복은 각 체제 내부의 일제 식민지, 분단 잔재의 극복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분단 극복이 곧 통일은 아니다. 성급한 통합, 통일은 훨씬 심각한 갈등, 심지어 내전의 위험도 안고 있다. 그래서 경제교류, 이산가족 상봉은 지속하되, 서로의 경계는 닫아두는 것이 좋다. 화이부동의 정신으로. 즉 한반도에 두 국가 체제를 유지하면서 군비를 축소하고 교류하는 일, 대외적으로는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정착시키는 일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평화와 통일은 분리된 과제이며, 별도의 프로세스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두 국가는 각자 21세기 조건에 맞는 이상적인 사회 경제 체제를 건설하기 위한 모색을 해야 한다.


그런데 한반도는 그 지정학적 위치의 특성 때문에 주변 강대국 간의 패권 경쟁이 격심해지면 그것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고, 국내 정치세력들이 주변 강대국과 손을 잡고 내전의 소용돌이로 몰아갈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두 국가 체제의 공존, 한 국가 두 체제의 길을 모색함과 동시에, 주변국과 국제사회에 영세중립국으로서의 지위 보장을 받아내는 문제도 검토해야 한다. 평화와 통일이 왜 필요한지, 어떤 평화, 어떤 통일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모으는 과정이 시작되어야 한다. 학교와 사회에서 평화·통일교육이 전면화되어야 한다.

< 김동춘 - 성공회대 NGO대학원장, 다른 백년 연구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