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족벌들의 장돌뱅이 근성

● 칼럼 2018. 5. 1. 19:58 Posted by SisaHan

양반과 천민이 엄격히 구별되었던 조선시대 반상제도(班常制度)에 따르면 영낙없는 천민, 쉬운 말로 ‘상놈’ 집안의 상것들에 다름 아니다. 아무리 가졌고 쥐었기로서니, 아래 직원들을 그렇게 상스럽게 대하고 노예처럼 다룰 수가 있을까. 정상적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몰상식의 극치다. 설령 조선시대였다 해도 하늘같은 양반들 조차 노비들을 그렇게 매일 욕설로 부리지는 않았다. 더구나 그 집안에서 유별나게 병적인 한 사람에 그친 게 아니라, 식구들이 하나같이 그런 성격과 행태를 일상 다반사로 일삼았다니, 참으로 말문이 막힌다.
재벌이 가진 돈과 권세가, 사람들 누구에게나 주어진 천부적이고 존귀한 인권과 인격조차 깔아뭉갤 정도의 불소불위 존재일 수는 없는 일이다.
모국을 다녀올 때마다 가능하면 그 비행기를 타곤 했다. 그래도 국적기라는 안도감에 더해, 맘이 편하고 귀가 편하고, 입맛에도 편하기에 이용하고 했지만, 설마 그 대주주라는 자들이 저런 망나니 집안이었을 줄이야!. ‘대한’이라는 단어를 박탈하라는 빗발치는 주장에 쌍수를 들어 찬동하는 맘이 생겨나고도 남는다.


다시 되새기는 말이 곧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불어 단어다, 원래 노블레스(Noblesse)는 ‘닭의 벼슬’을 의미하고 오블리주(oblige)는 ‘달걀의 노른자’를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그 두 단어가 모인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닭의 본분이 자기 벼슬을 자랑함에 있지 않고 알을 낳는데 있다는 뜻으로, 사람에 적용한다면 명예와 지위에 합당한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명제요 가르침으로 쓰인다.
로댕의 작품 ‘칼레의 시민들’ 조각상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작은 항구도시 `칼레’에 가면 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명언의 유래가 전한다. 시민 6명이 목에 밧줄을 감고 고통스런 표정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시청 앞 광장의 이 조각품은 칼레의 자랑이고, 프랑스의 긍지라고 한다.


영국과의 백년전쟁에서 항복한 프랑스의 도시 ‘칼레’는 장기간 저항했던 죄로, 시민대표 6명이 처형을 자원하면 모든 시민의 생명을 보장하겠다는 영국왕 에드워드 3세의 겁박에 직면한다. 어느 누구도 나서려 하지 않는 상황에서 칼레의 최고 부자인 외스타슈드 생 피에르라는 사람이 선뜻 나서자 칼레시장인 장데르가 나섰고, 이어 부자 상인인 피에르 드 위쌍이 나서고 또 그 아들도 아버지의 위대한 정신을 따르겠다며 나서 마침내 7명의 용감한 시민이 목에 밧줄을 매고 영국군의 처형을 자청했다고 한다.
그런데 처형장에 모여 한 명을 제비 뽑아 제외하기로 약속한 다음 날 아침, 맨 처음 자원했던 외스타슈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시민들이 그의 집을 찾았을 때 그는 이미 자살한 뒤였다. 외스타슈드는 일곱명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살아남으면 다른 사람들의 사기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자신이 먼저 죽음을 택했다는 것이다.
사정을 전해들은 영국 왕이 처형명령을 거둬들여 남은 6명은 모두 살았고, 의롭게 죽은 외스타슈드를 포함해 귀족의 의무를 다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으로 추앙받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우리 말에도 있는 ‘양반은 양반답게 처신하라’ 혹은 ‘귀인은 귀인 다워야 한다’ 는 경구와 일맥상통한다. 가진 만큼 넉넉하고 품격있게 행동하고 높은 만큼 고매함을 보이는 처신을 하며 아랫 사람을 품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인간적 도리와 세상사의 순리를 강조하는 말이다. 이는 또한 달리 표현하면 ‘사람이 그릇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뜻과도 같다. 그릇, 곧 그의 인품이나 자질의 도량(度量)을 넘어서는 재물을 가졌거나 권좌에 앉으면 감당하지 못해 탈이 날 것임을 예고한다. 최근의 사례만 들어도 이명박이 그랬고, 박근혜가 그랬다. 그릇이 되지 못하니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커녕 그 지위와 책무의 중압에 눌려 허둥대다 파멸로 치달은 전형들이다.


요즘 잇단 재벌들의 추태를 보면, 족벌의 상스러움이 결코 대한항공만이 아닌, 가진 자들의 일반적 속성처럼 보여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본분과 책임에 대한 인식이 희박하고 저급한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국정농단을 부른 정경 유착, 노조파괴에 나선 반사회성, 사법을 우롱하는 유전무죄 행태…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 삼성의 변하지 않는 부패와 비리의 역사, 한화의 조폭적 일화들, 폭로가 이어진 막말 폭행 사주들이 한 둘이 아니다. 상도의(商道義)나 직업윤리, 품격의 경영철학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한낱 장사치 혹은 장돌뱅이들의 근성만이 대를 잇는 재벌들은 언제까지 원시시대를 즐길 것인가.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성경의 시편(73편) 기자는 그들의 말로를 이렇게 경고한다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