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여성혐오·음란문화
실태 추적‥ 심각성 공론화
그동안 불법 촬영은 ‘국산 야동’의 주요 장르였다. 1990년대 ‘X양 비디오 사건’으로 유명했던 연예인 동영상 유출 사건은 20년이 지나 일반인 대상으로 바뀌었다. 모텔, 공중화장실 등에 설치된 ‘몰카’(몰래카메라)에 찍힌 장면들이 온라인으로 유통됐고, 영상의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경계도 모호해졌다. 사귀던 여성과 찍은 성관계 영상을 유출하는 ‘리벤지 포르노’는 젠더 폭력이 아니라 음란물로 소비됐다. 영상 속 여성을 알아보며, 아련함과 자기연민에 빠지는 남성의 정서가 ‘중식이’ 밴드의 노래에 자연스럽게 담길 정도로 일상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몰카’ 수사 온도 차 : 몰카의 범죄성은 2015년 ‘소라넷’에서 성폭행 모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여성들이 폭로하면서 처음으로 공론화됐다. 소라넷은 17년간 121만 명의 회원을 보유한 채 성업 중이던 국내 최대의 음란 포털 사이트이다. 경찰은 소라넷의 서버가 외국에 있어서, 국가 간 법률 차이와 기술적 문제로 폐쇄가 어렵다고 답했다. 그러나 2015년 12월 전담수사팀이 꾸려진 뒤 6개월 만에 공식적으로 폐쇄됐다.
그러나 소라넷이 폐쇄된 뒤로도 디지털 성범죄 영상은 확산됐다. 역설적이게도 불법 촬영의 범죄성이 경악할 만한 사회문제로 인지된 것은 여성이 남성의 벗은 몸을 찍고 공유한 순간에야 비로소 이루어졌다. 2018년 5월 홍익대 누드모델 불법 촬영 사건이 일어나자, 경찰은 신속히 범인을 검거 구속했다. 언론은 반인륜적 범죄라며 대서특필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들이 느꼈던 위화감은 ‘불편한 용기’ 4차 시위의 삭발식에서 삭발한 여성의 발언에 잘 녹아 있다. “더 이상 아무것도 바꿀 수 없구나 체념할 때 즈음해 홍대 몰카 사건이 터졌습니다. 이번에도 어물쩍 넘어가겠지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수사는 신속하게 이루어졌고 금세 수사망을 좁혀 경찰은 불법 촬영 유포자를 검거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 경찰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왜 그동안 여성 피해자들이 구속 수사해달라, 압수수색해달라며 애원하고 외쳤던 것들이 남성 피해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입니까? 왜 할 수 있었으면서 못한다고 했습니까? (중략) 자른 제 머리카락은 돌아오겠지만 먼 곳으로 떠나버린 피해자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습니다.”
●영상물 수익 메커니즘: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죽어도 사라지지 않는-웹하드 불법 동영상의 진실’ 편 역시 3년 전 음란물 유출로 자살한 친구의 영상을 지우려는 여성의 행보를 따라가면서, 디지털 성범죄가 단순히 남성의 관음적 본능이나 호기심으로 일어나는 개인적 일탈이 아니라 찍는 자, 올리는 자, 유포하는 자, 보는 자가 유기적으로 맞물린 거대한 산업이라는 사실을 드러냈다.
영상을 촬영한 남자는 처음부터 영상을 제작할 목적으로 여성을 유인했다. 영상을 올린 이들은 수천 개 영상을 유포하고 있는 ‘헤비 업로더’였다. 합법적으로 운영되는 웹하드 사이트에 디지털 성범죄 영상이 일본에서 정식 제작된 포르노처럼 제휴 콘텐츠로 등록돼 팔리고 있었다. 웹하드 업체가 헤비 업로더들의 범죄행위를 돕고 있었으며, 특정 영상물을 걸러내는 필터링 업체를 사실상 소유하고 있었다. 서로 연결된 업자들이 디지털 성범죄 영상물을 올려 수익을 올리고, 필터링으로 다시 수익을 올리고, 피해자들에게 삭제 비용을 받으며 또다시 수익을 올리는 메커니즘이었다.
● “화장실 구멍들을 향한 여성들의 송곳”: 올해 1월27일 방송된 tvN 단막극 <파이터 최강순>에서 최강순(강예원)은 직장상사 유 차장과 가진 하룻밤 성관계 동영상이 유출돼 프레젠테이션 도중에 재생되는 굴욕을 겪는다. 유 차장은 불법 음란물 사이트를 운영하며, 여러 여성과 성관계를 맺고 불법 촬영한 영상을 인터넷에 뿌려왔던 ‘유본좌’였다. 최강순은 그에게 피해를 본 여성들을 모아 복수한다. 유본좌가 운영하는 사이트의 파티에 잠입해, 그들의 가면을 벗게 해 생중계로 내보낸다. 올해 개봉한 영화 <나를 기억해>에서 결혼을 앞둔 교사 한서린(이유영)은 불법 촬영을 당하고, 동영상을 유출하겠다는 협박을 받는다. 영화는 몇 번의 반전을 통해 인터넷 음란 사이트와 불법 촬영 문화가 청소년과 어린이들의 일상에까지 파고들었음을 고발한다.
<연예가 중계>에서 ‘페미니스트’란 말이 조롱 조로 언급되고, 언급해서는 안 될 단어인 양 편집됐던 것에 이어 페미니즘을 입에 담을 수 없는 불온한 것으로 지워버리는 백래시(반격)가 일어나고 있다. 이 와중에 여성주의 인터넷 커뮤니티 ‘워마드’ 운영진 1명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돼 경찰이 추적에 나섬으로써, 편파수사 논란에 기름을 붓고 있다. “화장실의 구멍들을 향한 여성들의 송곳은 곧 당신들에게 향할 것”이라는 피맺힌 경고를 부디 심각하게 받아들이길 바란다.
<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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