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피겔, 코로나19 대응 관련 "한국은 모범학생, 미국은 문제학생"
미국의 자국우선주의에 맞서 독일, 다자주의 강조…한국과 맞닿아
독일, 동아시아에서 한국에 비중 안 둬와…코로나19, 외교 새로운 계기
독일 언론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사태와 관련해 '미국 때리기'에 한국을 활용하고 있다.
독일 주요 언론들은 한국을 코로나19 대응의 모범 사례로 꼽아왔다. 독일에서 초기 대응 실패로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면서 이런 경향이 강해졌다. 한국의 신속한 검사, 감염자
및 접촉자 추적관리, 사회적 거리 두기 준수 등에 대해 호평해왔다.
독일 내무부의 코로나19 대응전략 보고서에서는 한국을 롤모델로 삼는다고
명시하기도 했다. 4·15 총선에 대해서도 독일 언론은 '역사상
가장 위생적인 무균 선거'(프랑크푸르터룬트샤우), '민주주의가
살아있다는 표시'(쥐트도이체차이퉁), '팬데믹도 한국 선거
못막아'(타게스차이퉁)라고 제목을 뽑았다.
최근 독일 언론은 한국의 상황을 그대로 보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국과의
비교 모델로 사용하고 있다.
미국의 코로나19 대응 실패 해부…"한국,
질풍같이 검진체계 구축"
일간 타게스차이퉁은 지난 17일 자 '한국
총선은 미국을 위한 모범 사례'라는 기사에서 "미국은
이 동맹국(한국)을 잘 살펴봐야 한다. 미국에서는 곧 획기적인 대통령 선거가 열린다"면서 "미국의 절망적인 바이러스 위기관리 상황을 보면 한국과 같이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면서 문제없이 선거를
치른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표현했다.
주간 슈피겔은 이번 주 호 코로나19 시대에 대한 커버스토리 기사에서
한국을 '모범 학생', 미국을 '문제 학생'이라고 지칭했다.
슈피겔(맨 위 사진)은 지난 10일 '트럼프는
어떻게 미국을 코로나 붕괴로 몰아가는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도 미국과 한국의 첫 확진자 발생일이 1월 20일로 동일한 데
"한국은 질풍 같은 속도로 검진 체계를 구축해 하루 1만 건의 진단을 한 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같은 달 26일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우리는 상황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지적했다.
이 기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대응 실패에 대해 철저히 해부했다.
특히 기사에서는 "바이러스는 세계강국 미국을 무덤으로 밀어 넣을
것인가"라고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2019년 프랑스에서 열린 G7 정상회의 기간에 만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메르켈 독일 총리
독일, 코로나19 통제 가능 이후 미국에 목소리 높여
독일의 미국에 대한 비판은 독일이 이달 초부터 코로나19 확산 상태가 안정권에 접어든 이후 강해졌다. 내부의 큰불이 잡히면서 밖으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독일은 한 주 검사 수를 60만건으로까지 확대했다. 8월부터는 마스크를 매주 5천만 장 정도씩 생산하기로 할 정도로 부족한 방호용품 문제도 발 빠르게 대응했다.
누적 확진자 수가 20일 오후 기준으로 14만6천600여 명에 달하지만, 신규 일일 확진자 수는 최근 2천명대 수준으로 내려왔다. 신규 확진자 수가 가장 많았을 때는 7천 명대에 육박했었다. 치명률도 3.2%로 유럽의 강국인 영국, 프랑스에 비해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이에 독일은 이날부터 면적 800㎡ 이하 상점의 운영 금지를 해제하며 공공 생활 제한 조치를 완화하기 시작했다.
독일 언론이 미국을 비판하면서 표적으로 삼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으로 인해 민주적 가치가 하락하고 고립주의가 강해졌는데,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더욱 극명히 보여줬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미국의 건강보험 제도도 비판의 대상이다. 탄탄한 공보험 제도를 갖추고 있는 독일과는 극명히 대조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독일은 코로나19 확산 사태 속에서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와 대척점에 서서 다자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독일 역시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하고 있을 때는 외부와의 '연대'를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달 19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대국민 TV 연설에서 유럽연합(EU)의 연대 이야기가 빠졌다.
하이코 마스 외무장관은 지난 11일 이런 지적에 대해 "항공기에서 비상사태 시 산소호흡기를 먼저 착용해야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면서 "우리가 국내 문제에 봉착해 있는 상황에서 다른 나라를 도울 수 없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문재인(오른쪽) 대통령과 메르켈 독일총리
"한국 등 아시아권 대상 독일의 협량한 인식제고 계기"
메르켈 총리는 코로나19 확산 상황을 상당히 통제하기 시작한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보건기구(WHO)의 코로나19 대응 부실과 중국 편향성 등을 들어 미국의 자금 지원을 중단한 데 대해 강력하고 조율된 국제적 대응만이 팬데믹을 물리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며 WHO를 지지했다.
독일이 추구하는 다자주의 관점에서 한국은 맞아떨어진다.
미국을 비판하면서 한국을 활용한 데에는 한국이 민주적 체제에서 코로나19에 효과적으로 대응한 데다 경제적, 지정학적 관점에서 다자주의를 추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진 베를린 정치+문화연구소장은 "전 지구가 코로나19가 뒤흔들리는 혼돈 속에서 다자주의를 강조해야 하는 독일 입장에서 민주적이고 효과적으로 대응한 한국의 가치를 활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우리 당국은 독일의 이러한 움직임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한국과 독일 간의 우호 증진을 위해 독일의 이런 외교적 입장을 활용할 수 있는 셈이다.
다만,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유일한 분단 및 통일 레퍼런스이자 유럽의 최대 경제국인 독일에 구애를 보내왔다.
한국의 대통령들은 대부분 취임 이후 베를린을 방문해 대북정책 기조를 밝혀왔다. 정치인들과 공직자들이 관광지이기도 한 베를린의 분단 및 통일 관련 명소를 찾는 것은 관례화돼 왔다.
그러나 독일의 동아시아 외교에서 한국 비중은 크지 않다. 독일은 동아시아에서 중국에 주파수를 맞춰왔다. 메르켈 총리는 임기 15년 가까이 거의 매년 중국을 방문하거나 중국의 주석이나 총리의 방문을 받았다. 독일과 같은 주요 7개국(G7) 일원인 일본에 대한 비중도 만만치 않다.
독일의 분단 및 통일 경험의 교류와 관련해서도 서독이 '서서갈등'을 극복하면서 신(新)동방정책을 꾸준히 추진해 통일의 발판을 마련한 것은 독일 입장에선 30∼50년 전 기억이다.
독일은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도 유연하지 못한 태도를 보인다는 지적도 현지 한국 전문가들로부터 받아왔다. 동서독 분단 시절 서독의 유연한 외교 전략이 주는 교훈은 우리에게 중요하지만 독일 입장에선 성공한 과거사일 뿐이다.
이진 소장은 "향후 지켜봐야 하지만 최근 현상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권에 대한 사회·문화적 인식의 협량함을 재고하게 될 중요한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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