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만호 70여차례 소환하고도 진술조서 5회뿐…작성과정 살필 듯
한만호 수감동료 “검찰이 재소자들 '집체교육' 증언 훈련시켜”
법무부가 ‘한명숙 전 총리 사건’ 수사 과정에 대한 진상조사에 나설 계획이다. 이번 조사는 한 전 총리의 정치자금 사건 유무죄 문제와는 별개로 검찰의 잦은 소환 등 수사 관행을 점검하고 언론 보도로 제기된 강압수사 의혹을 규명하는 데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앞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지난 20일 국회 법사위에 출석해 “(한명숙 사건 수사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정밀한 조사가 있을 필요가 있다는 점을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한 전 총리 사건이 재심 사유에 해당되는지와는 별개로 당시 검찰 수사를 둘러싸고 강압수사 의혹이 제기된 만큼 진상조사는 불가피하다. 조사 주체와 방식 등을 실무 부서에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탐사전문 매체 <뉴스타파>는 25일 한만호(2018년 사망) 전 한신건영 사장과 서울구치소에서 함께 지냈던 재소자 한아무개씨와 한 인터뷰를 보도했다. 보도를 보면, 한 전 사장이 2010년 12월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줬다”는 진술을 법정에서 뒤집자 검찰은 한씨를 조사하려고 했다. 이를 거부하자 수사팀은 한씨에게 주식 차명거래 혐의가 있다며 아들과 조카를 불러 조사했다는 게 한씨의 주장이다. 한씨는 이를 자신에 대한 압박으로 받아들이고 검찰 조사에 응했다고 했다.
이때 한 전 사장의 진술 번복을 탄핵하기 위해 당시 구치소 동료였던 김아무개·최아무개씨와 함께 법정 증언을 대비한 ‘집체 교육’이 검찰청에서 이뤄졌다고 한씨는 주장했다. 한씨는 당시 검찰청에서 조사받으며 검사와 수사관에게 음식도 접대했다며, 조카가 검찰청에 들어왔던 날(2011년 3월1일), 서울중앙지검 인근 초밥집에서 52만5천원을 결제한 신용카드 결제내용을 증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당시 수사팀은 “한○○은 현재까지 장기 수감 중인 사람으로 당시에도 진술이 과장되고 황당해서 도저히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해 증인신청도 하지 않았다”며 “(한씨의 주장은) 명백한 허위”라고 반박했다. 수사팀은 이날 자료를 내어 당시 한씨의 조카와 아들을 소환한 이유는 “한씨가 한 전 사장에게 ‘한 전 총리로부터 돈을 돌려받으면 동업을 하자’고 제안했다는 진술이 있어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씨의 접대 주장에 대해선 “한씨가 외부 음식을 먹고 싶다고 해 아들·조카 등에게 사 오라고 한 후 당시 같이 있었던 김○○, 최○○, 음식을 사온 아들·조카, 다른 참고인 등이 같이 먹은 사실은 있으나 검사와 수사관이 먹은 사실은 전혀 없다”고 했다.
강압수사 의혹 말고도 재판 과정에서 불거졌던 한 전 사장에 대한 검찰의 잦은 소환도 논란이 됐다. 검찰이 당시 법원에 제출한 한 전 사장의 진술조서는 5회분이지만 소환조사는 70여차례 이뤄졌다. 검찰에 소환한 뒤에 조서를 남기지 않았다는 것은 조사 외에 다른 목적으로 소환했다는 의심을 살 수 있다. 여권 인사들은 한 전 사장을 별건으로 압박하거나 한 전 총리 수사에 협조하도록 회유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수사팀은 이에 대해 “한 전 총리 외에 은행원 등에 대한 금품 공여 사실을 확인해야 했고, 한 전 총리가 기소 뒤에 새로운 주장을 하면서 이를 검증하기 위해 한 전 사장 소환조사가 필요했다”고 해명하고 있다. < 김태규 기자 >
치밀하지 못한 검찰 해명에 사그라지지 않는 의혹
'1억원 수표' 등 핵심 증거에 대한 뚜렷한 반증은 아직 없어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에 대한 재조사 요구가 검찰의 증언 조작 의혹으로 중심을 옮기면서 파장을 키우고 있다.
다만 계속되는 의혹 제기에도 '1억원 수표' 등 한 전 총리에 대한 유죄 판결을 뒷받침했던 핵심 증거에 대한 뚜렷한 반증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검찰은 이번 의혹 제기가 유죄 판단 근거와 무관하다며 맞서면서도 명쾌한 해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26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검찰이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준 적 없다"는 한신건영 전 대표인 고(故) 한만호 씨의 법정 증언을 덮기 위해 동료 수감자의 증언을 조작했다는 의혹은 독립언론 뉴스타파의 최근 보도로 촉발됐다.
뉴스타파가 공개한 한 씨의 비망록에는 한 씨가 추가 기소에 대한 두려움과 사업 재기를 도와주겠다는 검찰의 회유 등으로 조사 과정에서 "한 전 총리에 돈을 건넸다"고 진술했다가 공판에서 사실대로 말을 바꿨다고 적혀있다.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증언 조작 의혹을 제기한 A씨는 한 씨의 지인으로, 사건 재판 당시 법정에서 '한 씨가 사실과 다르게 진술을 번복했다'는 취지로 증언을 한 동료 수감자 2명과는 다른 인물이다.
A씨는 당시 한 씨의 진술 번복으로 궁지에 몰린 검찰이 한씨를 '거짓말쟁이'로 몰기 위해 추가 기소 등을 빌미로 자신을 포함한 수감자 3명을 동원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PC로 미리 진술서를 작성하면 수감자들이 이를 베끼도록 하는 방식으로 '집체교육'이 이뤄졌다는 정황 진술도 나왔다.
A씨가 검찰의 협조 요청을 거부하자 A씨의 아들과 조카를 별건으로 조사하겠다며 압박했다는 주장도 내놨다. 그는 한 씨의 부탁을 받고 '특수부 검사가 한 씨에게 거짓 진술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른 검사들에게 알리기도 했지만 모두 묵살당한 적이 있다고도 했다. 이번 증언 조작이 특수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취지다.
검찰의 증언 조작 의혹은 일파만파로 번지면서 사건 재조사를 촉구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하지만 한 전 총리 유죄 판결에 핵심 증거가 됐던 한 전 총리 동생의 전세자금 1억원 수표, 2억원 반환 사실 등은 이번 증언 조작 의혹과 다소 거리가 있다는 점에서 포괄적인 재조사는 쉽지 않다는 관측이 있다. 재조사가 시작돼도 검찰의 증언 조작 의혹에 한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도 수감자들의 법정 증언은 한 전 총리의 유죄 인정 근거로 사용되지 않은 증거라며 이 의혹이 본류와 무관하다는 점을 거듭 부각하고 있다.
검찰의 꼼꼼하지 못한 해명이 의혹을 키우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검찰은 전날 낸 입장문에서 "한만호는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하기 전까지 철저히 그 의도를 숨겼기 때문에 검사나 수사관조차 진술 번복 계획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 씨의 동료 수감자들을 특수부 사무실로 불러 조사한 경위에 대해서는 "한 씨가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할 것이라는 풍문이 법정 증언 5개월 전부터 수사팀 특수1부에 전달됐다"며 앞뒤가 안 맞는 해명을 하기도 했다.
검찰은 "A씨는 사기·횡령·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징역 20년 이상의 확정 형을 선고받은 사람"이라며 진술의 신뢰성을 깎아내릴 목적으로 사건과 무관한 A씨의 전과를 공개하기도 했다.
A씨의 아들과 조카에 대한 별건 수사 압박 의혹, A씨가 고가 식사를 수사관에게 접대했다는 주장 등에 대해서도 검찰은 '사실과 다르다'는 수준 이상의 구체적인 반론을 내놓지 못했다.
증언 조작 의혹이 한 전 총리의 유죄 판단 근거가 된 핵심 증거까지 나아가지 못하는 한 검찰은 앞으로도 사건 본류와 무관한 것이라며 선을 그을 공산이 크다.
하지만 각종 의혹에 대한 검찰의 해명이 충분하지 못할 경우 의혹은 꼬리를 물고 이어져 재조사나 재심까지 촉발할 수 있는 불씨가 될 수도 있다.
'한명숙 사건'이 당분간 재심 여부를 다투는 법리 싸움이 아닌 정치적 쟁점에 머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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