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싸움 피하지 않겠다” 관영매체 “자기 살 베어내는 꼴” 공격
미, 홍콩 특별지위 박탈 시사, 비자·경제 등 직접 제재 뜻도 비쳐
중국이 28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폐막에 맞춰 ‘홍콩판 국가보안법’(홍콩 보안법) 초안 권고안을 강행 처리한 것은 향후 미-중 갈등 악화도 감수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 국무부가 홍콩 자치권 침해를 이유로 노골적으로 제재 카드를 꺼내들자, 중국 관영매체가 “중국을 위협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며 ‘대미 항전’ 의지를 분명히 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리커창 중국 총리는 이날 오후 전인대 폐막 기자회견에서 “보안법 제정은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 폐기가 아니냐”는 질문에, “일국양제는 기본적 국가정책이며, 중앙정부는 일국양제와 홍콩인에 의한 통치, 고도자치 방침을 관철시키기 위해 시종 노력해왔다”고 짧게 답했다. 홍콩 입법회를 우회한 보안법 입법으로 자치권을 침해했다는 비판을 ‘원칙’을 내세워 비켜간 셈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 제13기 3차 전체회의에서 ‘홍콩 보안법’에 찬성표를 던지고 있다.
그는 대만 관련 질문에도 ‘하나의 중국’ 원칙을 강조하며, “대만 문제는 중국의 내정으로, 어떤 외부 간섭도 배격한다”고 강조했다. 또 미-중 관계에 대해선 “현재 미-중 관계가 새로운 문제와 도전에 직면해 있지만, 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서 협력해 많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양국이 사회·정치·역사적으로 차이가 많아 갈등이 불가피할 수도 있지만, 상호 존중하는 평등한 관계를 바탕으로 공동의 이익을 위해 차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답했다.
리 총리의 발언과 달리 관영매체들은 한껏 목소리를 높였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이날치 논평에서 “홍콩은 떼어낼 수 없는 중국의 일부이며, 중앙정부가 홍콩에 대한 전면적인 관리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권리이자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은 논평에서 “코로나19 방역 실패를 가리고 중국의 발전을 가로막기 위해 홍콩에서 최대한 혼란을 조성하는 게 미국의 진정한 의도”라고 질타했다.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도 사설에서 “중국이 홍콩 보안법을 추진한다는 것은 미국의 어떤 반응에도 대처할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이라며 “미국이 중국을 위협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고 강조했다. 신문은 “중국이 강력한 핵 억지력을 유지하고, 군사력 증강을 지속하는 한 미국은 중국의 핵심 이익과 관련해 군사적 대결에 나서지 못할 것”이라고도 했다.
미국과 장기전을 불사하겠다는 ‘결기’도 과시했다. 신문은 미국의 첨단기술 우위에 대해 냉전 시절의 용어인 ‘양탄일성’(원자탄·수소탄과 인공위성)까지 거론하며,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하면 돌파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또 미국의 금융 패권에 대해선 “(미-중 간 금융전쟁이 벌어지면) 솔직히 말해 조금 불편해지는 수준에 불과하며, 되레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금융 시장의 신뢰도만 추락할 것”이라며 “미국이 스스로 자기 살을 베어내는 꼴”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전인대 표결에 앞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27일 보도자료를 내어 “상황에 대한 신중한 검토 끝에, 미국 법에 따라 홍콩이 받아온 대우가 기존과 같은 방식으로 지속될 수 없다는 점을 오늘 의회에 보고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미국은 한때 자유롭고 번영하는 홍콩이 전체주의 중국에 모델이 되기를 희망했으나, 지금은 중국이 홍콩에 자신의 모델을 따르게 하고 있다는 게 명백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1992년 제정한 홍콩정책법에 따라, 중국에 반환된 뒤에도 홍콩이 고도의 자치를 누리는 것을 전제로 관세·비자 등에서 특별 대우를 해왔다. 미 국무부가 홍콩의 자치권이 유린됐다고 평가한 이상, 그동안 부여해온 경제·통상 분야 특혜를 없앨 것인지 주목된다.
중국에 대한 직접 제재 가능성도 거론됐다. 데이비드 스틸웰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이날 미국의 대응 조처에 대해 “여러 범주에 걸쳐 매우 긴 목록이 있다”며 “중국의 행동을 바꾸기 위해 최대한 표적을 맞힐 것”이라고 말했다. 미 하원도 이날 이슬람 소수민족 인권 유린과 관련해 중국 당국자들을 제재할 수 있도록 한 ‘위구르(웨이우얼) 인권정책법안’을 압도적으로 통과시키는 등 미 정치권이 전방위적 대중 압박에 나선 모양새다.
미·중이 정면충돌로 치닫고 있지만, 국제사회의 중재는 쉽지 않아 보인다. 미국은 27일 “국제 평화와 안보에 영향을 끼칠 긴급한 사안”이라며 홍콩 보안법 관련 안보리 소집을 요구했지만, 중국이 “홍콩 문제는 내정이며, 안보리 소관사항이 아니다”라고 거부해 불발됐다.
한편, 이날 폐막한 전인대에선 중국이 장기간 준비해온 민법전이 심의를 통과해 내년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중국은 2017년 3월 전인대에서 민법총칙을 통과시킨 뒤 물권·계약·혼인·상속법 등 후속 편찬 작업을 벌여왔다. < 베이징 워싱턴/정인환 황준범 특파원 >
'● WORLD'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 3조원대 돈세탁 북한인 28명 기소…"북-중에 동시경고" (0) | 2020.05.30 |
---|---|
'한·영 코로나19 사망자 140배 차' 왜?…영국 의학저널 분석 (0) | 2020.05.30 |
“살인마 경찰 기소하라” 흑인 사망 분노 시위 계속 (0) | 2020.05.29 |
‘만삭의 위안부’ 담긴 희귀 영상…연합군에 구출되자 “만세” (0) | 2020.05.29 |
주한미군 전국기지 세균전 부대 운용인력 배치 정황 (0) | 2020.05.28 |
페이스북, ‘갈등 부추기는 알고리즘’ 알고도 뭉갰다 (0) | 2020.05.28 |
‘팩트체크 경고’ 먹은 트럼프, 트위터 손보기 나서나 (0) | 2020.0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