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언론 “한국과 거의 합의”

아사히 “조선인 노동자 전시 부분 대략 합의”
              “핵심 쟁점인 ‘강제성’ 막바지 조정”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 사도광산 내에 자리한 대표적 유적지인 ‘기타자와 부유선광장’의 모습. 일본 최초로 금은광석에서 금·은 등을 채취하는 부유선광법이라는 공법을 도입했다. 사도/김소연 특파원

 

한·일 정부가 일제강점기 때 조선인 강제동원이 대규모로 이뤄졌던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해 핵심 쟁점이던 ‘조선인 강제동원’ 전시 부분에 거의 합의를 이뤘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한국정부가 적극적인 반대의사가 아닌 협조적 자세로 임한데 따른 것으로,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가능성은 상당히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아사히신문은 26일 복수의 한·일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일본 정부가 한반도 출신 노동자의 존재를 현지(사도)에서 전시를 통해 소개하는 방안을 굳히고, 한국 정부와 대략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일본 정부는 인도 뉴델리에서 개최 중인 제46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도 이런 내용을 표명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는 오는 27일께 결정될 전망이다.

다만 한·일 사이에 첨예한 쟁점인 조선인 강제동원의 ‘강제성’ 부분에선 아직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사히신문은 “한국 쪽이 호소하는 노동의 ‘강제성’을 어떻게 표현할지는 양 정부 간 막바지 조정이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는 앞서 2015년 하시마(군함도)를 포함해 ‘메이지일본의 산업혁명유산’ 23곳의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선 한국 정부의 강한 반발로 ‘조선인 강제노역’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뒤 ‘전체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일 정부가 사도광산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에 최종적으로 합의를 이뤄내면, 세계유산 등재 가능성은 높을 수밖에 없다. 21개 위원국이 참여하는 세계유산위는 만장일치 결정이 관례인 만큼, 한국이 일본의 역사 왜곡을 문제 삼아 끝까지 반대하면 등재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일본 정부는 애초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를 노골적으로 피하려고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대상 기간을 에도시대(1603~1867)로 한정하는 꼼수를 썼지만, 유네스코에서 제동이 걸렸다.

지난달 유네스코의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는 사도광산과 관련해 “세계유산 목록으로 고려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다”면서도 여러 지적 사항을 붙여 보류를 권고했다. ‘조선인 강제동원’에 대한 내용도 그중 하나다. 이코모스는 “광업 채굴이 이뤄졌던 모든 시기를 통해 추천자산(사도광산)에 관한 전체 역사를 현장에서 포괄적으로 다루는 설명 및 전시 전략을 수립하고, 시설 및 설비 등을 정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등재 과정에서 조선인 강제동원을 포함한 전체 역사를 반영해야 한다는 한국 쪽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다. 이를 근거로 한·일 정부가 논의를 시작했고 거의 합의를 이룬 것으로 보인다.

1989년 폐광이 된 사도광산의 경우 일제강점기 때인 1939년 이후 약 1500명에 이르는 조선인이 강제동원돼 가혹한 노동에 시달렸다는 사실이 구체적인 자료와 증언으로 입증된 상태다.  < 도쿄=김소연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