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자료 조회, 민주주의 위협하는 암적 요소"
대통령 말대로면 "검찰은 존폐를 검토할 대상"

민주당 회의서 윤석열 글 읽자 "세상에" 탄식
무차별 통신자료 조회 강백신은 '탄핵' 대상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운데)가 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8.5. [연합]

 

"검찰이 야당 국회의원들의 통신자료를 조회했습니다. 불과 며칠 전, 언론 사찰이 논란이 되더니 이제는 정치 사찰까지 했다니 충격입니다. 이는 명백한 야당 탄압입니다. 검찰이 빅 브라더가 지배하는 공포 사회를 만들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시계를 20세기로 거꾸로 돌리고 있습니다. 얼마나 더 많은 야당 의원과 보좌진, 당직자 등을 사찰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국회의원은 한 사람 한 사람이 헌법기관입니다. 게다가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표해서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때문에 국회의원에 대한 사찰은 국민에 대한 사찰이기도 합니다. 이런 식이라면 일반 국민도 사찰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이 정도면 검찰의 존폐를 검토해야 할 상황이 아닌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이 5일 오전 국회 최고위원에서 '검찰의 대규모 무차별 통신자료 조회'에 대해 한 말이다. 고 최고의원은 이같이 말한 뒤, "제가 읽어내린 이 문구들은 제가 쓴 것이 아니라 2021년 12월 23일 당시 윤석열 후보가 페이스북에 썼던 글"이라면서 "여기에서 제가 고친 것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검찰로 고친 것 말고는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회의장 내에선 "세상에…"라는 탄식이 나왔고, 고 최고위원은 "'세상에'죠, 정말"이라고 말했다.

고 최고위원이 읽은 글은 지난 2021년 12월 23일 윤 대통령이 페이스북에 쓴 것으로, 공수처가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해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과 언론인의 통신자료를 조회하면서 수사와 관련성이 크지 않은 이들을 포함한 데 대해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 국민의힘은 공수처의 통신자료 조회에 대해 '불법 사찰'이라며, 김진욱 당시 공수처장의 사퇴까지 요구했다. 고 최고위원은 발언은 검찰의 무차별 통신자료 조회와 관련해 과거 대통령의 발언을 그대로 돌려준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인 2021년 12월 2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 공수처의 통신자료 조회에 대해 국민사찰이라며 존폐를 검토해야할 상황 아닌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언급하고 있다. [윤석열 페이스북 갈무리]

 

고 최고위원은 "심지어 이때는 (대통령이) '이렇게 하면 일반 국민도 사찰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이야기하셨던데, 지금은 어떤가. 일반 국민들까지 무자비하게 사찰하고 있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무려 3000명"이라며 "야당 정치인은 말할 것도 없고 언론인들, 심지어는 해당 보도를 한 기자의 친인척과 동문 등 일반 시민들까지 무차별적으로 통신자료를 조회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면 지금부터 저희는 검찰의 무리한 정치수사를 자행하고 있는 특수부를 비롯해서 검찰 조직에 대한 존폐를 검토해도 되겠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이번 통신조회는 부정부패나 비리 연루도 아닌, 윤 대통령 명예훼손이다. 정당한 언론 보도에 대해 검찰이 대통령 명예훼손이라는 혐의를 붙여 수사한 것부터가 무리수였다. 과거 군사정권이 안기부, 기무사를 앞세워 공포정치를 했던 것처럼 윤석열 정권이 정치 검찰을 앞세워서 사정정치를 하고 있음이 드러난 것"이라며 "대통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독재자의 모습을 그대로 빼다 박았다. 언론에 재갈을 물렸고, 야당 정치인들은 수사로 죄다 잡아넣고,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인가. 이제는 대통령에게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조차 사치스럽다"고 일갈했다.

박찬대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도 윤 대통령의 과거 발언을 언급했다. 박 직무대행은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수사기관의 통신 조회에 대해 '불법사찰이다. 게슈타포나 할 짓'이라고 말했던 당사자"라면서 "그 말대로라면 윤 정권이야말로 게슈타포가 판치는 나치정권"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총선 직전에 야당과 언론을 상대로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정치사찰이 자행됐던 배경이 무엇인지 윤 대통령이 직접 국민 앞에 해명해야 한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인 2021년 12월 29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 불법사찰은 게슈타포나 할 일이고, 국민과 민주주를 위협하는 암적 요소라고 언급했다. [윤석열 페이스북 갈무리]

 

박 직무대행이 언급한 '게슈타포' 발언 역시 2021년 12월 29일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쓴 페이스북 글에서 나온 것이다. 윤 대통령은 해당 글에서 "(공수처가) 고위 공직자를 대상으로 한 수사 기관을 만들어놨더니 하라는 일은 안 하고 과거 권위주의 시절 정보기관의 국내 파트 역할을 하고 있다. 게슈타포나 할 일을 하고 있다"면서 "불법 사찰은 국민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암적 요소"라고 힐난했다. 대통령의 발언대로면 검찰은 '존폐를 검토할 대상'이자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암적 요소'인 셈이다.

검찰의 대규모 무차별 통신자료 조회의 여파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시민언론 민들레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 1부(부장 강백신)의 문자 통지로 확인된 통신자료 조회 인원은 광범위하다. 지난 1월 4~5일 이뤄진 통신조회 대상엔 민주당 이재명 대표, 추미애 의원 등 야당 정치인과 언론사 대표, 기자뿐 아니라 수사와 전혀 관련 없는 민간인도 다수 포함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민들레 에디터와 기자도 조회 대상에 포함됐다. 단 이틀 조회 대상만 최소 수천 명으로 추정된다. 이를 1년 전체로 환산하면 수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무차별 통신자료를 조회한 반부패수사1부는 이른바 '윤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을 수사 중인 곳이다. 반부패수사 1부는 지난 대선 기간 윤 대통령의 '부산저축은행 수사 무마' 의혹을 제기한 언론 보도가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면서, 지난해 특별수사팀을 꾸리고 뉴스타파, JTBC, 리포액트, 경향신문, 뉴스버스 등 언론사 대표와 전·현직 기자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하며, 직접 수사를 벌인 바 있다. 압수수색에 이은 대규모 통신자료 조회는 야당과의 연관성을 찾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검찰은 수사 초기부터 '저축은행 사건 무마 의혹' 보도의 배경으로 민주당을 지목했지만, 그에 대한 직접 증거는 밝혀진 바 없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송한 통신조회 통지 중 하나

 

야당은 이번 검찰의 대규모 무차별 통신자료 조회에 대해 검사 탄핵 청문회에서 따지겠다는 방침이다. 반부패수사 1부 부장인 강백신 검사는 이미 탄핵 대상이다. 민주당 장경태 의원 등 170인이 공동발의한 검사 강백신 탄핵소추안에는 "강 검사는 윤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 수사를 함에 있어 검찰청법상 검사가 직접 수사할 수 없는 범죄인데도 이를 직접 수사하고, 그 과정에서 언론사들과 이를 보도한 기자들을 압수수색하는 위법행위를 자행했다"며 "윤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에 대한 수사 진행 도중 언론에 유죄의 예단을 불러일으키는 피의사실을 공표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번 무차별 통신자료 조회도 탄핵의 증거로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민주당은 지난 1월 통신 조회를 했음에도 법적 통지기한인 30일을 넘겨 8월에 통지한 것 자체도 위법하다는 입장이다.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르면 수사기관은 통신자료 조회 시 30일 이내에 당사자에게 서면, 문자 등으로 통지하고, 증거인멸이나 도주, 증인위협 등 사법절차를 방해할 우려가 있어 유예하더라도 두 차례에 한정해 매 1회 3개월 범위(6개월 범위) 내에서 유예할 수 있다. 이번 통신자료 조회는 지난 1월에 이뤄졌고 통지는 약 7개월 뒤에 이뤄졌다. 민주당은 수사와 관련 없는 민간인에 대한 조회는 유예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불법이라는 입장이다.

민주당 이해식 수석대변인은 최고위원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무차별 통신자료 조회와 관련, "국회 법사위에서 강백신 검사 (탄핵소추사건)를 조사할 때 이 문제를 포함하는 것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 (비공개 최고위에서) 있었다"고 전했다. 당내 별도의 티에프(TF) 구성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수석대변인은 "당 검찰독재정치탄압위원회 차원에서 다루기로 했다"면서 "당 법률위에서는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등의 혐의가 없는지 법적으로 대응하고 사무총장이 지휘해서 전수 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 김성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