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칼럼] 한민족 출애굽기

● 칼럼 2024. 8. 23. 13:07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편집인 칼럼- 한마당]  한민족 출애굽기

 

 

광복절을 지나며 하도 어수선하고 답답하다 보니, 성경에 기록된 출애굽기를 떠올려 비춰보게 된다. 해방된 지가 79년인데, 기다렸다는 듯 한꺼번에 뛰쳐나온 ‘친일 노예근성’의 준동을 보며 우리 민족이 어쩌면 노예에서 풀려난 이스라엘 유민들 처럼 여전히 광야를 헤매고있는 처지는 아닌가 하는 자괴감마저 들어서다.

성경의 출애굽기는 선민(選民)을 인도하는 창조주의 구원의 이야기로 알려져있다. 애굽(이집트)에서 노예상태로 고통받는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 입성까지의 계획과 섭리, 그리고 놀라운 ‘역사하심’이 그려진다. 그 구속사의 줄기는 전능자의 무한한 은혜의 손길에 의지하면서도 노예습성을 버리지 못한 채 불순종과 배반을 반복하고, 징벌에 놀라 회심을 되풀이하는 인간의 속성과 민낯을 생생하게 드러내며 우리에게 삶의 교훈과 메시지를 던진다.

야곱 가족의 이주로 시작한 애굽생활 430년 동안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무려 60만명이 넘는 민족으로 번성했다. 그러나 요셉 총리시대의 영화는 가고, 노예신분으로 전락해 민족차별과 박해, 노역에 시달리게 된다. 그 신음소리에 하나님은 모세라는 지도자를 세우고 구원의 언약을 이행하여 백성을 해방시킨다.

Exodus(탈출)를 저지하는 왕권을 10가지 이적(異蹟)으로 깨뜨리고, 홍해를 갈라 단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구해낸 불가사의와 기적을 찬양하며 해방의 기쁨을 만끽하지만, 사람들은 광야생활 불과 사흘 뒤부터 불평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광야의 자유보다 옛 노예시절이 차라리 낫겠다는 것이다. 물과 음식, 굶주림, 적대세력 등 불만과 곤경에 처할 때마다 만나와 메추라기,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보살피는 데도, 우매한 사람들은 광야의 시련을 견디지 못하고 원망하며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하는 불경의 죄를 범하기까지 한다.

결국 그들은 자업자득의 징계를 받는다. 당대에는 가나안 땅을 밟지 못한 채 40년간 광야의 고통을 감내하며 단련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가나안’에 합당치 않은 노예시절의 관념과 습성들을 모두 버리도록 혹독한 훈련을 받는 것이다. 그렇게 노예근성 탈색과 광야의 연단을 거쳐 비로소 영광의 가나안 시대를 열게 된 승리자는 여호수아와 갈렙 단 두 명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2세들이었다.

그렇게 출애굽은 광야를 거치는 환골탈태의 교훈, 곧 시련과 고난을 넘어 옛사람의 구태를 철저히 벗어던지지 않고는 영광스런 낙원에 이를 수 없다는 구원의 섭리를 강조해 준다.

 

엊그제 한민족 전세계 동포들은 해방 79년을 맞아 기쁨의 감회보다는 안타까운 탄식으로 광복절을 보내야했다. 마치 봇물이 터진 듯 '친일'과 ‘매국’ 논란이 쏟아진 때문이다.

조국의 광복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했던 선열들의 후예가 모인 광복회와 독립운동가 단체들이 이른바 ‘뉴라이트 사관’을 가진 인물의 독립기념관장 임명에 반발해 광복 이후 처음으로 광복절 행사가 두쪽이 났다. 국방부는 군 정신교육 교재를 새로 발간하면서, 홍범도, 김좌진 등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을 모두 뺐다. 공영방송 KBS는 광복절 당일, 일본국가 ‘기미가요’가 나오는 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을 내보냈고, 좌우가 바뀐 태극기 그래픽을 배경으로 송출하기도 했다. 서울교통공사는 지하철역 여러 곳에 설치된 독도조형물을 철거했다가 반발 여론이 거세자 뒤늦게 재설치하겠다고 했다. 대통령실 외교안보 책임자는 속칭 ‘중일마’ 발언으로 국민 마음을 들쑤셨다.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 보다) 일본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모두 광복절을 전후로 약속이나 한 듯 벌어진 ‘민족 자존심을 짓밟은’ 사례들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산하 25개 역사관련 기관을 이른바 ‘뉴라이트’ 친일 인물들이 장악했다고 한다. 일제식민의 과거사를 ‘미화’하는 비루하고 사대적(事大的)인 역사관을 2세들에게까지 주입하려는 광범위하고 치밀한 공작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항일 자주독립 정신을 선양하고 계승할 목적으로 건립된 독립기념관장에 “친일인사들 명예를 회복하겠다”고 장담하는 자를 앉히는 반역적 행태가 그 단적인 예다.

미국의 외교전문지 Diplomat는 최근 “윤석열은 일본의 역사를 세탁하는 데 있어 기시다 내각이 발견한 완벽한 공범”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에 귀화한 호사카 유지 교수는 “일본은 윤석열 정부가 낮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고, 다음 정권은 다시 진보 정권이 될 것 같기 때문에, 윤 정권 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보려는 움직임”이라고 전했다. 윤 정권이 과거사 세탁에 목을 매는 일본과 한 몸이 된 공범이거나 만만한 호구노릇을 하고 있다는 참담한 고발들이다.

그렇다. 광복 80년을 내다보지만 우리는 여전히 눈앞에 둔 ‘가나안 땅’, 참 광복의 낙원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노예근성을 못버린 자들이 설치는 광야에서 ‘매국적 친일종자’들에게 발목이 잡혀있는 답답한 처지다. 어떻게 이 치욕적인 광야의 늪을 벗어나 참 광복의 길을 열어갈 것인가. 한민족의 출애굽기는 우리의 역사 정의를 향한 결기와 투쟁의 끈질긴 대장정에 결말이 달려있다.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