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굴한 결정에도 검찰 게시판에 글 한 줄 없어
조직 전체가 정권 재창출 위해 뛰기로 작정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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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검찰이 다시 개가 되었습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주인 없는 늑대가 되어 ‘살아있는 권력’의 살점을 물어뜯던 검찰이 이제 다시 물라면 물고 핥으라면 핥는 개가 되었습니다. 다시 개가 된 검찰이 모시는 주인은 오직 한 사람, 검찰 선배 윤석열 대통령입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윤석열 검사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 한마디로 스타 검사가 됐는데, 대통령이 된 뒤에는 검찰 조직 전체를 윤석열이라는 사람에만 충성하는 조직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검찰이 윤석열 정권 친위대 또는 사병 집단으로 전락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감사의 표시라면 받아도 되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은 22일 정례회의에서 이원석 검찰총장에게 김 여사의 청탁금지법(‘부정청탁및금품등수수의금지에관한법률’) 위반 혐의에 대해 ‘혐의없음’ 처분을 내리겠다고 보고했습니다. 처벌할 수 없다는 얘깁니다. 처분 내용은 복잡하지만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청탁금지법엔 공직자 배우자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습니다. 단, 직무와 관련한 청탁이 있을 때는 알선수재(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나 뇌물죄, 변호사법 위반 등으로 처벌할 수 있습니다.
‘청탁’이 열쇳말입니다. 선물을 준 당사자인 최재영 목사는 청탁을 했다고 밝혔죠. △김창준 전 미국 하원의원 사후에 국립묘지 안장 △김 전 의원 주도의 미국 전직연방의원협회(FMC) 방한 시 윤 대통령 부부 접견 및 행사 참석 △통일TV 재송출 등입니다.
그런데 검찰은 최 목사가 김 여사에게 건넨 디오르 백과 샤넬 향수와 화장품과 위스키가 ‘감사의 표시거나 만나기 위한 수단’이었고, 청탁이 아니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청탁을 한 사람은 청탁이라고 주장하는데, 검찰은 청탁이 아니라고 본 겁니다. 청탁 내용들이 대통령에게 전달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는데, 검찰이 이와 관련해서 대통령을 조사한 적이 있었나요? 저는 금시초문입니다.
“과거에 삼성이 최순실 씨한테 뇌물을 줬지 박근혜 대통령한테 뇌물을 준 게 아니었어요. 명시적인 청탁이 없었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삼성도 그때 명시적 청탁 없었어요. 그런데 묵시적 청탁이 있고 대통령은 뭐든지 할 수 있기 때문에 대통령에 대해서 묵시적 청탁이 가능하다. 이 기소를 했던 그 특검팀 안에 우리 대통령이 계셨던 거예요.” (김웅 전 국민의힘 의원 ‘CBS 박재홍의 한판승부’ 8월22일)
최 목사가 선물을 전달하던 날 김 여사가 정부 인사에 개입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통화를 했고, 선물을 전달하려는 다른 사람들이 기다리는 모습도 봤다고 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조사하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자동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혐의도 없어졌습니다. 청탁방지법에는 배우자가 직무와 관련해 금품을 받은 사실을 알면 해당 공직자는 즉시 신고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알면서도 신고하지 않았죠. 그런데 검찰이 직무와 관련이 없는 선물이라고 정리해줌으로써 윤 대통령의 신고 의무도 없던 일이 됐습니다. 제대로 수사도 않고 짜여진 각본대로 억지 면죄부를 찍어준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일선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선생님께 ‘감사의 표시’로 커피 한잔 드리는 것도 금지한다는 사실 아십니까? 국민권익위원회가 청탁금지법에 근거해서 현장에 배포한 금지 사례에 들어 있는 내용입니다.
“스승의 날 학생들이 돈을 모아서 담임에게 5만 원 이하 선물을 드리는 것 불가예요. 청탁금지법 위반이 된다는 겁니다. 담임과 면담 시에 커피를 제공해도 청탁금지법 위반이에요. 이렇게 선생님들한테는 커피도 안 돼 해놓고 대통령 부인이 명품백을 받았는데 권익위가 괜찮다고 했잖아요.” (뉴스공장’ 8월22일)
앞으로 ‘감사의 표시’라면 공직자 부인에게 고가의 선물을 해도 된다는 선례가 생긴 것입니다. 이제 청탁금지법은 사실상 사문화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이번에도 자신의 발언으로부터 도망가기 바쁩니다.
“검찰이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무혐의로 결론내렸다고 하는데 국민 눈높이에 맞는 결정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사법적 판단은 국민 눈높이… 어차피 결국 팩트와 법리에 관한 것이니까요. 거기에 맞는 판단은 검찰이 내렸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상세히 보진 않았습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 질문에 답변, 8월21일)
각본대로 억지 면죄부 발행
검찰의 무혐의 결정은 국민권익위원회의 종결 처분과 같은 논리입니다. 권익위 김 국장은 윗선의 종결 처분 결정이 부당하다고 생각해 반대했으나 굴복할 수밖에 없었고 자괴감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삶을 마감했습니다.
검찰이 권익위와 다른 점은 수사권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검찰은 수사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피의자 휴대전화를 압수수색 하기는커녕, 오히려 수사검사들이 휴대전화를 압수당했습니다. 검사들이 휴대전화를 제출하고 대통령 경호처에서 출장조사를 했을 때부터 검찰이 무혐의 결정을 내릴 거라고 다들 예상했습니다. 아니, 그 전에 지난 5월 인사에서 ‘찐윤’ 검사들로 검찰을 재편했을 때부터 이런 식으로 수사가 진행되리라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모양 갖춰서 대충 조사하고 얼른 무혐의 처분하라고 윤 대통령이 내려보낸 검사들이 입맛대로 일을 ‘제대로’ 한 것입니다.
명품백이라는 ‘맥거핀’에 가려진 주가조작
여러분, ‘맥거핀’이라는 영화 용어 아시죠? 코엔 형제의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주인공들이 서로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돈 가방 같은 건데요. 시종일관 영화를 지배하지만, 실은 별게 아닌, 일종의 눈속임 장치입니다. 등장인물들의 갈등과 투쟁을 이끌어가려고 만들어낸 소품이나 사건을 말하는데요, 서스펜스 영화의 대가인 앨프레드 히치콕이 처음 만들어낸 기법입니다.
저는 명품백이 맥거핀 같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명품백이라는 맥거핀에 정신이 팔려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이나 한남동 대통령실 관저 공사 수주 의혹 같은 더 중요한 일에서 관심을 돌리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은 공범들이 구속기소돼서 1심 판결까지 끝났는데, 검찰은 2년이 지나도록 김 여사를 직접 조사도 못 하고, 기소도 못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증거가 있으니 무혐의 처분도 할 수 없는 상태죠.
이미 결론은 나와 있습니다. 명품백과 주가조작뿐만 아니라, 한남동 관저 공사와 이종호 녹취록(채 상병 사망 수사 외압+인천세관 수사 외압), 양평고속도로와 공흥지구 개발특혜 의혹 사건까지 모두 모아서 특검 수사를 해야 합니다.
‘찐윤’ 검찰의 친위쿠데타
이원석 총장은 검찰에서 사실상 식물인간 상태입니다. 지난달 경호처 출장 조사 때 총장 사전보고를 누락한 ‘총장 패싱’ 사태 기억하실 겁니다. 이 총장이 화를 내면서 대검 감찰부에 감찰도 아니고 겨우 ‘진상파악’을 지시했는데, 그조차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총장의 진상파악 지시에 이창수 지검장이 “나만 조사하라”고 반기를 들고, 명품백 수사팀 소속 김경목 부부장검사가 사표를 내는 등 반발했습니다. 김경목이라는 검사는 “사건을 열심히 수사한 것밖에 없는데 감찰 대상으로 분류한 것에 화가 나고 회의감이 든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어차피 다음 달 15일이면 임기가 끝나는 총장인데다, 대통령실이 “총장이 정치하려고 그러는지 이해가 안 간다”는 식으로 험담을 하니, 검사들이 이 총장을 투명인간 취급하고 대통령실의 신임을 받는 이창수 지검장에게 줄을 선 형국입니다. 명백한 하극상입니다. ‘찐윤’ 검사들의 용산 친위쿠데타라고 할만합니다.
윤석열 사병 집단으로 전락
이 모든 사태의 중심에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있습니다. 송경호 전 서울중앙지검장이 지난 인사에서 부산고검장으로 날아간 이유도 김건희 여사 소환을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이 총장이 윤 대통령 눈 밖에 난 이유도 “성역없는 수사” 등등 눈치 없는 소리를 했기 때문입니다. 윤 대통령 부부는 본인들을 ‘성역’이라고 생각하는데, 성역없이 수사하겠다니 화가 난 거죠. 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입니까? 윤 대통령은 자신을 검찰총장으로 임명했던 문재인 대통령을 상대로 공개적인 전쟁을 벌였던 사람 아닙니까? 검찰 수사 앞에 성역 같은 건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다는 게 검사들의 공정과 상식 아니었나요? 그런데 지금 검찰의 비굴한 행태에 대해 검찰 내부 게시판에 글 한 줄 올라오지 않습니다. 민주당이 검사 탄핵을 추진하자 이원석 총장부터 말단 검사, 퇴직 검사들까지 집단으로 의견을 표출하던 투지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지금 검찰은 용산이라는 하나의 태양 아래 일렬로 도열한 해바라기밭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야당 표적수사에 올인
과거에도 검찰은 독재정권이나 권위주의 정부 아래서는 정권의 시녀 노릇을 했고, 검찰을 개혁하려는 민주당 정부에서는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한다며 정권을 상대로 싸웠습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 검찰은 청와대를 5번이나 압수수색했습니다. 그렇게 정권을 상대로 사실상 전쟁을 벌였고, 그 갈등 과정을 공정과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정권까지 장악했습니다.
그런데 정권을 잡고 나서는 공정과 상식이라는 액세서리가 귀찮은 듯 저 멀리 던져버렸습니다. 집권 3년 차에 이르기까지 전 정권과 야당 대표를 이렇게 끈질기게 수사하는 경우를 저는 처음 봅니다. 검찰은 최근에도 문재인 전 대통령 전 사위의 타이이스타젯 취업 의혹과 관련해 문 전 대통령 부부의 계좌를 추적하는 등 전방위로 수사하고 있는데요. 이스타항공 창업주인 이상직 전 민주당 의원을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으로 임명한 데 따른 대가로 사위가 이스타항공의 자회사인 타이이스타젯에 취업한 게 아니냐고 의심한다는 겁니다. 이와 관련해 임종석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과 민정수석이었던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에 소환을 통보했습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7개 사건에 11개 혐의로 총 4개의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해 9월까지 압수수색만 376회(장소 기준) 했다고 합니다. 검찰은 영장 발부에 따른 횟수로 치면 36회라고 주장하지만, 36회든 376회든 한 사람에게 과도한 강제수사를 벌였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 형사소송법의 수사비례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처사입니다. 옛말을 변형해서 표현한다면, 대여춘풍(待與春風) 대야추상(待野秋霜)이 따로 없습니다. 대통령과 여당을 향해서는 따뜻한 봄바람 같고, 야당과 전 정권을 향해서는 차가운 서릿발 같습니다.
수오지심을 잃어버린 검찰
법은 수많은 법조문으로 이뤄져 있지만, 복잡다단한 인간사를 모두 다 규율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법을 해석하고 집행하는 법률가들의 양심이 중요합니다. 법 집행을 통해 궁극적으로 구현되는 것이 정의라면,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절차적 가치는 형평성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공정인데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아야 사회적 설득력과 공감대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지금 검찰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과연 공정한가요?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성남시장이었을 때 관내 기업들이 성남시 소속 축구단인 성남FC에 후원을 했는데, 검찰은 제3자 뇌물혐의로 이재명 대표를 기소했습니다. 관내 기업들이 관내 축구단에 후원을 했는데, 그게 당시 시장이었던 이재명 대표에게 뇌물을 준 거나 마찬가지라는 논리입니다. 이 대표가 직접 받은 건 한푼도 없는데 말입니다. 이재명 대표 부인 김혜경씨는 법인카드 10만원으로 기소했습니다. 이 정도라면 300만원짜리 명품백은 당연히 기소해야 하고, 주가조작은 당장 구속수사를 해도 부족하지 않습니까? 검찰은 최소한의 정의에 대한 감각과 공정성을 상실했습니다.
과거엔 그래도 검찰이 여론의 눈치를 봤습니다. 그런데 요즘엔 전혀 개의치 않죠. 검사동일체의 연장선상에서 윤 대통령과 한 배를 탔다고 검찰 조직 전체가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공동운명체라고 보는 거죠. 윤 대통령이 망하면 검찰도 망한다고 생각하고, 정권 재창출에 조직의 운명을 건 것처럼 보입니다. 더이상 국가기관이 아니라 사병집단이나 사당(私黨)이 된 것 같습니다. 최소한의 부끄러움, 수오지심(羞惡之心)마저 잃어버렸습니다.
넷플릭스 ‘더 인플루언서’의 교훈
최근 넷플릭스에 올라온 ‘더 인플루언서’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보셨나요? 유튜브와 틱톡, 인스타그램 등 각종 소셜미디어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 77명 중에서 최고의 1인을 뽑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입니다. 제1화에서 참가자들은 서로에게 ‘좋아요’와 ‘싫어요’를 각각 15개씩 쓸 수 있는데요. 어떤 사람이 살아남을지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게임 초기에 참가자들은 ‘좋아요’만을 받으려 노력합니다. ‘싫어요’를 받으면 감점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하지만 게임의 메기 역할을 하는 유튜버 진용진씨가 제작진의 기획 의도를 간파합니다. ‘좋아요’든 ‘싫어요’든 무조건 많이 받는 사람이 승자라는 거죠. 인플루언서에게 중요한 건 ‘좋아요’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관심 그 자체이고, 그렇다면 요즘 말로 ‘어그로’를 끌어서라도 많은 수의 ‘좋아요’와 ‘싫어요’를 받는 사람이 살아남게 된다는 겁니다.
설명이 좀 길었는데요. ‘더 인플루언서’ 초반에 참가자들이 최종 규칙을 몰라 우왕좌왕하듯이 지금 우리 사회는 혼돈 속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게 하나 있습니다. 우리 공동체에 적용되는 게임의 규칙을 최종적으로 정하는 제작진은 바로 국민이라는 겁니다. 검찰이 아닙니다. 누구를 수사할지 안 할지, 기소할지 안 할지, 어떤 법률을 적용할지, 어떻게 형평성을 기할지 등 너무 많은 재량권이 검찰에 몰려 있습니다. 이 권한을 나눠야 합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기 때문입니다. 검찰개혁에 번번이 실패하면서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 한겨레 이재성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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