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수통일 공포서 비롯된 남과의 공존 시도"
윤 "자유 통일 한국"…북 인민 봉기 선동?

미 전문가가 본 김정은의 두 가지 메시지
"남한은 동포 아니다"와 "서로 간섭 말자"
"남, 북 운명에 타국보다 더 큰 권한 없어"

 

북한이 추진해온 남한과의 완전한 갈라서기 작업이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었다.

작년 12월 30일 노동당 중앙위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남북 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 교전 중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했다. 그리고 올해 1월 남한의 국회 격인 최고인민회의에서 헌법에 영토·영해·영공 조항을 신설해 주권 행사 영역을 명시하고, 통일 관련 표현을 모두 삭제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0일 평양의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 청사에서 당중앙위 제8기 제9차 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3.12.31. 조선중앙통신 [연합]
 

"북과 남은 적대적 두 국가"…곧 헌법 명기

10·7 최고인민회의서 남과 갈라서기 제도화

그로부터 9개월 만인 오는 10월 7일 북한은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1차 회의를 개최한다고 조선중앙통신을 인용해 연합뉴스가 전했다. 이 자리에선 사회주의헌법 수정‧보충과 관련한 문제를 토의할 예정이라고 밝힌 만큼 헌법 개정을 통해 김정은의 '적대적 두 국가론'에 대한 법률적 제도화를 마무리할 공산이 크다. 이에 따라 북한은 개정 헌법에 '적대적 두 국가'를 명시하고 영토 규정을 신설하며, 통일 및 민족 관련 표현을 일괄 삭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북한 노동당이 그동안 견지해온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 체제'를 기반으로 한 통일 노선을 폐기했을 뿐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 특수 관계'(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서 합의)로 봐온 남북 관계 개념도 부정한 셈이다. '통일'을 포기하고 '따로 살자'는 얘기다.

김 위원장이 '적대적 두 국가론'를 내건 배경과 관련해 미국의 국제안보전문가인 라미 김 다니엘 K 이노우에 아시아태평양 안보연구센터 교수는 세 가지 관점을 소개했다. '산산이 부서지는 한반도 통일의 꿈: 서울의 정책 전환이 보기보다 더 위험하다'란 18일 자 <포린 폴리시> 기고문을 통해서다. 라미 김 교수는 미국 하버드대에서 석사 학위를, 터프츠대 플레처스쿨에서 법률외교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무기연구소와 무기급 핵물질 생산시설을 현지지도하고 무기급 핵물질 생산에 총력을 집중해 비약적인 성과를 낼 것을 지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3일 보도했다.2024. 09.13 [조선중앙통신=연합]
 

미 전문가가 본 김정은의 두 가지 메시지

"남한은 동포 아니다"와 "서로 간섭 말자"

첫 번째는 남한에 대한 북한의 인식이 '대화나 공존할 대상'에서 정복할 대상으로 바뀌었다는 견해다. 두 번째는 남한을 향해 핵무기를 쓰기 위한 정지 작업이란 견해다. 남한 주민을 '동포'라고 하면서 핵무기 사용을 정당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통일 경쟁", 즉 한반도를 통일할 합법정부 경쟁에서 남한에 패배했다는 북한의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란 견해다. 이런 인식이 흡수통일에 대한 '공포'로 이어지고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라미 김 교수는 "북한은 경제적, 외교적, 문화적, 그리고 핵 분야를 빼곤 심지어 군사적 측면에서도 남한에 많이 뒤떨어져 있고, 더 중요한 것은 이런 격차가 이제 북한 주민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는 점이다"라고 지적한 뒤 세 번째 견해에 더 공감을 표시했다.

실제로 김정은은 당시 전원회의에서 "우리 제도와 정권을 붕괴시키겠다는 흉악한 야망은 민주를 표방하든 보수의 탈을 썼든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면서 통일정책 폐기 배경과 관련해 남측이 "외세와 야합해 정권 붕괴와 흡수통일의 기회만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김정은이 던지려는 메시지를 두 가지로 봤다. 북한 주민을 상대론 남한 주민을 더는 동포로 여기지 말라는 게 그 하나이고, 남한 주민을 상대론 서로 다른 정치체제, 이념, 생활방식을 인정하고 서로 남의 일에 간섭하지 않기로 합의하자는 게 다른 하나다.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2024.8.15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통일 독트린' 통해 흡수통일 천명

역대 민족공동체 평화통일 방안 공식 폐기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 통일'을 핵심으로 한 이른바 '8.15 통일 독트린'을 발표했다.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서였다. 윤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한반도 전체에 국민이 주인인 자유 민주 통일 국가가 만들어지는 그날, 비로소 완전한 광복이 실현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이 김정은의 '적대적 두 국가론'을 일축하고 북한을 흡수통일하겠다고 사실상 선언한 것이다.

이를 위한 3대 과제로 △ 남한 내 자유 통일 가치관과 역량 강화 △ 북한 주민 변화 유도 △ 국제사회와의 연대를 제시했다. 북한이 남한보다 더 강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던 1964년 2월 북한 김일성 주석이 내건 △ 사회주의 혁명 역량 강화 △ 남한 혁명 역량 강화 △ 국제 혁명 역량 강화란 '3대 혁명 역량 강화론'을 윤 대통령이 말만 바꿔 남한이 내건 셈이다.

북한 주민 변화 유도와 관련해 경축사에 윤 대통령은 "자유 통일이 그들의 삶을 개선할 유일한 길임을 더 많은 북한 주민들이 깨닫고, 통일 대한민국이 자신들을 포용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하면, 이들이 자유 통일의 강력한 우군이 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윤석열의 '8.15 통일 독트린'은 보수, 진보 불문하고 역대 정부가 평화통일을 위해 초당적으로 합의했던 민족공동체 평화통일 방안을 공식으로 폐기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에 북한대학원대학교 조성렬 초빙 교수는 "북한이 '적대적 2개 국가관계'를 내세웠다고 해서 우리마저 통일을 포기하는 것은 옳은 선택이 아니다. 그렇다고 사실상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을 상대로 정보 유입으로 체제 붕괴를 유도하고 우리 주도로 흡수통일하겠다며 통일 독트린이나 발표하고 나서는 것도 어리석고 위험한 짓이다"라고 비판했다.

 

지난 6월 3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열린 접경지역 연석회의 긴급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대북 전단살포 중단 등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
 

김 "적대적 두 국가"…남과의 공존 시도?

윤 "자유 통일 한국"…북 인민 봉기 선동?

라미 김 교수는 김정은의 '적대적 두 국가', 윤석열의 '자유 통일 한국'과 관련해 "표면적으론 서울의 입장은 해롭지 않고, 평양의 구체적 발언들은 공격적이고 도발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평양의 태도는 '두 국가 해법을 통한 남한과의 공존 시도를 시사하는 것일 수 있는 반면에, '통일된 민주적 한국'이란 서울의 선언은 북한에는 김정은 체제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인민 봉기를 선동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고 짚었다.

김 교수는 "2000년의 남북공동선언과는 모순되게 윤의 통일 비전은 평양과의 협의를 통해서가 아니라 김정은 체제의 바람에 반해서 북한 주민을 고무해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도록 하고 있다"면서 "평양은 윤석열이 부추기는 일종의 정보 전술에 극도로 예민한 만큼 그런 캠페인들을 강화하는 건 오로지 긴장을 악화하고 군사 대결 위험을 증가시킬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남한 주도의 '두 국가 해법' 수용을 제안하며 그 장점과 함께 문제점을 소개했다.

먼저 김 교수는 "한반도에 파국적 결과를 낳을 북한 내 반란을 부추기는 대신에 북한의 흡수 공포를 덜어주고 남북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남한은 자체의 두 국가 해법을 검토할 수 있다"며 "이는 당장은 흡수통일 고취를 자제하고 '분리된 두 국가'란 현실을 수용하는 것이고, 중‧장기로는 이웃 국가로서 북한과 외교 관계를 맺고 협력과 상호 이해, 평화 공존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30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판문점 남측 자유의 집에서 나오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2019 06. 30. [연합]
 

미 전문가, 남한 주도 '두 국가 해법' 제안

통일 추구를 의무로 정한 한국 헌법과 충돌

그러나 이런 '두 국가 해법'이 남한에서 마주치는 현실적 문제점도 시인했다.

우선, 통일 추구가 남한의 정책 우선순위일 뿐 아니라 헌법상 의무라는 점과 충돌하고 있다. 헌법 제3조에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고 규정하고 제4조에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돼 있다. 또한 제66조에는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고 명시했다. 이들 헌법 조항은 1948년 제정 이후 한 번도 수정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문재인 정부의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19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9ㆍ19 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 기조 연설에서 "객관적 현실을 받아들이고 두 개의 국가를 수용하자"면서 "통일, 하지 맙시다. (남북이) 그냥 따로, 함께 살며 서로 존중하고 같이 행복하면 좋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이어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고 돼 있는 헌법 3조를 두고 "영토 조항을 지우든지 개정하자"고 주장했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문 전 대통령도 이날 기념식 연설을 통해 "북한이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고 나선 데 따라 기존의 평화 담론과 통일 담론의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해 임 전 실장과 비슷한 취지의 메시지를 던졌다. 

라미 김 교수는 또한 현상 유지를 원하는 젊은 세대완 달리 전쟁 경험 세대의 여전히 압도적인 통일 지지 여론도 '두 국가 해법'에는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더 실리적 차원에선, 남한이 통일 목표를 폐기하고 북한을 영원히 별개 국가로 인정한 상태에서 북한 체제가 붕괴했을 때 북한에 대한 남한의 영토 고권이 박탈되고 통일과 재건 과정으로 가는 모든 입지를 상실할 것이라는 일각의 반론도 소개했다.

 

19일 오후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임종석 2018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2024. 09.19 [연합]
 

"남한 인정 관계없이 국제법상 별개 국가"

"북한 운명에 타국보다 더 큰 권한 없어"

그러나 라미 김 교수의 견해는 다르다. 남한이 북한을 '별개 국가'로 인정하든 않든 남한과 북한은 1991년 이미 '별개 국가'로 유엔에 가입했고 그에 따라 국제사회는 둘을 별개 국가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151개 국가가 남‧북한과 외교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들 중 어느 나라도 '하나의 중국'(원 차이나) 정책과는 달리 '하나의 코리아'(원 코리아) 정책을 수용한 곳은 없다. 그래서 북한 붕괴 시 남한이 북한에 진입한다면, 그건 유엔 헌장을 위배한 외국의 불법 개입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김 교수는 "법률적으로 말하면, 남한은 북한을 별개 국가로 인정하길 거부하든 않든 관계없이 북한의 운명에 대해 어떤 다른 나라보다 더 큰 권한을 지니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체제 붕괴를 부추겨 통일을 추구하는 건 손에 잡힐만한 혜택을 전혀 주지 못하고 오로지 한반도 내 긴장만 고조시킬 뿐이다. 긴장 고조의 위험성을 감안한다면 공식적인 두 국가 해법은 검토할 가치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오직 '하나의 코리아'가 있는 한, 각자 유일한 합법적 대표성을 주장할 것이고 상대는 제거의 목표가 될 것이다. 그런 시나리오에선 상호 공존은 불가능하다"며 "별개의 국가들로서 남한과 북한은 공존할 수 있다. 꼭 사이좋지는 않더라도 공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민들레 이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