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개 인권시민사회단체 “윤 정부 임명 위원들 혐오와 차별 조장, 정치편향 결정"

‘부인' 안창호, '거부' 김용원, '사실 왜곡' 이충상

 안창호 위원장은 “차별금지법은 역차별 우려”

 
 
지난 9월9일 안창호 인권위원장 취임식에 모인 전·현직 인권위원들. 왼쪽부터 원민경·이충상 위원, 이상철 전 위원, 안창호 위원장, 남규선·김용원·한석훈 위원. 한겨레
 

각 국가 인권 기구들의 등급을 심사하는 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GANHRI, 간리) 승인소위(SCA)가 내년 특별심사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우리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22일까지 해명서 제출을 요구한 가운데, 인권위와 김용원·이충상 위원이 제출한 해명이 사실상 의견 제시를 거부하거나 사실과 다른 부적절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흡한 답변이 특별심사와 인권위 등급 보류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인권위 내부에서도 나온다.

23일 한겨레가 더불어민주당 서미화·윤종군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간리 승인소위 특별심사 요청에 대한 답변 보고’와 ‘승인소위 특별심사 개시 여부 관련 이충상·김용원 상임위원 당사자 의견’을 보면, 인권위는 간리로부터 해명을 요청받은 주요 쟁점에 대해 그동안 안창호 위원장과 이충상 상임위원이 펼쳐온 논리에 바탕해 반박하거나 아예 의견 개진을 거부했다. 주요 쟁점에 대한 인권위 공식 답변 보고가 9쪽, 이충상 위원의 의견서는 16쪽이다. 김용원 위원은 사실상 답변을 거부하는 1쪽자리 의견서를 냈다.

앞서 1일 인권위 바로잡기 공동행동과 차별금지법 제정연대에 속한 204개 인권시민사회단체는 간리에 서한을 보내 “윤석열 정부가 임명한 위원들이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고 정치적으로 편향된 결정을 내리는 가운데 회의를 개최하지 않고 직원들을 협박하여 결정을 지연시킴으로써 인권 침해 조사 등을 이행하지 못하도록 해왔다”며 특별심사를 요청했고, 간리 승인소위의 실무를 담당하는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인권위에 22일까지 해명서 제출을 요구한 바 있다. 각 국가 인권기구의 등급을 매기는 간리 승인소위는 한국 인권위의 해명서를 검토한 뒤 내년 상반기에 특별심사 여부를 결정한다.

특히 김용원 상임위원이 제출한 ‘당사자 의견’을 보면 김 위원은 “현재 한국의 일부 인권단체들은, 김용원 위원이 그들과 정치적 입장이 달라, 그의 직무수행 내용이나 방식이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에, 부당하고 과격한 방식으로 공격을 계속하고 있다”고 간리에 서한을 보낸 인권단체들을 탓했다. 아울러 “허위·왜곡의 점을 구체적으로 밝히기 위해서는 쟁점이 다수이고, 사실관계를 일일이 정리해야 해 적어도 한 달 이상의 시일이 필요하다”며 사실상 해명을 거부했다.

                                   김용원 인권위 상임위원. 한겨레
 

인권위도 ‘공식 답변 보고’에서 안창호 위원장과 관련해 해명을 요청 받은 지적 사항을 대부분 인정하지 않았다. 안창호 위원장이 인사청문회에서 했던 차별금지법 관련 발언에 대해서는 “대한민국의 많은 시민들은 현재 추진되고 있는 차별금지법이, 질병과 관련된 성소수자에 대한 객관적 발언을 할 표현의 자유 및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여, 최소 5백만원 손해배상금을 내야 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역차별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며 “이에 대해 위원장은 사회적 논의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향후 차별금지법과 관련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숙고하고, 민주적으로 논의하여, 헌법 정신에 입각한 공공의와 공동선이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답변한 것”이라고 했다.

안 위원장이 인사청문회에서 의견을 밝히지 않은 윤석열 대통령 풍자만화 ‘윤석열차’에 대해서는 “개별 진정 사건 관련 사안으로, 취임 전 인사청문회 당시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입장을 밝히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취지에서 답변한 것”이라고 했다.

‘사회적 약자·소수자 보호 노력에 대한 역행’에 대한 항목에선 “안창호 위원장은 ‘다수의 인권을 위해 소수의 인권을 보호할 수 없다’는 발언을 한 적이 없다. 위원장은 ‘소수자의 인권도 보호해야 하지만, 다수자의 인권도 존중되어야 한다’고 발언하였다”고 했고, 안 위원장이 취임하자마자 첫 전원위원회에서 그동안 공개 심의한 안건을 비공개로 전환한 것에 대해서는 “(회의 공개 여부는)위원회 규정상 회의 참석 위원들의 과반수로 결정되도록 돼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충상 위원도 개인 의견서에서 “반인권적 언행을 한 적 없다”는 의견을 밝혔는데, 한겨레 확인 결과 사실과 다른 내용이 담겨 공방이 예상된다. 가령 “성소수자가 기저귀를 찬다”는 혐오 표현을 한 것에 대해 이 위원은 “본인의 표현이 동성애에 대한 객관적 진실을 언급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남규선 상임위원의 ‘해병대 훈련병의 두발 관련 인권침해’ 발언에 대한 반박 과정에서 나왔다고 주장했는데, 남규선 위원은 그런 의견을 낸 적이 없다고 했다. 또한 ‘반인권적 언행을 자제해달라는 요청이 있을 때마다, 자신의 반인권적 표현을 ‘소수의견이며 다수결의 폭력에서 보호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남규선 상임위원 등이 국가인권위원회 전원위원회 결정문과 상임위원회 결정문에 소수의견은 가급적 쓰지 말고 쓰더라도 가급적 짧게 쓰라고 한 것”에 반발한 것이라고 했으나, 남 위원은 역시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정식 절차를 거쳐 채용된 정책비서관 3명의 이념 성향을 문제 삼아 배정을 거부한 것에 대해 이충상 위원은 “국회 사무처가 국회의원들의 비서관들을 일괄 채용해서 국민의힘 의원과 민주당 의원에게 배정할 경우에, 최근까지 국민의힘 의원의 비서관을 지낸 사람을 민주당 의원의 비서관으로 배정하면 민주당 의원이 받을 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어 “한국의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정치적 이념이 상당히 다르고 사이가 좋지 않다”고 덧붙였다.

무리한 주장이 담긴 의견서 제출에 대해 인권위 내부에서도 우려가 이어진다. 한 인권위 관계자는 한겨레에 “인권옹호자 탄압, 인권위 업무 방기, 인권위 독립성 훼손 우려, 사회적 약자 보호 역행 등 간리가 (해명을) 요청한 내용에 대한 답변으로 매우 미흡하고 부적절하다”며 “인권위 업무 후퇴에 대해 원인을 분석하고 인권위 정상화 방안을 제시하지 않은 임기응변식의 답변은 인권위로서의 책임성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 고경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