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기후변화 등 현재의 위기 해결에 무능 드러내

인류 미래 위한 새로운 세계적 사회계약 수립해야

 

24일 부산 유엔기념공원에서 열린 제79주년 유엔의 날 기념식에서 유엔기가 펄럭이고 있다. 2024.10.24 [부산시 제공]
 

24일은 '국제연합(UN)의 날'이었다. 대한민국이 국제적인 승인을 받아 정부로 정식출범하는 근거를 제공해 줬으며, 한국 전쟁 때는 유엔군의 이름으로 16개 국이 참전했던 이 국제기구에 대한 대한민국의 애정은 각별하다. 대한민국은 1950년부터 1976년까지 '유엔의 날'을 법정공휴일로 지정해 기념했다. 지금도 법정기념일로 남아 있지만 24일 '유엔의 날'에 한국의 언론 어디에도 유엔을 언급하는 곳은 없었다. 이래경 다른백년 명예이사장은 이를 지적하며 “이젠 그만큼 존재감을 상실한 조직으로 전락했다”면서 “이런 배경에는 2차대전 이후 유엔 설립을 주도하며 뉴욕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재정의 상당을 지원해온 미국에게 의존당한 한계에 일차적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의도대로 안보리 상임이사국들 간 온전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유엔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지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었고 특히 소비에트 붕괴 이후 유엔의 위상은 미국 국무부의 한낱 일개 부처에 지나지 않았다.”

이 명예이사장은 “그럼에도 최근 안토니오 쿠테흐스 사무총장 취임 이후 미국의 방해와 협박에도 불구하고 유일한 세계기구로서 유엔을 개혁하고자 하는 노력과 시도가 벌어지고 있다”면서 “예컨대 서방이 주도하는 우크라 평화회의를 보이코트하고 러시아가 주도하는 카잔의 BRICS+ 회의에 참석한 쿠테흐스 총장의 최근 행보, 또한 서구가 주도하는 국제질서를 강화하고자 전범국인 일본과 독일을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추가하려는 미국의 집요한 요구를 거부하고 아프리카연합과 글로벌사우스 주요 국가들을 상임이사국으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을 주목할 만한 일로 들수 있다”고 말했다.

이달 초 이스라엘 정부가 구테흐스 사무총장을 자국에 대한 이란의 사악한 공격을 명확하게 비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피 인물’로 선언하고 이스라엘 입국을 금지했다고 밝힌 것도 이같은 상황을 보여주는 한 사례랄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인류가 직면한 중대한 현안들을 해결하기 위한 유엔 개혁의 방향을 제시하는 칼럼이 아랍권 최대 뉴스 네트워크인 알 자지라에 실려 주목을 받았었다.

헤바 알리(Heba Aly, 유엔헌장개혁연합 코디네이터) 브렌다 모퍄(Brenda Mofya, 옥스팜 인터내셔널 유엔 사무소장) 안드레아스 부멜(Andreas Bummel, 국경없는민주주의 이사) 3인이 공동으로 작성한 이 글은 "우리의 글로벌 거버넌스 기관인 유엔은 우크라이나, 가자, 수단에서 벌어지는 전쟁에서부터 기후 변화의 영향이 커지는 것까지, 현재의 위기를 해결하는 데 무능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고 비판하고, 새로운 '세계적 사회계약'으로서의 유엔헌장을 다시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 민들레 이명재 기자 >

다음은 칼럼의 전문이다.

유엔 헌장은 다시 쓰여져야 한다

<미래를 위한 유엔 정상회의의 혁명적이지 못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절실히 필요한 변화에 대한 희망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는 유엔헌장의 개혁을 통해 시작될 수 있다>

지난 일요일에 세계 정부들은 뉴욕에서 열린 유엔 미래 정상회의에서 글로벌 거버넌스를 변화시키기 위한 일련의 공약을 했다. 야심찬 이름의 정상회의는 "우리의 미래가 어때야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글로벌 합의를 만들어내는" "한 세대에 한 번 있는 기회"로 묘사되었다. 실제로 우리는 긴급하게 변화가 필요한 중요한 시점에 있다.

세계는 "역사적 위험의 순간"에 직면해 있다. 핵전쟁부터 지구적 비상사태까지, 지속적인 빈곤과 불평등 확대부터 인공지능의 무제약적 발전까지 인간의 존재를 위협하는 위험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는 순전히 개별 국가 수준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세계적인 과제이다. 전 세계 사람들은 좀 더 조율된 세계적 행동이 필요하고, 그래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의 글로벌 거버넌스 기관인 유엔은 우크라이나, 가자, 수단에서 벌어지는 전쟁에서부터 기후 변화의 영향이 커지는 것까지, 현재의 위기를 해결하는 데 무능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리고 점점 다극화되는 세상에서, 현재의 시스템, 특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구성이 불공평하고 대표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신흥 강대국들은 다자주의에 대한 신뢰를 잃고 있으며, 다자주의에서 완전히 철수할 위험을 무릅쓰고 있다. 이는 소위 강대국을 포함한 어느 나라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엔회원국들은 이번 미래정상회담이 제공한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지 못했다. 일부 회원국은 몇몇 방해꾼 때문에 실패했다고 주장한다.

정상회담에 앞서 몇 달 동안 정부 간 협상에서는 논쟁이 벌어졌고, 국제금융 구조개혁, 인권과 젠더 지원, 기후 변화 대응과 군축을 촉진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개혁하기 위해 제안된 내용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면서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2년 이상의 준비와 여러 차례의 개정, 그리고 수많은 외교적 노력 끝에 정상회담은 "미래를 위한 협정"이라는 합의안을 만들어냈다. 이 문서는 올바른 방향으로의 점진적인 단계를 밟는 형태이지만, 주로 원칙 및 기존 약속의 재확인 수준에서 이루어졌을 뿐 구체적인 행동은 아니다.

"협정"에서 이뤄진 적잖은 진전, 즉 아프리카의 역사적 불의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의 낮은 대표성을 바로잡을 필요성에 대한 인식, 미래 세대의 요구와 이익을 보호하겠다는 약속, 인공지능 거버넌스에 관한 최초의 국제 협정, IMF와 세계은행의 의사결정 거버넌스에서 개발도상국의 발언권 확대에 대한 지원 등은 많은 시민사회 단체와 일부 정부가 옹호했던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위험이 얼마나 큰지를 고려하면 '미래를 위한 협정'에 개괄한 내용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국제 질서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개혁을 제안한다. 이는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오늘날 국제 관계의 창립헌법 문서인 유엔 헌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미래 정상회담를 준비하면서 벌어진 양극화한 협상 가운데, 유엔헌장에 명시된 개괄적인 원칙은 협상 참여국들이 합의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확실히 말하자면, 몇몇 핵심 원칙은 강화할 필요가 있다. 그럼으로써 실제적용을 현대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른 규칙들도 함께 개정되어야 한다.

이 헌장은 1945년에 단지 51개 국에 의해 채택되었다. 아프리카 대부분과 아시아 일부가 여전히 식민지였기 때문이다. 헌장은 2차 세계대전의 승자의 권력을 굳건히 했다. 오늘날까지 독일, 일본 및 기타 '추축국' 세력을 언급할 때 '적국'이라는 어휘를 사용한다. '인공지능'은 물론 '기후 변화' 또는 '환경'이라는 단어는 텍스트에 나타나지 않는다.

유엔 헌장은 항상 살아있는 문서가 되고자 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헌장이 채택됐을 당시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은 "이 헌장은 … 시간이 지남에 따라 확장되고 개선될 것입니다. 아무도 그것이 지금 최종적이거나 완벽한 도구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고정된 틀에 부어지지 않았습니다. 변화하는 세계 상황은 재조정을 필요로 할 것입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세계적 과제에 조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새로운 '세계적 사회계약'을 만드는 것이다. 즉, 1945년 이후 국제적 힘의 균형이 변화했음을 인정하고, 국가 주권보다 세계적 공유재의 공동보호를 우선시하며, 근시안적인 국가이익보다 세계 국민과 미래 세대를 우선시하는 계약이다.

새로운 헌장을 만듦으로써 권력을 보다 공평한 방식으로 재분배하고 기후 변화와 인공지능과 같은 위협을 심각하게 다룰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집행과 책임을 강화하여 유엔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전염병, 기후 변화, 사이버 위협이 상호 연결된 시대, 사람들이 자국 국경 밖에서 내려지는 결정에 점점 더 많은 영향을 받는 요즈음이다. 새로운 헌장은 전 세계 사람들이 선출한 대표자들로 구성된 의회를 도입하여 그들에게 세계적인 문제가 논의되는 과정에 발언권을 줌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포용과 대표의 시대를 열 수 있다.

새로운 헌장이 어떤 모습일지에 대한 자세한 제안은 글로벌 거버넌스 포럼의 보고서에 제시되어 있다. 명확히 말하자면, 글로벌 거버넌스에 필요한 수많은 개선 사항은 헌장 개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보다 포괄적이고 장기적인 변화를 위한 노력과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고 우리는 믿는다.

훨씬 더 온건한 개혁을 두고도 미래 정상회담과 관련된 협상이 지난했던 점을 감안해, 어떤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의문을 제기한다. 이것이 과연 현실적인가?

절차적으로, 유엔헌장을 개혁하려는 우리의 제안은 헌장 규정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제109조는 유엔 총회에서 3분의 2 이상,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이사국 9개 국이 찬성하면 헌장을 재검토하기 위한 총회를 개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거부권을 갖는 것에 반대하는 많은 국가에 대한 양보로 헌장에 포함되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협정을 재검토하고 개정하려는 의도였다. 따라서 유엔 헌장 개혁은 애초 계획된 것이었다.

작년에, 다자주의를 좀더 효율화하기 위한 권고안을 마련하기 위한 고위자문위원회가 유엔 사무총장에 의해 임명됐다. 전 스웨덴 총리 스테판 뢰벤과 전 라이베리아 대통령 엘렌 존슨 씨리프가 공동 의장으로 활동했다. 위원회의 권고안에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개혁하기 위해 제109조를 활성화하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헌장을 재론하는 것을 두고 매우 타당한 우려가 있다. 일부 사람들은 오늘날처럼 양극화된 분위기에서 인권 등 이전에 합의된 개념에 대해 논쟁을 벌인다면  더 나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정부와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 국의 지지를 확보하지 않는 한 헌장에 대한 개혁은 채택될 수 없다. 그러한 합의가 이루어질 때까지 현재 헌장은 유지된다. 일종의 퇴보 방지용 안전판인 셈이다. 개정과정이 위험을 수반할지라도, 세계가 현재 나아가는 방향은 더 큰 위험을 안고 있다.

작금 정치적 분위기가 협력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위기의 시기에 돌파구가 생기기 마련이다. 국제연맹과 유엔은 모두 세계대전에서 태어났다. 우리가 더 나은 시스템을 마련하려면 3차 세계대전을 기다려야 할까?

현재 글로벌 거버넌스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우리는 그것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우리는 유엔 회원국들에게 지금 당장 그 변화를 위한 토대를 마련하기 시작하라고 호소한다. 유엔 헌장을 개혁하는 과정은 수 년이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 정상회담은 세계가 평화와 안보를 유지하고 집단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 협력을 이룩하려는 유엔의 목표를 진정으로 실현하는 데 필요한 급진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급진적인 변화를 위한 티핑포인트는 결국 올 것이다. 미래의 그 시점에 우리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