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단, 이태원 참사 2주기 추모미사 봉헌


"대통령, 희생자들을 이름 없는 사람 만들어"
"희생자 이름 부른 신부도 경찰 출두 명령서"

"진실 밝혀 유족들 위로받을 수 있도록 다짐"
희생자 아버지 사연 소개에 신자·시민들 눈물

"딸아이 소망대로 세례받고 결혼식 올리려"
"159명의 이름이 어둠 걷어내는 빛이 되길"
"많은 분 수고 덕분에 이 세상이 지옥 안 돼"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28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김인국 신부(가운데) 주례로 10·29 이태원 참사 2주기 추모미사를 봉헌했다. 2024.10.28. 사진 이호 작가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하 사제단)이 10·29 이태원 참사 2주기를 하루 앞둔 28일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유가족을 위로했다. 또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시민들의 연대를 당부했다.

사제단은 이날 오후 7시부터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김인국 신부(사제단 50주년 준비위원장) 주례로 '10·29 이태원 참사 2주기 추모미사'를 봉헌했다. 미사에는 이태원 유가족과 신부, 수녀, 신자, 일반 시민 등 400여 명이 참석했다.

추모미사가 시작되기 전, 참석자들은 이태원 참사 당시 첫 번째 신고가 있었던 오후 6시 34분부터 경건한 분위기 속에 묵주기도를 올리며, 사제단 신부들의 입당을 기다렸다.

김 신부는 제단에 올라 "벌써 두 번째 맞이하는 '그날'이다. 하루하루 (희생자들의) 부모님이 흘리실 피눈물을 생각하며 2주기 추모 미사를 봉헌한다"면서 "정의가 기초된 평화 위에 참사의 진상이 드러나고 희생자 억울함이 밝혀지며, 유족들의 상처도 치유받게 하길 기원한다"고 기도를 올렸다.

강론을 맡은 최재철 신부는 "대통령 부부는 영정도 위패도 없는 합동 분향소 꽃무더기에 여러 차례 와서 머리를 숙였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라는 글씨만 써놓고 희생자들을 이름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다"며 "언론에서 이름을 부르지 못하도록 사자 명예훼손이니 뭐니하며 언론사를 압수수색했다"고 말했다.

 

최재철 신부가 28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봉헌된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10·29 이태원 참사 2주기 추모미사에서 강론을 하고 있다. 2024.10.28. 사진 이호 작가
 

이어 "한국기자협회의 재난보도준칙의 경우 피해자와 그 가족 주변 사람들의 상세한 신상 공개는 인격권이나 초상권 생활 침해 등의 우려가 있으므로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피해자 이름 공개를 금지하거나 사전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다"며 "반면, 추모미사에서 희생자의 이름을 부른 신부는 경찰에 출두해 조사받으라는 명령서를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시 법무부 장관인 한동훈은 유족과 피해자 의사에 반하는 명단 공개는 법적으로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국민적 비극을 이용하는 것이 개탄스럽다며 유족의 슬픔을 헤아리는 것처럼 보였다"면서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유족을 만나 위로하거나 사과하거나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또 "법무부 장관만이 아니라 경찰서장, 구청장, 행안부 장관, 총리, 대통령 등 책임을 지는 이들 중 어느 하나 지난 2년 동안 희생자 가족 앞에 나와 머리 숙여 사죄하거나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며 손을 잡아주는 이가 없었다"면서 "유족과 같은 자리에 '1분'도 같이 앉아 있지 않았다"고 개탄했다.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28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10·29 이태원 참사 2주기 추모미사를 봉헌했다. 입당하고 있는 수녀들의 모습. 2024.10.28. 사진 이호 작가
 

최 신부는 "이 정권의 가장 큰 문제는 잘못을 인정할 줄도 모르고 오히려 큰소리를 친다는 것"이라며 "독재 정권하에서는 늘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피해는 은폐·축소·왜곡하고, 피해자와 유족을 모욕하고 회유하고 겁박해서 피해자가 자신을 드러낼 수 없게 만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 정권의 무도한 행태를 보며 정권의 몰락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낀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끝끝내 감추려고 했던 박근혜가 탄핵 당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세월호가 인양됐다"며 "무능하고 부패하고 무책임한 정권이 끝장나는 날이 바로 진실이 밝혀지는 날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 신부는 "진실이 밝혀진 세상이 오면, 축제 때마다 안전한 거리를 환하게 피어오르는 젊음이 가득 메우기를 소망한다"며 "그날을 조금이라도 앞당길 수 있다면, 진실을 찾아 하소연할 곳을 찾아 눈물로 거리를 헤매던 유족들의 슬픔도 조금이나마 위로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날을 우리 함께 연대한 손으로 만들어내길 다짐하고 또 다짐하고 기도한다"고 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인 고 이상은 씨 아버지 이성환 씨가 28일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10·29 이태원 참사 2주기 추모미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4.10.28. 사진 이호 작가
 

이태원 참사 희생자인 고 이상은 씨 아버지 이성환 씨는 유가족을 대표해 인사의 말씀을 전했다.

이 씨는 "딸아이가 명동성당에서 결혼을 하고 싶다는 계획을 갖고 세례를 받기 위해 (천주교) 교리 수업을 받다가 하늘의 별이 되어 하느님 곁으로 갔다"며 "저희 부부는 내년 3월에 같이 세례를 받고 명동 성당에서 비록 상은이는 없지만, 상은이 소망대로 엄마 아빠가 대신 결혼식을 할려고 한다"고 전했다. 상은 씨 가족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은 신자들과 시민들은 눈물을 흘렸다.

이 씨는 "2년여 간의 고단한 공부 끝에 미국 공인회계사를 합격하고 숨 한 번 쉬고자 했던 친구와의 나들이가 마지막 소풍이 되고 말았다. 용산경찰서에서 전화를 받았다. 이태원 골목 참사 현장에서 핸드폰을 주운 것이라고 했다. 그때부터 우리에겐 지옥이 시작됐다"며 "하느님에게 아무 일도 없게 해달라고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그날 이태원 골목에는 국가도 하느님도 어느 신도 없었다"고 토로했다.

이 씨는 "부활도 구원도 영원한 삶이라고 하는 하느님 말씀을 아직은 잘 모르겠다. 악마의 심장에 죽창을 꽂고자 하는 분노가, 악마를 심판하지 않는 원망이 더 크지만, 아직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부족해서일 것"이라며 "이 슬픔, 아픔을 극복하고 살아가라 하지만, 저는 알고 있다.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 견디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이라고 말했다.

 

28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봉헌된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10·29 이태원 참사 2주기 추모미사에서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기도를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4.10.28. 사진 이호 작가
28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봉헌된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10·29 이태원 참사 2주기 추모미사에서 한 수녀가 유가족의 사연을 듣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4.10.28. 사진 이호 작가
 

그는 그러면서 "사람은 누구나 한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십자가가 있다고 한다. 십자가를 어깨에 짊어지고 가면 고통이지만 가슴에 안고 가면 사랑이라고 한다"며 "하느님의 사랑으로 살아있는 시간,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조금은 더 나은 세상, 생명이 존중받는 안전한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선한 영향력으로 살아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 씨는 "대통령 하나 탄핵하고 바꾼다고 세상이 변화하지 않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다. 기억하지 않고 외면하려던 그 가벼움으로 잘못된 선택을 반복하고 있는 우리 스스로를 탄핵하고 심판하고 참회해야 한다"며 "막을 수 있었고, 막아야만 했던 10월 29일 그날의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통한 정의의 심판이 그 시작이 되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끝으로 "159명의 이름이 아픔으로만 남지 않고 어둠을 걷어내는 빛과 희망의 이름으로 남기를 기도한다. 159명의 별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살아남아 있는 이 빚짐을 우리 모두 기억하고 함께 하기를 기도한다"면서 "모든 분들의 소중한 일상이 안녕하시기를 기도한다. 모든 분들의 평화를 빈다"고 덧붙였다.

 

28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봉헌된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10·29 이태원 참사 2주기 추모미사에서 김영식 신부가 눈물을 흘리는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2024.10.28. 사진 이호 작가
28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봉헌된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10·29 이태원 참사 2주기 추모미사에서 김영식 신부가 눈물을 흘리는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2024.10.28. 사진 이호 작가
 

김 신부는 이태원 참사 이후 삶이 지옥이 됐다고 말하는 유가족들을 위해 "지옥은 하느님이 사람들을 버리는 장소가 아니라, 사람들이 하느님을 버린 곳"이라면서 "이 세상이 지옥이 되지 않도록 빛이 되어 주시는 여러분과 많은 분들의 수고 덕분에 우리는 희망을 안고 돌아간다"고 위로와 연대의 말을 함께 전했다.

이날 추모 미사에서는 하춘수 신부가 기도를 하며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이름을 일일이 불렀다. 신상옥 씨는 가수 김민기의 <아름다운 사람> 노래로, 신광섭 씨는 <플라이 미 투 더 문(Fly me to the moon)> 팬플룻 연주로 유가족과 신자, 시민들을 위로했다.     < 민들레 김성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