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만에 "골프 연습 재개" 윤석열과 대조
트럼프 당선에도 군 수뇌부 테헤란에 파견
사우디-이란 해군, 오만만서 합동군사훈련
이란보다 네타냐후 극우 정권이 더 위험?
아랍‧중동 합동 정상회의…이스라엘 견제
사우디 비상 빈살만 계획, 중동평화 필수
사우디아라비아의 동향이 심상치 않다.
사우디의 파야드 알루와일리 총참모장이 10일(현지시간) 고위급 군 대표단을 이끌고 이란 테헤란을 방문해 모하마드 바게리 참모총장과 회담을 열었다. 같은 날 사우디 실세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는 이란의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했다.
트럼프 당선에도 군 수뇌부 테헤란에 파견
다들 트럼프 눈치 볼 때 이란과 '군사 협력'
뭣보다 양국 간의 정상 통화와 군 수뇌 회담이 고강도의 이란 압박 정책을 공약한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백악관 복귀가 확정된 직후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다. 미국의 서방 동맹국을 포함해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트럼프의 귀환에 잔뜩 긴장한 채 눈치를 보는 시점에 사우디가 트럼프를 충분히 자극할 만한 행동을 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집권 1기 때인 2018년 5월 트럼프는 미국과 서방 동맹국이 맺은 이란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를 일방적으로 파기한 뒤 이란에 강력한 경제제재를 가했고, 2020년엔 '아브라함 협정'을 통해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모로코, 수단 등 아랍 국가와 이스라엘의 수교를 끌어내면서 이란 고립에 주력했다. 이런 대이란 강성 기조는 2기엔 더 강화될 전망이다.
트럼프 1기 때 국무부 대이란 특별대표를 지낸 브라이언 훅은 최근 CNN 인터뷰에서 집권 2기의 이란 정책 방향을 설명하면서 △ 이란 정권 전복엔 관심 없다 △ 이란의 외교 고립과 경제 악화 추진 △ 하마스‧헤즈볼라‧후티 등 친이란 대리 세력에 대한 이란의 자금‧무기 지원 차단에 주력할 것임을 밝혔다. 훅은 트럼프 인수위에서 국무부를 맡을 가능성이 큰 인물이다.
또한 트럼프가 내년 1월 20일 대통령에 취임하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해결을 위한 "세기의 합의" 평화 구상이 다시 테이블에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요르단강 서안의 유대인 정착촌에 대한 이스라엘의 주권을 인정하고 팔레스타인은 동예루살렘에 국가를 건설하는 내용이다. 철저히 이스라엘만을 생각한 것이어서 당시 팔레스타인의 강한 반발을 샀다.
트럼프, 당선 이후 네타냐후와 세 번 통화
10일에도 가자 49명, 레바논 38명 사망
트럼프가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얼마나 끔찍하게 여기는지는 당선 확정된 6일 오전 세계 정상 중 맨 먼저 통화하고 일주일도 안 돼 세 차례나 통화한 데서 확인된다. 로이터에 따르면, 네타냐후는 10일 "우리는 이란의 위협과 그에 따른 위험에 견해가 완전히 일치했다. 평화와 평화의 확장, 그 밖의 분야에서 이스라엘 앞에 놓인 큰 기회도 봤다"고 주장했다.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가자 전쟁에 대한 트럼프의 스탠스는 두 가지다. 하나는 이스라엘이 승리하는 방식의 조기 종식이고, 다른 하나는 취임 전까지 전쟁이 종료돼 있기를 희망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당선 이후에도 연일 가자와 레바논, 그리고 시리아 등을 폭격하며 대량 살육전을 진두지휘하는 네타냐후의 행각을 감안하면 취임 때까지 70일간 그에게 '학살 면허'를 준 거나 다름이 없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일요일인 10일에만도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가자에선 최소 49명, 레바논에선 38명이 숨졌다. 작년 10‧7 사태 이후 가자에선 최소 4만3600명이 학살되고, 레바논에서도 3200명이 죽었다. 최악의 경우 이 기간에 네타냐후 극우 정권이 이란으로 전선을 넓혀 미국의 참전을 유도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군사력 우위를 앞세워 차제에 숙적 이란까지 제압해 '중동의 패권국'이 되고자 모험에 나설 수 있다. 5차 중동전쟁으로 이어지는 시나리오다.
빈살만, 옹색한 처지 이란에 '연대의 손'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 없이 수교 없다"
트럼프의 당선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옹색한 처지의 '온건 성향' 이란 페제시키안 정권에 사우디의 빈살만 왕세자가 '연대의 손'을 내밀고 나선 것이다. 사우디 군 수뇌부가 사상 처음으로 직접 이란 수도 테헤란을 찾은 것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작년 3월 10일 중국의 중재로 오랜 적대 관계를 끝내고 국교 정상화에 합의했던 사우디와 이란의 화해와 우호‧협력의 흐름이 군사 분야 협력으로까지 확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다.
최근 사우디의 행보는 조 바이든 미 행정부와 이스라엘 네타냐후 정권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퇴임 전 양자 안보협정을 맺자는 바이든 정부의 제안과 이란에 맞서 연대하자는 네타냐후 정권의 구애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모양새다.
한때 바이든 정부가 상호방위조약 체결과 민수용 원전 기술 제공 및 우라늄 농축 허용 등의 대가로 이스라엘과의 수교를 권유해 최종 타결 직전까지 갔지만, 10‧7 사태가 터지고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가자 제노사이드(집단학살)가 이어지자 사실상 무산됐다. 가자 침공 중단과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 없이 이스라엘과의 수교는 없다는 게 현재 사우디의 입장이다. 수니파의 수장으로 중동에서 상당한 지정학적 위상을 지닌 사우디의 향배는 매우 중요한 변수다.
사우디, 이스라엘 레바논 침공 후 견제 행보
이란과 GCC 회의…아랍‧중동 정상회의 주최
네타냐후가 10월 1일 18년 만에 레바논을 지상 침공한 이후 사우디의 움직임이 더 활발해졌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10월 4일 사우디는 카타르 도하에서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쿠웨이트, 오만, 카타르 등 다른 걸프협력회의(GCC) 국가와 이란의 외무장관들이 참석한 다자회의를 열고 중동 안보 문제를 논의했다.
GCC가 이란과 이런 형식의 회의를 연 것은 당시가 처음이었다. 그 뒤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장관은 9일 사우디를 방문해 빈살만 왕세자를 예방했다. 이에 NYT는 '이스라엘 제외, 중동 재편 진행 중'이란 10월 20일 자 기사에서 사우디는 이스라엘과는 점점 더 거리를 두고 있다면서 전통적 앙숙인 사우디와 이란의 관계에도 "온기가 돌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를 두고 NYT는 △ 전쟁 장기화로 중동을 위기로 몰아넣는 이스라엘에 대한 불만 △ 이스라엘의 대학살에 대한 사우디 국내 여론 악화 △ 네타냐후를 통제 못하는 미국의 '한계' 등을 그 배경으로 들었다. 특히 국민 평균 연령 29세(2022년 기준)인 사우디에서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가자의 끔찍한 참상을 보고 한 때 긍정적이었던 이스라엘과의 수교에 대한 입장을 바꾼 사람이 많고, 빈살만은 이런 여론을 민감하게 여기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사우디-이란 해군, 오만만서 합동군사훈련
이란 "사우디, 홍해서 합동군사훈련 제안"
그뿐이 아니었다. 사우디와 이란 해군이 최초로 합동군사훈련까지 벌였다. 이란 반관영 ISNA 통신은 10월 23일 샤흐람 이라니 이란 해군 사령관의 말을 인용해 사우디가 이란에 홍해 합동군사훈련을 제안했다고 전했고, 사우디의 투르키 알말키 국방부 대변인은 AFP에 "사우디와 이란 해군은 최근 오만만에서 다른 나라들과 함께 합동 해군 훈련을 마쳤다"고 확인했다.
사흘 후인 26일에 사우디 정부는 미사일과 드론 기지 등 이란의 군사시설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과 관련한 성명에서 "이란을 군사적 표적으로 삼은 행위는 이란의 주권과 국제법을 침해한 것으로, 이를 규탄하고 비판한다"며 "중동의 계속된 긴장 고조, 중동 내 국가들과 국민의 안정과 안보를 위협하는 분쟁의 확대를 단호히 거부한다는 점을 재확인한다"고 강조했다고 관영통신 SPA가 전했다.
이런 흐름의 연장선에서 사우디 군 수뇌부의 10일 테헤란 방문과 페제시키안-빈살만 통화가 이뤄진 것이다. 또한 사우디의 빈살만 왕세자는 11일 리야드에서 아랍‧이슬람 합동 정상회의를 주최하고 팔레스타인 점령지와 레바논에 대한 이스라엘의 침공 문제를 논의했다.
이란보다 네타냐후 극우 정권 더 위험 판단?
사우디 비상 꿈꾸는 빈살만에 중동평화 필수
빈살만의 이란과의 적극적 연대 행보는 몇 가지로 풀이해 볼 수 있다.
우선 사우디 왕정이 '이슬람 혁명'을 수출하면서 자신들을 위협해왔던 이란보다 지금은 제동 장치 없이 폭주하는 이스라엘 극우 유대 정권이 자국과 아랍‧중동권에 훨씬 더 해롭고 위험하다고 판단했을 공산이 크다.
미국의 뒷배를 믿고 끝없는 전쟁을 통해 가자와 레바논에서 살육전을 이어가고 시리아와 이란까지 전선을 넓히면서 중동의 세력 판도마저 바꾸려는 이스라엘의 폭주를 저지하고 일정하게 균형을 잡는 게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뭣보다 '비전 2030' 아래 사우디의 비상을 꿈꾸며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네옴시티 건설과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개최의 성공 여부가 네옴시키 현장과 가까운 가자 지구는 물론이고 중동 전역의 평화와 안정을 전제로 한다는 점도 빈살만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 듯하다.
끝으로 트럼프에게 보내는 메시지의 성격도 있다고 봐야 한다. 친이스라엘, 반이란, 팔레스타인 외면 일변도의 중동 정책으론 아랍권 민중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어 중동의 평화와 안정은커녕 총체적 파국으로 치닫게 할 우려가 큰 만큼 이제라도 트럼프가 정책 기조를 바꿔 폭주하는 네타냐후 극우 유대 정권을 일정하게 제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추후 트럼프 행정부와 본격적인 '거래'에 대비해 '몸값'을 올리려는 계산도 했음직하다.
'골프광' 트럼프와의 향후 만남을 위해 8년 만에 최근 골프 연습을 다시 시작했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행보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 민들레 이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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