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떠나면 트랙터만 남아, 어떻게 가나요"

'트랙터 시위' 밤샘 대치…"차 빼라" "방 빼라"

남태령 고개 경찰차벽 28시간여 만에 철수해
오후 4시 45분쯤 사당역 방면으로 행진 시작
트랙터, 한남동 관저까지 진격…"국민의 승리"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봉준 투쟁단이 윤석열 대통령 구속 등을 촉구하며 트랙터 상경 시위에 나섰다가 서울 서초구 남태령에서 28시간 이상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은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남태령 인근에서 시민들이 경찰을 향해 "차 빼라" 등의 구호를 외치는 모습. 2024.12.22. 이호 작가
 

"경찰이 앞뒤로 차도를 막고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데, 도대체 바라는 바를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혼자니까 걸어 나와서 집에 갈 수 있지만, 이 큰 트랙터는 통과시켜주지 않을 텐데 그러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시민들이 다 가 버리고 트랙터만 남는 게 너무 잔인한 장면인 것 같아요. 그래서 못 가겠어요. 떠날 수 없습니다."

남태령 고개에서 경찰 차벽에 가로막힌 농민들의 '트랙터 행진'을 응원하기 위해 22일 오전 서울지하철 4호선 남태령역 인근 시위 현장을 찾은 직장인 정 아무개(37) 씨가 전한 말이다. 정 씨는 농민과 시민들이 영하의 날씨에 밤샘 대치를 이어간다는 소식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접하고, 이른 새벽부터 서울 도봉구에서 지하철을 타고 남태령을 찾았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에 따르면 '전봉준 투쟁단' 트랙터 30여 대와 화물차 50여 대는 전날 낮 12시쯤 과천대로를 통해 서울에 진입하려다 남태령 고개 인근에서 경찰에 저지된 뒤, 그 자리에서 28시간 넘게 대치를 이어갔다. 밤샘 대치 소식이 SNS에 퍼지면서 이날 오후 주최 쪽 추산 3만 명의 시민들이 응원봉을 들고 모였다. 전날 오후 서울 시내 집회에 참가 뒤, 귀가하지 않고 이날 오후까지 남태령 고개를 지키는 시민도 있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봉준 투쟁단이 윤석열 대통령 구속 등을 촉구하며 트랙터 상경 시위에 나섰다가 서울 서초구 남태령에서 28시간 이상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은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남태령 인근에 세워진 트랙터 모습. 2024.12.22. 이호 작가
 

시민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 '광야에서' 등 민중가요와 함께, 윤도현 밴드의 '나는 나비',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로제의 '아파트', 윤수일의 '아파트' 등 노래를 따부르며 "(윤석열은) 방 빼라!" "(경찰은) 차 빼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오후 1시 40분쯤 남태령 고개로 시위를 지원하기 위해 진보당의 방송 차량이 진입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막기도 했다. 시민들은 "길을 터라" "길을 터라"라고 외치면서 경찰과 직접 몸싸움을 해 방송 차량의 진로를 열었다.

전농과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은 오후 2시부터 이곳 남태령 고개에서 '내란수괴 윤석열 체포·구속, 농민 행진 보장 촉구 시민대회'를 열고, 윤석열 대통령 즉각 파면 및 체포, 특검을 요구했다. 시민들은 "내란수괴 윤석열을 즉각 파면하라!" "수사거부 윤석열을 즉각 체포하라!" "행정파괴 내란공범 국민의힘 해체하라!" "거부권은 내란동조다 내란특검 수용하라!" "윤석열을 몰아내고 국민주권 실현하자!"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갑성 전봉준투쟁단 서군 대장은 "윤석열이 하나 없어진다고 될 문제가 아니다. 일제 앞잡이 하던 놈들이 지금도 사회 곳곳에 지도층에 앉아서 떵떵거리고, 박정희·전두환 유신잔당들이 지금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우리 민중들을 수탈하고 억압하고 있다"며 "해방 이후 지난 80년 동안 이 사회의 썩은 적폐들을 이번에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장은 "이때 (개혁)하지 못 하면 또 우리는 앞으로 억눌리고 수탈하는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며 "그래서 전라도, 경상도에서 전국을 휩쓸며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시민들은 큰 환호로 응원의 뜻을 전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봉준 투쟁단이 윤석열 대통령 구속 등을 촉구하며 트랙터 상경 시위에 나섰다가 서울 서초구 남태령에서 28시간 이상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은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남태령 인근에서 시민들이 경찰을 향해 "차 빼라" 등의 구호를 외치는 모습. 2024.12.22. 이호 작가
 

신지연 전국여성농민회 충남연합 사무처장은 "충남 부여에서 유기농 채소 농사와 토종쌀, 토종밀 농사 짓는 여성 농민이고, 전봉준 투쟁단이고, 비티에스(BTS) 팬 '아미'(Army)"라며 자신의 '정체성'을 소개했다. 신 처장은 "양곡관리법은 농민이 내가 쌀 농사 지은 것에 대해서 공정한 가격을 정할 수 있는 권리"라며 "생산할 때 1000원이 들었으면 1000원을 매기고 2000원 들었으면 2000원 매겨야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시민들에게 양곡관리법에 대해 SNS에 대해 많이 알려달라고 호소했다. 시민들도 큰 박수로 호응했다.

하원오 전농 의장은 시민들을 향해 "진짜 고맙고 감사하다. 지난밤 밤을 새고, 또 오늘 이렇게 많은 분들이 농민들의 트랙터 대행진에 동참해주시고, 윤석열을 탄핵시키고 파면시키는 데 함께 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하다"며 거듭 감사 인사를 전했다. 하 의장은 그러면서 "전농은 트랙터 10여 대를 몰고 지금 우리는 대통령 관저로 달려갈 것"이라며 "우리 모두 이곳을 출발해 사당역까지 트랙터와 함께 행진을 할 것"이라고 했다.

시민들은 "나갈 때가 됐는데" "경찰은 차 빼" "윤석열 파면" 등의 구호를 외치며 경찰을 향해 차벽을 해체하라고 촉구했다. 경찰은 시민들과 밤새 대치 끝에 약 28시간 만에 차벽을 철수시키고 행로를 열었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 야당 의원들이 경찰과 협상을 벌이면서 대치 국면 해소에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트랙터와 시민들은 오후 4시 45분 사당역 방면을 향해 본격적인 행진을 시작했다. 행진로가 열리자 시민들은 "윤석열 잡으러 가자!"고 외쳤다.

상경한 30여 대 트랙터 중 10대는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방면으로 향했고, 전농과 비상행동 등이 한남 관저 인근 한강진역에서 주최한 집회에 합류했다. 오후 6시 45분쯤 트랙터가 최종 목적지인 관저 앞에 도착하자, 집회 참가자들은 "윤석열을 구속하라"고 구호를 외쳤다. 농민들도 "국민이 이겼다" "농민이 이겼다"고 환호했다. 관저 인근에 모인 주최 쪽 추산 1만 명의 시민들은 윤석열 즉각 퇴진과 사회 대개혁 등을 요구하며 오후 7시 넘어 행진없이 해산했다.

연단에 오른 이춘선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원장은 "윤석열 발끝까지 트랙터를 갖고 왔다"며 "밤샘 투쟁이 있었기에 승리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 민들레 김성진 기자 >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봉준 투쟁단이 윤석열 대통령 구속 등을 촉구하며 트랙터 상경 시위에 나섰다가 서울 서초구 남태령에서 28시간 이상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은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남태령 인근에서 시민들이 경찰을 향해 "차 빼라" 등의 구호를 외치는 모습. 2024.12.22. 이호 작가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봉준 투쟁단이 윤석열 대통령 구속 등을 촉구하며 트랙터 상경 시위에 나섰다가 서울 서초구 남태령에서 28시간 이상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은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남태령 인근에서 시민들이 경찰을 향해 "차 빼라" 등의 구호를 외치는 모습. 2024.12.22. 이호 작가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봉준 투쟁단이 윤석열 대통령 구속 등을 촉구하며 트랙터 상경 시위에 나섰다가 서울 서초구 남태령에서 28시간 이상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은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남태령 인근에 세워진 트랙터의 모습. 2024.12.22. 이호 작가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봉준 투쟁단이 윤석열 대통령 구속 등을 촉구하며 트랙터 상경 시위에 나섰다가 서울 서초구 남태령에서 28시간 이상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은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남태령 인근에서 한 시민이 경찰을 향해 "차 빼라"고 외치는 모습. 2024.12.22. 이호 작가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봉준 투쟁단이 윤석열 대통령 구속 등을 촉구하며 트랙터 상경 시위에 나섰다가 서울 서초구 남태령에서 28시간 이상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은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남태령 인근에서 시민들이 경찰을 향해 "차 빼라" 등의 구호를 외치는 모습. 2024.12.22. 이호 작가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남태령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체포·구속 농민 행진 보장 촉구 시민대회'에서 트랙터와 시민들이 경찰 버스를 지나 한남동 대통령 관저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2024.12.22. 연합뉴스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남태령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체포·구속 농민 행진 보장 촉구 시민대회'에서 트랙터들이 한남동 대통령 관저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2024.12.22. 연합뉴스
22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강진역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체포·구속 농민 행진 보장 촉구 시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트랙터를 보며 환호하고 있다. 2024.12.22. 연합뉴스

22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강진역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체포·구속 농민 행진 보장 촉구 시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트랙터를 보며 환호하고 있다. 2024.12.22. 연합

 

남태령의 젊은이들 덕분에 이제 농민은 외롭지 않다

8년 전 박근혜 때와 너무 다른 농민 시위 광경

                                                                             김혜형 전업농부·작가

한밤중에 문득 깨고 보니 2시 40분. 계속 자려고 뒤척였지만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아 어둠 속에서 휴대폰을 더듬었다. 유튜브를 여니 실시간 영상이 뜬다. 아니, 오밤중에 웬 라이브? 열어보니 농민들(전봉준투쟁단)의 트랙터가 남태령 고개에 멈춰 있고 그 앞을 경찰차가 가로막고 있는데, 세상에… 놀랍게도 형형색색 응원봉을 든 젊은이들이 현장에 가득하다. 막차 끊긴 지 오래인 이 시간에, 국민 대다수가 깊이 잠든 한밤중에, 극심한 추위를 견디며 젊은 친구들이 길바닥에서 농민들과 함께 싸우고 있다니. 울컥, 목이 멘다.

8년 전 박근혜 때와 너무 다른 2024년 남태령 농민 시위 광경

2016년 박근혜 탄핵 때도 농민들은 트랙터를 몰고 서울로 올라갔었다. 딱딱한 아스팔트에 트랙터 바퀴가 닳고 기계가 망가지는 걸 감수하면서, 몇 날 며칠을 길에서 먹고 자며, 시속 20~30km로 기다시피 올라갔지만 양재IC에서 가로막혔다. 피로에 지친 농민들을 기다린 건 곤봉과 발길질, 그리고 체포였다. 당시 경찰의 폭행으로 3명이 다치고 28명이 연행되었다. 경찰에 맞아 머리가 깨져 피 흘리던 농민의 모습이 기억에 생생하다. 광화문의 촛불 시민에겐 휘두르지 못하는 진압봉을 상경한 농민의 머리 위로 망설임 없이 내리치는 공권력을 보며, 농민은 이 나라의 하층민이구나, 분노했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봉준 투쟁단이 윤석열 대통령 구속 등을 촉구하며 트랙터 상경 시위에 나섰다가 20시간 이상 대치를 이어간 22일 서울 서초구 남태령 인근에서 트랙터들이 멈춰 서 있다. 2024.12.22. 연합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봉준 투쟁단이 윤석열 대통령 구속 등을 촉구하며 트랙터 상경 시위에 나섰다가 서울 서초구 남태령에서 20시간 이상 대치를 이어간 22일 서울 서초구 남태령 인근에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4.12.22. 연합
 

8년 전과 어젯밤은 달랐다. 길을 틀어막고 체포, 연행하는 공권력의 태도는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하지만 가로막힌 농민들에게 막차를 타고 달려간 시민들은 8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이 많아졌고, 젊어졌고, 강인해졌다. 다수의 시민이 실시간으로 지켜보니 경찰도 전처럼 무차별 폭력을 쓰지 못했다. 8년 전 농민들은 외로웠으나, 어젯밤 농민들은 시민들의 환대와 응원으로 추위와 고단함을 잊었을 것이다. 저 유연하고 밝고 씩씩한 젊은이들을 좀비 윤석열과 부패한 국힘당 적폐들이 무슨 수로 이길 것인가. 그놈들은 절대 못 이긴다. 승패는 결정났다.

이젠 너희 젊은이들에게 감사를 돌려준다

젊은이들은 과거 계엄에 맞서 피 흘리며 민주주의를 지켜낸 앞세대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이제 그 감사를 저 젊은 친구들에게 돌려주고 싶다. 정말 고맙다. 그대들… 우리 세대가 다음 세대로 교체되는 것이 기껍고 반갑다. 지난 시대와 함께 늙어 소멸하는 것이 조금도 슬프거나 억울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