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문화제' '사회대개혁 시민대행진' 등 열려
"윤석열 즉각 체포" "헌재 윤석열 파면" 등 촉구
학교 밖 청소년, 성소수자, 여성농민 등 한자리
서로 박수로 응원하며 일상의 '회복' 위해 연대
"덕후가 덕질만 걱정하면 되는 나라를 만들자"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컬, 노래 가사 등 부르며
"세상이 반대로 가더라도 우린 똑바로 걸어가"
점점 뚜렷해지는 윤석열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수괴) 혐의에도 탄핵 절차를 밟기 위한 최소한인 헌법재판관 임명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 분노한 50만 명의 시민들이 거리에 나왔다. 주말 서울 도심을 가득 메운 시민들은 "수사거부 윤석열을 즉각 체포하라" "헌재는 주권자의 명령대로 윤석열을 파면하라" "헌정파괴 내란동조 국민의힘은 해체하라"고 외쳤다.
"세상이 반대로 가더라도 우린 똑바로 걸어갈게요"
28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 안국역 1번 출구 앞에서는 '촛불승리전환행동(이하 촛불행동)'이 개최한 '121차 촛불문화제 전국집중촛불' 집회가 열렸다. 주최 쪽 추산 5만 명의 시민들과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 등 야당 정치인,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 등은 영하권의 추운 날씨에도 거리에 앉아 내란 사태에 대한 규탄과 일상의 회복을 이야기했다. 또 내란 수괴인 윤 대통령을 탄핵 소추하고, 공권력에 맞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서로를 향해 박수로 응원하고 위로했다.
이원종 배우는 159명 희생자의 진상 규명을 위해 거리에 나온 이태원 유가족들과 채 해병 죽음의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해병대 전우들, 남태령 고개에서 농민들과 새벽을 지켜낸 촛불 시민들, 정치검찰에 의해 차가운 감옥에 갇힌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 윤석열 정권과 정면에서 싸우고 있는 민주당 당원과 의원들에 대해 박수를 부탁했다. 시민들은 서로에게 박수를 보냈다. 이 배우는 시민들에게 "몸을 아끼고 건강하게 웃으며 버텨내자"면서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라며, 큰절을 올렸다.
아울러 이 배우는 "일제 부역했던 자들을 우리는 단 1명도 처벌하지 못했다. 이제는 안 된다. 프랑스와 독일은 아직도 나치 전범을 찾아 처벌하고 있다"면서 "윤석열을 구속하고 김건희를 구속하는 것이 끝이 아니다. 그에게 동조했던 자들을 우리가 살아있는 한 끝까지 찾아 처벌하자"고 했다. 그는 "제가 이 땅에 발 붙이는 한 그들을 용서치 않을 것"이라고 외쳤다. 시민들도 큰 박수로 호응했다.
시민들은 각자의 소중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촛불과 응원봉을 들었다고 말했다. 용산구에서 온 중학생 이수빈 양은 연단에 올라 "저는 몇 달 전만해도 정치에 관심 없고 정치와 법을 배우는 사회 시간에 딴짓하고 조는 학생이었다"며 "하지만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하고 그 후 행동하는 걸 보니 분노가 치밀어 이 자리에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이 양은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일해야 하는 대통령이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일했다.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고 말을 바꿔가며 국민을 기만하고 조롱하고 있다"며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세상이 반대로 가더라도 우린 절대 길 잃지 않고 똑바로 걸어갈게요"라며, 자신이 좋아하는 노랫말을 전했다.
이 양은 "이 가사대로 대한민국 국민은 절대 길을 잃지 않고 옳은 길을 향해 똑바로 걸어갈 것"이라며 "힘든 일이 있어도 똑바로 길을 걸어가자"고 했다. "'덕후'(특정 분야에 전문성을 쌓는 매니아라는 뜻의 신조어)에게 '덕질'(덕후짓)만 걱정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달라"며 일상 회복을 염원했다.
한국을 지켜보고 있는 '세계 시민'을 향한 외침도 이어졌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온 고등학생 안영우 군은 한국 사회의 대변화에 대해 영어로 이야기했다. 한국어 통역은 함께 연단에 오른 그의 어머니 도움을 받았다. 안 군은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토대를 공격했을 때 이곳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 모든 한국인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안 군은 이어 "고등학교 2학년이기에 제일 중요하고 바쁜 시기여서 한국에 오는 게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그러나 계엄령 소식을 들었을 때, 이 싸움에 반드시 참여하고 여러분과 함께 하기 위해 한국에 반드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면서 "며칠 전 크리스마스날 어머니와 시위에 참여했을 때 시민들의 의지와 열정, 이타심에 감동했다. 증오가 아니라 애국으로 함께하는 모습이었다"고 했다.
그는 "정의를 위해 앞장서는 수많은 사람들로 인해 윤 대통령은 곧 심판받게 될 것"이라며 "지구 곳곳에서 정의를 위해 싸우는 분들에게도 말한다. 올바름을 위해 이웃을 위해 싸우자"고 했다. 그러면서 "(전세계의) 폭군들에게 정의가 실현될 때가 올 것이라고 경고한다"며 "저항하는 모든 이에게도 희망을 잃지 말라고 간곡히 부탁한다"고 했다.
혁신당 김준형 의원은 "한강 작가는 '과거가 현재를 돕고 죽은 자가 산 자를 돕고 있다'고 했다. 바로 그렇다. 무덤 속에 있는 민주열사들이 저희들을 지키고 있다"며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사람들은 대단하다고 말한다. 여러분들은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부끄러워할 자는 윤석열이다. 여러분은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국민들이시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국민은 승리한다, 역사는 전진한다"고 외쳤다. 시민들도 그를 따라 구호를 외쳤다.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전 대표였던 김영식 신부는 "이 탄핵의 시대, 파면의 시절, 새 봄의 시절을 기다리는 지금, 이 시대의 예수·부처는 촛불 시민들"이라며 "그들은 윤석열 파면, 긴급 구속, 김건희 체포, 국힘당 해산을 꼭 이루고 말 것"이라고 외쳤다. 김 신부는 "남태령에서 트랙터를 이끌고 한강을 건너 저 괴물 이무기가 살고 있는 한남동까지 여러분들이 길을 내었고 빛을 밝혔다"면서 "여러분들이 대한민국을 새롭게 만들 주권자 시민"이라고 추켜세웠다.
이날 집회에는 시민들의 문화 공연도 이어졌다. 서울 마포구 성산동과 망원동에서 음악을 하는 시민들이 결성한 '7013B밴드'는 <아파트> <행복의 나라로>, 서울 시민 정도훈 씨는 <지금 이 순간>을 불렀다. 노래패 '맥박'은 <평등가>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봄이 온다면> 등의 노래를 불렀다. 촛불행동에서 활동하는 백지은 씨는 <백지의 파면뉴스>를 통해 배우 최민수 씨의 아내 강주은 씨를 패러디하며 코믹하게 최근 주요 뉴스를 전해 시민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시민들은 안국역에서 집회를 마친 뒤, 오후 4시부터 열리는 '윤석열 즉각 퇴진! 사회대개혁! 4차 범시민대행진' 집회에 합류하기 위해 광화문 방면으로 행진했다.
"살고 싶은 세상 위해 다 함께 가자"
이날 오후 4시부터 서울 종로구 경복궁 동십자각 앞에서는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하 비상행동)이 연 '윤석열 즉각 퇴진! 사회대개혁! 4차 범시민대행진'(이하 시민대행진) 이 이어졌다. 시민대행진에는 주최 쪽 추산 50만 명이 몰려들었다. 집회에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 등 국회의원들도 자리했다. 또 '남태령 대첩'에 참가한 농민들이 참가해 시민들에게 우리 쌀로 만든 무지개떡을 나눠주기도 했다. 트랙터 행진을 위해 지난 21~22일 밤샘 투쟁을 한 시민들에 대한 보답이었다.
시민대행진에서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여성 농민, 비정규직 노동자, 성소수자, 학교밖 청소년 등이 함께 연대의 목소리를 냈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이정민 운영위원장(고 이주영 씨 아버지)은 "온갖 압박과 고통이 온몸을 휘감고 권력을 가진 자들이 휘두르는 총칼이 엄청난 공포과 충격을 가할지라도 여러분은 굴복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절대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이 나라, 여러분의 꿈과 희망을 펼쳐가야 할 이 나라가 내란 수괴 윤석열과 그 추종세력들에게 넘어가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이 위원장은 2022년 12월 이태원 참사 희생자 49재 당시 윤석열 부부가 크리스마스 트리 점등 행사에 참석하고 술을 사며 웃는 등의 행동을 한 것을 떠올리며 "인면수심의 악마"라고 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은 안중에도 없고 권력에 취해 유가족을 조롱하고 모욕했다"며 "지금 당장 이 악마들을 체포하고 구속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윤 대통령뿐 아니라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 권성동 원내대표 등을 향해서도 "즉각 퇴진하라"며, 국민의힘을 향해선 "즉각 해체하라"고 했다. 시민들도 함께 '퇴진' '해체' 구호를 외쳤다.
경기도 화성시에서 온 민지환 군은 자신을 학교밖 청소년이라고 소개했다. '전국 공개고백 장려 협회'라고 써진 깃발을 직접 만들어서 가지고 온 민 군은 자신이 내향적이지만 집회에 참가해 발언한 데 대해 "근래 탄핵을 외친다는 이유로 저와 여기 계신 분들을 비난하는 목소리를 주변에서 많이 들었다"며 "그러나 우리들의 이런 움직임이 잘못된 게 아니고, 올바른 것이고, 꼭 해야할 일이라고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고 외쳤다.
민 군은 얼마 전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를 봤다면서 "비상계엄 해제되지 않았더라면 영화처럼 지금 우리가 선 이곳도 무장한 군인들이 총을 들고 시민들에게 무차별적인 폭력을 행사하고 잡아가지 않았을까 너무 무서웠다"며 "이렇게 위험한 나라로 만들려는 저 무능력한 대통령은 당장 탄핵돼야 한다. 우리는 촛불과 응원봉의 힘으로 승리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끝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컬 노래의 한 대목을 불렀다 "살고 싶은 세상 위해 다 함께 가자"
자신의 정체성을 '성 소수자'라고 밝힌 김수경 심뇌혈관센터 간호노동자는 12·3 내란 사태 당시 당직 근무 중 응급환자가 있어서 국회에 갈 수 없었던 일, 지난 7일 대통령 1차 탄핵 시도가 무산됐던 일 등을 떠올리며 "무기력하고 울화통이 터졌다"면서 "그 다음주부터 국회 앞으로 나왔다. 가결된 이후에는 광화문으로 나왔고 남태령에도 나왔다. 관저 앞까지 갔다. 덕분에 지금 3주째 감기가 안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저는 다음주부터 다시 당직 주간에 돌입한다. 연말과 연초 여러분과 함께 보낼 수 없어 마음이 아프지만 그때처럼 무기력하지 않을 것"이라며, 간호사로서 시민들에게 "감기 조심하시고, 몸이 아프면 의료부스로 와달라"고 당부했다. 또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소녀시대의 '힘 내!(Way To Go)' 노래를 부르면서 시민들을 응원하고 연대했다. "하지만 힘을 내 이만큼 왔잖아 이것쯤은 정말 별 것 아니야 세상을 뒤집자 도무지 알 수 없는 것 뿐인 복잡한 이 지구가 재밌는 그 이유는 바로 너".
충남 태안 석탄화력발전소에서 25년차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한다는 이태성 씨는 아내와 두 딸과 함께 집회에 참가했다. 이 씨는 "기후위기는 심각하다. 재앙이다"라며 "그렇기 때문에 제가 일하는 석탄화력발전소도 폐쇄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안에 8418명의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다. 석탄화력발전소가 폐쇄된다고 해서 노동자와 시민의 삶을 폐쇄하면 안 된다"면서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 원전을 확대하고 민영화 뿐"이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햇빛 바람은 우리의 모두의 것이라고 외치고 있다"면서 "자본과 대기업이 아닌 깨끗한 전기를 누구에게나 공급할 수 있도록 우리 함께 시민의 힘으로 싸워나가야 한다"고 했다. 이 씨는 "이제 탄핵을 넘어 기후 실현으로 우리가 함께 만드는 새로운 세상에 함께 하겠다. 석탄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도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외쳤다.
엑스(X)에서 '항연'이라는 닉네임(별명)으로 활동하는 청년 여성농부는 자신을 소개하자, 수많은 시민들이 닉네임을 외치며 큰 함성을 보냈다. 향연은 시민들의 호응에 감사해 하며, 지난주 '남태령 대첩'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우리는 긴긴 동짓날 밤을 지나서 역사의 한 장면을 남긴 남태령 대첩의 승자가 됐다. 우금치에 쓰러진 동학 농민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냈다"며 "이번만큼은 산 자들이 죽은 자들을 돕고 위로해드렸다"고 했다. 그는 "물론 (그 대가로) '익일 특급'으로 방배경찰서에서 집시법 위반 출석 요구를 받았다"며 "윤석열은 내란 이후 25일 넘도록 따뜻한 방 안에서 먹고자는데, 농민들은 '로켓 배송'으로 출석요구서를 받고 뒷목을 잡아야겠느냐, 이게 나라냐"고 했다.
그럼에도 '향연'은 시민의 승리를 거듭 확신했다. 그는 "지금 농민 선배들은 천군만마를 얻은 거 같다고 한다. 피 흘리고 목숨 바친 아스팔트 농사 헛되지 않았다고 행복해한다"며 "남태령 불꽃이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으로 동덕여대로 곳곳에 농성 현장으로 들불처럼 번져간다. 남태령의 승리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외쳤다. 아울러 "저희 농민들은 먹을 권리, 식량 주권을 굳건히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집회는 가수들의 연대공연이 이어지면서 무대 열기를 더했다. 가수 황푸하는 <아침이슬> <나의세상>을 불렀고, 밴드 패치워크로드는 존 레논의 <Imagine>과 유튜(U2)의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를 불렀다. 이날치 밴드와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는 <범 내려온다> <의사줌치> <히히하하> 등을 곡을 부르며 춤 공연을 펼쳤다. 시민들은 노래를 따라부르며 "윤석열 탄핵" 등의 구호를 외쳤다. 집회를 마친 뒤 시민들은 광화문 앞에서 종로를 지나 명동 방면으로 행진했다. < 민들레 김성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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