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호처장과 차장, 출석요구도 불응 무법천지


"대통령 경호 위해 자리 못 비워" 공조본 농락
"관저 무단 침입에 법적 조치할 것" 엄포까지
쿠데타 수괴 사병 지휘 박종준, 내란 가담 정황도
공수처 행보는 뜨뜻미지근…박종준 체포 안 해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박종준 대통령 경호처장에게 임명장 수여 및 기념촬영을 마친 뒤 환담장으로 향하고 있다. 2024.9.9. 연합

법 위에 서 있는 대통령 경호처의 기고만장한 행태가 점입가경이다. 친위 쿠데타를 벌인 내란수괴의 사병(私兵)으로 복무하며 경찰의 대통령실 압수수색도 거부하더니 이번엔 법원이 발부한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까지 물리력으로 저지하곤 도리어 공수처와 경찰이 법적 근거도 없이 관저에 무단 침입했다며 큰소리를 치고 있다. 위세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 중심에는 박종준 경호처장이 존재한다. '제2의 차지철'로 등장한 박 처장은 경호처 직원들이 무더기로 특수공무집행방해죄를 범하도록 지휘한 뒤 공조수사본부의 출석요구도 거부했다. 안하무인에 무법천지다.

 

과거 국민의힘 전신인 새누리당 당적으로 두 차례나 총선에 출마했던 그는 윤석열의 부활을 곧 자신의 정치적 재기와 동일시하며 내란 동조 세력인 정부‧여당을 뒷배로 끝까지 되치기를 시도하겠다는 작정인 것으로 보인다. 12·3 비상계엄 당시 내란에 일정 부분 직접 가담했기 때문에 본인이 살기 위해 그토록 필사적이라는 의혹도 제기된다. 그 속내가 무엇이든 국민적 불안감의 원천 중 하나인 박 처장부터 하루속히 체포하고 경호처 직원들도 사법처리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지만 공수처가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러운 행보를 보여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박 처장은 형법상 특수공무집행방해, 범인도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공조본은 박 처장과 김성훈 경호처 차장에게 4일까지 출석해서 조사받으라고 통보했다. 그러나 경호처는 이날 언론 공지를 통해 "현재는 대통령 경호 업무와 관련해 엄중한 시기로, 경호처장과 차장은 한시도 자리를 비울 수 없다"고 밝혔다. 대통령 경호를 빙자한 위법 행위를 조사하기 위해 출석하라고 했는데 바로 그 이유로 거부하며 수사기관을 또 다시 농락한 것이다.

 

경호처는 다른 공지에서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가 법적 근거도 없이 경찰 기동대를 동원해 경호 구역과 군사 기밀 시설을 시설장(長)의 허가 없이 출입문을 부수고, 심지어 근무자에 부상을 일으키며 무단으로 침입한 데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불법 행위를 자행한 책임자와 관련자에 대해 법적 조치를 통해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적반하장의 극치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영장 집행에 나선 3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경내에서 대통령 경호처 인원들이 철문 앞을 차량으로 막고 있다. 2025.1.3. 연합

 

박 처장과 김 차장은 전날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공조본이 체포영장을 집행할 때 직접 앞에 나와 경호법과 경호구역을 들먹이며 수색 자체를 불허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 법원이 발부한 영장에는 군사상·공무상 비밀을 이유로 수색을 거부할 수 있도록 규정한 형사소송법 제110·111조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는데도 그랬다.

 

두 사람의 지시에 따라 대통령 관저 200m 앞에서 경호처 직원과 군인 200여 명이 팔짱을 끼고 '인간 벽'을 만들어 공수처 검사 및 수사관,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 인원들의 진입을 차단했다. 경호처 직원들은 크고 작은 몸싸움도 불사했으며 일부는 개인 화기(火器)까지 소지했다. 1, 2차 저지선을 형성하고 인간 벽에도 동원된 것으로 알려진 55경비단 병력은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소속이긴 하지만 경호처장의 지휘‧통제를 받는다.

 

이처럼 박 처장과 김 차장이 입건된 사유는 차고 넘치지만 두 사람은 앞으로도 공조본 조사에 응하지 않으며 윤 대통령 체포를 어떻게든 막으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체포 방해를 경호의 영역으로 보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하다"면서 두 사람과 함께 이광우 경호처 경호본부장, 성명불상의 경호처 공무원과 군인들을 국가수사본부에 고발했다. 민주당은 박 처장의 경우 12·3 비상계엄 선포 약 3시간 전 조지호 경찰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을 대통령 안가(安家)로 데리고 왔으며, 김 청장에게 비화폰을 전달해 김용현 국방장관과 연락을 하도록 협조했다는 보도가 나왔다며 내란 혐의로도 따로 고발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영장 집행에 나섰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관들이 3일 오후 정부과천청사 공수처로 돌아오고 있다. 2025.1.3. 연합
 

그러나 공수처의 행보는 뜨뜻미지근하기만 해 미덥지가 못하다. 관저에서 패잔병처럼 발길을 돌린 뒤 사실상 윤 대통령 체포를 포기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체포영장 집행 당시 경찰 측에서 박 처장과 경호처 직원들을 공무집행방해 현행범으로 체포해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했지만 공수처가 거부했다고 한다. 현장에서의 불상사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경호처 직원들을 제압하려면 일정한 강제력 동원과 충돌이 불가피한데 불상사만 걱정하면 언제까지고 영장을 집행할 수 없다. 2차 집행에 나서더라도 또 불발될 게 불 보듯 뻔하다. 공수처는 출입기자단 공지를 통해 "현재 현장 상황을 고려하면 경호처 공무원들의 경호가 지속되는 한 영장 집행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실토했다.

 

공수처는 차선책이라도 되는 듯 경호처에 대한 지휘감독자인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에게 경호처가 체포영장 집행에 응하도록 명령할 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부질없는 기대다. 내란 세력 눈치를 보며 줄타기로 일관하는 최 대행이 그 같은 용단을 내릴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공수처는 지난 1일에도 최 대행과 정진석 대통령실 비서실장,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에게 '경호처 등이 집행 절차에 협조할 수 있도록 지휘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지만 최 대행은 실행은커녕 일언반구도 없었다.

 

체포‧수색영장의 유효기간은 오는 6일까지라 이제 이틀밖에 시간이 남지 않았다. 몸을 사리는 공수처가 체포영장 집행을 재시도하기보다 곧바로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윤 대통령은 법원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해야 하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행각을 벌이는 윤 대통령이 이조차 거부하고 관저에서 안 나올 가능성도 있다. 구속영장이 발부돼도 경호처가 막으면 윤 대통령 신병 확보는 물 건너가고 문제는 원점으로 돌아오게 된다.

 

윤 대통령의 최측근인 석동현 변호사는 이날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공수처는 역사도 짧고 직원 수도 적고 수사 사례나 경험도 정말 빈약하다. 홍위병식으로 현직 대통령을 휴일 아침에 나오라고 찍찍 불러대다가 안 온다고 체포하겠다는 식"이라며 "뭐가 뭔지 잘 모를 때는 모르니까, 또 몰라서 큰일에도 마구 덤빈다. 무식하면 용감해진다는 말은 그런 표현일 것"이라고 공수처를 마음껏 조롱했다.  < 민들레 김호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