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해제 나흘뒤 비화폰 기록 원격 삭제했다는데…

경찰 구속영장 신청 잇따라 거부하다 4번째만에
증거 인멸 우려 속, 관련 수사 재개 가능성 높아져
검찰마저 영장 청구…헌재 윤석열 파면 기류 반영?

 

김성훈 경호처 차장(왼쪽)과 이광우 경호본부장. 연합

 

검찰이 윤석열 대통령 체포 방해 혐의와 비화폰(보안폰) 기록 삭제 혐의 등을 받는 김성훈 대통령경호처 차장 등에 대해 18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경찰의 4번째 신청 만에 이뤄진 구속영장 청구다.

 

앞서 검찰은 체포 방해와 비화폰 기록 삭제 혐의 등을 받는 김 차장에 대한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을 3차례나 기각하고, 윤 대통령 구속취소에 대해 법원에 즉시 항고를 포기한 바 있다. 이에 내란 세력에게 증거 인멸을 종용하고 내란 우두머리 혐의자를 석방시켰다는 국민들의 비난을 받았다. 이같은 비난에 검찰이 뒤늦게 서울고검 영장심의위원회 의견에 따라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핵심 증거가 이미 인멸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법원이 조만간 김 차장 등에 대해 구속여부를 결정할 예정인 가운데, 늑장 영장 청구과 관련해 검찰의 책임론이 거세질 전망이다.

 

경찰 국가수사본부에 따르면 서울서부지검은 전날(17일) 경찰이 신청한 김성훈 경호처 차장과 이광우 경호본부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서부지법에 청구했다. 김 차장과 이 본부장은 지난 1월 3일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윤 대통령 1차 체포 작전을 방해한 혐의(특수공무집행방해)와 체포 저지 지시를 따르지 않은 경호처 간부를 부당하게 인사 조치를 한 혐의(대통령경호법상 직권남용) 등을 받고 있다. 특히 이들은 내란의 핵심 증거 중 하나인 보안폰(비화폰) 기록을 삭제하라고 지시한 혐의(대통령경호법상 직권남용)도 받고 있다.

 

국회 상임위원회 속기와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앞서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특수단)은 '보안폰 보안성 강화방안 검토 결과'라는 경호처 문건을 수사 과정에서 확보했다. 일명 '비화폰'이라고도 불리는 보안폰은 윤 대통령과 내란에 연루된 고위 군·경 관계자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는 핵심 증거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12일 작성된 경호처 문건엔 문건 작성 닷새 전인 12월 7일 김 차장이 단말기 내 데이터 삭제를 지시했다는 내용이 적힌 것으로 드러났다. 아울러 해당 지시를 검토한 직원들 기록에 따르면 비화폰은 원격으로 서버에서 로그아웃하면 통화기록 삭제가 가능하다.

 

김성훈 대통령경호처 차장이 22일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1차 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5.1.22. 연합

 

이러한 가운데 윤 대통령은 여전히 12·3 내란 당시 국회의원을 끌어내라고 지시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일부 계엄 가담자들도 계엄 초기 국회의원 체포 시도가 '대통령의 지시'라고 했다가 진술을 바꾸고 있다. 이 때문에 내란죄를 더 명확하게 입증하기 위해 이들의 비화폰 통화 기록까지 모두 확인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에 경찰 특수단은 경호처 비화폰 서버 압수수색을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김 차장이 '군사상 비밀'을 이유로 불허하면서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경찰은 비화폰 압수수색을 위해 김 차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3차례나 신청했지만 검찰까지 '보완수사' 등을 이유로 제동을 걸면서 실패했다. 사실상 검찰이 수사를 방해한 셈이다.

 

검찰의 계속된 구속영장 기각에 반발한 경찰은 결국 서울고검에 영장심의위 소집을 요구했고, 그렇게 열린 지난 6일 서울고검 영장심의위에서 김 차장 구속영장 청구를 권고하는 결정이 나왔다. 검찰이 위촉하는 인사들로 구성된 영장심의위조차 검찰의 결정에 문제가 있다고 본 것이다. 이에 경찰은 전날 김 차장과 이 본부장에 대한 4번째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검찰은 이날 뒤늦게 영장 청구를 결정했다. 검찰 내부는 여전히 반려 의견이 많지만, 영장심의위 결정을 뒤집을 경우 혼란 등을 의식해 법원에 공을 넘긴 것으로 보인다. 김 차장과 이 본부장의 구속 여부는 법원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를 거쳐 결정될 예정이다.

 

김 차장 등은 그간 수사기관에 비협조적으로 나왔던 만큼 법원의 영장실질심사에서도 윤 대통령 경호 업무 등을 이유로 불구속 수사를 주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 차장의 도주 우려는 낮지만, 그동안 불구속 상태에서 증거 인멸을 했을 가능성이 높은 점을 고려하면 구속영장이 발부될 것이라는 의견이 현재까지는 우세하다. 이들의 신병을 확보할 경우 서버 압수수색을 '불승낙'한 장본인이 김 차장인만큼, 관련 수사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경호처가 보관하는 비화폰 서버를 확보해 통화 기록을 포렌식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내란 증거를 찾을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향후 압수수색 결과물에 따라 검찰의 책임론이 제기될 수 있다.

 

석방된 윤석열 대통령이 8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경호차량에서 내려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그 옆으로는 김성훈 경호처 차장(오른쪽)이 윤 대통령을 경호하며 이동하고 있다. 2025.3.8. 연합

 

한편 정치권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이 구속 취소되고 오는 28일 우종수 국가수사본부장이 퇴임하면서 경찰이 구속영장 신청을 늦추고 헌재의 탄핵 심판 추이를 지켜본 뒤 움직일 것이란 관측이 나왔지만, 전날 선제적으로 구속영장을 신청하면서 윤 대통령에 대한 파면이 임박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경찰이 헌재의 결정 전에 김 차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며 내란 수사에 대한 의지를 보인 가운데, 검찰도 기존 입장을 뒤집고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이러한 법조계 기류를 반영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일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지만, 이르면 19일 지정돼 양측 당사자에 고지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 민들레 김성진 기자 >

 

법원, 김성훈·이광우 구속심사 “21일 오전 10시30분”

영장발부 땐 ‘비화폰 서버’ 확보로 내란수사 물꼬 전망

 

 
 

 

지난 1월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방해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성훈 경호처 차장과 이광우 경호본부장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이 21일 오전 열린다.

 

서울서부지법은 19일 김성훈 차장과 이광우 본부장의 영장실질심사 일정이 21일 오전 10시30분으로 지정됐다고 밝혔다. 전날 검찰은 두 사람에 대한 구속영장을 법원에 청구했다. 앞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특수단)이 검찰의 잇따른 영장기각 속에, 김 차장에 대해선 네번째, 이 본부장에 대해선 세번째 구속영장을 신청한 데 따른 것이다.

 

김 차장 구속영장에는 윤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저지(특수공무집행방해)하고 비화폰 데이터 삭제를 지시(대통령경호법의 직권남용)했을 뿐 아니라, 체포영장 집행에 협조한 경호처 간부를 해임하는 등의 보복 정황도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광우 차장의 경우 윤 대통령 계엄 선포 2시간전인 지난해 12월3일 저녁 8시20분 챗지피티를 이용해 ‘계엄’을 검색하는 등 사전에 계엄 선포를 인지하고 있었을 가능성 등도 영장에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김 차장은 영장실질심사에서 석방된 윤 대통령을 밀착 수행해야 한다며 ‘불구속 수사’를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하면, ‘비화폰 서버’ 확보 등을 통해 내란 사건 수사에 물꼬가 트이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검찰의 영장 기각으로 그간 직위를 유지한 김 차장은 형사소송법 조항(군사상 비밀을 요하는 장소는 그 책임자의 승낙 없이는 압수 또는 수색할 수 없다)을 들어 경찰 특수단의 비화폰 서버 압수수색영장 집행도 거부했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당시 군사령관들과 비화폰으로 소통한 만큼 경찰이 비화폰 서버를 확보하면 통화 내역을 통해 당시 상황을 재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한겨레 김가윤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