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작용이 아닌 정치행위 ”…민변·참여연대 비판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1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 입장해 자리에 앉아 있다. 2025.05.01 사진공동취재단

 

대법원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 항소심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데 대해 시민단체들이 “사법작용이 아닌 정치행위”라고 비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2일 논평을 내어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회부 9일 만에 원심을 뒤집고 유죄 취지 파기환송을 내린 데 대해 비판했다. 민변은 “대선이 불과 한 달여 남은 상황에서 선거에 영향을 미칠 것이 명백한 판결을 졸속으로 선고한 대법원의 ‘정치적 행보’는 사법부에 대한 근본적 불신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사실관계와 법리가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채 숙의 없이 내려진 이번 판결 선고는, 사법작용이 아닌 정치행위라는 점을 지적하며, 판결을 가장한 대법원의 정치개입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민변은 “대선을 한 달여 앞둔 상황에서, 대법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뚜렷하게 갈려 소수의견이 제시될 정도로 논쟁적인 사안임에도 충분한 숙의 없이 2심 판결을 뒤집은 대법원 판결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며 “선거가 임박한 시점에서 선거에 참여하는 정치인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은 단순히 법률관계를 확정하는 것이 아니라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 행사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대법원은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 항소심이 선고된 지 36일만,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사건이 회부된 지 9일 만에 파기 환송 결론을 냈다. 민변은 이어 “6만~7만 쪽에 달하는 사건기록과 당사자의 주장을 충분히 검토하기도, 법관들 사이의 합의를 충분히 도출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라며 “결국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조희대 대법원장 포함 10인의 대법관이 자신들이 가진 정치적 입장에 따라 선고를 강행한 것이 아닌지 하는 의구심까지 갖게 한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역시 대법원의 이번 상고심을 대선개입이라고 비판했다. 참여연대는 1일 논평을 내어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기존 판례를 뒤집고 유력 후보자의 피선거권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판결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은 정치개입이자, 선거개입이라 볼 수밖에 없다”며 “대법원이 스스로 사법부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허무는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대법원은 헌정 질서의 파괴가 자행되는 내란의 과정에서 국민의 기본권과 사법부의 독립성을 지키려는 제대로 된 노력을 보여주지 못했다”며 “사법부 전체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커진 상황에서 또다시 정치적인 고려를 통해 절차진행과 판결을 한다는 세간의 의혹을 불식하기는커녕 확대시키는 판결을 내놓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 장현은 기자 >

 

이재명만 신속하게 ‘판례 역주행’ 유죄 파기환송…“기득권 세력의 총력전”

“윤석열 임명 대법관 10명의 대선 개입 사법쿠데타”

 
 
대법원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2심 무죄판결을 파기 환송한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긴급의원총회에서 박찬대 원내대표 등 의원들이 대법원을 규탄하고 있다. 연합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파기환송은 △전합 회부 결정 △심리와 선고에 걸린 속도 △대법원 판례 역주행 △파기자판 수준의 단정적 표현 △낙선자에 대한 ‘6·3·3 원칙’ 적용까지 전례를 찾을 수 없다. 지귀연 재판부가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만 최초로 구속기간 계산법을 바꿔 풀어준 것과는 반대로, 조희대 대법원은 이재명 후보에게만 전례 없는 방식으로 ‘파기환송을 빙자한 유죄 파기자판’을 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당장 민주당에서는 “윤석열이 임명한 대법관 10명의 사법쿠데타”라는 맹비난이 쏟아진다.

 

이 사건이 대법원에 접수된 것은 3월28일이다. 그 이틀 전인 3월26일 서울고법 항소심 재판부는 1심과 달리 무죄로 판단했다. 검찰의 상고이유서는 4월10일 대법원에 제출됐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4월22일 오전 대법원 2부에 배당된 사건을, 오후에 곧바로 대법관 전원이 심리하는 전원합의체로 회부하는 결정을 했다. 재판장인 조 대법원장은 전합 회부 당일 심리를 한 데 이어, 이틀 만인 4월24일에도 심리를 이어갔다. 전례 없는 속도전 심리였는데, 이런 사실을 외부에 공개했다. 전합 회부 9일 만에 선고를 결정했고, 공중파 생중계까지 허용했다. 모두 전례 없는 일이다.

 

6개월 만에 판례 바꿔

 

그간 대법원은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조금씩 넓히는 판례를 쌓아오고 있었다. 지난해 10월31일에는 이재명 후보와 유사한 혐의로 1·2심에서 유죄가 선고된 사건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당시 대법원은 따로 보도자료를 내어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라는 형사법의 기본원칙에 입각해 선거운동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대의민주주의를 택한 헌법정신을 따른 판결”이라고 한껏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이재명 후보 사건에서는 달랐다. 대법원은 “민주주의의 실현 과정인 선거의 공정성을 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충실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다만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보호되는 정도는 그 표현의 주체와 대상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며 불과 6개월 전 내놓았던 판례를 역주행했다. 표현의 주체, 즉 발언 당시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은 다르게 봐야한다는 것이다.

 

1일 서울역 대합실에 설치된 텔레비전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 생중계가 나오고 있다. 연합

 

당선자 처벌 위한 6·3·3 원칙을 낙선자에 적용

 

대법원은 그간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파기환송 판례에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 것으로 볼 수 없다”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단정하기 어렵다” “∼로 보인다” “∼로 보기 어렵다” 등 유보적 표현을 써왔다. 법률심인 대법원에서도 사실심 성격의 판단이 일부 이뤄지긴 하지만, 파기환송 사건을 맡게 될 하급심을 고려해 판결 범위와 표현 수위를 조절한 것이다. 그러나 이재명 후보 사건에서는 검사의 공소사실을 근거로 “허위사실 공표임을 분명히 적시했다” 등 단정적 표현을 자주 썼다. 고법부장 판사 출신 변호사는 “파기환송심을 맡을 서울고법에서 따로 심리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자세하게 사실관계 판단을 했다. 그 표현도 이상하게 단정적이다. 마치 6·3 대선 전에 유죄 선고를 하라는 신호를 서울고법에 보내는 것 같다”고 했다.

 

공직선거법의 허위사실공표 위반 사건은 통상 낙선자보다는 당선자를 더 엄하게 처벌하는 경향이 있다. 낙선자의 경우 이미 선거에서 유권자의 판단을 받았다는 점에서 수사기관은 물론 법원도 처벌 수위를 조절하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지난 대선에서 낙선한 이재명 후보의 허위사실공표 혐의 수사에 10여명의 검사를 투입하는 등 총력전을 폈다. 조희대 대법원장 역시 당선자에게 적용하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6·3·3 원칙’(1심 6개월→2심 3개월→대법원 3개월 내 선고)을 엉뚱하게 낙선자에게 무리하게 적용했다. 선출된 공직자의 법 위반 여부를 최대한 빨리 판단해 선거 결과를 바로잡으려는 6·3·3 원칙의 취지와 달리, 대선에서 낙선한 사람을 본보기 삼은 것이다. 게다가 대선의 경우 당선자(대통령)는 내란·외환죄로만 소추가 가능하기 때문에, 허위사실공표 혐의를 받아도 6·3·3 원칙을 적용할 수 없다. 대선 패자였던 이재명 후보에 대한 집요한 수사가 정치보복 비판을 받은 이유다.

 

대법원은 ‘신속한 재판’을 합리화하기 위해 2000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대선 재검표 사건(조지 부시 대 앨 고어)을 예로 들었다. 대법원은 “대선 직후 재검표를 둘러싸고 극심한 혼란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연방대법원이 3∼4일 만에 재검표 중단을 명하는 종국재판을 내려 혼란을 종식시켰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재명 후보 사건은 미국 연방대법원 사례와 달리 ‘당해 선거’가 아닌 이미 3년 전 윤석열 당선으로 끝난 대선 관련 사건이다. 결국 재판 대상과 무관한 2025년 대통령 선거에 대법원이 개입하는 판결을 전례 없는 속도로 내놓으면서 ‘대법원이 혼란을 종식시켰다’는 엉뚱한 주장을 편 것이다.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는 “6·3·3 원칙은 낙선자가 아닌 당선자 사건 처리에 적용되는 것인데 대법원이 황당하게도 대선을 한 달여 앞두고 이재명 후보를 첫 사례로 삼았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번에 내놓은 판례를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김건희 주가조작 등과 관련한 거짓말을 하고 당선된 윤석열 전 대통령은 당선무효형이 확실하다”고 했다. 윤석열의 허위사실공표 혐의 수사는 대통령 당선 뒤 중지됐다가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이후인 최근에야 고발인 조사를 하는 등 속도를 내고 있다.

 

대법원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 판결을 한 1일 이 후보가 전국 각지에서 민심을 듣는 골목골목 경청투어를 시작하며 경기도 포천 중앙로에서 시민들을 만나며 인사하고 있다. 연합

 

윤석열이 임명한 대법관 10명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은 조희대 대법원장과 오석준·서경환·권영준·엄상필·신숙희·노경필·박영재·이숙연·마용주 대법관 등 10명이 주도했다. 모두 윤석열 대통령 때 임명했다.(마용주는 한덕수 권한대행 임명)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는 “윤석열 구속취소 결정부터 이번 대법원 파기환송까지 내란 사태 이후 한국사회의 기득권 세력이 똘똘 뭉친 결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의 사법부 장악이 결정적 순간에 효과를 본 것”이라고 했다. 이재명 후보의 6·3 대선 출마를 막거나, 당선되더라도 임기 내내 정당성을 흔들겠다는 대법관들의 의지가 노골적으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상고 기각(무죄) 의견을 낸 대법관은 문재인 대통령 때 임명한 이흥구·오경미 대법관이었다. 두 대법관은 “ 형사처벌 여부가 문제 되는 표현이 사실을 드러낸 것인지 아니면 의견이나 추상적 판단을 표명한 것인지 단정하기 어려운 표현인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의견이나 추상적 판단을 표명한 것으로 보는 것이 , 그동안 선거의 공정과 선거운동의 자유 사이에서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확장하기 위해 노력해 온 대법원 판결례의 확고한 흐름에도 부합하는 해석”이라고 했다.

 

두 대법관은 또 이솝우화 ‘해님과 바람 이야기’를 인용하며 “재판의 신속이 절대적 가치가 아니다”라고 했다. “설득의 승자인 해님의 무기는 온기와 시간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의 요체인 설득에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최근 대법원 판례까지 거스르면서, 그렇게 서둘러 선고를 해야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김남일 기자 >

 

‘이재명 선고’ 회부 9일 만에…“기록 제대로 볼 수나 있었는지 의문”

대법, 이례적 ‘속전속결’   이재명 1·2심엔 2년6개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1일 서울 종로구의 한 포차 식당에서 \'당신의 하루를 만드는, 보이지 않는 영웅들\'이란 주제로 배달 라이더, 택배 기사 등 비(非)전형 노동자들과 간담회를 마친 뒤 휴대전화를 확인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대법원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에 대해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로 판결을 내렸다. 지난 22일 조희대 대법원장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한 지 9일 만이다. 신속한 판단을 예고하면서 상고 기각이 점쳐졌지만 결론은 유죄 취지 파기환송이었다.

 

대법원은 1일 이번 사건의 신속 처리를 두고 “선거법의 취지에 따라 신속하고 집약적으로 깊이 있는 집중심리를 해 선거법 위반 사건의 적시 처리를 도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거법에서 1심은 6개월, 2심과 3심은 3개월 이내 선고를 규정하고 있는 만큼 신속히 심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특히 △이번 사건이 2022년 9월8일에 공소제기 뒤 대법원에 상고 사건이 접수된 올해 3월28일까지 약 2년6개월이 소요되는 절차 지연이 있었고 △1·2심의 판단이 엇갈려 혼란이 가중되고 사법 불신이 강해지는 상황도 신속한 처리의 배경이 됐다고 설명했다.

 

전원합의체 회부 이후 대법관들은 1·2심 판결문과 공판기록, 검사의 상고이유서와 변호인 답변서·의견서를 신속하게 검토해 집중적인 심리를 벌였다고 한다. 국내 사법사상 전례 없는 속도전이었다는 점을 의식한 듯 대법원은 신속 재판 사례로 2000년 부시와 고어가 맞붙은 미국 대선 뒤 연방대법원의 재검표 중단 결정을 거론했다. “재검표를 명한 플로리다주대법원 재판에 대한 불복 신청이 연방대법원에 접수된 뒤 불과 3~4일 만에 재검표 중단을 명하는 종국재판을 내려 혼란을 종식시켰다”는 것이다. 서울 지역 법원의 한 판사는 “내부에서도 신속하게 선고하지 말자는 저항도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내·외부 문제 제기에 대해서 사례로 설명한 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1일 서울 종로구의 한 포차 식당에서 '당신의 하루를 만드는, 보이지 않는 영웅들'이란 주제로 배달 라이더, 택배 기사 등 비(非)전형 노동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대법원은 이번 판결이 신속하게 처리된 점을 강조했지만 이흥구·오경미 대법관은 반대의견을 통해 “신속만이 능사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두 대법관은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요체는 서로 다른 경험과 가치관을 갖고 있는 대법관들 상호 간의 설득과 숙고에 있다”며 이솝 우화인 ‘해님과 바람 이야기’를 인용했다. “설득의 승자인 해님이 갖고 있는 무기는 온기와 시간”이라며 “대법관들 상호 간의 설득과 숙고의 성숙 기간을 거치지 않은 결론은 외관상의 공정성에 대한 시비도 문제이지만 결론에서도 당사자들과 국민을 납득시키는 데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대법관은 이어 “이 사건에서 전원합의체의 심리와 재판은 해님이 갖고 있는 무기인 온기와 시간을 적절히 투입하여 숙고와 설득에 성공한 경우인가, 아닌가”라고 물었다. 전원합의체 합의에서 충분한 숙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판사 출신 변호사도 “대법원이 파기환송 사건을 이렇게 급하게 판단하는 것은 본 적이 없다. 기록을 제대로 볼 시간이 있었는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 한겨레 김지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