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박스쿨'은 역사 왜곡 실험실

● COREA 2025. 6. 10. 12:59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피로 얼룩진 권력욕을 리더십으로 포장

이·박 독재는 신화가 아니라 비판의 대상

청년세대에 민주 감각 교육 필요한 시기
'리박스쿨' 퇴학 조치 내려야 마땅하다

 

보수 성향 단체 '리박스쿨'의 댓글 여론 조작 관련 보도가 나온 가운데 2일 오전 서울 종로구에 한 빌딩에 리박스쿨 사무실 간판이 붙어 있다.2025.6.2. 연합
 

‘교육’이라는 이름의 독재 세탁소

 

최근 공개된 콘텐츠 ‘리박스쿨’은 제목부터 낯설고 불길하다. 이승만과 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의 이름에서 성을 따온 이 프로그램은 이들을 마치 학교의 ‘교장’처럼 설정해 ‘리더십’을 배우는 형식이다. 그러나 그 실체는 교육의 외피를 입은 정치 콘텐츠이며,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냉소와 역사왜곡, 그리고 시대착오적 인물숭배에 다름 아니다.

 

‘역사를 재조명한다’는 명분 아래 리박스쿨이 선택한 방식은 지나치게 편파적이다. 이 콘텐츠는 두 독재자의 업적만을 과장하고, 그들의 폭력적이고 반민주적인 행보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침묵하거나 가볍게 넘긴다. 예능이라는 형식을 빌려 역사적 균형을 잃은 해석을 시청자에게 쉽게 주입시키는 이 프로그램은 교육이 아니라 ‘정치적 세뇌 실험실’이다.

 

이승만: 독립운동가였지만, 민주주의자였나?

 

이승만의 삶은 분명 복잡하다. 일제강점기에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점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기록이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유산은 해방 이후 철저히 민주주의와 배치된다. 그가 1948년 정부 수립 직후부터 보여준 통치는 민의를 존중하기보다는 억누르고 통제하는 방향으로 작동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전쟁 전후의 ‘보도연맹 학살’이다. 좌익계열 인사 혹은 그와 연루되었다고 추정된 수십만 명이 국가 권력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학살됐다. 이는 전쟁기 혼란이라는 변명으로 용납될 수 없다. 명백한 국가 주도 반인륜 범죄다. 1기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최소 10만 명 이상이 이승만 정부에 의해 처형되었고, 이 과정은 비공개·비법적 절차로 진행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1952년에는 대통령 직선제를 밀어붙이기 위해 군을 동원해 국회를 포위했고, 1954년에는 ‘사사오입 개헌’이라는 전무후무한 숫자 장난으로 3분의 2 찬성을 끌어낸 척 헌법을 개정했다. 이런 인물이 ‘건국의 아버지’라 불릴 자격이 있는가? 민주주의가 그의 손으로 시작되었다는 주장은 피로 얼룩진 권력욕을 ‘리더십’으로 포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박정희: 산업화 신화의 그늘은 민주주의의 붕괴였다

 

박정희를 이야기할 때 반복되는 문구가 있다. “그래도 경제는 살렸잖아.” 이 말은 사실상 정치적 무책임의 상징이다. 물론 그의 정권 아래서 산업화가 추진됐고, 수출이 증가했으며, 국가 인프라가 성장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전체주의적 동원체계’의 결과였으며, 그 체계 하에서는 국민의 권리와 자유가 지속적으로 침해받았다.

 

1961년 5월 16일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그는 처음엔 ‘과도정부’를 자처했지만, 결과적으로는 18년에 걸친 장기집권으로 나아갔다. 1972년 유신헌법은 그 정점이었다. 이 헌법은 행정부의 권력을 극대화하고, 국회의 기능을 약화시키며, 대통령에게 입법·사법·행정 전반에 절대권력을 부여했다. 형식만 남은 헌정질서 아래에서, 박정희는 비판을 불허하는 절대 권력자가 되었다.

 

그 시절, 노동자는 인간이 아니라 부품으로 취급받았다. 노동 3권은 부정당했고, 언론은 통제당했으며, 학생들은 감시와 사상 검열 속에서 생활했다. 인혁당 사건, 긴급조치 시대, 정치적 고문과 실종. 이 모든 고통을 단지 '산업화의 대가'로 치부할 수 있는가? '고속도로'와 '수출 증가'가 박정희 정권의 실적이라면, '표현의 자유 압살'과 ‘공포 정치의 일상화'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

 

뉴스타파는 '리박스쿨' 잠입 취재를 통해 이번 대선을 앞두고 '자손군'이라는 댓글팀이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를 띄우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비방하는 활동을 체계적으로 벌여왔다고 30일 보도했다. 뉴스타파 홈페이지

 

예능이란 포장지 속 역사 왜곡, 더 위험하다

 

리박스쿨은 예능 형식을 빌려 이 모든 과거를 ‘가볍게’, ‘웃기게’ 포장한다. 그러나 역사 왜곡은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오히려 웃음 뒤에 감춰진 의도야말로 더 치명적이다. 대중문화는 반복과 익숙함을 통해 정당성을 형성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결국 예능을 통한 역사 왜곡은 무의식적 동의를 불러일으키고, 정치적 판단력을 마비시킨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프로그램이 청년 세대를 직접 겨냥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업률, 주거 불안, 정치 혐오 속에서 자란 청년들에게 '과거의 강한 리더십'을 낭만적으로 소비하게 만드는 일은, 무책임한 마취다. '그때는 잘 나갔다'는 말이 반복될수록, 청년의 미래는 과거 회귀적 정치에 갇히고 만다.

 

우리가 배워야 할 ‘교장’은 누구인가

 

리박스쿨은 이승만과 박정희를 교장처럼 그린다. 그러나 이들이 진정 교육자적 리더였던가? 그들이 국민에게 가르친 것은 복종, 침묵, 그리고 무조건적 충성뿐이다. 그건 ‘교육’이 아니라 ‘군기’다.

 

진정한 교장은 국민이다. 우리는 4.19 혁명으로 부정선거를 심판했고, 5.18 광주에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켰으며, 6월 항쟁으로 다시 헌법을 되찾았다. 그런 국민적 수업이 있었기에 오늘의 민주주의가 있다. 이승만과 박정희를 교장으로 모신 순간, 대한민국은 학교가 아니라 병영으로 전환된다.

 

1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방과후강사분과 조합원들이 보수 성향 교육단체 '리박스쿨'이 서울 일부 초등학교에 늘봄 강사를 공급한 것을 규탄하며 방과후수업 외주 위탁 철폐를 촉구하고 있다. 2025.6.10. 연합
 

지금 필요한 건 ‘리박’이 아니라 ‘디박’이다

 

우리는 지금 ‘디박스쿨’이 필요한 시점이다. 디코딩하고(Decode), 디컨스트럭션하며(Deconstruct),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민주주의 감수성을 확장하는 교육. 독재의 유산을 신화가 아닌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청년 세대가 주체적으로 역사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민주적 감각이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결코 한 번의 선거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끊임없는 경계, 참여, 그리고 교육을 통해 재구성되어야 하는 시스템이다. 과거를 회피하거나, 편리하게 포장할수록 민주주의는 퇴행한다. 지금 우리가 리박스쿨에 ‘퇴학 조치’를 내려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역사를 잊은 사회, 미래를 저당 잡힌다

 

오늘날 리더십의 위기를 독재 미화로 해결하려는 시도는 민주주의에 대한 모욕이다. 강한 리더는 필요하지만, 그것은 국민의 권한을 침해하지 않는 강함이어야 한다. 독재는 강함이 아니라 비겁함이다. 비판을 두려워하고, 권력을 독점하며, 국민을 수단화하는 통치는 결코 리더십이 아니다.

 

리박스쿨은 말한다. “과거를 통해 배워라.” 맞다. 우리는 과거를 통해 배워야 한다. 그러나 배워야 할 것은 독재자의 리더십의 신화가 아니라, 그것이 남긴 상처와 폐해다.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그 어두운 순간들을 직시해야 한다.

 

기억은 선택이 아니라 책임이다. 지금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묻느냐가 앞으로 이 사회가 어떤 미래를 향해 나아갈지를 결정짓는다. ‘리박스쿨’은 과거로의 회귀를 상징하지만, 우리는 거기서 멈추지 않아야 한다. 민주주의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다.  < 김성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