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동남아에 희망의 빛 밝히는 K-민주주의

● COREA 2025. 7. 29. 13:43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권위주의가 일으키는 전쟁, 민주주의로 막아야

 

                                                                         김종대 국방 전문가. 전 국회의원

 

2025년, 아시아는 다시 분쟁의 불길에 휩싸였다. 중화기 포격, 전투기 공습, 수만 명의 난민. 태국과 캄보디아의 국경에서, 인도와 파키스탄의 카슈미르 고지에서, 총성이 울리고 피난 행렬이 이어졌다. 이는 단순한 국경선 분쟁이 아니다. 식민지 시절 제국주의가 남긴 불완전한 경계는 이미 한 세기 전부터 존재해 왔다. 그런데 왜 지금, 이토록 격렬한 충돌이 재발하고 있는가? 그 핵심에는 무너진 민주주의, 부활한 권위주의, 그리고 균열된 아시아‑태평양 질서가 있다. 이 분쟁들은 단순한 국지전이 아닌, 거대한 정치 질서의 재편을 알리는 경고음이기도 하다.

 

국경에서 대포 쏘며 자기 권력 강화하는 권위주의 정치세력

 

2025년 4월, 인도와 파키스탄은 카슈미르에서 대규모 포격전을 벌였다. 인도는 공습으로 보복했고, 파키스탄은 전차와 특수부대를 투입했다. 군사 충돌의 외피를 두르고 있었지만, 그 정치적 배경은 더욱 깊고 어두웠다. 인도에서는 극우 민족주의가 선거를 앞두고 기세를 올렸고, 나렌드라 모디 정부는 야당과 언론을 탄압하며 ‘국민통합’이라는 미명 아래 표현의 자유와 민주적 견제를 무력화시켰다. 디지털 검열과 미디어 통제는 일상이 되었고, 소수자와 반대 의견은 배척되었다.

 

반면 파키스탄은 외형적으로 민간정부 체제를 유지했지만, 실제 권력은 군부로 이동해 있었다. 국가안보위원회(NSC)라는 이름의 틀 속에서, 실질적 결정은 육군참모총장이 주도하고 있었고, 총리는 형식적인 존재로 전락했다. 카슈미르 무력 충돌은 단순한 방어가 아닌, 군부의 위상 강화와 국내 정치 질서 개편을 겨냥한 의도된 시나리오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민적 단결을 유도하고, 권위주의적 통치 기반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쟁이 선택된 것이다.

 

7월 28일 타이 국경지대에 설치된 피난센터에서 대파자들이 공연을 보면서 웃고 있다. 타이와 캄보디아 지도자들은 이날 무조건 휴전에 합의했다. 이에 앞서 닷새동안 정글로 뒤덮인 국경전투에서 최소 36명이 사망했다. AFP 연합
 

인도와 파키스탄이 카슈미르에서 위기를 겪은지 두 달 뒤인 7월 말. 비슷한 양상이 태국과 캄보디아 사이에서도 재현되었다. 캄보디아의 훈센 전 총리와 태국의 파이통탄 총리 간의 비공식 통화가 유출되며, 외교 관계는 급속히 냉각되었다. 이 유출은 단순한 외교 실수가 아니라, 정보전과 여론전이 동반된 정치적 도발이었다. 태국에서는 통화 내용이 군부 비판으로 해석되며 파이통탄 총리는 직무 정지 상태에 놓였고, 보수 진영은 이를 정치적 숙청의 기회로 활용했다. 캄보디아 측은 군복을 입은 권력자들이 전면 에 등장하면서 위기 상황을 군 중심 체제로 끌고 갔다.

 

훈센 일가는 장남 훈 마넷에게 권력을 이양한 데 그치지 않고, 차남 훈 마니트와 훈 매니 등 형제들이 군과 정보기관, 내각 요직을 장악함으로써 일가 통치 체제를 구축했다. 그 결과 외교는 권력 유지의 수단으로 전락했고, 국경 분쟁은 정권 안정용 무대로 재구성되었다. 이들 국가는 모두 권위주의적 체제와 군사 중심 정치가 결합된 구조 속에서, 외부 충돌을 내부 권력 통제의 방편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국지 분쟁 아닌 동아시아 전체 시스템의 붕괴 현상

 

이처럼 인도‑파키스탄, 태국‑캄보디아 분쟁은 국경 문제의 외양을 띠고 있지만, 실제로는 권위주의 정치의 내면이 밖으로 터져나온 결과물이다. 군부의 정치 개입, 세습 권력의 확산, 언론과 야당에 대한 조직적 탄압은 각국에서 민주주의의 최소 조건마저 붕괴시키고 있으며, 이는 곧 지역 전체의 안보 질서를 해체하는 동인이 되고 있다. 그런데 동남아 국가들 중에는 아직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를 찾아보기 어렵다. 인도네시아, 베트남, 브루나이, 필리핀, 말레이사아 등 동남아 국가들은 아직 불안한 민주주의 기초 위에 있다.

 

그렇다면 다음 분쟁은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알 수 없는 형국이다. 분쟁은 더 이상 국지적 충돌이 아닌, 시스템 자체의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 민족주의는 이 모든 과정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으며, 전쟁은 오히려 권력을 강화하는 수단이 되어버렸다. 그 속에서 민주주의는 가장 먼저 희생된다. 민주주의를 이끌어야 할 민간 정부가 위기에 처하고, 권위주의 권력과 군부가 부상하면서 국내의 불만을 외부로 전가하려는 행태가 바로 분쟁의 확산이 나타난 일차적 배경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극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다. 1975년 베트남 전쟁의 종결 이후, 동남아시아는 오랜 시간 실용주의와 다자협력의 시대를 유지해왔다. ASEAN의 탄생, ASEM과 EAS의 출범, 경제개발 중심의 외교 전략은 과거 식민 경계와 민족 감정을 봉인한 채, 생존과 번영의 질서를 정착시키는 데 기여했다. 미국과 중국이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이 지역의 안정에 공동 이해를 가졌던 시기였고, 민족주의는 절제된 채 경제와 협력 중심의 외교가 우선되었다. 국경 문제는 봉합되었고, 전쟁은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다자협력 포기하고 분열과 대결 국면 들어간 동남아 국가들

 

그러나 2010년 이후, 이 질서는 눈에 띄게 균열되기 시작했다.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인공섬을 건설하고, 인도 국경에서 충돌을 유도했으며, 동중국해에서 일본과 무력시위를 벌였다. 미국은 이에 대응해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이라는 전략을 펼치며 동맹국들과의 군사 협력을 강화하고, 중국에 대한 경제적 디커플링 정책을 추진했다. 미얀마 군부 쿠데타, 필리핀 민병대 내전, 아프가니스탄 무정부화 등의 사태는 이 지역이 협력보다 충돌의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지표였다.

 

이제 아시아는 다자협력의 이상을 상실하고 있다. ASEAN은 미얀마 사태에서 사실상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고, 남중국해 갈등에서는 회원국 간 내부분열을 드러냈다. 경제적 상호의존이 전쟁 억제에 기여할 것이라는 믿음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크게 흔들렸다. 역사적 감정과 민족주의는 다시 동원되고 있으며, 각국은 협력보다는 진영 선택과 안보 블록화에 나서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분명한 교훈을 제시한다. 민주주의 없는 평화는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의 존재감이 부상한다. 2024년 12월, 한국은 헌정 사상 최대의 정치적 위기였던 12.3 비상계엄 사태를 경험했다. 당시 일부 정치세력과 군 내부가 결탁하여 계엄령을 통해 헌정질서를 무너뜨리려 했고, 야당 인사, 언론, 시민사회는 그 표적이 되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무너지지 않았다. 시민들은 촛불을 들었고, 언론은 침묵하지 않았으며, 사법부와 입법부는 헌법적 절차를 통해 이를 저지했다. 민주주의는 위기 앞에서도 스스로를 복원해냈고, 헌법의 방어력이 증명되었다.

 

내란 극복한 한국의 경험은 퍼지고 나누어져야 한다

 

한국이 자칫 군국주의 국가로 회귀할 뻔한 이 사건은 단지 국내 정치의 위기 극복을 넘어, 아시아 전체에 던지는 메시지다. 민주주의는 취약하지만 무너지지 않는다. 오히려 위기 속에서 더욱 단단해질 수 있으며, 그 중심에는 시민이 존재한다. 오늘날 아시아의 민주주의는 수세에 몰려 있다. 권위주의가 전쟁을 낳고, 전쟁이 다시 권위주의를 강화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이 가운데 한국은 새로운 역할을 요청받는다.

 

그것은 단지 전쟁 억제의 군사력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문화를 수출하고 제도를 공유하며 시민의식을 확산시키는 역할이다. 민주주의는 결코 군사적으로 수출될 수는 없지만, 경험과 사례, 제도와 문화로는 확산될 수 있다. 한국의 경험은 단지 한 나라의 정치적 성공이 아니라, 이 지역에서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실증적 증거다. 아시아의 미래는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

 

한국은 이제 아시아의 희망이자 이정표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통해 위기를 이겨냈다면, 이제는 그것을 나누고 확산시켜야 할 때다. 한국은 민주주의의 발화점이 되어야 한다. 다시 그려질 아시아의 지도에는 전쟁의 선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선이 그어져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책무이고, 시대의 요청이다.                    < 김종대  국방전문가, 전 국회의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