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인 관계 급진전은 미국 일본에겐 뼈아픈 반전
중국과 동남아, 인도와의 관계 급진전
가속화하는 브릭스 통합, EU와 일본의 접근
미국의 패권을 재확인하기 위한 트럼프 관세전쟁
오히려 세계의 ‘탈미국’ 행보 가속
대미 의존 버리고 새로운 시장, 새로운 동맹 찾기

‘트럼프 관세’가 세계무역기구(WTO)를 중심으로 한 기존 자유무역체제를 해체하고 다시 미국 일극의 패권적 지배질서를 되찾게 해 줄 것이라고 도널드 트럼프와 그의 지지세력들은 확신했지만 현실은 그 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트럼프 ‘관세전쟁’의 희생자들은 대응책을 모색하며 피해를 떨쳐 버리고 있고, 그 최대 수혜자(biggest winner)는 중국이라고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일 기사(Trump’s trade victims are shrugging off his attacks-And China is gaining in the process)에서 지적했다. 트럼프 관세전쟁의 제1 표적이 중국이었으나, 역설적이게도 그것이 오히려 중국을 도와주고 있다는 얘기다.
트럼프주의자들이 처음부터 의도한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트럼프 관세전쟁의 공격 포화는 주로 캐나다, 멕시코, EU 등 전통적인 친미국가들과 한국 일본 태국 등 미국 동맹국들을 향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한국 일본 베트남 태국 등의 동아시아와 멕시코 인도 브라질 등의 브릭스(BRICS)에 십자포화를 쏟아붓고 있다. 중국은 그 양쪽 모두에 속해 있으나, 트럼프 관세전쟁은 정작 중국을 그 최대 수혜자로 만드는 아이러니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패권을 재확인하기 위한 트럼프 관세전쟁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미국 무역대표부(USTR) 제이미슨 그리어 대표가 “트럼프 라운드”라고 부르는 트럼프 관세협상은 미국의 패권(American primacy)을 재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트럼프 관세의 창도자들 중 한 사람인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선임고문은 미국이 세계무역을 어떻게 자기 맘대로 휘두를 수 있는지를 보여 준 트럼프가 노벨 경제학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주장했다. 농담이 아니라면, 거의 자아도취적 착각에 가까워 보인다. 그들은 미국에게 막대한 무역적자를 안기고 있는 자유무역체제를 허물기만 하면 미국이 누렸던 패권적 지위를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는 듯하다.
오히려 세계의 ‘탈미국’ 행보 가속
하지만 트럼프가 관세전쟁을 시작한 지 6개월쯤 지난 지금, 미국의 그런 행동은 오히려 세계가 미국으로부터 멀어지는 ‘탈미국’ 행보를 가속시키고 있다는 것을 점점 더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미국이 그들의 뜻과는 반대로 오히려 세계의 중심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미국은 21세기 초에 세계무역에서 전 세계 수입(imports)의 5분의 1을 차지했으나, 지금은 8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추세라면 앞으로 수축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질 것이다.
각국은 미국시장에 대한 접근권을 확보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과 관세협상을 체결할 수밖에 없었으나, 그 와중에도 다른 대안을 찾았다. 이코노미스트가 그런 움직임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얘기로 인용한 것은 어느 한국 관리(one South Korean official)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첫 번째 단계는 미국에 양보하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다른 곳을 찾는 것이다.”

미국시장 의존 버리고 더 나은 대안 찾기
미국이 아닌 새로운 시장 찾기에 나선 국가들의 움직임들을 예시하면서, 이코노미스트는 한국과 싱가포르의 경우 실제로 남아시아와 중동, 멕시코에서 기회를 찾기 위해 중소기업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고 썼다.
각국은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일부는 정부 보조금과 보호무역주의로 자국 기업들을 지원하고 있고, 어떤 정부들은 한국과 싱가포르처럼 새로운 시장을 찾고 있다. 또 다른 나라들은 대담하게도 미국의 영향력에 맞서기 위한 새로운 동맹을 구축하고 있다.
세계에는 미국의 패권에 복종하거나 그것이 무너진 뒤의 토머스 홉스적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펼쳐지는 혼란에 빠지는 양자택일의 선택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세계는 트럼프 관세전쟁에 대응하기 위해 자금 낭비와 시장 왜곡의 위험이 있음에도 세계 각국은 미국에 대한 복종이나 혼란 중의 양자택일이 아닌 나름의 단기 해결책과 장기적 대안들을 칮아가고 있다.
예컨대 브라질은 재정사정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세금 감면과 국가구매 보증을 포함한 60억 달러 규모의 신용 패키지를 발표했다. 캐나다도 목재산업 지원을 위해 10억 달러 규모의 비슷한 정책을 발표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무역부는 독점금지법을 피해가는 방식으로 운송비를 조율하고 인프라를 공동건설할 수 있도록 해 자국 수출업체들을 지원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또 다른 도구들도 동원하고 있다. 캐나다와 일본은 금속 수입에 새로운 관세를 부과했고, 인도는 ‘메이드 인 인디아’를 강화하고 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지난 15일 에너지에서부터 전투기까지 모든 분야의 자립을 강조했다. 이들 나라 중 트럼프 관세에 보복관세로 맞대응한 나라는 아직 많지 않지만, 미국처럼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는 나라들이 많아지면서 세계 모두의 비용을 증가시킬 위험성은 커지고 있다.
새로운 시장 찾기
그런 가운데 새로운 시장 찾기가 더 유망한 방안으로 떠오르고 있고, 각국 정부는 수출 자금과 인센티브로 자국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독려하고 있다. 앞서 얘기한 한국과 싱가포르 외에도 남아공 농부들은 중국으로 더 많은 농산물을 수출하고 있고, EU에도 감귤류 건강규정을 완화해 달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다.
갭이나 리바이스 같은 미국 기업들에 의존하던 레소토의 의류 생산업체들은 지역 바이어들에게로 눈을 돌려 아시아지역의 수요를 창출하려 하고 있다.
50%의 트럼프 관세를 맞은 브라질의 커피 수출업자들은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으로 수출을 늘리고 있으며, 이들 지역에 대한 판매량은 지난해에 5분의 3(60%)이나 증가했다. 그럼에도 브라질 커피 원두의 16%를 수입했던 미국시장을 대체하는 데에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새로운 동맹 찾기
트럼프 관세전쟁 이후 가장 주목할 움직임은 새로운 동맹찾기다. 트럼프 고관세 직격탄을 맞은 캐나다와 멕시코는 미국과 함께 미국-캐나다-멕시코협정(USMCA)을 체결했으나 파트너인 미국의 신뢰도가 트럼프 2기 집권 이후 크게 떨어지면서 (캐나다, 멕시코는) 더 가까워지고 있다. 다음 달에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멕시코를 방문해 공급망 회복, 항구간 무역, 에너지 및 인공지능 합작투자 등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내년의 USMCA 재검토를 앞두고 두 나라는 트럼프에 대항할 수 있는 더 나은 방안을 찾고 있다.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을 비롯한 11개 신흥 경제국들로 구성된 브릭스 국가들 다수가 트럼프의 관세전쟁의 표적이 됐다. 브라질과 인도는 50%의 관세폭탄을 맞았는데,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모디 인도 총리 등과 주로 전화를 통해 새로운 동맹 결집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룰라 총리는 모디 총리와 미국 은행들의 지배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디지털 결제 연계 방안을 협의했고, 나흘 뒤 시진핑 중국 주석과 브라질-중국 무역 심화 방안을 논의했다. 그 회담 뒤 시 주석은 브라질과의 관계가 “역사상 최고 수준”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관세전쟁 이후 가속화하는 브릭스 통합
브릭스 국가들은 무역에서 대미 의존을 극적으로 줄여가고 있다. 예컨대 인도 수출품 중 미국이 수입하는 것은 6분의 1, 브라질 수출품의 경우 7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에 거의 의존하지 않는 셈이다. 20년 전에는 브라질 수출품의 4분의 1이 미국시장에 갔다.
브라질, 인도뿐만 아니라 브릭스 국가들은 모두 미국보다 자기들끼리 더 많은 무역을 하고 있으며, 미국과의 거래보다 자기들끼리의 거래 비중이 더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말하자면 트럼프 관세전쟁 이후 브릭스의 통합이 가속화하고 있다. 태국과 베트남을 비롯한 12개국 이상이 브릭스의 파트너국 지위를 추구하거나 가입을 신청했다.
동맹 찾기의 최대 수혜자는 중국
이 새로운 동맹찾기의 가장 큰 수혜자(biggest winner)는 중국일 가능성이 높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중국의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남반구 저개발국 또는 신흥 경제국)에 대한 수출은 2015년 이후 2배로 늘었다.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중동 등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중국의 수출은 이들 지역에 대한 미국과 서유럽의 수출 합계보다 더 많다. 트럼프 관세전쟁은 이런 역전을 더욱 두드러지게 만들고 있다. 올해 7월 중국의 대미 수출은 급감했지만 전체 수출은 지난해보다 7% 증가했다. 그에 앞서 6월에 시 주석은 아프리카산 수입품에 대해 거의 모든 관세를 없애겠다고 약속했고, 라틴 아메리카와 동남아 정상들과의 회담에 참석했다.

중국과 동남아, 인도와의 관계 급진전
전 세계 인구의 4분의 1, GDP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과 동남아국가연합(ASEAN)은 올해 말까지를 목표로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인도와의 관계도 급속도로 개선되고 있다. 인도 기업들은 중국 기업들과 전기차, 베터리 분야에서 공동 프로젝트를 모색하고 있다. 8월 31일에는 모디 총리가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7년 만에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지난 19일 인도를 방문한 왕이 중국 외교부장 겸 당 중앙정치국원과 회담한 뒤 모디 총리는 “우리 관계는 상호 이익과 민감한 부분을 존중하는 자세로 착실하게 개선돼 왔다”며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하고 건설적인 양국 관계는 지역 및 세계평화와 번영에 크게 공헌할 것”이라는 글을 SNS에 올렸다. 그에 앞서 왕이 부장을 만난 수브라마냠 자이샹카르 인도 외교부장은 “양국관계는 곤란한 시기를 경험했으나 지금은 전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인 관계 급진전은 미국 일본에겐 뼈아픈 반전
중국과 인도는 2020년 유혈 국경충돌 이후 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됐다. 인도는 그 뒤 미국 호주 일본과 안보협력기구 ‘쿼드’(QUAD)를 결성했고, 미국 일본 등과 안보 및 경제 분야 협력을 강화해 왔다.
이런 움직임 속에서도 인도 내부에서는 주요 교역상대국인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요구하는 소리들이 커지고 있었고, 지난해 10월에 시진핑 주석과 모디 총리가 5년만에 만나 회담한 뒤 양국관계가 ‘재출발’했다는 평가들이 있었다.
러시아산 석유 구입과 농산물 시장 개방 반대를 이유로 인도에 50%의 관세를 때린 트럼프의 관세전쟁은 인도의 대중국 접근과 탈미국 움직임을 가속시켰다.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영향력이 큰 인도의 이런 방향 선회가 중국에게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반대로 이는 경제 군사적으로 영향력을 키워 온 중국 견제를 위해 중-인 국경분쟁 발발 이후 인도에 대한 접근 노력을 강화해 온 미국과 일본 등에겐 뼈아픈 반전이다.

EU와 일본의 접근
EU와 일본의 접근도 주목할 만하다. 7월 하순에 일본을 방문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집행위원장 등은 이시바 시게루 총리 등 일본 수뇌부와 함께 트럼프 관세정책에 맞서 자유무역질서를 강화하기 위해 외교, 경제 장관들간의 대화틀을 만들어 무역과 경제안보 등에 관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EU와 일본의 이런 정상급 회담은 트럼프 2기 집권 이후 처음 열린 것이다. 이들은 구체적으로 우주, 바이오, 디지털, 방위(국방) 분야 산업경쟁력을 강화하고 IT제품 제조에 필수적인 희토류의 안정적 조달방안도 함께 모색하기로 했다.(<마이니치신문> 8월 17일)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일본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12개 가맹국과 EU의 제휴 강화방안 모색이다. TPP는 트럼프 1기 정권이 출범한 2017년 1월 미국이 돌연 탈퇴했으나 지난해에 영국이 가입했으며 캐나다, 멕시코, 호주, 칠레에 베트남,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국가연합 주요국들도 가담해 가입국이 12개국으로 늘었다. 한국은 아직 가입하지 않고 있다.
TPP와 EU 가입국들을 합하면 인구가 10억이 넘고 세계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는 큰 규모다. 미중 등 ‘슈퍼 파워’가 아닌 이들 ‘미들 파워’들의 결집은 트럼프 정권이 선도하고 있는 보호무역주의에 대항하는 유의미한 움직임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전쟁’을 벌인 것은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와 백악관 고문 피터 나바로의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미국이 계속 세계무역의 중심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금 세상은 그들의 뜻대로 굴러갈 것 같지 않다. < 한승동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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