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완전정복]

통일교, 불투명한 회계 처리 탓 고위 간부들 횡령 등 사건 매번 몸살

 

 

 
2022년 6월29일(현지시각) 스페인 마드리드 만다린 오리엔탈 리츠호텔에서 열린 동포 만찬간담회에서 박수를 치는 김건희 여사와 서울 용산구 통일교 본부 모습. 연합
 

“윤영호(통일교 전 세계본부장)가 통일교에서 이쪽 정권에 가까운 사람들을 좀 만나는 역할을 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잘못 골라서 저를 고른 것입니다. 제가 힘 있는 줄 알고.”

 

통일교 쪽에서 김건희 여사에게 줄 ‘그라프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대신 받아 전달했던 ‘건진법사’ 전성배씨는 지난 1월5일 서울남부지검 조사에서 이렇게 진술했다. 김건희 여사와의 ’통로’ 중 하나로 전씨를 잡았던 윤영호 전 본부장은 전씨에게 ‘고문료’라며 생활비 명목으로 수백만원의 현금을 건넸다고도 한다. 윤 전 본부장은 2023년 12월부터 1년여간 전씨와 336차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고 이런 내용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 모두 포착됐다. 윤석열 정부와 통일교의 ‘정교 유착’ 의혹은 이렇게 수면 위로 드러났다.

 

서울남부지검이 윤영호 전 본부장을 압수수색했던 지난해 12월부터 민중기 특별검사팀의 수사가 이뤄지고 있는 지금까지, 통일교와 윤석열 정부의 관계는 ‘그라프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샤넬 가방, 현금 뭉치(관봉권)와 ‘왕(王) 노리개’ 등의 금품으로 얼룩졌다. 교세를 확장하기 위한 로비 의혹의 단면이 드러나면서 뒤늦게나마 통일교 내부에서도 불투명한 재정 집행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현금 집행은 초극비…“구두 보고 사안”

 

검찰과 특검의 수사 내용, 그리고 통일교 내부 관계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통일교에선 통상 현금이 사용됐고, 집행은 구두 보고로 비밀스럽게 이뤄졌다. 윤영호 전 본부장의 비서실장 역할을 한 서아무개씨에 대한 통일교의 업무상 횡령 등 고소장을 보면, 서씨는 2023년 7월13일 통일교 총재비서실의 감사를 받으며 ‘헌금을 받거나 공금을 현금으로 전달받게 되면 공식적으로 누구에게 보고서를 작성해 보고하나’라는 질문에 “보고서를 쓴 적이 없고 구두로 보고한다”고 답했다. “보안 때문에 기록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도 했다. 총괄 조직인 세계본부 내부에서도 현금 관련 보고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는 취지다.

 

특히 ‘현금을 전달받고 이를 본부에 전달하지 않은 경우가 있는지’를 물었을 땐 그는 “한학자 총재님께서 특정 지도자를 지정해서 현금을 주실 때 그런 경우가 있다”고 했다. “대륙본부에서 ‘귀빈’에게 (현금을) 전달하라고 하는 경우에도 (본부에) 신고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경우엔 윤영호 전 본부장의 승인을 받아 처리하고, 현금은 “개인적으로 며칠간 장롱에 보관한다”고 설명했다.

 

수십억의 현금을 로비 등에 활용할 때 사용처를 숨겨 처리한 의혹도 있다. 통일교 총재 일가의 재산 분쟁과 관련한 형사 사건을 담당했던 한 변호사에 대한 통일교 쪽의 고소장 등을 살펴보면, 당시 통일교는 이 변호사한테 속았다고 주장하며 “(변호사 등이) ‘수사관, 검사, 판사 등 로비에 사용할 돈이 필요하다’며 현금을 요구”했고 실제로 지급했다고 했다. 사건 해결을 위한 판·검사 로비 자금으로 현금 수억원을 건넸다는 실토였다. 다만 이를 위한 현금을 조달할 때 들었던 명목은 ‘특별지원금’이었다. 한겨레가 확보한 관련 현금 영수증에도 명목은 ‘○○○(소송) 관련된 특별지원금 수령건’이었고 세부 내역으로 금액 정도만 기재돼 있었다. 이런 사실이 외부로 알려져 통일교가 되레 뇌물공여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게 됐을 때 이 문건은 고소장 내용과 달리 ‘로비자금과 무관하다’는 주장의 근거로 활용했고, 결국 ‘증거 불충분’으로 피해갔다.

 

추적 어려운 현금 뭉치

 

윤영호 전 본부장이 통일교 교단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윤석열 정부에 청탁한 방식도 이와 유사하다. 윤 전 본부장의 아내이자 세계본부 재정국장이었던 이아무개씨는 김 여사에게 전달할 6220만원 ‘그라프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2024년 7월29일 전액 상품권으로 구매했다. 통일교가 국내외 귀빈에게 수천만원의 명품 선물을 하면서 현금이 사용된 경위 등을 보고서로 남기지도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씨는 두달 뒤인 2022년 9월23일에야 그라프 다이아몬드 목걸이 구입을 ‘선교물품구매’ 명목으로 회계 처리했다. 김 여사에게 전달한 것으로 보이는 802만·1271만원 ‘샤넬’ 가방 역시 이씨가 개인카드로 샤넬 매장에서 구매한 뒤 사후에 회계 처리했다.

 

뇌물성 청탁을 한 당사자가 인정하는데도, 증빙이 어려운 현금의 특성 탓에 진술이 극명히 엇갈리는 점도 특징적이다. 윤 전 본부장은 윤석열 정부의 실세이자 ‘윤핵관’으로 불렸던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에겐 ‘관봉권’ 형태의 현금 1억원을 건넨 사실을 대체로 인정하고 있다. 당시 1억원은 5000만원씩 각자 다른 색의 비단으로 포장됐고 노리개가 달려있었으며 이 중 하나에는 임금을 뜻하는 ‘왕(王)자’ 자수가 있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통일교 내부에선 당시 전달된 자금 일부가 대선 후보였던 윤 전 대통령의 몫으로 준비된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권 의원은 1억원의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통일교는 불투명한 회계 처리 탓에 고위 간부들의 횡령 등 사건으로 매번 몸살을 앓는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고가의 금품과 불법 정치자금 로비 역시 윤 전 본부장이 만들어 둔 비자금에서 나왔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특검팀은 윤 전 본부장 부인 이씨가 찍어둔 현금 사진과 목걸이·가방 영수증 등의 정황 증거를 통해 혐의 입증에 매진하고 있지만, 현금 추적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통일교 내부 “재정·운영 투명성 확보하라” 성토

 

한 총재가 지난달 23일 새벽 정치자금법·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뿐만 아니라, 업무상 횡령 혐의로도 구속되며 내부에선 성토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한 총재가 구속된 당일 통일교 전국 교구장들은 사상 처음으로 공동 입장문을 내고 현 지도부의 사죄와 사퇴를 촉구하는 동시에 “공적 재정과 행정의 불투명성을 바로 잡기 위해 독립적 감사위원회를 설치해 투명한 운영 체제를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50여명의 청년층 간부들도 지도부 쪽에 각종 판공비와 연봉 테이블, 수련원 비용 사용처 등까지 공개하라고 주장했다.

 

통일교 쪽은 윤영호 전 본부장의 개인 일탈이라는 점을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다. 통일교는 지난 21일 “당시 세계본부는 가정연합(통일교)에서 가장 큰 권한을 가진 조직으로, 세계본부장은 예산과 자금을 사실상 독자적으로 다뤘으며 재무 책임자 자리까지 그의 배우자가 맡았다”고 해명했다.                                          < 김가윤 기자 >

 

‘김건희 특검’ 사무실에 일본 기자들 ‘북적’…왜? 

 

 

 
윤석열 정권과 통일교가 연관된 ‘정교유착 국정농단’ 의혹을 받는 한학자 통일교 총재가 2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연합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을 수사하는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지난 7월2일 출범 뒤 매일 오후 기자들을 대상으로 정례 브리핑을 한다. 공보 담당 특검보가 주요 수사 내용 등을 설명하고, 기자들 질문에 답하는 자리다. 브리핑룸을 메운 언론사는 당연히 국내 매체들이었다. 그런데 특검팀이 통일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정교유착’ 수사 과정에서 의혹의 정점인 한학자 총재를 본격 겨누기 시작하면서, 브리핑룸에 일본 언론사 기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어떻게 된 영문일까.

 

 

지난달 17일 일본 교도통신 등 외신 기자들이 서울 종로구 케이티(KT)광화문빌딩 웨스트 지하 1층에 마련된 브리핑룸을 찾았다. 이날은 한 총재가 특검팀 소환 요구에 세 차례 불응한 뒤 처음 조사를 받으러 나온 날이다. 김 여사와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에게 각종 청탁과 함께 금품을 전달한 혐의로 한 총재가 구속된 지난달 23일엔 아사히신문·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주요 일간지 기자들이 줄지어 특검팀 브리핑룸을 찾았다. 이들은 △한 총재가 진술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는지 △한 총재 혐의는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구속 전 피의자심문에서 한 총재의 최후진술은 무엇이었는지 △한 총재가 독방에 수감됐는지 등 한 총재와 관련한 질문을 이어가며 열띤 취재 열기를 보였다. 지난달 23일 새벽 일본 현지 언론들은 한 총재 구속 사실을 속보로 보도하기도 했다.

 

일본 언론들이 이웃 나라 특검팀의 통일교 수사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는 ‘통일교-자민당’ 유착 의혹이 정치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일본 내 정세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달 23일 특검팀 브리핑에 참석한 한 일본 매체 기자는 한겨레에 “일본에선 통일교 비자금 문제 때문에 자민당 자체가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다”며 “한국이 통일교 본산이고, 한 총재를 둘러싼 통일교 수사 향방에 따라 일본 정치권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주의 깊게 취재하고 있다”고 말했다.

 

만약 특검팀의 통일교 수사 과정에서 일본 정치권이 연루된 정황이 조금이라도 나오면 그 파급력은 상당할 수 있다는 게 일본 기자들 설명이다. 일본에선 2023년 7월 아베 신조 전 총리를 사제총으로 저격해 살해한 야마가미 데쓰야가 통일교에 대한 원한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뒤, 자민당 일부 의원들과 통일교 유착 의혹이 큰 정치 문제로 비화했다. 이후 도쿄지방법원은 지난해 통일교의 불법 헌금 모금 등을 이유로 종교법인 해산을 명령했고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또 다른 일본 매체 기자는 “통일교의 영향력은 한국보다 일본이 훨씬 더 크다. 이번 특검팀의 통일교 수사에서 비자금 등 일본 내 통일교 영향력을 드러낼 만한 정황이 드러날지 관심 있게 지켜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선 매년 3800억원이 넘는 통일교 헌금 수익이 한국으로 송금돼 사용되고 있을 거라는 의혹이 일고 있다. 통일교를 탈퇴한 일본인 신도 200여명은 통일교를 상대로 60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고, 최근엔 통일교 신자 자녀들이 정신적 피해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3일 일본에서 통일교 피해자를 지원하는 전국통일교회피해대책변호단은 “위법 활동 배후에 있는 통일교의 풍부한 자금은 일본에서 송금된 거액의 돈이 원천인 것으로 보인다”며 “일본 피해자에게 돌아가야 할 돈이 한국 내 통일교 영향력 확대를 위해 사용되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주장했다.          < 박지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