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미군이 기습적인 군사 작전으로 체포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근황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공개했다. ⓒ 트루스소셜
2026년 새해 벽두, 세계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미국 특수부대가 남미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기습 연행하여 미국으로 이송한 것이다. 주권국가의 현직 국가원수를 해당국 동의 없이 무력으로 체포한 이번 사건은 국제법 체제에 거대한 균열을 낸 상징적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물론 마두로 정권의 권위주의와 부패, 그가 연루된 범죄 혐의에 대한 비판은 오래되었다. 그러나 귀책 사유가 무엇이든, 타국 정상을 일방적으로 납치하는 행위는 국제법상 주권 침해이자 유엔 헌장의 무력사용 금지 조항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조치다.
국제법을 존중하는 척했던 러시아와 국제법 자체를 경시하는 미국의 대비
문제의 본질은 미국이 이 엄청난 결정을 내리면서도 과거처럼 국제법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조차 거의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러시아처럼 노골적인 권위주의 국가조차 국제법의 언어를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다. 푸틴 대통령은 2022년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을 감행하면서도, 유엔 헌장 51조의 자위권과 자국민 보호, 심지어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계 주민에 대한 제노사이드(Genocide)를 막기 위한 조치라는 법적 명분을 내세웠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객관적 사실이나 국제법 해석상 설득력이 없었고 법률가들의 검증을 견디지 못하는 궤변이었다. 그럼에도 러시아 정부는 자국 행위를 국제법 용어로 포장하며 최소한 표면적인 합법성이라도 주장하려 했다. 국제법을 위반하면서도 동시에 국제법의 틀 안에서 자기 정당화를 시도하는 이러한 아이러니는, 역설적이게도 침략국조차 법률 용어로 자기 행동을 설명해야 할 필요를 느꼈음을 보여준다.
반면 자칭 자유민주 진영의 리더인 미국의 최근 행보에서는 그런 최소한의 법적 수사(rhetoric)조차 찾기 어렵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25년 복귀 이후 국제 규범을 경시하는 태도를 노골화했다. 그는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주민을 강제 이주시키는 방안을 공공연히 거론하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영토 합병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듯한 입장을 보였다. 심지어 그린란드와 캐나다 일부를 점령하거나 파나마 운하를 탈취하는 시나리오까지 암시함으로써, 명백한 불법 행위를 고려 가능한 옵션으로 격하시켜 국제 규범의 금기를 희석시켰다.
이러한 언행들이 세계 질서를 법의 지배(Rule of Law)에서 힘의 지배로 회귀시킬 위험이 있다는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었고, 현실로 나타난 미국의 행동은 정확히 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2025년 이후 카리브해와 태평양 일대에서 마약 카르텔 간부를 대상으로 한 드론 공습, 그리고 마침내 2026년 1월 3일 주권국 정상에 대한 직접적인 납치까지, 미국은 넘지 말아야 할 금단의 선을 넘어섰다.
과거 미국은 군사행동 시, 때로 억지스럽더라도 유엔 헌장상 자위권이나 인도적 개입 등 근거를 찾으려 애써왔다. 1989년 파나마 침공이나 2003년 이라크 전쟁 때도 나름의 논리를 동원했다. 그러나 이번 마두로 체포와 같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 행위에 대해 미국 정부는 별다른 법적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이는 규범에 구애받을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다는 태도다. 국제법을 위반하면서도 존중하는 척했던 러시아와, 아예 국제법 자체를 경시하는 미국의 대비는 오늘날 국제 규범 지형의 역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잘못 적용된 논리라도 내세우는 행위는 국제법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반면 이번처럼 아예 무시해버리는 태도는 자신이 남들에게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기대 자체를 내포하기에 훨씬 더 위험하다.
자유민주국가들이 규범을 저버리고 국제기구가 침묵하는 상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하기 위한 '확고한 결의' 작전 진행 상황을 플로리다주 팜비치에 위치한 마러라고 자택에서 존 랫클리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 등과 함께 지켜보고 있다. ⓒ EPA 연합
국제 규범이 이처럼 흔들릴 때, 그 파장은 단순한 조약 위반 사례를 넘어선다. 특히 국제 규범을 설계하고 지지해온 자유민주국가들 스스로 규범을 경시하거나 저버릴 때 질서는 근본부터 흔들리게 된다. 이는 역사가 입증한 교훈이다.
1930년대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 체제 붕괴는 표면적으로 이탈리아, 일본, 독일 등 권위주의 국가들의 침략이 원인이었으나, 그 이면에는 영국과 프랑스 같은 민주국들의 책임 방기와 이중 잣대가 자리했다. 1935년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공 당시, 영국과 프랑스는 이를 제어하기는커녕 묵인함으로써 국제연맹의 권위를 스스로 실추시켰다. 규범 붕괴 조짐 앞에서 지도자들은 단호히 대처하지 못했고, 그 결과 히틀러의 독일은 오스트리아 합병, 폴란드 침공으로 폭주하며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파국을 초래했다. 당시 자유 진영 지도자들조차 식민지 이익을 위해 원칙을 선택적으로 적용했던 위선이 규범 수호 의지를 약화시킨 것이다.
오늘날 양상도 이와 섬뜩할 정도로 닮아 있다. 서방 민주국가들은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강조하면서도, 자국이나 우방에 불리하면 국제법을 무시하거나 편법으로 피해왔다. 미국은 국제형사재판소(ICC) 관할을 부정하고 제재를 가하거나 유엔 인권기구를 탈퇴하는 등 규범 체제를 경시해왔다. 특히 2023년 가자지구 전쟁에서 수천 명의 민간인이 희생될 때 일부 서방 지도자들이 보인 방조적 태도는 전후 국제질서의 막이 내리는 신호탄과 같았다.
더욱 통탄스러운 현실은 국제연합(UN), 그 중에서도 세계 평화와 안전의 일차적 책임을 지닌 안전보장이사회의 처참한 몰골이다. 오늘날 안보리는 사실상 뇌사 상태에 빠져 있다. 국제법 위반을 제재하는 수단이 아니라, 강대국과 그 동맹들의 불법 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정치적 방패로 전락했다. 헌장이 부여한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는 유엔의 현주소는, 1930년대 국제연맹의 무능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을 때, 힘을 앞세운 국가들은 더욱 대담해지게 마련이다.
자유민주국가들이 규범을 저버리고 국제기구가 침묵하는 상황은 독재국가의 일탈보다 훨씬 근본적인 위험을 초래한다. 규범을 설계하고 수호자를 자임했던 이들이 규칙을 어길 때, 규칙 자체의 정당성이 무너지고 지지 기반이 붕괴되기 때문이다. 규범 위반 자체보다 심각한 것은 규범을 지킬 의지의 소멸이다.
인류에게 국제법보다 더 나은 언어와 규칙은 아직 없다

▲3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위대가 마켓 스트리트를 따라 유엔 광장까지 행진하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군의 군사 행동에 반대하고 있다. ⓒ EPA 연합
그렇다면 이 혼란 속에서 국제법은 사망 선고를 받은 것인가? 혹자는 강대국이 제 마음대로 행동하는 현실 앞에서 조약 따위는 종이 호랑이에 불과하다고 자조한다. 국제법학자로서 깊은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그러나 현실주의와 자유주의의 이론적 논의를 넘어서, 우리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사람이 이렇게 많이 죽어 나가는 사태를 법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혹은 최소한의 절차라도 갖추어야 한다는 '레드 라인은 존재해야 하지 않는가?"
그로티우스(Grotius) 시기부터 전쟁법이 국제법의 핵심으로 다루어진 이유는, 전쟁이 일반 살인과 다르지 않다면 야만과 다를 바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국제인도법은 전쟁을 허용하려고 태어난 법이 아니다. 전쟁이라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허용될 수 없는 잔혹함의 하한선을 그어 인간성을 보존하기 위한 장치다. 인권 관점에서 국제법의 존재 이유는 이상주의적 평화의 약속이 아니다. 오히려 폭력의 비용을 올리고, 정당화의 부담을 키우며, 사후 책임 추궁의 경로를 남기는 냉혹한 현실적 필요성에 있다.
역사는 위기와 재건의 연속이었다. 국제연맹의 실패 위에서 유엔이 출범했고, 뉘른베르크의 교훈 위에서 제네바 협약과 인권 체제가 섰으며, 냉전 후 학살을 딛고 국제형사재판소(ICC)가 탄생했다. 이 모든 과정은 국제법이 죽은 법이 아니라, 비극을 통해 학습하고 진화한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지금 국제법 체제가 시험대에 올라 있다면, 독재자들의 도전 때문만이 아니라 자유 세계의 규범적 리더십 부재와 유엔 시스템의 마비 때문이다. 그러나 국제법을 포기하는 길은 해답이 될 수 없다. 국제법은 단지 규칙 집합이 아니라, 국제사회의 공통 언어이자 최소한의 윤리적 기준이다. 심지어 북한이나 하마스 같은 행위자들조차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국제법을 거론한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국제법의 규범력이 완전히 죽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국제법은 완벽하지 않다. 강대국에겐 관대하고 약소국에겐 엄격하다는 비판도 뼈아픈 진실이다. 하지만 국제법이 없었다면, 우리는 침략을 침략이라 부를 수 없고, 전쟁범죄를 범죄라 규탄할 기준조차 갖지 못했을 것이다. 국제법 없는 세계는 오직 힘의 논리와 약육강식만이 지배하는 야만의 세계일 뿐이다.
최근의 혼란 앞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체념이 아니라, 법적 금지선과 절차적 정당성을 다시금 분명히 하는 결단이다. 특히 작동 불능에 빠진 유엔 안보리를 대신해서라도 각 국가와 시민사회는 법의 레드 라인을 재확인해야 한다. 민간인 학살 금지, 영토 강제병합 불인정, 주권 존중과 같은 기본 원칙은 흥정의 대상이 아니다. 1945년 유엔 헌장의 약속은 지금 숨이 가쁘고 상처 입었지만, 여전히 유효하다. 인류에게 국제법보다 더 나은 언어와 규칙은 아직 없다. 국제법의 생명을 지키는 일이야말로, 난폭한 힘이 난무하는 분열된 세계에서 인류의 존엄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 백범석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미국 백악관의 엑스(옛 트위터) 긴급대응 계정은 3일(현지시간) 뉴욕에 있는 마약단속국(DEA) 사무실에서 구금 상태로 복도를 걸어가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영상을 공개했다. ⓒ 백악관 긴급대응 엑스 계정 게시물
2026년 1월 3일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침공하여 베네수엘라 현 대통령인 니콜라스 마두로를 체포하는 사태가 발발했다.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주도하던 초강대국 미국이 국제규범 등을 모조리 무시하며 자국법에 따라 타국의 대통령을 '납치'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예상치도 못한 전격적인 기습에 베네수엘라 당국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으며 채 2~3시간만에 마두로 대통령이 미군 특수부대에 의해 납치되어 미국으로 호송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민주적 정당성이 약한 마두로 정권이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
이 충격적인 사태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번 사태는 미국의 제재가 얼마나 효과적이지 못한지를 잘 드러내는 사례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베네수엘라는 오랫동안 이중권력 상태에 놓여 있었다. 선거부정 등을 이유로 후안 과이도(Juan Guaidó) 국회 의장이 베네수엘라 임시 대통령직을 맡겠다고 선언하고 유럽, 미국 등의 친서방 세력 50여 개국이 그걸 승인한 순간부터 그랬다.
분명 마두로 정부는 선출 과정에서 문제가 많았기에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대통령 연임에 성공했지만 야당후보들을 탄압했을 뿐만 아니라 친(親)마두로 성향의 의원들이 다수 포진된 초헌법적 기구인 '제헌의회'가 선거를 주관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과이도를 정부 수반으로 인정한 뒤에 미국은 거듭해서 베네수엘라를 제재했고 베네수엘라는 달러 수입의 대략 98%에 해당하는 수입원인 원유수출길을 상실했다. 안그래도 파탄으로 내몰리고 있던 베네수엘라 경제는 파국에 직면했다. 미국은 과이도 임시정부를 앞세워서 마두로 정권을 무너뜨리고 군부를 비롯한 다른 국가기관들의 이반을 유도하고자 했지만 실패했다. 이미 2020년 4월 일부 망명자들이 주도한 무장반란은, 쿠바 사태 때와 마찬가지로 처참하게 실패했고 마두로 정부는 제재 이전보다 오히려 더 안정적인 권력유지를 해냈다.
결국 2022년 임시정부 해산이 결정되면서 후안 과이도는 임시대통령에서 물러났을 뿐만 아니라 국회의장직에서도 물러나면서 정치적으로 몰락했다. 석유공급지로서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서방과 척을 지자 바이든 행정부는 서둘러 베네수엘라와의 관계개선 의지를 표명했고 그것이 마두로 정권에 힘을 실어줬던 것이다. 그렇게 2023년 베네수엘라 임시정부가 완전히 소멸하면서 2026년 현재까지 마두로 정권이 유지될 수 있었다.
후안 과이도 임시정부로 대표되는 베네수엘라 내의 반체제 세력과 미국 및 서방세력의 압박을 통한 '평화적'인 정권이양은 실패로 끝났고 마두로 정권의 권력은 더욱 공고해졌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자 한 게 바로 오늘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군사적 개입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를 보면 미국은 외과수술과도 같은 정밀 타격을 통해 마두로 정권의 수뇌부를 제거하고, 정권 내에서의 권력변동에 따른 협력자의 등장을 꾀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 작년에 있었던 이란 핵시설 타격의 연장으로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다시 말해서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 핵시설 타격, 베네수엘라 참수작전 등과 같은 외과수술적인 군사적 개입을 통해 변화를 유도하고, 그 과정에서 나타난 변수에 기초해 협상을 이어가는 방식을 선호한다.
'다른 수단에 의한 전쟁' 제재의 효과가 약해진 결과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는 마두로의 '마피아 자본주의'로 후퇴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지난 12월 1일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열린 지역사회 기반 단체들의 취임 선서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마두로 정부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는 가운데 열린 행사다. ⓒ 로이터/연합뉴스관련사진보기
이와 같은 방식의 군사적 개입을 왜 반복해서 시도하는 것일까.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협상 스타일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미국의 한계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2010년대 중반 이후부터 미국은 광범위하게, 특히 러시아, 중국 등에 대해 제재를 남발해왔다.
미국의 제재 외교를 분석한 일본의 스기타 히로키는 <미국의 제재 외교>라는 책에서 제재 외교가 등장하게 된 이유로 전쟁에 반대하는 국민여론, 핵무기 등으로 대표되는 압도적인 살상력 등으로 인해 더 이상 대규모의 지상전을 치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라 지적한다. 전쟁이 불가능해진 상황이지만 갈등과 분쟁은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 바로 '제재'이다.
스기타는 이런 맥락에서 제재를 "다른 수단에 의한 전쟁"이라 지적한다. 미국은 전쟁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제재라는 다른 수단을 통해 계속해서 전쟁을 해왔던 것이다.
문제는 제재의 효과가 점차 약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러시아, 중국, 베네수엘라 등의 국가들에 광범위한 제재를 가해왔지만 그 효과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왜 그럴까. 베네수엘라를 예시로 설명하자면 제재의 목적과 효과에 대한 적절한 고려 없는 '남발' 때문이다.
베네수엘라는 미국의 광범위한 제재 이전에 이미 경제가 파탄나고 있었기 때문에 제재로 인한 효과와 진행중이던 경제붕괴의 추세를 뚜렷하게 구별하기 어려웠다. 아마 대체로 효과도 크지 않았을 것이다. 2013년부터 2021년까지 베네수엘라의 1인당 GDP는 80% 이상 감소했지만 그 대부분은 제재가 이뤄지기 이전인, 2017년 이전에 발생한 것들이었다. 즉, 미국의 제재는 무너지는 경제에 가속도를 붙였을 뿐, 정권의 명줄을 끊는 결정적 변수는 되지 못했던 셈이다.
둘째로 제재는 상대방의 역량을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로 한 광범위한 경제제재는 중국의 경우에는 미국의 제재를 무력화시킬 여러 수단과 역량을 증진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러시아의 경우 최소한 그에 대비할 수 있는 기초체력을 갖추도록 유도하는 역효과를 불러왔다. 베네수엘라의 경우도 다르지 않아서 마두로 정권은 국내외의 압박을 계기로 새로운 권력기반을 창출하였다.
예컨대 마두로 정권은 초인플레이션으로 베네수엘라 통화체계가 붕괴된 상황에서 서둘러 국내외의 모든 교환체계를 '달러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비공식 달러화'라고 불리는 현상이 급격하게 퍼지면서 베네수엘라 전체 거래의 절반 이상이 미국 달러로 결제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역설적이지만 이러한 '비공식 달러화'는 기존의 국가통제 하에 놓여 있던 경제를 완전히 '자유화'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무역자유화와 비공식 달러화가 함께 이뤄지면서 민간의 수요에 맞게 어떠한 형태의 상품이든 공급될 수 있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한편에서는 국가의 권위주의적인 통제, 특히 마두로 개인의 사적인 지배연합으로 전락해가는 질적 하락이 이뤄지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달러화를 매개로 한 시장자유화에 힘입어 자본주의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마두로 정권은 경제위기를 맞이해 조용히 국유자산들을 매각하며 민영화했고 이 과정은 거의 대부분 비밀에 붙여졌다.
이렇듯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는 마두로의 '마피아 자본주의'로 후퇴했던 것이다. 이러한 후퇴에도 불구하고 마두로 정권은 살아남았다. 중국, 튀르키예, 시리아, 이란 등의 반미 성향의 국가들과의 경제적 관계를 강화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무역관계를 형성해나가면서 권위주의적 자본주의를 확장했다. 미국 등의 서방 세력의 압력 속에서 반(反)제국주의를 기치를 내걸고 국영부문을 '구조조정'하는 우경화된 정책들을 견지했던 것이다.
마두로 정권을 전복해야 할 이유가 무엇?… 우리의 시선은 '대만 해협'으로 향해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군 공습 이후 미 플로리다주 팜비치에 위치한 마러라고 관저에서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UPI 연합뉴스관련사진보기
그렇게 7년 간의 구조조정과 새로운 무역관계의 수립, 비공식 달러화를 매개로 한 자본주의의 발전, 군대의 사병화, 국가기구의 사조직화 등의 변화를 거쳐 마두로 정권은 2021년을 기점으로 베네수엘라 경제를 다시금 성장세로 돌렸으며 회복 중이기는 하지만 중남미 내에서 최고 수준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기에 이르렀다. 서방세력의 압박이 베네수엘라의 체제 성격을 바꿔놓았던 것이다.
이렇듯 제재의 효과가 낮아지자 미국으로서는 정밀한 외과수술적 타격이라는 군사적 개입의 '최소화'를 전제로 한 내부 변화의 유도를 꾀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마두로 정권을 트럼프 행정부가 군사적 수단을 활용하지 않고 타격해 전복시키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군사적 개입이 현실화된 건 이런 맥락이다. 이라크, 아프간 등의 대규모 군사개입의 실패가 경제제재의 남용으로 이어졌고, 그 제재의 효과가 줄어들자 다시금 '최소한'의 군사적 개입으로 선회한 것이다.
지금은 최소한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공언처럼 미국이 지상군을 주둔시키는, '대규모'의 군사개입이 현실화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전세계적 개입에서 지역적 개입으로 그 개입 범위를 축소시키면서 경제제재와 군사적 개입이라는 다양한 선택지를 활용하여 세력권을 확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문제는 제재의 무력화, 군사적 개입의 최소화 등의 '합리적'인 수단의 활용에도 불구하고 그 목표가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이 바로 지금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정권을 전복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혹자는 석유 자원의 확보 때문이라고 하고 트럼프 대통령 또한 미국의 석유기업들이 베네수엘라에 투자할 것이라 공언하지만 핑계에 가깝다. 베네수엘라 석유 시설들은 이미 노후화된 지가 오래라 미국이 제대로 수익을 내고자 한다면 상당한 기간, 상당한 정도의 투자를 이어가야 한다. 이는 곧 대규모의 지상군 주둔을 전제로 한다. 지상군 주둔 비용까지 고려한다면 그리 합리적인 선택지가 아니다.
마약과의 전쟁 운운하는 것도 설득력이 약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미국에 유통되는 마약의 대부분은 태평양을 통해 유입되지, 베네수엘라나 카리브해를 경유하지 않는다. 당장 콜롬비아가 세계 최고 수준의 코카인 생산국이지만 미국이 그를 공격하지 않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베네수엘라 이주민, 난민 등의 유입을 막기 위해서라지만 합당한 설명이라 보기 어렵다. 중남미 출신 유권자들의 지지를 구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이미 바이든의 민주당 정부에 패했던 전략이다.
수단의 합리성은 보이지만 목적의 합리성이 보이지 않는 이 기묘한 상황 속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메시지란, 미국이 다시금 먼로독트린(Monroe Doctrine) 시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 정도이다.
앞으로 미국이 멕시코, 캐나다 등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하고 그린란드를 병합하는 일이 정말로 일어날지도 모른다. 대규모의 군사적 개입부터 경제제재까지 활용가능한 수단이 여전히 '효과'를 보일 수 있는 지역으로만 세력권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여러모로 이번 사태는 미국의 제재와 군사적 개입의 효과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는 징표로 해석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앞으로 미국이 베네수엘라, 멕시코, 캐나다, 그린란드 등에 취할 조치를 지켜보면서 우리의 시선은 대만해협을 향해야 한다. 미국이 국가이성을 상실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쟁과 대립의 위험성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는 일이 정말로 현실화될지도 모르는 이 상황에서 한국은 어떻게 동북아의 평화를 지켜나갈 것인가. 미국 없는 세계 속에서 한국이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지 고민해볼 때가 아닌가 한다.
< 손민석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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