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적극 가담’ 2인자 한덕수 징역 23년
특검 구형보다 8년 더 무겁게 선고 적극 단죄의지

내란 중요임무 종사 등 혐의로 유죄가 선고된 한덕수 전 국무총리 1심 판결은 12·3 비상계엄 선포가 내란죄에 해당하는지를 우선 판단한 뒤 국정 2인자인 국무총리가 내란 행위에 가담했는지를 살펴보는 구조로 이뤄졌다. 법원은 12·3 비상계엄은 내란이라고 결론 낸 뒤, 한 전 총리가 국정의 2인자로서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도한 내란에 적극 가담했다고 판단했다. 다음달 19일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된 윤 전 대통령 1심 선고를 앞두고 내란죄 수사의 적법성이 인정되고 ‘계엄은 내란’이라는 사법적 판단이 차곡차곡 쌓이는 모양새다.

‘국헌 문란, 폭동’ 요건 충족
형법 87조에선 내란을 ‘국헌(헌법 질서)을 문란하게 할 목적의 폭동’으로 정의한다. 국헌 문란이란 헌법 질서를 어지럽히거나 파괴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재판장 이진관)는 21일 한 전 총리 선고 공판에서 “윤석열이 국무회의 심의라는 외관을 형성한 후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헌법에 따라 보장되는 의회·정당 제도 등을 부인하는 내용의 포고령을 발령하며, 군 병력과 경찰공무원을 동원하여 국회·중앙선관위 등을 점거, 출입 통제하거나 압수·수색한 사실”을 인정하며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다수인을 결합하여 유형력을 행사하고 해악을 고지함으로써 한 지방의 평온을 해할 정도의 위력이 있는 폭동을 일으켰다고 인정된다”고 했다. 재판부가 비상계엄을 “12·3 내란”이라고 명확하게 규정한 이유다.
“언론사 단전·단수도 이행 지시”
재판부는 한 전 총리가 △국무위원 심의를 거쳐 비상계엄이 선포된 것 같은 외관을 형성하도록 했고 △계엄 선포 뒤 국무위원들에게 관련 문서에 서명을 받으려 하는 등 ‘윤석열의 내란에 적극 가담했다’고 판단했다. 한 전 총리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만류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오히려 피고인은 윤석열이 국무회의 의사정족수를 갖출 수 있는 일부 국무위원만을 선별해 소집하는 데 관여했다”고 보았다. 또 국무회의는 원격으로도 가능해 영상회의 방식으로 세종시에 머물고 있는 장관들의 참석도 가능했지만 재판부는 “피고인이 원격영상회의 방식의 국무회의를 제안하였다고 볼 만한 아무런 자료가 없다”고 짚었다. 재판부는 나아가 대통령실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을 근거로 한 전 총리가 “이 전 장관과 특정 언론사 단전·단수 조치 지시의 내용과 근거, 그 이행 방안 등에 관해 논의”했고 “그 지시의 이행을 독려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12·3 내란이 성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총리로서의) 이러한 의무와 책임을 끝내 외면하고, 오히려 그 일원으로서 가담하기로 선택”했다며 그의 범행 동기를 설명했다.
내란죄 부정하던 윤석열 향해…
한 전 총리에 대한 이번 판결은 향후 이어질 내란 사건 선고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윤 전 대통령은 그동안 비상계엄 선포가 국정 위기 상황을 알리기 위한 ‘경고성 계엄’이었을 뿐 국헌 문란의 목적이 없었고, 군경 투입 행위 역시 질서 유지를 위한 것이었던 만큼 폭동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윤 전 대통령의 항변을 여러 이유를 들어 깨뜨렸다. 윤 전 대통령 내란 사건 1심 선고는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재판장 지귀연)의 몫이지만 어떤 재판부도 내란 범죄를 부정할 수는 없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한 전 총리가 구형량(징역 15년)보다 많은 형을 선고받으면서 12·3 비상계엄 국무회의 이전에 조기 소집돼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기소됐던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과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의 중형도 예상된다. ‘내란 2인자이자 기획자’인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도 다음달 19일 윤 전 대통령과 함께 1심 선고가 예정돼 있다. < 박지영 기자 >
선고 2분 만에 “유죄”…얼어붙은 한덕수, 법정 구속돼 구치소로

21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형사33부 재판장인 이진관 부장판사가 ‘피고인 한덕수’의 핵심 혐의인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선고 초입부터 유죄로 인정하자, 한 전 총리의 표정은 이내 굳어버렸다.
통상 판결 선고는 재판장이 공소사실을 읽고 재판부의 판단을 덧붙이는 형식으로 진행되지만 이날 이진관 부장판사는 ”세부 내용이 복잡하므로 결론을 먼저 말한다”며 “중요임무종사는 유죄로 인정한다”고 밝혔다. 오후 2시에 선고를 시작해 2분이 지난 시점이었다.
한 전 총리는 자리에 앉아 허리를 세우고 재판부를 응시했다. 재판이 시작되자마자 ‘결론’이 나왔지만 그는 마치 정지화면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 부장판사가 약 1시간 동안 판결이유를 읽고 “선고를 하겠다”고 하자 한 전 총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피고인을 징역 23년에 처한다”고 하자, 방청석에선 탄식이 새어나왔다.
이 부장판사가 “구속 여부에 대해 할 말이 있냐”고 하자 한 전 총리는 뜸을 들이다 힘 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재판장님…. 결정에 겸허하게 따르겠습니다.” 한 전 총리의 변호인이 ”구속된다면 방어권에 중대한 장애가 생길 수밖에 없다. 피고인이 몸이 안 좋다”며 “부디 좀 깊이 고려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이에 특검 쪽은 “구속된 피고인과의 형평성을 생각하면 구속하여 주심이 마땅하다”고 반박했다. 이 부장판사는 배석판사들과 논의한 뒤 “증거인멸 우려가 있어 구속하겠다”고 했다. 한 전 총리는 서울구치소로 향했다. < 이나영 기자 >
보수·진보 넘나들며 고위 공직…‘처세 달인’ 한덕수의 몰락

보수·진보 정권을 가리지 않고 최고위 공직에 중용되며 정통 엘리트 관료의 표상, 관운의 끝판왕, 처세의 달인으로 불렸던 피고인 한덕수(77)의 공직 인생은 ‘친위 쿠데타에 부역한 내란 중요임무 종사자’로 마치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 첫 국무총리로 한덕수가 발탁되자, 정치권은 그의 경륜과 함께 좌우를 오가는 능수능란한 처세술을 배경으로 꼽았다.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1970년 관세청 사무관으로 공직에 발을 디딘 한 전 총리는, 50여년간 5개 정권에서 고위 공직을 맡았다. 통상산업부 차관(김영삼 정부), 대통령실 경제수석·통상교섭본부장(김대중 정부), 국무총리·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국무조정실장(노무현 정부), 주미 대사(이명박 정부)에 이어, 공직을 떠난 지 10년 만에 윤석열 정부에서 다시 국무총리에 기용됐다. 관가에서는 고려·조선에 걸쳐 다섯 임금을 모신 황희 정승에 빗대기도 했다. 탕평 인사의 외형을 갖추기 위해 호남 출신인 그를 다시 발탁한 것이라는 평가도 나왔지만, 과거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자 출신 지역을 ‘서울’에서 ‘전주’로 바꿨다는 논란이 따라붙었다.
관료 한덕수의 성공 가도를 떠받쳤던 무색무취 처세술은 윤석열 정부에서 급격히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입법, 예산, 정치 현안에서 한때 가까웠던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과의 정치적 충돌을 불사하며, 극우적 사고에 빠진 대통령 윤석열의 입장을 충실히 대변하기 시작했다.
권력을 향한 말년의 무모한 정치 베팅은 그를 내리막으로 이끌었다. 한 전 총리는 2024년 9월 국회에 나와 “계엄은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다”고 강변했다. 정작 12·3 내란의 밤에는 대통령의 위헌·위법한 계엄 선포를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대신, “계엄 선포의 필요성과 정당성에 동의하고 지지”(1심 재판부)하는 부역의 길을 택했다.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는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아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했고, 대통령 탄핵 이후에는 직접 대통령 자리에 오르기 위해 대선 출마까지 선언했다.
21일 한 전 총리에게 징역 23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한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재판장 이진관)는 “약 50년 동안 국무총리 등으로 재직하며 다수의 훈장과 포장을 받았다”며 이를 양형 감경 사유로 언급하면서도, 오히려 고위 공직 이력을 이유로 중형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민주적 정당성과 책임을 간접적으로 부여받은 국무총리로서 헌법을 수호하지 않고, 12·3 내란이 성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신의 안위를 생각했다”는 것이다. 친위 쿠데타가 성공하거나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이 기각될 것이라는 기민한 처세 감각이 오히려 그를 몰락의 길로 이끈 것이다. 한 전 총리는 이날 1심 선고 결과를 “겸허히 따르도록 하겠다”고 했다. < 김남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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