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위원 소집, 언론사 단전 안 막아" 유죄 판단 "비상계엄 선포란 결과 충분히 막을 수 있었어" "12·3내란 계몽령 당연하게 주장하는 사람 양산" "친위 쿠데타, 기존 내란 행위와 비교할 수 없어" "한덕수 사과했던 것도 진정성 인정하기 어렵다"
민주, 징역 23년에 "최소한의 단죄" "당연한 결론"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를 받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왼쪽)가 2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해 있다. 2026.1.21. 연합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내란 우두머리 방조 등 혐의 사건 1심에서 징역 23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특별검사의 구형 징역 15년보다 8년이나 많은 형량이다. 재판부는 중형을 선고하며 한 전 총리를 향해 "선진국으로 인정받고 있는 대한민국에 '친위 쿠데타'가 발생했다는 사실은 기존 내란행위와 비교할 수 없다"고 질타했다. 내란 행위 가담자에게 면죄부는 없다는 경종을 울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이진관 부장판사)는 21일 오후 2시 한 전 총리에게 내란 우두머리 방조·내란 중요임무 종사·허위 공문서 작성 및 행사 등 혐의로 징역 2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후 증거인멸 우려로 법정 구속했다. 내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국무위원에 대한 사법부의 첫 판단이었다. 선고 장면은 티브이(TV), 유튜브 등으로 생중계됐다.
재판부는 선고 서두에 "12·3 비상계엄 선포와 이에 근거해 위헌 위법한 포고령을 발령하고 군 병력 및 경찰 공무원을 동원해 국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을 점거·출입 통제하는 등의 행위는 형법 87조에서 정한 내란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선고 내내 12·3 비상계엄 사태를 '12·3 내란'으로 명시적으로 규정했다.
한덕수가 '내란 중요임무 종사자'인 이유 "국무총리 권한 행사하지 않을 이유 없어"
재판부는 한 전 총리가 내란 당시 ▲국무위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소집을 재촉하면서 의사정족수를 채워 국무회의 인원을 갖췄고 ▲윤석열이 행정안전부 이상민 전 장관에게 언론사 단전·단수 지시 이행을 막지 않았으며 ▲계엄 선포문 서명을 독려하는 점 등을 근거로 들어 내란 중요 임무 종사자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은) 윤석열의 의사가 확고하다는 점을 깨닫고 그 필요성과 정당성에 동의해 비상계엄 선포에 필요한 국무회의 심의라는 절차적 요건을 형식적으로나마 갖추도록 해 내란 중요임무에 종사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또 재판부는 한 전 총리를 향해 "(국무총리로서) 비상계엄 선포라는 결과를 충분히 방지할 수 있었다"며 "국무총리로 부여받은 권한을 행사하지 않은 행위는 구체적 상황에서 현저하게 합리성을 잃어 사회적 타당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2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1심 선고 공판에서 이진관 부장판사가 발언하고 있다. 2026.1.21. 연합
재판부는 사후 계엄 문건을 만든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에 관해선 "작성일을 소급한 문서를 허위로 작성한 것이 알려지면 논란될 점을 (한 전 총리가) 인식하고 있었다"면서 "윤석열(전 대통령), 김용현(전 국방부 장관), 강의구(전 대통령실 부속실장)와 순차적·암묵적으로 공모해 서명함으로써 공동으로 허위공문서를 작성해 허위공문서라는 인식과 행사할 목적이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다"라고 말했다.
대통령기록물법 위반에 대해선 한 전 총리가 지난 2024년 12월 8일 강의구 전 부속실장에게 '사후에 문서를 만들었다는 게 알려지면 또 다른 논란을 낳을 수 있으니 내가 서명한 것은 없었던 것으로 하자'고 제안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유죄 판단을 내렸다. 또한 한 전 총리가 강 전 실장, 윤석열 등과 공모해서 '윤석열이 서명하고 김용현이 부서한 비상계엄 선포문 표지'를 손상시킨 공용서류손상 죄에 대해서도 유죄라고 봤다.
다만 재판부는 한 전 총리의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중에서 ▲내란 이후 윤석열로부터 '행사에 대신 참석해달라'고 지시받은 사실 ▲국민의힘 추경호 당 대표에게 '걱정하지 마라'고 통화한 사실 ▲계엄 해제 이후 국무회의 심의를 지연시킨 것 등은 무죄라고 판단했다. 허위작성 공문서 행사 혐의도 무죄라고 했다.
"국민 선출한 윤석열과 추종세력 엄중 처벌해야" "친위 쿠데타 위험성 '아래로부터 내란' 비교 못 해"
재판부는 양형과 관련, "피고인은 약 50년간 다수의 훈장과 포상을 받았고, 내란에 사전에 모의하거나 적극 가담했다고 볼 자료는 없고, 79세의 고령인데도 아무런 형사 처벌을 아무런 형사 처벌을 받은 이력은 없다"면서도, "윤석열이 위헌·위법한 포고령을 발령하는 행위는 내란에 해당하고 이는 국민이 선출한 권력자인 윤석열과 그 추종세력의 친위 쿠데타"라며 엄중 처벌이 타당함을 밝혔다.
재판부는 특히 "12·3 내란은 '위로부터 내란'이라는 점에서 그 위험성은 정도가 아래로부터의 내란과 비교할 수 없다"면서 "무엇보다도 국민이 선출한 권력자가 헌법과 법률을 경시하고 이를 위반한 내란 행위를 함으로써 국민이 가진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신념 자체를 뿌리채 흔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울러 "12·3 내란은 ▲민주적 기본질서라는 전체적 질서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있거나 이를 파괴하려는 시도가 있고, 이미 유효한 구제수단이 남아 있지 않은 극단적인 상황에서나 논의되는 저항권을 평상시에 아무렇지도 않게 주장하는 사람 ▲헌법과 법률에 정한 바 없어 위헌·위법한 주장에 불과한 계몽적 계엄, 잠정적 계엄, 경고성 계엄을 당연하다는 듯 주장하는 사람 ▲지난 2025년 1월 19일 발생한 서울서부지방 법원 폭동 사건과 같이 자신의 정치적인 입장을 위해서는 헌법과 법률을 쉽사리 위반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으며, 이러한 상황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민주주의 근본이 되는 선거제도를 정당한 근거 없이 부정하는 사람들을 양산 하거나, 그런 사람들의 상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었다"고 거세게 질타했다.
또 재판부는 "12·3 내란 과정에서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고 내란 행위 자체는 몇 시간 만에 종료되긴 했으나, 이는 무장한 계엄군에 맨몸으로 맞서 국회를 지킨 국민 용기에 의한 것"이라며 "국민 저항을 바탕으로 신속히 국회에 진입해 비상계엄 해제를 요구한 일부 정치인의 노력, 대한민국 역사에 있었던 내란의 암울한 기억을 상기하면서 위법한 지시와 명령에 저항하거나, 혹은 어쩔 수 없이 이에 따르더라도 소극적으로 참여한 일부 군인과 경찰 공무원의 행동에 의한 것이다. 결코 12·3 내란 가담자에 의한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진관 부장판사는 '무장한 계엄군에 맨몸으로 맞선 국민의 용기'에 대해 말하는 대목에선 목이 멘 듯 잠시 말을 멈추기도 했다.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를 받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2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해 있다. 2026.1.21. 연합
재판부는 "기존 내란사건이 발생하였던 시기와 12·3 내란이 발생한 시기의 대한민국의 국제적인 위상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난다. 현재 대한민국은 세계적으로 선진국으로 인정받고 있고, 이에 따라 국제무역, 국제 정치 등에 있어서 그 위상도 기존과 비교할 수 없다. 이러한 대한민국에서 '친위 쿠데타'가 발생했다는 사실로 생긴 경제적·정치적 충격은 기존 내란 행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른다"며 "기존 내란 사건 대법 판결은 피고인의 형을 정하는 데 있어 기준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한 전 총리가 뒤늦게 반성한 점에 대해서도 질타가 이어졌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제2회 공판기일에서 12·3 내란에 관해 여러 가지 법적인 검토가 필요해 공개적으로 제지하지 못했다는 취지로만 진술했다가, 대통령실 CCTV 영상 재생 및 증인 신문 등 증거 조사를 거쳐 자신의 범죄 사실이 탄로나 형사 처벌의 기로에 서자 마지못해 최후 진술에서 죄송하다고 했다"면서도 "그 사과의 진정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재판장이 중형을 선고하자 한 전 총리는 "재판장님 결정에 겸허하게 따르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한 전 총리는 법정구속됐다. 전직 국무총리가 법정에서 구속된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었다.
이번 한 전 총리의 선고는 남은 내란 관련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 전 총리와 같은 혐의로 기소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1심 선고는 다음 달 12일에 이뤄진다. 일주일 뒤인 19일에는 윤석열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의 1심 선고가 이뤄진다. 특히 윤석열의 경우, 줄곧 불법 계엄에 대해 '경고성 계엄' '메시지 계엄' 등 궤변성 주장을 내놨지만, 이날 한 전 총리 사건 재판부가 '내란'이라는 점을 못박으면서 유무죄 판단과 선고 형량에도 영향을 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역사 앞에 너무도 당연한 결론"
한편 더불어민주당은 한 전 총리의 선고에 대해 "내란 공범에 대한 단죄이며, 역사 앞에 너무도 당연한 결론"이라고 환영했다.
문금주 원내대변인은 국회 소통관에서 브리핑을 갖고 재판 결과에 대해 "한 개인에 대한 처벌을 넘어, 헌정을 짓밟은 권력형 내란에 대해 사법부가 마침내 내린 단호한 선언"이라면서 "늦었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던 판단이며, 이 정도 형량조차 가볍게 느껴질 만큼 죄질은 중대했다"고 평가했다.
내란 우두머리 방조 혐의를 받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2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6.1.21. 연합
문 원내대변인은 "12·3 불법 비상계엄 이후 대한민국이 장기간 극심한 혼란과 불신에 빠진 데에는 한덕수의 책임이 결정적"이라면서 "그럼에도 그는 사과는커녕, 권한대행직을 발판 삼아 대선 후보를 넘보는 권력 야욕까지 드러냈다. 이는 정치적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과 민주주의를 공개적으로 능멸한 행위"라고 거세게 비판했다.
그는 "이 모든 범죄 사실과 그로 인한 헌정 파괴의 결과를 종합하면, 한덕수에 대한 1심 징역 23년 선고는 결코 과하지 않으며 오히려 필연적이고 최소한의 단죄"라면서 "이번 판결은 윤석열 내란 본류 재판으로 이어지는 사법 정의의 분명한 기준선"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민주주의를 파괴한 내란 공범에게는 그 어떤 지위도, 경력도, 거짓 변명도 결코 면죄부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 김민주 기자 >
“위로부터의 내란, 기존 내란과 견줄 수 없어”…한덕수 ‘징역 23년’의 이유
2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1심 선고 공판에서 이진관 부장판사가 발언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제공
법원이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게 이례적으로 검찰 구형량(징역 15년)보다 훨씬 높은 징역 23년을 선고한 배경은 12·3 비상계엄이 ‘위로부터의 내란’이라는 점에서 그 위험성이 훨씬 크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1심 재판장인 이진관 부장판사는 재판 과정에서 단호한 태도로 소송 지휘를 해 눈길을 끌었는데 이런 기조가 선고에 그대로 이어졌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 재판장인 이 부장판사는 21일 한 전 총리의 1심 양형 이유와 관련해 “12·3 내란은 국민이 선출한 권력자인 윤석열 전 대통령과 그 추종 세력에 의한 것으로서 성격상 ‘위로부터의 내란’에 해당한다”고 규정하며 “이런 형태의 내란은 ‘친위 쿠데타’라고 불린다”고 밝혔다. 이어 “위로부터의 내란 위험성의 정도는 아래로부터의 내란과 비교할 수 없다”며 “무엇보다 국민이 선출한 권력자가 헌법과 법률을 경시하고 위반하는 내란 행위를 함으로써 국민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한 신념 자체를 뿌리째 흔들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징역 23년’ 선고에는 12·3 친위 쿠데타를 계기로 뭉친 극단 세력에 대한 엄벌 의지도 담겼다. 선고 과정에서는 윤석열 전 대통령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지지자들이 법원에 난입한 서울서부지법 폭동 사태도 거론됐다. 이 부장판사는 “우리 주위에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나 존재하는 저항권을 평상시에 아무렇지도 않게 주장하는 사람들, 계몽적·잠정적·경고성 계엄을 당연하게 주장하는 사람들, 서부지법 폭동 사건과 같이 자신의 정치적인 입장을 위해서는 헌법과 법률을 쉽사리 위반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피해를 줄 수 있는 상황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12·3 내란이 잘못된 생각을 더욱 심각하게 양산했다”고 짚었다.
이 부장판사는 ‘비상계엄 해제가 6시간 만에 종료됐고 사망자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한 전 총리 주장에 대해 “이는 계엄군에 맞선 국민의 덕”이라고 말하면서 순간 감정이 북받친 듯 잠시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이 부장판사는 “내란 행위가 몇시간 만에 끝난 건 무엇보다 계엄군에 맞서 국회를 지킨 국민의 용기와 저항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것”이라며 “결코 내란 가담자에 의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 부장판사는 그동안 증인으로 채택된 국무위원들이 출석하지 않을 때 곧바로 구인영장을 발부하거나 증인으로 나온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변호인단이 법정질서를 흐리자 감치 처분을 하는 등 엄격하게 대응했는데, 이런 태도가 한 전 총리 선고 형량에 고스란히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과거 신군부 쿠데타를 일으켜 한 전 총리와 같은 혐의로 유죄를 받은 노태우씨는 한 전 총리 선고 형량보다 6년이나 적은 징역 17년이 확정된 바 있다. 이 부장판사는 “기존 내란 사건 발생 시기와 12·3 내란은 상황이 다르다. 기존 판례는 (한 전 총리의) 양형 기준이 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조은석 특별검사팀이 재판부에 요청한 한 전 총리 형량은 징역 15년이었는데 재판부는 선고 형량을 8년 높였다.
한 전 총리 쪽은 50년 동안 공직에서 일하며 형사처벌 전력이 없고, 고령에 경도인지장애가 있으며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다며 선처를 호소했지만, 재판부는 엄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한 전 총리의 개인 사정보다 “봉합되기 어려운 사회 갈등”을 낳은 책임이 더 크다는 판단이다. 한 전 총리가 재판 초반에는 혐의를 부인하다가 계엄 선포 당시 대통령 집무실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이 법정에서 공개되자 그제야 사과한 태도에 대해서도 ‘진정성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 오연서 기자 >
"무장한 계엄군에 맨몸 맞선 국민" 잠시 울먹인 이진관 재판장
"왜 못 막았나" "그 자리서 뭐했나" 호통 · 직설화법 화제
법정 소란 김용현 변호인 감치도…단호한 소송 지휘 눈길
발언하는 이진관 판사 (서울=연합) 1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내란 우두머리 방조 등 혐의 사건 재판에서 이진관 부장판사가 발언하고 있다. 2025.10.13 [서울중앙지법 제공]
12·3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면서 당시 국정 2인자였던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게 특별검사 구형보다 높은 징역 23년을 선고한 이진관 부장판사(53·사법연수원 32기)는 그간 단호하고 적극적인 소송 지휘로 눈길을 끌었다.
법정에서 소란을 피운 변호인들에게 감치 선고를 내리는가하면 선서를 거부하는 증인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재판 주요 국면에서 '대쪽' 같은 모습을 보여 화제가 됐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 부장판사는 마산고를 거쳐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1998년 제40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2003년 32기로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뒤에는 수원지법 예비판사로 임관했다. 예비판사는 2년간 재판 경험을 쌓은 뒤 정식 법관으로 임명하는 제도로, 현재는 폐지됐다.
이후 서울고법 예비판사를 거쳐 서울중앙지법 판사로 근무했다.
통상 주요 코스로 인식되는 자리 가운데 사법행정에 참여하는 법원행정처 근무만 제외하고, 대법원 재판연구관, 사법연수원 교수 등 대표적 엘리트 코스를 밟아 역시 중요 자리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 부장판사를 맡았다.
지난해 2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로 발령받아 대장동·백현동·위례신도시 개발 비리 및 성남FC 사건을 담당했다.
이 부장판사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와 관련한 내란 우두머리 방조 혐의 등으로 기소된 한 전 총리 사건 재판을 지휘하며 단호하고 직설적인 화법으로 주목받았다.
특히 비상계엄의 책임을 회피하거나, 적극적으로 윤 전 대통령에게 반대 의사를 전하지 않은 이들을 호되게 질책하는 '돌직구' 발언이 화제가 됐다.
지난해 11월 24일 피고인 신문을 받던 한 전 총리를 향해 이 부장판사는 "최상목(전 경제부총리)이랑 조태열(전 외교부 장관)이 저렇게 '재고해달라'고 할 때는 피고인도 반대하기 좋은 환경 아닌가. 호응할 수 있는 시기인데요"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부장판사는 다른 국무위원들에게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왜 주지 않았느냐고 물으며 "윤석열이 대접견실을 나가서 비상계엄 선포하러 가는 걸 말리지도 않지 않았습니까"라고 질책했고, 이에 한 전 총리는 "정말 아쉽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발언하는 이진관 부장판사 (서울=연합)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내란 우두머리 방조 혐의 첫 공판이 열린 3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이진관 부장판사가 발언하고 있다. 2025.9.30 [사진공동취재단]
자신도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국무위원에게도 이 부장판사는 단호하게 책임을 주지시켰다.
같은 달 7일 증인으로 출석한 박상우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저희 국무위원들도 어찌 보면 피해자"라며 "국무회의 이유도 모르고 갔다가 검찰 조사 받고 변호사비 들고 법정까지 나와 증언하고 있지 않나"라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이에 이 부장판사는 "그런 말씀은 윤석열을 상대로 하면 이해할 수 있을 텐데 비상계엄으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다 보신 것 아닌가"라고 맞받았다.
그러면서 "일반 국민 입장에서 장관이면 국정운영에 관여하는 최고위급 공무원"이라며 "비상계엄에 반대하거나 동의 못 하겠다고 한 소수의 국무위원도 있었다. 증인은 그 자리에서 아무 말씀도 안하셨죠"라고 질책했다.
이러한 이 부장판사의 지휘 스타일을 두고 법조계 일각에서는 무죄 추정 원칙에서 벗어나 재판부가 유죄 심증을 드러낸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으나 동시에 전 국민이 시청할 수 있는 공개 재판을 통해 위헌·위법한 비상계엄에 무책임한 태도를 보인 국정 주요 인사들을 엄중히 꾸짖는 사법부의 모습이 필요했다는 의견이 많았다.
하기
취재진 질문에 답하는 이하상 변호사 (서울=연합)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에 대한 구속영장 심문이 진행된 25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김 전 장관의 변호인인 이하상 변호사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5.6.25
정당한 사유 없이 법정 질서를 깨트리는 이들에 대해 이 부장판사는 여지 없이 소송지휘권을 행사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19일 증인으로 출석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재판받고 있다며 증인 선서를 거부하자 이 부장판사는 "제가 형사재판에서 선서 거부하는 것은 처음 본다"고 지적하며 과태료 50만원을 부과했다.
같은 날 이 부장판사는 법정에서 소란을 일으키고 재판부를 모욕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측 이하상·권우현 변호사에 대해 감치를 선고하기도 했다.
이처럼 강단 있는 소송 지휘는 한 전 총리에게 예상보다 무거운 중형 선고로 이어졌다. 애초 내란 특검팀이 구형한 징역 15년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다. 이에 더해 증거인멸을 이유로 한 전 총리를 법정구속하기까지 했다. 헌정사상 전직 국무총리가 내란 관련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것도, 범죄 혐의로 법정 구속된 것도 처음이다.
당초 특검팀은 법정형이 더 무거운 내란 우두머리 혐의에 방조범 규정을 적용해 기소했지만, 이 부장판사는 법리상 죄명은 그 아래인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를 적용하는 게 맞는다고 보고 '한 단계' 낮추면서도, 실제 형량은 오히려 특검 구형량의 절반 이상 더 무거운 23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이 부장판사는 이날 선고문을 읽어 내려가는 과정에서 그동안 보인 단호한 모습과 달리 감정에 북받친 듯한 모습이 포착돼 시선을 끌기도 했다.
12·3 비상계엄을 내란이자 '친위 쿠데타'로 규정한 그는 한 전 총리의 양형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비상계엄을 막은 주역으로 '국민의 용기'를 언급하며 수초간 말을 잇지 못했다.
이 부장판사는 "기존 내란 사건에 관한 대법원 판결들은 피고인의 형을 정함에 있어 기준이 될 수 없다"고 언급한 뒤 잠시 목을 가다듬었다.
이어 "12·3 내란 과정에서 사망자가 발생하지는 않고 몇 시간 만에 종료되긴 했다"며 "그러나 이는 무엇보다 무장한 계엄군에 맨몸으로 맞서 국회를 지킨 국민의 용기에 의한 것"이라며 내란이 저지될 수 있었던 동력을 국민에게로 돌렸다.
이후 이 부장판사는 오른손으로 안경을 들어 올리며 수초간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순간 법정에도 정적이 감돌았다. < 이승연 기자 >
'나치 전범' 다루듯 단호했던 한덕수 23년형 선고
이진관 판사, 특검 구형량보다 8년 늘려 "단죄에 시한 두지 않겠다" 단호한 의지
이 대통령 " 쿠데타는 나치 전범처럼 처리"
역사상 가장 잔혹했던 나치 학살 책임자 A급 전범 외 숫자도 적고 형량도 가벼워
아이히만 체포 처형 보고 독일 대오각성 90대 노인까지 '액세서리 이론'으로 엄벌
한덕수(77) 전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21일 징역 23년형이 선고됐다. 법정 구속까지 당했다. 역사적인 판결이란 반응이 대체적이다. 1심 선고 형량대로 복역한다면 한 전 대행은 100세를 넘겨서야 영어의 몸에서 풀려나게 된다.
이날 판결을 들으며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일 국무회의에서 했던 발언을 떠올렸다. 이 대통령은 "고문해서 누구를 죽인다든지 사건을 조작해 멀쩡한 사람을 감옥에 보내거나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나라를 뒤집어 놓는다든지 국민이 맡긴 국가 권력으로 개인 인권을 침해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나치 전범을 처리하듯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명백한 불법에 위헌적 요소가 가득한 비상 계엄 선포와 포고령 1호를 실행하는 데 명령과 지시에 따라 수동적으로 가담했더라도 더 이상 공직에 머무를 수 없으며, 그 단죄에는 시한을 두지 않겠다는 것이 이 대통령의 뜻이었을 것이다. 이번 이진관 서울중앙지법 판사의 판결과 일맥상통하는 취지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김민석 국무총리를 향해 "내란 사태 관련해 신고도 받고 조사도 할 것 아닌가"라며 "내란 사태는 최소한 국가 권력을 이용해 국가 체제를 전복하려 했던 것이기 때문에 적당히 덮는 게 통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가혹하게 하자는 것은 아니다. 진상을 정확하게 규명하자는 것이다. 스스로 신고할 경우 너무 가혹하게 할 필요는 없다"며 "자기가 좋아서 (비상계엄 선포에 가담) 했다기 보다는 시스템에 따라서 부화수행한 경우도 많을 것이다. 본인이 인정하고 반성하면 면책이나 감면해주는 방침을 정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은 이어 "상속재산이 있는 범위 내에서는 상속인들까지도 끝까지 책임지게 해야 근본적 대책이 되지 않겠나"라며 "그래야 재발을 막는다. 책임감을 갖고 (입법 지원을) 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런데 당시 우리 언론들은 이 대통령의 발언을 그대로 옮긴 보도만 넘쳐났지, 정작 나치 전범 처리를 어떻게 했는지 살펴보는 매체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독자들이나 국민들이 익히 알고 있다고 여겨서일까?
나치 전범을 단죄한 뉘른베르크 재판 과정과 결과에 대해서도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 중 인류애에 반하는 잔학한 범죄에도 불구하고 단죄된 전쟁범죄자들 숫자는 형편없이 적었고, 선고 형량도 한없이 가벼웠다. 이스라엘이 1962년 아르헨티나에 숨어 있던 아돌프 아이히만을 찾아내 처형하고 나서야 독일 정부와 국민들은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됐다.
해서 차분히 그 과정을 돌아봤으면 한다. 기자의 기억에 같은 달 4일 '이재석의 겸공특보' 가운데 '조호제의 파묘' 코너를 통해 살펴 본 것이 그나마 전부인 것 같다. 그런데 이 코너도 분량 때문인지 90세 넘은 이들까지도 재판정에 세우고 상징적인 판결을 내린 것을 모아 전달했을 뿐 그들을 단죄한 '액세서리 이론'을 제대로 소개하지 않았다.
뉘른베르크 재판 성과 있었지만 한계도
2차 세계대전을 마친 뒤 서둘러 진행된 뉘른베르크 재판은 나치 2인자 헤르만 괴링을 재판정에 세웠지만, 수괴인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 선전에 앞장 섰던 요제프 괴벨스 등이 이미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에 약간 김이 빠진 상태에서 시작됐다. 미국이 전후 복구에 집중해야 한다며 서둘러 단죄를 마무리하자고 채근한 것이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쳐 비교적 신속한 재판이 진행됐다. 끔찍한 잔학상에 견줘 나치 전범들의 첫 단죄는 미미하다고 볼 수 있었다.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소는 1945년 8월 8일 미국·영국·소련·프랑스 임시정부의 대표가 조인한 런던 협정에 근거한 것이었다. 런던 협정에는 국제군사재판소가 특정지역에 한정되지 않는 범죄를 저지른 추축국 주요전범들의 소송을 관할한다는 헌장이 포함돼 있었으며, 그 뒤 19개국이 추가로 조인했다.
전범들의 기소 이유는 ① 평화에 관한 죄: 국제조약과 협정을 위반하고 침략전쟁을 계획·준비·실행한 죄 ② 인도주의에 관한 죄: 인민 몰살, 추방, 집단살해 ③ 전쟁범죄: 전쟁법의 위반 ④ 앞의 세 기소 사항에 있는 범죄행위를 계획·공모한 죄이다.
국제군사법정은 각 조인국이 2명의 재판관을 파견하며 그 가운데 1명은 예비법관이었다. 1차 공판은 소련의 I. T. 니키첸코 장군의 주재 아래 1945년 10월 18일 베를린에서 열렸다. 24명의 전 나치 지도자들이 전쟁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기소됐고, 비밀경찰인 게슈타포와 같은 여러 조직이 성격상 유죄로 기소됐다. 1945년 11월 20일 이후의 재판은 영국측 제프리 로런스(뒤에 트리베신과 오크시 남작이 됨) 공소원 재판관의 주재 아래 뉘른베르크에서 열렸다.
1946년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정에 나온 헤르만 괴링(왼쪽 위) 등 나치 전범들.
1946년 10월 1일 216차에 걸친 공판이 끝난 뒤, 최초 24명의 전범들 중 22명에 대한 판결이 언도됐다. 로베르트 라이는 수감 중 자살했고, 구스타프 크루프 폰 볼렌 운트 할부흐는 정신적·신체적 장애로 재판을 받을 수 없었다. 피고인 가운데 3명은 형이 면제됐고, 궐석 재판을 받은 마르틴 보어만을 포함한 12명은 교수형, 루돌프 헤스 등 3명은 종신형, 알베르트 슈페어 등 4명은 10~20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국제군사법정은 피고인측이 제시한 주요변론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첫째, 전쟁범죄의 경우 유죄로 판결될 수 있는 것은 국가이지 개인이 아니라는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국제군사법정은 국제법 상의 범죄는 사람에 의해서만 행해질 수 있으며 그런 범죄를 저지른 개인들을 처벌함으로써만 국제법 조항이 효력을 가질 수 있다고 판시했다. 둘째, 심리와 판결이 형벌 불소급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제군사법정은 그런 위법 행위는 2차 대전 이전에도 범죄로 간주됐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유대인 600만 명 등 민간인 인명 피해가 1200만 명을 헤아리는 판국에 전범들의 숫자와 형량이 현저히 미흡한 것은 사실이었다. 나치의 법률가, 사업가, 의사, 엘리트 장교, 외교관 및 공무원을 피고인으로 한 후속 재판도 진행됐다. 그리고 프랑스나 영국 등 각국에서도 나치 전범이나 나치에 협력한 이들을 법정에 세웠다.
독일을 각성시킨 아이히만 체포와 처형
하지만 뉘른베르크 재판에 모든 핵심 전범들을 세우지는 못했다. 많은 전범들이 이름을 바꾸고 잠적하거나, 해외로 달아나 숨어 지냈다. 나치 친위대 장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이 대표적 사례. 그는 유대인들을 수용소로 강제 이송하는 작업을 총괄 지휘해 홀로코스트의 책임을 져야 했는데 이름을 바꾸고 아르헨티나에 숨어 지냈다.
독일 정부는 아이히만을 비롯한 여러 전범들이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등에 숨어 지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끈질긴 추적 끝에 1960년 아이히만을 주도면밀한 작전 끝에 체포해 이스라엘로 송환해 법정에 세웠다.
1961년 예루살렘 법정에 출석한 아돌프 아이히만(뒷줄 가운데). 게티 이미지
이듬해 재판은 TV 중계를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으며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는 ‘단지 상부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강변했지만, 결국 교수형으로 스러졌다.
예루살렘에서 진행된 이 재판은 나치가 벌인 유대인 대학살의 실상이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됐고, 독일 내부의 미진했던 청산 작업을 뒤돌아보게 했다. 미래 세대에게 역사적 교훈을 전하기 위해서라도 나치 학살과 무자비한 통치에 책임이 있거나 방조한 이들을 엄단해야 한다는 여론이 생겨났다. 독일은 국내 형법에 전범 처벌 규정을 둬 스스로 나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한 재판을 이어나갔고, 이런 과거사 청산 노력은 오늘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 사실상 공소시효는 없어졌다.
하지만 1946년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부터 2005년까지 나치 범죄로 기소된 이는 14만 명이었는데 유죄 선고를 받은 이는 6600여 명에 불과했다. 기소-재판 전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자연사한 이들을 감안하더라도 7000명 선에 그쳤다.
종전 시점에 나치, 즉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NSDAP) 당원이 850만 명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여전히 형편없는 숫자임이 분명하다.
이 대통령이 말한 상속 재산 대목은 엇나간 대목이 분명 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도 독일의 청산 모델을 따랐다. 프랑스는 전후 국가 정화 과정에 나치 협력자를 처벌하고 나치와 협력한 기업과 개인의 재산을 몰수해 국가가 관리하거나 피해 회복에 사용했다. 이탈리아도 마찬가지 절차를 진행했지만, 두 나라 모두 가해 당사자 개인의 형사와 민사 책임과 부당이득 환수에 초점을 맞췄지, 전범이나 협력자(부역자)의 자녀와 손주에게 형벌을 승계하거나 상속재산을 일괄 몰수하는 '세습형 처벌' 모델은 채택하지 않았다.
따라서 "상속재산이 있는 범위 내에서는 상속인들까지도 끝까지 책임지게 해야 한다"는 이 대통령의 발언은 취지를 강조하려다 빚어진 의도된 과장 발언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반인도 범죄 방관해도 단죄하는 '액세서리 이론'
2011년 5월, 나치 전범 재판은 또 하나의 중요한 분기점을 통과한다. 폴란드 소비보르 수용소 경비병 출신 존 뎀얀유크(1920~2012)에 대해 독일 법원이 ‘살인 방조'(accessory to murder) 혐의를 적용, 5년 징역형을 선고했다. 그가 학살에 가담한 직접 증거는 없었지만 법원은 소비보르의 어떤 경비병도 살인에 (간접적으로) 가담하지 않을 수 없었고, 모든 경비병이 “대량 학살 말고는 다른 목적이 없는 조직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유죄의 근거로 밝혔다.
뎀얀유크는 항소심을 기다리다 이듬해 3월 자연사했지만, 그의 재판은 전시 나치 수용소에서 일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전범 기소-재판-처벌이 가능하다는 판례가 됐다.
‘아우슈비츠의 회계원’이라 불린 오스카르 그뢰닝에 대한 2015년 재판, 아우슈비츠 SS 경비병 라인홀트 하닝에 대한 2016년 재판, 노이엔감므 수용소 경비병이던 프리드리히 카를 베르거에 대한 2021년 재판, 작센하우젠 교도관 요제프 쉬츠에 대한 2022년 재판 등이 이어졌다. 대부분 90대(쉬츠는 101세였다)이던 이들은 재판 중 숨지거나 경미한 형량-집행유예 판결로, 또는 불구속 상태의 항소심 절차 덕에 실제로 옥살이를 하지는 않았다.
2022년 재판에 나온 당시 97세의 이름가르트 푸르히너. AP 연합
이스라엘 영자 매체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은 "홀로코스트 범죄로 유죄 선고를 받은 어쩌면 마지막 인물"이라고 독일 여성 이름가르트 푸르히너(1925.5.29~2025.1.14)를 소개했다. 그녀는 만18세이던 1943년 폴란드 단치히 자유시 인근 슈투트호프 나치 강제수용소 소장의 비서 겸 타이피스트로 22개월 근무했다. 2021년 살인 방조 등 혐의로 기소돼 재판이 진행됐고 지난해 8월 대법원에서 2년 징역에 집행유예가 확정됐다.
푸르히너는 종전 후 단죄를 받을 뻔했지만 운좋게 빠졌다. 1946년 4월과 다음달 폴란드 그단스크 특별법정에 슈투트호프 수용소의 여성 간수들이 세워져 5명이 사형 선고를 받아 처형됐지만, 가해나 살인의 직접 증거나 증언이 없었던 푸르히너는 비서였고, 가해-살인의 직접 증거나 증언이 없어서 당시 형법에 따라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그녀는 세상을 등지지 않아 기소를 피하지 못했고, 법정에 출두할 만큼 건강했다. 푸르히너는 재판을 앞두고 함부르크의 은퇴자 생활시설을 나와 택시를 이용해 지하철역으로 달아났다가 체포돼 전자발찌를 차고 법원에 나왔다.
푸르히너는 역사의 야만적 수레바퀴를 마다하지 않고 동승했던 수많은 독일인 중 어쩌면 맨마지막 법정에 세워진 인물일 수 있다. < 임병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