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간 제약으로 정부안에 대한 검토도 부족
애초 정부안 기반으로 하니 기존 공방만 반복
개혁 취지 강조되지 못하고 오히려 희석돼
"검찰 무조건 나쁜 건 아니다" 원론적 논의만
중수청 이원화 등 일부 합의점도 찾았지만
"결국 공청회 형식일 뿐…결단 필요한 때"

더불어민주당이 20일 국회 본청에서 정부의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공소청 입법예고안에 대한 공청회를 개최하고, 중수청과 공소청의 역할, 권한, 조직 등과 관련해 토론을 했다. 하지만 정부안과 민주당안 등을 놓고 난상토론, 끝장토론을 하기보다는 기계적인 찬반 토론을 진행하면서 기존 논의에서 크게 나아가지는 못한 모습이었다. 토론 의제 설정이나 시공간상 제약 등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겠지만, 짧은 2시간 안에 생산성 있는 논의까지 끌고가기엔 한계가 있었다. 토론자들도 "시간이 짧다"거나 "랩(rap·읊듯이 하는 노래)을 하는 기분이었다"고 토로했다.
검찰개혁 취지 강조되지 못한 토론
이번 공청회는 국무총리실 산하 검찰개혁 추진단이 자문위원들의 검토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중수청·공소청 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촉발됐다. 자문위원의 성향을 불문하고 '중수청 조직 이원화'(수사사법관-전문수사관 이원 조직)에 대한 비판이 공통적으로 터져 나왔고, 이 외에도 중수청 수사사법관 신설, 중수청 수사범위 9대 범죄로 확대, 공소청 검사의 보완수사권, 공소청 검사의 직무 범위, 기존 검찰청과 동일한 공소청 구조 문제 등이 제기됐다.
이러한 문제 제기의 핵심은 무소불위 권한(수사권·기소권·영장청구권)을 남용하는 검찰에 대한 제도적 견제와 인적 쇄신이다. 그러나 정부안으로는 되레 검찰의 권한을 확대해 '제2의 검찰청' '특수부 시즌2'가 될 것이란 지적이 나오면서, 민주·진보 진영 내에서도 반대 여론이 상당했다. 특히 민주당 지지층 내에선 '윤석열 검찰'이 권한을 남용해 이재명 대통령 등 주요 정치인을 표적 수사하는 폐단을 바로잡기 위해 강력한 개혁을 요구해온 만큼, 반발이 거셌다.
이에 따라 공청회도 수사·기소를 독점한 검찰권 남용이 되지 않도록 제도 설계를 해야한다는 공감대 속에서 시작했지만, 정부안을 기준으로 놓고 토론하다보니 애초 개혁 취지는 상대적으로 강조되지 않았고, 그조차도 찬반 동수를 맞춰놓고 한 기계적인 토론으로 희석된 인상만 남겼다.
일례로, 공청회에서 정부안 반대 쪽으로 토론에 나선 황문규 중부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윤석열 정부는 검찰 파쇼를 시도했다. 이재명 정부의 검찰도 다르지 않다"고 거세게 비판했지만, 정부안 찬성 쪽인 신인규 변호사는 "(반대 쪽에서) 파쇼 이런 얘기들이 자꾸 나오면서 검찰 집단을 전체적으로 압도적 불신을 깔고 말씀을 하신다"며 "검찰 조직에 대한 인식을 한 번 더 점검해 볼 필요 있다"고 맞섰다.
결국 토론자들은 짧은 토론 시간에 "검찰을 악마할 필요가 없다, 잘하는 부분도 있다(황문규)" "절대 선(善)은 없다(신인규)" 정도로 원론적인 합의점만 찾았다.

가정형, 미래형으로 점철된 정부안
논의 시작점인 정부안도 당초 문제가 제기된 것처럼 검찰에 대한 견제가 가능한지 의문이 있었지만, 공청회의 형식상 한계 등으로 심도 있는 점검은 이뤄지지 못했다. 정부안의 한계는 이날 공청회에서 이뤄진 정부 쪽 설명에서도 드러났다. 정부 쪽은 중요한 논쟁 지점들을 '가정형'이나 '미래형'으로 남겨뒀다.
노혜원 검찰개혁 추진단 부단장은 검찰개혁 핵심인 공소청 검사의 보완수사권(형사소송법 개정)과 관련, "형사법의 다른 조문들과 연계 검사 검토해야 될 사항들이 있고 권한의 남용뿐만이 아니라 상호 견제, 업무 효율성 등 다양한 측면에서 숙의가 필요한 사안"이라며 뭉뚱그렸고, 공소청 검사의 직무 범위에 대해서도 "직무 범위가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일부 있지만 법령의 범위 내에서 한정될 것"이라고만 했다.
역할이 적은 고등검찰청을 없애지 않고 기존 대검찰청-고등검찰청-지방검찰청 3단 구조를 그대로 공소청에 적용했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고등공소청이 상급기관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당위적인 입장을 밝히며 "고등공소청 산하에 외부위원으로 구성된 사건심의위원회를 둬서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는 사건에 대한 공소제기, 상소제기 여부 등을 심의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중수청의 수사 범위를 선거·마약·사이버 범죄 등 9대 범죄로 기존 검찰보다 대폭 확대해 무분별한 선별수사가 가능해졌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경찰청 국가수사본(국수본)에서 이미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는 선거 범죄, 마약 범죄, 사이버 범죄 등에 대해서는 (국수본·중수청) 합동수사의 가능성 그리고 현 (검경) 협력과 견제의 관계 등을 고려해서 범위를 적정하게 시행령에서 조정하겠다"며 여지를 남겼다.
중수청 조직의 이원화 문제에 대해선 "수사사법관과 전문수사관은 한 조직 내에서 각자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하는 대등한 협력 관계이고, 검사와 수사관과 같은 지휘 감독 관계는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검찰 외에 경찰이나 금융이라든지 다른 분야 전문가들도 계속 충원해서 다양성을 확보를 할 예정"이라고 했다. 구체적인 인력 충원 방안은 없었다.
수사 경합이 발생하면 중수청이 다른 수사기관에 이첩을 요청하거나 이첩할 수 있도록 규정한 데 대해서도 "국민 입장에서 누가 수사하는지 혼선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것"이라며 "그럼에도 발생할 수 있는 기관 간 이견에 대해서는 협의조정기구와 조정기준 절차 등을 마련을 해서 합리적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원론적으로 말했다.

기존에 제기된 찬반 논의 도돌이표
공청회에선 정부안에 대해 여러 비판이 나오긴 했지만, 찬반이 번갈아가며 한 번씩만 발언하는 한계로 법안 전체로 논의를 확대하진 못했다. 최근 논란이 됐던 공소청 검사의 직무 범위 및 보완수사권, 공소청 3단 구조, 9대 범죄 확대 문제, 경찰의 비대화 문제, 중수청 이원화, 중수청 수사사법관 명칭 등 일부 문제만 국한해 공방이 반복됐다.
공소청법 정부안이 검사의 직무를 '법령에 따른 검사의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형사소송법 등에 규정된 사항(4조 8호)'으로 정해 검사가 보완수사권을 그대로 가질 수 있는 구조라는 비판에 대해, 정부안 찬성 쪽 발제를 맡은 최호진 단국대 법학과 교수는 "법령 따라서 명시된 검사의 직무 범위로 제한되기 때문에 새롭게 수사권을 창출하거나 확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부안 반대 쪽인 황문규 교수는 "(공소청법안에서) 형사소송법 등을 통한 수사 가능성이 열려 있다. 심지어 대통령령으로 수사도 가능하게 돼 있다"며 "공소청법에 검사하는 범죄를 수사하거나 수사를 개시할 수 없다는 단서를 명시하면 된다. 왜 형사소송법에서 규정하기를 기다려야 되냐"고 반박했다.
공소청 3단 구조와 관련해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최호진 교수는 "고등공소청의 경우 앞으로 고등검찰청이 담당하고 있는 항고나 재항고 기능을 유지한다면, 결국은 이를 담당할 수 있는 기관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며 "국가소송 같은 경우에는 고검이 담당하고 있다. 만약에 이걸 없애버린다면은 국가소송을 담당할 수 있는 기관이 없어져 버린다"고 했다.
반면 정부안 반대 쪽 토론에 나선 김필성 변호사는 "항고·재항고는 검찰의 자체적 절차"라면서 "3단 구조를 유지시키는 이유는 고등검찰청을 유지를 하고 나아가서 법원과 검찰을 동등한 관계로 설정하는 현재의 구조를 관찰시키겠다는 의도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중수청의 9대 범죄 확대에 대해, 정부안 찬성 쪽인 김민하 정치평론가는 "민주당이 발의한 중수법 설치법에 8대 범죄에 대해서 수사하도록 돼 있다. 사이버 범죄가 들어간 것에 불구하다"며 "최근에 쿠팡 사태라든가 케이티(KT)라든가 정보 유출 이런 것들이 있기 때문에 중요성을 감안한 것으로 봐야 된다"고 했다.
황문규 교수는 연간 31만 건(2024년 기준)에 달하는 사이버 범죄 등이 9대 범죄에 포함된 데 대해 "'등' 글자나 가지고 무한히 확장해 왔던 검찰이다. 폼나는 주요 사건, 전관예우가 필요한 사건 중심으로 수사하고 하기 싫은 사건은 국수본으로 떠넘기고 사실상 국수본을 2류 수사기관으로 만들라고 그러는 것 아니냐"며 "수사 대상 범죄를 최소한으로 정리해야 된다"고 맞섰다.
신인규 변호사는 경찰 비대화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수사·기소의 분리라는 대원칙이 있고 적극 찬성한다. 그런데 '수기분리' 대원칙이 지금은 어느 순간에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으로 갔다. 검수완박이라는 것을 달리 쓰면 '경수완독'다. 경찰 수사권 완전 독점 상태로 간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필성 변호사는 "수사·기소 분리가 본격화하기 전에도 사실은 거의 모든 범죄, 특히 민생범죄들은 100% 가깝게 경찰이 (수사)했다. 특별히 문제가 달라진 건 없다"고 꼬집었다.
황문규 교수는 "경찰개혁도 해야 하지만, 검찰개혁 하고 난 후에 해도 늦지 않다. 경찰은 아직 검찰만큼 해체하기 어려운 구조화된 권력이 아니다"라며 "자치경찰제도 논의해야 되고 수사기관에 대한 꼼꼼한 감시와 견제를 위해서 국가수사위원회도 다시 고민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지금은 검찰개혁에 집중 해야 될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공청회 형식적일 뿐…결단 필요한 때"
찬반 토론자들 사이에 이견은 있었지만, 중수청 이원화 문제와 수사사법관 용어 문제에 대해선 일부 합의 지점이 도출되기도 했다.
정부안 반대 쪽인 장범식 변호사는 중수청 이원화에 대해 "(수사사법관이 전문수사관을) 지휘하는 관계가 아니라고 했는데 관계로 이어질 것이 법령 안으로 명백하게 보인다"며 "애초에 선발할 때부터 계급이 나뉘어 있다"고 지적했다.
찬성 쪽인 최호진 교수는 "법률 전문성과 현장 수사 노하우를 모두 확보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실용적인 방안이 아닌가 생각된다"면서도, "장기적인 방안에서 본다면 중수청 인력은 일원화 방안도 충분히 검토될 필요성이 있고 가능하다"고 했다.

수사사법관 용어 문제에 대해서도 찬반 양쪽에서 수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황문규 교수는 "수사사법관이 중수청과 공소청을 융합하고 중수청을 사실상 제2의 검찰청으로 만드는 매개체가 되고 전관예우 시장을 열어놓게 될 것"이라고 했고, 최호진 교수는 "사법관이라고 하면 결국 사법기관으로의 성격을 가지기 때문에 사법관이라는 용어보다는 수사관과 차이를 두는, 그냥 달리 불리는 용어가 필요하다"며 '책임 수사관' '법률 수사관' 등을 제안했다.
이 밖에 공청회 토론에선 검찰개혁의 '골든타임' 중요성, 제도의 지속적 보완 필요성 등이 언급됐다.
민주당 정청래 당 대표는 공청회 마무리 발언에서 "중수청의 수사 이원화는 문제가 있고, 수사사법관의 명칭을 사용한다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부분은 양측에서 공감대를 이룬 것 같다"며 "어떻게 보면 토론의 소중한 보람이 아닌가, 결실이 아닌가"라고 자평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끝까지 국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국민 눈높이에 맞는 검찰개혁 방안을 내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민주당의 평가와 반대로 법조계 일각에선 형식적이고 기계적인 찬반으로 이뤄진 공청회에 대한 지적이 나왔다. 검찰개혁은 이미 오랫동안 논의된 과제인 만큼 형식적인 의견 수렴 절차보다 정부·여당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검찰개혁 추진단 자문위원으로 활동한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시민언론 민들레와 통화에서 공청회에 대해 "찬반을 기계적으로 나눠서 각자 입장을 발표하고 듣는 형태는 생산적이지 않다. (당에서) 의견을 들었다 정도"라며 "검찰개혁은 20년 동안 무수히 많이 논의됐다. 형식에 매여서 중지를 모으는 모양새를 갖출 때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이미 충분히 논의가 됐고 관련 논문도 엄청나게 쏟아져 나와 있다. 그동안 공청회만 수백회 했다"면서 "결단의 문제만 남아 있지, 이런 걸로 시간을 끄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 김성진 기자 >
사법개혁, 배심제 도입으로 '국민의 사법주권' 확보해야
대한민국 사법제도는 여전히 근대에 머물러
'법관에 의한 재판'은 근대 사법의 가치
'국민에 의한 재판' 현대 사법 가치 구현해야
사법개혁,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 담겨야
비상계엄의 혼란 속에서 사법의 본질을 묻다
2025년과 2026년으로 이어진 비상계엄과 극복 과정에서 우리 사법부에 준엄한 질문이 던져졌다. 유력 대선 주자의 선거법 재판을 둘러싼 대법원과 고등법원의 엇갈린 행보, 그리고 비상계엄이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 속에서 헌법재판소와 법원이 보여준 엇갈린 태도는, 사법권의 역할이 단순히 ‘외부로부터의 독립’만을 보장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사법부의 판결이 국민의 법 감정과 유리되고, 절차의 지연이 정치적 불확실성을 증폭시킬 때 사법부의 민주적 정당성과 기능은 흔들렸다. 이때 우리와 유사한 법적 전통을 공유하면서도 독자적인 개혁을 추진해 온 일본의 사례를 검토하여 2026년 현재 대한민국 사법제도 현대화를 위한 방향을 살펴본다.
독일의 근대 사법 시스템의 영향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사법제도는 메이지 헌법 제57조에서 사법권 행사와 독립을 규정하고, 제58조에서 법관의 자격 및 신분보장을 명시했다. 메이지 헌법은 당시 법치국가(Rechtsstaat)를 명문화한 프로이센 헌법의 영향을 받았다. 이 헌법은 사법권이 국왕의 이름으로 행해지더라도 법관은 오직 법률에만 구속된다는 규정(제86조)과 법관 종신제라는 신분보장 규정을 두었다. 일본은 1890년 민사소송법 제정 당시에, 1877년 독일 제국재판법과 독일 민사소송법을 모델로 삼았다. 독일법의 영향을 받아 일제의 소송법도 ‘서면주의’의 길을 걷게 됐다.
그러나 독일은 1차 대전 패전과 제국 해체로 1919년 바이마르 공화국이 세워지며 사법 체계에 대변환을 맞이했다. 바이마르헌법 제102조는 “법관은 독립하며, 오로지 법률에만 종속된다.”고 규정하고, 제104조에서는 법관의 신분보장, 제105조에서는 특별법원 설치금지를 명시했다. 1924년 법무장관 에리히 에머(Erich Emminger)에 의해 단행된 획기적인 사법제도 개편으로 “판사의 영향력을 배제한 영미식 배심제”가 폐지되고 “법관과 국민이 함께하는 독일식 참심제(Schöffengericht)”가 채택되었으며, 서면주의 소송제도는 “서면에 의해 준비된 구술주의”로 전환되었다. 복잡해지는 법률 사건에서 사건에서 법률 지식이 없는 시민들이 감정에 휩쓸리거나 오판을 내릴 위험이 크다는 생각으로, 참심제에서는 법관과 법관과 국민이 함께 증거조사부터 양형까지 함께 결정하는 구조를 선택했다. 그러나 국민의 사법 참여를 후퇴시키고 법관의 영향력을 강화하여 결과적으로 나치에 관대한 판결을 낳고 사법부를 보수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독일은 2차 대전 패전 이후 단순한 개혁을 넘어, 잘못을 청산하고 법의 이름으로 독재가 군림하지 못하도록 했다. 헌법재판소(BVerfG)를 설립해 사법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을 실현했으며, 사법권이 연방대법원장 등 특정인에게 집중되는 것을 막고자 법관선출위원회를 두었다. 그리고 연방대법원을 일반·행정·재정·노동·사회법원이라는 5개 분야별 독립 사법 권력으로 분산시켰다.

일본 사법개혁의 굴곡과 대한민국에 남겨진 과제
반면, 제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었던 일본은 사법개혁의 외부 동력이 크지 않았다. 1910~20년대 '다이쇼 데모크라시'라는 자유주의 흐름 속에서 1923년 배심제가 도입되었으나, 배심원의 평결에 구속력이 없었고 평결 결과에 대해 항소할 수 없다는 제약이 있었다. 1925년 치안유지법이 통과되고 1930년대 군국주의의 발호와 태평양전쟁을 거치며 1943년 배심법 정지 법률이 공포되어 자유주의 흐름도 정지되었다.
2차 대전 패전 이후 일본은 연합군 총사령부(GHQ)의 요구로 사법부 민주화를 위해 여러 영미식 제도를 도입했으나, 배심제는 부활하지 않았다. 전후 수립된 최고재판소는 사무총국을 정점으로 한 강력한 인사권으로 재판의 통일성에는 기여했으나, 법관들이 인사권자의 눈치를 보게 만드는 ‘사법관료화’를 초래했다.
이러한 폐쇄성을 극복하고자 2009년 ‘재판원제도’가 도입되었다. 일본은 1990년대 버블 경제 붕괴 후 사법 절차의 지연과 불투명성, 재심 무죄 사건 등을 계기로 개혁 논의를 재점화했다. 영미식 배심제와 독일식 참심제 사이의 치열한 논쟁 끝에 양자를 절충한 일본형 참심제인 '재판원제도'가 탄생했다. 이는 중대 형사사건에서 국민 재판원이 법관과 함께 유·무죄는 물론 양형까지 결정하는 제도이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유럽식 사법 시스템을 수용한 대한민국은 건국 이후 사법권 독립을 위해 노력했으나 군사정권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독일이나 일본처럼 '패전'이라는 강한 개혁 동력도 없었다. 결국 대한민국은 낡은 사법제도를 일부 수정해 사용해 오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일부 위헌적 제도들이 폐지되었다. 2010년부터는 사법부 내부의 권력 집중 해소와 국민의 직접 참여 확대가 개혁의 주요 방향으로 논의되고 있다. 일본의 재판원제도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명확하다. 일본은 중대 형사사건에 대해 국민 참여를 ‘필수’로 하여 사법을 국민의 의무이자 주권 행사의 장으로 변화시켰다.
반면, 한국의 국민참여재판은 피고인의 선택에 의존하며 평결의 효력 또한 ‘권고’에 그치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여전히 사건을 담당하는 판사가 누구인지, 전관 변호사 문제가 쟁점이 되었다. 이러한 고질적인 병폐를 개혁하려면 판사에 의한 재판이 아니라 배심원(혹은 참심원)에 의한 재판으로, 다른 표현으로는 “국민에 의한” 재판으로의 개혁이 단행되어야 한다. 이미 법관에 의한 재판보다 건전한 시민에 의한 재판이 더 옳은 결론을 낸다는 서구의 이론과, 시민의 다수가 선거에 참여하는 것이 옳은 투표 결과를 낸다는 논의(졸저, “인터넷 선거운동의 자유화에 관한 법적 연구-Condorect의 배심정리를 적용하여”, 세계헌법연구, 2010. 참조)는 제기된 지 오래다. 국민에 의한 배심재판이 현재 대한민국의 사법개혁의 과제인 전관 문제, 재심 무죄, 재판에 견제 기능 등을 해결하는 방법이 된다. 이러한 개혁이 이루어지면 판결과 형량이 일반인들의 법적 감정에 부합하게 될 것이다.
대법원의 인적 다양성을 위한 ‘직역 쿼터제’
일본의 사법제도로부터 주목할 또 다른 점은 최고법원의 다양한 인적 구성이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15명의 재판관 중 법관 출신을 6명으로 제한하고, 나머지를 변호사(5명), 검사(2명), 행정관(1명), 외교관(1명), 학자(1명)으로 전문법관 외에 다양한 배경을 가진 전문가로 구성하는 ‘직역별 쿼터제’를 관행화했다.
사법부의 경직된 사고를 깨기 위해서는 법리적 완결성만큼이나 다양한 사회적 경험과 가치관이 판결에 녹아들어야 한다. 대법원장의 과도한 인사권을 축소하고 대법관 구성을 다양화하는 것은 사법부를 ‘엘리트의 성역’에서 “국민의 법원”으로 돌려놓는 방안이 될 것이다.
나아가 지연되는 법적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대법관의 증원과 하급법원 판사의 증원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복잡한 민·형사 사건의 경우 대법원까지 확정이 2년은 고사하고 4년 이상이 걸린다. 법관의 증원과 인센티브 제도의 확대가 필요하다. 일본식 상고허가제를 도입하지 않는다면 하급심의 법관과 대법원의 재판관 수를 늘리는 것은 필수적이다.
검찰권에 대한 민주적 통제(기소배심과 불기소에 대한 헌법재판)
사법개혁의 또 다른 축은 준사법기관인 검찰의 개혁이다. 대한민국은 최근 한국은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통해 외부적 견제를 꾀하고 있다. 검찰의 '정치적 기소'나 '봐주기 수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중수청을 설치하려 하며, 항고제도와 재정신청 제도가 있고, 여기에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일부 기능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하다. 개혁의 추진 세력인 여당발 공천 헌금 사건이 수사 대상이 되어, 검찰과 수사기관에 대한 개혁을 보는 국민의 시선도 곱지 않다. 중수청을 중심으로 한 수사 개혁도 밀실 속의 그들만의 시스템이나 개혁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비상계엄 시에 일정한 역할을 했지만, 현재 기능을 잘하지 못하는 공수처의 예를 다시 반복해서는 아니 된다.
한편, 일본은 강력한 수사·기소 일체형 모델을 유지하면서도 ‘검찰심사회’라는 독특한 국민 참여 기구를 활성화했다. 국민이 검사의 불기소 처분을 심사하고, 두 차례의 ‘기소 상당’ 의견이 나오면 강제 기소가 가능하게 한 이 제도는 검찰의 기소독점주의를 국민이 직접 통제하여 강력한 실효성을 보여준다. 이는 검찰 ‘권한의 분산’을 택한 한국과 기소에 대한 ‘국민적 감시’를 택한 일본의 차이를 보여준다.
사견으로는 정치적 사건에 대해서는 특별검사제도를 사용하고, 미국식 기소배심(Grand Jury) 제도를 참고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국가적 비리와 고위 공직자 비위 사건에 상설특검과 비상설 특검으로 수사·기소하면 검찰권에 견제가 된다. 그러면서도 특별검사의 범람으로 국정 혼란이 생기지 않도록, 동시에 3개 이내의 특별검사만 활동하도록 자제하면, 권력과 검찰에 대한 견제가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다.
현재 기소유예만 헌법소원 사건이 될 수 있지만, 검찰의 기소 및 불기소에, 항고와 재정신청이 만들어지기 전과 같이, 헌법재판소가 헌법소원심판을 할 수 있고, 기소배심제도가 일부 도입된다면 검찰의 기소권에 대한 충분한 견제 장치가 될 수 있다. 이렇게 검찰권에 대한 견제와 균형 장치를 두텁게 두면, 검찰 수사권의 박탈과 조직 폐지보다 더 효과적인 개혁이 될 수 있다. 어떠한 제도라도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이 구현되고 그 시스템이 국민에 의하고 국민을 위한 제도가 되어야 한다.
현대 사법의 주인은 국민
대한민국의 사법개혁은 국민의 사법주권 확보를 위해 전진해야 한다. 판사의 판단에만 맡겨진 재판에 대하여, 국민의 상식을 더하고, 법원 내부의 관료적 서열을 파괴하고, 헌법재판을 통해 법원의 판결을 견제해야 한다.
우리 사법부는 독일에서 형성되어 일본을 거쳐 온 ‘근대 사법’의 옷을 여전히 입고 있다. 필자는 헌법재판소 연구원으로 근무 시, 구 형법 제57조 제1항 사건에서 “미결구금일수를 형기에 산입하는 범위를 법관의 재량에 의하여 결정”하도록 한 구 형법 규정이 헌법상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일본 형법 규정을 찾았는데 일본은 “미결구금일수를 모두 형기에 산입”하고 있었다. 이상해서 일본 제국 형법을 확인해보니 당시 우리 형법 규정과 같이 법관의 재량으로 미결구금일수를 산입하도록 했었다. 결국 구 형법 57조는 위헌결정(2007헌바25) 되었고, 이 결정으로 재소자 중 741명이 출소했다.
우리 사법부는 사법부의 독립을 주장하면서 사법개혁에 반대하기 전에, 스스로 입고 있는 근대 사법의 옷을 거울에 비춰보아야 한다. 그동안 왕의 법원이 아니라 법관에 의한 재판을 보장하던 근대 사법의 가치에서, 이제는 배심제나 재판원과 같이 국민에 의한 재판이라는 현대 사법의 가치를 구현해야 한다.
‘현대 사법’으로의 이행이 필요하다. 이제 비상계엄이라는 국난을 극복한 대한국민이 사법 작용에 참여하여 국민을 위한 사법부를 만들어야 할 때다. 말 그대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사법제도(Judicial system)”를 구현할 때이다. < 손형섭 경성대 교수 >
'● Hot 뉴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차 종합특검법’ 국무회의 통과…노상원 수첩 등 17가지 의혹 조준 (0) | 2026.01.21 |
|---|---|
| 9·19 남북 군사합의, ‘비행금지구역’부터 복원한다 (0) | 2026.01.20 |
| "공소청법은 수사권 유지…중수청법은 별건수사 조장" (1) | 2026.01.18 |
| 대검찰청 앞에 선 로스쿨 교수 "중수청법 폐기하라" (0) | 2026.01.18 |
| 추미애 “빈민 청년 사형, 윤석열은 5년 ‘반값 세일’…균형추 기울어” (0) | 2026.01.18 |
| 검찰개혁 물 건너 가나…정부안 중수청, 이대론 '제2의 검찰청' (0) | 2026.01.13 |
| 여론조사 "윤석열 ‘사형 구형하라’ 50.5% ‘무기징역’ 13.5%" (0) | 2026.01.1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