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의 삶에는 늘 그리움이 따라다닙니다. 낯선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하루하루를 버텨내다 보면, 정작 가장 소중한 사람들에게는 무심해질 때가 있습니다. “잘 지낸다”는 부모님의 말 한마디에 안도하며, 그 속에 담긴 외로움과 아픔을 미처 헤아리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그래서 타국에 사는 자녀들은 어쩌면 모두 불효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아내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함께한 사람입니다. 기쁜 날도 많았지만, 억울하고 힘겨운 시간도 적지 않았습니다. 어느덧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제는 부부라는 이름보다, 인생의 동지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선택과 결정의 순간을 함께 지나오며 서로를 붙들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몇 해 전 코로나가 시작될 무렵, 장모님께서 암 말기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급히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지만 아내의 마음은 이미 무너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늘 “괜찮다, 잘 지낸다” 말씀하시던 어머니였습니다. 캐나다에서 고생하는 딸 걱정에 자신의 병세조차 숨기셨던 것입니다. 아내는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바쁜 이민 생활 속에서 한국을 방문하는 일조차 쉽지 않았고,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아내는 참 많이 울었습니다. 찾아뵙지 못한 죄송함, 어머니의 아픔을 몰랐던 미안함, 그리고 팍팍한 이민 생활 속에서 효도 한번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후회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드리고 장례를 마친 뒤 다시 캐나다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아내는 또 한 번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제 한국은 더 이상 “엄마가 계신 곳”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토론토로 돌아온 뒤에도 아내는 오랫동안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리움보다 더 깊었던 것은 자책감이었습니다. 더 자주 전화할 걸, 한 번이라도 더 찾아갈 걸, 건강을 조금만 더 살펴드릴 걸 하는 후회가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그 무렵 아내는 꽃집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신기하게도 꽃을 만지며 조금씩 미소를 되찾기 시작했습니다. 꽃은 피고 지지만, 다시 새로운 꽃망울을 틔웁니다. 아내는 꽃을 통해 하나님께서 슬픔 가운데에도 위로와 소망을 주신다는 사실을 배워갔습니다.
그리고 4년 전, 담임목사 사모가 된 아내는 결심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위로를 감사로 표현하자고 말입니다. 그때부터 매 주일 성전 꽃꽂이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때로는 몸이 지치고 마음이 힘들어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배당에 들어오는 성도님들의 밝은 미소를 떠올리며 다시 꽃을 다듬습니다.
아내는 정성껏 준비한 꽃을 주일 친교를 섬기는 가정에 선물하기도 하고, 새로 오신 성도님들께 건네기도 합니다. 작은 꽃 한 송이지만 그 안에는 감사와 사랑, 위로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슬픔의 시간이 누군가를 위로하는 향기가 된 것입니다. 어떤 분은 꽃 한 송이를 받고 눈시울을 붉히고, 어떤 분은 “오늘 큰 위로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저는 아내를 보며 깨닫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아픔을 헛되게 버려두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눈물의 시간을 지나온 사람만이 다른 이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습니다. 상처를 경험한 사람만이 진정한 위로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어머니를 잃고 흘렸던 아내의 눈물은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향기가 되어 흘러가고 있습니다. 슬픔으로 멈춰 있던 인생이 꽃처럼 다시 피어난 것입니다.
매주 토요일 아내는 꽃을 사옵니다. 그리고 조용히 꽃을 손질하며 예배를 준비합니다. 누군가는 그 꽃을 보며 잠시 미소 짓고, 누군가는 위로를 얻고, 누군가는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을 느낄 것을 기도합니다. 매주 꽃을 들고 교회가는 아내는 꽃을 든 사모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내를 “꽃사모”라고 부릅니다. 꽃을 사랑하는 사모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아픔을 아름다운 향기로 바꾸어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