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전 민간인 불법 사찰과 사전 계엄 검토? 국정원의 어두운 역사 – 간첩 조작과 공안정국 윤석열의 내란 준비와 도구가 된 종북 프레임
계엄 벌어진 그날 밤, 국정원의 수상한 움직임 실세 홍장원의 과거 행적과 특검 기소의 충격 시민 저항으로 막은 내란과 국정원 개혁 과제
민주당 윤건영 의원이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중대한 내용을 폭로했다. 국정원이 계엄 선포 훨씬 전인 2024년 초부터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김민웅 촛불행동 대표 등 30여 명의 민간인을 불법 사찰하고, 그 결과를 매주 윤석열 대통령실에 보고했다는 것이다. 계엄을 선포하기 3개월 전인 2024년 9월에는 '계엄상황시 대공수사권 행사 가능 여부 검토'라는 제목의 문건까지 작성했다고 윤 의원은 고발했다.
더 심각한 것은 이것이 특정 부서나 내부 보고에 그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 내용은 국정원 모든 부서에 조직적으로 배포됐고, 각 부서는 이에 대응하는 더 구체적 문건들을 준비했다고 한다. 하나의 부서가 아니라 조직 전체에 대한 동원 시도가 있었다는 말이다. 이를 근거로 윤건영 의원은 "국가정보원이 불법 계엄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주도적으로 준비했다"고 지적했고, 한발 더 나아가 국정원이 "비상계엄의 최초 기획자일 수 있다"는 파격적 주장까지 내놓았다.
여당 정보위 간사로 내정된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이 19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부 국정원의 계엄 사전 공모 및 조직적 계엄 가담 의혹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2026.8.19 연합뉴스
이것은 결코 근거 없는 억측이 아니며 충분히 설득력 있는 추정이다. 왜냐하면 국정원은 이 나라에서 가장 대표적이고 핵심적인 비밀 정보기관이자, 동시에 가장 오랜 억압적 국가기구였기 때문이다. '반국가 세력', '종북 좌파'라는 프레임을 생산해낸 원조가 바로 이 조직이며, 국가보안법을 무기 삼아 숱한 간첩 조작 사건을 만들어내고 그때마다 공안 정국을 조성해온 어두운 역사를 갖고 있다.
유신 시절 중앙정보부가 저지른 인혁당 재건위 조작 사건이나 김대중 납치 사건에서부터, 국가안전기획부 시절의 각종 간첩단 조작에 이르기까지, 이 기구의 이름은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그 뿌리는 숨길 수가 없었다. 박정희나 전두환 같은 군사독재자들, 그리고 그 이후의 보수우파 정권들이 정치적 반대 세력을 억누르는 데 가장 의존했던 권력기관이 바로 이 조직이었다.
중앙정보부에서 국가안전기획부로, 다시 국가정보원으로 이름을 바꿔왔지만 그 문제점들은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않았다는 의심의 시선이 존재해 왔다. 민주당 계열 정권들이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을 법으로 금지하거나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하는 등 개혁을 시도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보수우파가 다시 정권을 잡을 때마다 이러한 개혁의 흐름을 되돌리려는 시도가 반복돼 왔다.
윤석열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집권하자마자 검사 출신의 최측근 인사들을 국정원 요직에 배치해 이 기구를 자신의 정치적 무기로 삼으려 했다. 실제로 국정원은 윤석열 정권 초기부터 이른바 '민주노총 간첩단 사건'을 비롯한 일련의 공안 사건을 잇달아 터뜨리며, 결과적으로 훗날의 내란으로 이어지는 길을 앞장서 닦아놓았다고 볼 수 있다.
어느 시점부터 윤석열은 공개 석상에서 툭하면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이라는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국정원식 언어와 사고방식이 대통령의 입을 통해 그대로 흘러나온 장면으로 보였다. 이런 윤석열이 자신의 정치 생명과 모든 것을 걸고 벌인 절체절명의 쿠데타 시도 과정에서, 정작 자신이 무기삼아 장악해온 국정원의 힘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처음부터 믿기가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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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12월 3일 계엄의 늦은 밤에 국정원에는 130여 명의 직원이 출근해서 각종 회의를 진행한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이 정도 규모의 '심야 비상 소집'이 직원들의 자발적 판단만으로 이루어졌다고 설명하는 것은 누구라도 납득하기 어렵다. 여기에 더해, 당시 선거관리위원회 청사로 출동했던 군 간부에게 여인형 방첩사령관이 '곧 검찰과 국정원이 올 것'이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증언도 남아있다.
방첩사 간부와 검찰청 검사, 그리고 국정원 처장 사이에 오간 통화 기록 역시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구나, 국회에서 계엄 해제 결의안이 통과되며 계엄이 해제된 새벽 시간대에도 국정원이 계엄사령부에 인력을 파견하려 한 정황이 최근 추가로 밝혀졌다고 한다. 계엄이 끝난 뒤에도 조직 차원에서 계엄사와의 연결 고리를 유지하려 했다면, 단순한 방관자나 협조자 수준을 넘어서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 모든 사실관계를 종합하면, '국정원이 내란을 미리 알고 함께 기획하고 준비했다'는 윤건영 의원의 추정은 상당히 강력한 정황적 뒷받침을 얻는다고 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그동안 내란 저지에 기여한 인물로 알려져 왔던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에 대한 의문이 다시 제기된다. 홍장원은 30년 가까이 국정원에서 경력을 쌓아온 조직 내부의 핵심 인사이며, 이른바 블랙요원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곧 그가 국정원의 어두운 역사와 관행으로부터 자유로운 위치에 있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특히 그는 박근혜 정권 시절 국정원 비서실장을 지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기 국정원이 저지른 민간인 사찰,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이른바 '댓글부대'를 동원한 여론 공작, 나아가 내란음모 조작 사건과 통합진보당 강제 해산에 이르기까지, 그가 이러한 흐름과 무관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마도 이러한 과거 때문인지 그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국정원에서 밀려나는 처지에 놓였다. 그러나 윤석열이 집권하면서 그는 다시 국정원의 주요 보직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무엇보다 그는 명목상 상관인 국정원장 조태용을 사실상 건너뛰어 대통령 윤석열에게 직접 보고하는, 조직 내 '실세 중의 실세'로 통해왔다는 점이 여러 경로를 통해 알려져 있다.
국가정보원법 위반, 직무유기, 위증 등의 혐의를 받는 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이 11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2025.11.11. 연합뉴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윤석열이 쿠데타를 감행한 직후 국정원장인 조태용이 아니라 굳이 홍장원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는 사실도 우연으로 치부하기 어렵다는 말이 있었다. 또한 윤건영 의원의 지적대로 '국정원이 내란을 미리 알고 함께 기획하고 준비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조직의 2인자였던 홍장원만 이 흐름에서 배제된 채 아무것도 몰랐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실제로 내란이 벌어진 그날 밤 홍장원이 구체적 지시를 내리고 역할을 수행했다는 증언과 증거들이 드러나면서, 최근 종합특검이 그를 조태용과 함께 내란 혐의로 정식 기소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소식은 그동안 홍장원을 '윤석열의 위법한 지시를 거부하고 내란을 막아내는 데 기여한 용기 있는 내부고발자'로 기억하고 있던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과 함께 의문을 안기고 있다.
그가 처음부터 내란에 반대했던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내란에 일부 발을 담그고 있다가 상황이 실패로 기울고 있다는 것을 직감한 어느 순간 태도를 바꿔 돌아섰던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것은 12월 3일 밤의 쿠데타를 막아낸 진짜 힘이, 목숨을 걸고 국회와 거리로 뛰쳐나온 평범한 시민들에게 있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증명해주는 이야기가 된다.
바로 그 시민들의 힘이 민주당을 비롯한 정치인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국회에서 신속하게 계엄 해제 결의안을 통과시키도록 만들었고, 동시에 내란 세력 내부에서도 균열과 이탈을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다. 돌이켜보면 12월 3일 직후에도 홍장원의 일부 진술에는 석연치 않은 대목이 존재했다. 당시 그는 자신이 체포 대상자 명단을 받아 적으면서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의 이름을 잘 몰랐다고 했었다.
그러나 국정원의 핵심 간부가, 이 나라 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단체이자 국정원의 오랜 감시와 탄압의 주된 표적이었던 민주노총의 위원장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는 설명은 잘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최근에도 홍장원은 방송에 출연해 자신의 입장을 해명하면서 '국정원은 계엄의 무풍지대였다', '나도 TV를 보고 처음 계엄 선포를 알았다'는 등 쉽게 납득하기 힘든 취지의 주장들을 내놓았다.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이 26일 '계엄 정당화 메시지 전달' 의혹과 관련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경기도 과천 권창영 2차 종합 특별검사팀으로 출석하고 있다. 2026.6.26. 연합뉴스
물론 아직 진실이 완전히 밝혀졌다고 볼 수는 없으며, 앞으로 진행될 추가 수사와 재판 과정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일부에서는 이렇게 홍장원 진술의 신빙성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자칫 윤석열의 12·3 내란 자체에 대한 사법적 심판까지 함께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형사재판에서 특정 증인이 기소됐다 해서 그동안의 모든 진술을 일괄적으로 배척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각 진술과 증거를 개별적으로 따져 신빙성을 판단하는 것이 옳다.
무엇보다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윤석열의 내란죄는 홍장원 한 사람의 진술 여부와 무관하게 이미 수많은 종합적인 물증과 다수의 독립적인 증언들을 통해 충분히 입증되어 온 사안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 함께 겪어낸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며, 어느 한 증인의 신뢰도 문제로 그 본질이 흔들릴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앞으로 수사와 재판을 통해 더 많은 사실이 밝혀져야겠지만, 만약 홍장원이 뒤늦게나마 내란 세력에게서 등을 돌리고 민주주의의 편에 서게 된 것이 사실이라면, 그 스스로가 더 철저히 성찰하며 국정원 조직과 이번 내란, 그리고 국정원의 어두운 과거에 관한 진실을 규명하는 데 앞장서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이재명 정부 역시 이러한 사태를 계기로, 국정원의 더 철저하고 근본적인 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 전지윤 사회운동가·연구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