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교류협력법 위반 ②남북정상 합의 위반 ③ 접경지 주민 생명안전 위험”
통일부는 10일 북한이탈주민단체(탈북민)인 자유북한운동연합(대표 박상학)과 ‘큰샘’(대표 박정오)이 전단·패트병을 북쪽에 보낸 행위를 남북교류협력법을 위반한 ‘미승인 반출’로 판단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고발)하고, 법인 허가 취소 절차에 착수한다고 발표했다. 대북전단과 관련한 정부 대응의 무게중심을 기존의 ‘처벌 없는 단속’에서 ‘처벌을 통한 원천 차단’으로 옮기겠다는 선언이다.
북한 당국이 남북 사이 모든 직통 연락선을 차단하며 대남 강경 기조로 돌아선 직접 원인인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원천 차단해 남북관계의 추가 악화를 막고, 반전의 계기로 삼으려는 정책으로 풀이된다.
여상기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오후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열어 발표한 ‘대북전단·패트병 살포 관련 정부 입장’을 통해 “정부는 오늘(10일) 자유북한운동연합과 큰샘을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으로 고발하고, 법인 설립 취소 절차에 착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여상기 대변인은 “두 단체가 대북전단 및 패트병 살포 활동을 통해 교류협력법의 반출 승인 규정을 위반했으며 남북 정상 합의를 정면으로 위반해, 남북 간 긴장을 조성하고 접경지역 주민의 생명·안전에 대한 위험을 초래하는 등 공익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도 경찰력을 동원해 대북전단 살포를 단속한 사례가 있지만, 정부가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교류협력법 위반으로 판단해 사법적 처벌 절차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현행 교류협력법은 물품 등을 북쪽으로 반출하려면 사전에 통일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13조), ‘미승인 반출’은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27조1항). 역대 정부도 경찰관직무집행법(5조1항) 등을 근거로 대북전단 살포를 단속했지만, 처벌 조항이 없어 원천 차단에 한계가 있었다.
통일부는 대북전단 살포 단속에 이전과 달리 교류협력법을 적용하기로 판단한 핵심 이유로 2018년 4·27 판문점선언에 따른 “사정 변경”을 들었다. 4·27 판문점선언’은 “전단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행위 중지”(2조1항)를 명시하고 있다.
앞서 2016년 2월 대법원은 “대북전단 살포 행위가 접경지역 국민의 생명·신체에 급박하고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킨다”며 “국가는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제지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대북전단 ‘처벌 통한 원천차단’…남북관계 경색에 강경 전환
통일부가 10일 전단과 페트병을 북쪽에 보내온 자유북한운동연합과 ‘큰샘’, 두 북한이탈주민(탈북민) 단체를 실정법 위반으로 고발하고 법인 취소 절차를 밟겠다고 밝힌 건, 정부의 대북전단 대응 기조 전환 선언이다. ‘처벌 없는 단속’에서 ‘단속과 처벌, 원천 차단’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겠다는 방침을 천명한 것이다.
통일부가 대북전단 살포 행위 처벌의 근거로 내세운 법률은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교류협력법)이다. 교류협력법은 13조1항에서 물품 대북 반출은 통일부 장관의 승인을 얻어야 하며, 27조에서 ‘미승인 반출’은 징역(3년 이하) 또는 벌금(3천만원 이하)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역대 정부는 물론 문재인 정부에서도 대북전단에 교류협력법을 적용하지는 않았다. 사정이 있다. “전단 살포는 북한의 불특정인을 상대로 하는 것이라 교역에 해당하지 않아 통일부 장관의 승인 대상이 아니다”라는 이명박 정부의 유권해석이 있었다. 통일부가 그동안 교류협력법으로 대북전단 살포를 단속·처벌하려는 의원입법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온 배경이다.
정부가 대북전단 살포를 교류협력법을 위반한 미승인 반출로 판단해 처벌을 추진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통일부의 10일 발표를 두고 미래통합당 등 보수 야당과 보수 언론의 비판이 예상되는 이유다.
이를 의식한 듯 통일부는 대북전단 살포 단속·처벌에 교류협력법을 적용하겠다고 법률 유권해석을 바꾼 “사정 변경” 사유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통일부 당국자들이 밝힌 “사정 변경” 사유는 ①“전단을 비롯한 모든 적대행위 중지”를 명시한 4·27 판문점 선언 ②“접경지 국민의 생명·신체에 대한 급박하고 심각한 위험”을 이유로 국가(정부)의 대북전단 살포 제지가 적법하다고 한 대법원 판결(2016년 2월25일) ③대북전단을 매개로 한 남북 사이 전염병 전파 우려 ④생명과 안전에 위협을 느낀다는 접경지역 주민들의 민원 ⑤라디오·달러·유에스비(USB)·쌀까지 담아 보내는 전단 살포 방식의 다양화·대규모화 등이 그것이다.
사실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교류협력법 위반으로 단속·처벌해야 한다는 법률가들의 지적은 전부터 있었다. 예컨대 김하중 국회 입법조사처장은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던 2014년 10월 언론 기고문에서 “대북전단 살포는 교류협력법상 통일부 장관 승인 사항”이라며, 미승인 살포 행위를 단속·처벌하지 않으면 오히려 직무유기죄(형법 122조)에 해당한다고 짚었다. 대북전단은 교류협력법에 따라 반출 때 통일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광고물 또는 인쇄물’에 해당(통일부 고시 2012-2호 등)한다는 것이다.
통일부는 자유북한운동연합과 큰샘의 법인 허가 취소 절차에 착수하겠다고 밝혀, 대북전단 살포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정책 의지를 드러냈다. 두 단체는 통일부에 등록된 비영리법인이다. 민법은 특정 비영리법인이 ①공익을 해치거나 ②설립 목적 밖의 활동을 하거나 ③허가 조건을 어겼을 때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자유북한운동연합은 ‘정부의 통일정책 추진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의 활동을, 큰샘은 ‘탈북청소년 지원’을 내세워 설립 허가를 받았다”며 “두 단체가 이를 어겨 허가 취소 절차를 밟기로 했다”고 했다.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와 박정오 큰샘 대표는 친형제 사이인 탈북민이다.
통일부의 이런 정책 기조 전환엔 정부와 접경지역 지자체·주민의 제지·반발에도 한국전쟁 70돌인 26일 대북전단 100만장을 살포하겠다고 공언해온 자유북한운동연합의 막무가내식 태도와 북한 당국의 반발 등이 두루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통일부의 10일 발표는 청와대 등 관계부처의 조율을 거쳐 이뤄졌다. 범정부 차원의 기조 전환인 셈이다. 대북전단 살포 단속·처벌 방침을 둘러싼 국내 논란의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더라도 4·27 판문점 선언 이행 의지를 강조해 남북관계의 추가 악화를 막고 관계 개선으로 이어질 반전의 계기로 삼겠다는 포석이다. 대북전단 살포를 문제 삼아 연일 항의 군중집회 등을 조직하고 이를 <노동신문>에 닷새째 대대적으로 보도해온 북한 당국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 주목된다.
경찰은 대북전단 살포를 막으려 해당 탈북민 단체의 주요 이동 지점인 경기도 파주·연천지역 36곳에 5개 중대(약 400명), 강화에 2개 제대(약 60명) 등을 배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 이제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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