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동 옛 대공분실서 6.10항쟁 33주년 기념식 열려

문 대통령 가정·직장·경제서 삶 속에 스며드는 민주주의를

 

10일 정부가 서울 옛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열린 6·10민주항쟁 33주년 기념식에서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고 이소선 여사와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를 포함한 12명에게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했다. 사진은 6·10 민주항쟁 33주년 기념식 국민훈장 모란장 수여자들. (윗줄 왼쪽부터) 고 이소선, 고 박형규, 고 조영래, 고 지학순, 고 조철현, 고 박정기, (아랫줄 왼쪽부터) 배은심, 고 성유보, 고 김진균, 고 김찬국, 고 권종대, 고 황인철. 행정안전부 제공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10일 열린 6·10 민주항쟁 33주년 기념식에서는 1970~80년대 반독재 민주화 운동의 구심이었던 종교계·학계·시민사회 인사들에게도 국민훈장 모란장이 수여됐다. 훈장은 고인이 된 이들을 대신해 가족들이 받았다.

박형규 목사는 군사독재에 맞선 실천하는 신앙인으로 평가된다. 교회 갱신 운동과 반독재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을 지냈으며, 2016년 타계했다.

조영래 변호사는 1986부천서 성고문 사건을 변론하며 국가 권력의 야만성을 폭로했고 한강물 역류로 수해를 입은 서울 망원동 주민 2400가구를 대리해 손해배상을 받아내는 등 약자 변론에 앞장섰다. <전태일 평전>을 썼다.

지학순 주교는 유신독재에 맞서 민주구국선언 등을 주도했다. 1974유신헌법은 무효라는 양심선언문을 발표해 구속됐고, 이 사건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결성의 기폭제가 됐다. 1993년 타계했다.

10일 정부가 서울 옛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열린 6·10민주항쟁 33주년 기념식에서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고 이소선 여사와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를 포함한 12명에게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했다. 사진은 6·10 민주항쟁 33주년 기념식 국민훈장 모란장 수여자들. (윗줄 왼쪽부터) 고 이소선, 고 박형규, 고 조영래, 고 지학순, 고 조철현, 고 박정기, (아랫줄 왼쪽부터) 배은심, 고 성유보, 고 김진균, 고 김찬국, 고 권종대, 고 황인철.

조비오 신부는 1980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수습위원으로 참여했으며, 전두환 정권의 독재에 맞서다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89년 열린 5·18 진상규명 국회 청문회에 나와 신군부의 학살 행위를 증언했으며, 2016년 타계했다.

성유보 전 <한겨레> 편집위원장은 1974<동아일보>에서 해직된 뒤 언론 자유와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다.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초대 사무국장 등을 거쳐 1988<한겨레> 창간에 참여해 편집위원장 등을 지냈다. 2014년 별세했다.

김진균 전 서울대 교수는 진보사회과학계의 거목으로 1980년 서울대에서 강제 해직된 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의장 등을 지내며 한국의 민주화와 진보적 개혁을 위해 힘쓰다 2004년 세상을 떠났다.

김찬국 전 상지대 총장은 진보적 신학자로 민주화운동을 펼치다 1972년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구속돼 옥고를 치렀다. 강제 해직 뒤 재야운동에 헌신했으며, 복직해 연세대 부총장과 상지대 총장을 역임했다. 2009년 별세했다.

권종대 전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농민운동에서 시작해 통일운동까지 헌신했다. 1978년 가톨릭농민회에서 농민운동을 시작한 뒤 1990년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을 결성해 초대 의장 등을 지냈고 2004년 별세했다.

황인철 변호사는 1975년 민청학련 사건을 시작으로 1979년 김재규 사건, 1989년 임수경 방북 사건 등 시국사건 때마다 약자 편에 서서 변론을 했다. 이돈명·조준희·홍성우와 함께 인권 변호사 4인방으로 불렸으며, 1993년 타계했다. < 송경화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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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꿈 이어받아평생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부모들

올해 33돌을 맞은 6월 민주항쟁 기념식에서 모란장이 수여된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고 이소선 여사(1929~2011)와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고 박정기(1928~2018),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80)씨는 이 땅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싸우다 스러져간 자식들을 가슴에 묻고 평생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이들이다. 세 사람은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를 중심으로 함께 활동하며 동지애를 키웠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200561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에서 열린 제16회 민족민주열사 범국민 추모제에서 아들의 영정을 끌어안은 채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소선 여사는 197011월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 준수 등 노동자 권리 보장을 외치며 분신해 숨지자, 아들이 꿈꾼 세상을 만드는 데 투신했다. 아들의 친구들과 함께 평화시장에서 청계피복노동조합을 설립한 게 시작이었다. 이씨는 1978~1979년 동일방직과 와이에이치(YH)무역 노동자 투쟁에 나섰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땐 진상규명 투쟁에도 나섰다.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민가협) 설립을 주도했고, 의문사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1998~1999년 국회 앞에서 422일 동안 장기간 농성을 했고, 쌍용차 정리해고 투쟁 등의 노동 현장도 계속 지켰다. 이런 활동들로 인해 4차례 옥고를 치렀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이소선 여사가 별세한 20119월 정부에 훈장 추서를 건의했으나 기각됐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개인 활동 업적보다는 전태일 열사 어머니로서의 의미가 더 크기에 다른 사람과 업적을 비교하기 곤란해 훈장을 추서하지 않기로 했다는 설명을 내놓았다.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가 1990822일 서울 홍제동 치안본부 대공분실 앞에서 아들의 고문치사 및 범인 은폐조작 사건에 연루된 피고인들에 대한 무죄판결에 항의하다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고 박정기씨는 19871월 막내아들 박종철 열사가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으로 숨지자 6월 민주항쟁의 선봉에 서게 됐다. 1988년과 1998년 장기 농성을 통해 의문사 진상규명 특별법과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법 제정을 이끌었다. 1991년 명지대생 강경대 치사사건 때는 법정소란죄로 석달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20183월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은 박정기씨를 찾아 사과했다. 현직 검찰총장이 과거사 피해자에게 사과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로부터 넉달 뒤 그는 고인이 되었다.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가 최루탄부상자전국연합 의장으로 활동하던 1989510일 국회 앞에서 최루탄 사용 금지를 위해 여야가 노력할 것을 촉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19876월 이한열 열사의 죽음은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어머니 배은심씨는 한열이의 이름으로유가협과 함께 전국의 시위 현장을 찾아다니며 정권 차원의 사과와 인권보호 대책 마련에 목소리를 높였다. 군 의문사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자리, 용산참사 피해자들의 가족들이 슬퍼하는 자리엔 어김없이 찾아가 함께 눈물을 흘렸다. 배씨는 이날 기념식에서 서른세번째 610일에 보내는 편지를 낭독하며 다시는 민주주의를 위해 삶을 희생하고 고통받는 가족들이 생기지 않는 나라가 됐으면 한다고 간절한 소망을 표현했다. < 성연철 송경화 기자 >

남영동 그곳에서문재인 대통령 일상 민주주의 이루자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서울 용산구 민주인권기념관에서 열린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그곳에 붉은 꽃이 걸렸다. ‘살인기계’ ‘고문공장으로 불렸던 곳. 김근태와 박종철 등 숱한 민주 인사들의 몸과 영혼을 파괴한 곳. 꽃은 33년 전 박종철이 물고문 끝에 숨진 509호 조사실, 고문받는 자들의 투신을 막으려고 검은 벽돌 외벽에 좁고 길게 낸 창문 위에 붉게 피었다. 그 꽃 아래서 대통령은 다시 민주주의를 생각하자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서울 용산구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 예정지에서 열린 33주년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서 민주주의는 제도를 넘어 우리 삶 속으로 스며들어야 한다. 포용과 상생, 연대와 협력으로 민주주의를 우리 삶에 스며들게 하자고 말했다. 행사가 열린 민주인권기념관 예정지는 과거 치안본부 대공분실 자리다. 문 대통령은 2년 전 기념사에서 이곳을 민주인권기념관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6월 항쟁으로 세운 민주주의가 촛불 혁명과 코로나19 극복을 이끌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시민과 노동자 등 6월 항쟁의 주인공들이 어머니, 아버지가 되어 가정의 민주주의를 뿌리내렸다는 평가였다. 그러면서 민주주의가 위태로울 때 촛불을 들었고, 코로나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연대와 협력의 민주주의를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이날 반복해서 강조한 것은 일상의 민주주의였다. 그는 민주주의는 제도를 넘어 우리 삶 속으로 스며들어야 한다. 가정과 직장에서의 민주주의야말로 더욱 성숙한 민주주의다라고 말했다. 지난달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때도 정치, 사회에서의 민주주의를 넘어 가정, 직장, 경제에서의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지속가능 사회를 향한 상생과 협력의 중요성도 거듭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는 마음껏 이익을 추구할 자유가 있지만 남의 몫을 빼앗을 자유는 갖고 있지 않다지속가능하고 평등한 경제가 우리가 지향할 실질적 민주주의의 핵심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전날 위기가 불평등을 키운다는 공식을 반드시 깨겠다고 말한 것의 연장이다.

코로나발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협력과 통합의 중요성도 역설했다. 문 대통령은 갈등과 합의는 민주주의의 다른 이름이다. 갈등 속에서 상생의 방법을 찾고 불편함 속에서 편함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반도 평화에 관해서는 어렵고 힘든 길이지만, 민주주의로 이뤄야 한다고 간략히 언급했다. 최근 북한이 남한과의 연락선을 끊은 데 대한 곤혹스러움이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이날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 조영래 변호사, 지학순 주교 등 민주화 운동 유공자 12명에게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했다. 청와대는 민주화 공로를 독립과 호국과 동등한 차원에서 예우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의지를 담은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철 열사 숨진 509호실 창문에 붉은 꽃문 대통령 기적 같다

배은심씨 ‘33번째 6·10에 보내는 편지낭독 경찰청장 국가폭력사과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서울 용산구 민주인권기념관에서 열린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박종철 열사가 고문을 받아 숨진 옛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 조사실 외벽에 꽃이 달려 있다.

10일 제33주년 6·10 민주항쟁 기념식이 열린 서울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 예정지 마당에는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민주화운동 단체 대표와 유공자 등이 자리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서울광장에서 열린 기념식 이후 3년 만에 행사에 다시 나왔다. 오랫동안 남영동 대공분실로 불린 이곳은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6년 건축계 거장 김수근의 설계로 탄생했다. 애초 5층이던 건물은 1983년 전두환 정권 때 7층으로 증축됐다. 이곳에서 1985년 김근태 당시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의장이 고문기술자 이근안에게 22일 동안 살인적인 고문을 당했다. 1987114일에는 서울대생 박종철씨가 509호실에서 물고문을 받다 숨졌다.

2년 전 이곳을 민주인권기념관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한 문 대통령은 기적 같다는 소회를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 불행한 공간을 민주주의의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것은 마치 마술 같은 위대한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엄혹한 시절을 이겨내고 끝내 어둠의 공간을 희망과 미래의 공간으로 바꿔낸 우리 국민과 민주 인사들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이날 훈장을 받은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는 세상을 떠난 이소선 여사와 박정기씨에게 ‘33번째 610일에 보내는 편지를 낭독해 참석자들을 숙연하게 했다. 그는 이소선 어머니는 전태일이 옆에 가 계시고, 종철 아버지도 아들하고 같이 있어서 나 혼자 오늘 이렇게 훈장을 받습니다. 나 혼자 이래도 되는 건가 싶네요. 종철이 아버지도 이런 날 보고 거서 뭐 하고 있는 거요라고 하실 거 같아요라고 했다.

기념식을 마친 문 대통령은 부인 김정숙 여사와 함께 박종철 열사가 숨진 509호 조사실을 찾아 헌화하고 묵념했다. 문 대통령은 조사실에 설치된 고문용 욕조를 보며 “(보는 순간) 공포감이 온다. 철저한 고립감 속에서 (저항 의지를)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했다. 김 여사는 6월 항쟁 당시 시민들이 거리에서 건넸던 장미와 카네이션, 안개꽃, 손수건을 박종철 열사 영정에 올렸다. 행사에는 민갑룡 경찰청장도 참석했다.

병상의 백기완 다시 일어나라는 역사의 함성

유월항쟁은 이 참도 내 가슴 속에 불타오르네-백기완

올들어 5개월째 서울대병원에 입원중인 백기완 선생.

6월항쟁을 이끌었던 투사백기완(88)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0일 서울대병원 병상에서 ‘6월항쟁 33돌 기념 말씀을 친필로 써보냈다. ‘유월항쟁은 이제 다시 일어나라는 역사의 함성’, ‘유월항쟁은 이 참도 내 가슴 속에 불타오르네’, 두 개의 글이다.

지난해 심혈관 수술에서 회복해 잠시 대외 활동을 했던 백 소장은 지난 1월말 폐렴 증상으로 입원한 이래 지금껏 투병중이다. 통일문제연구소의 채원희씨는 젊은 시절 폐결핵을 앓은 적이 있으신데 지난해 수술 후유증으로 체력이 약화되자 재활성화해서 중환자실도 몇차례 오갈 정도로 위험한 고비를 겪고 있다고 전했다. 백 소장은 19875월 민족통일민중운동연합 부의장으로 문익환 목사와 함께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에 참여해 호헌철폐 투쟁을 비롯 6·10 시민 항쟁의 선봉에서 싸웠다. < 김경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