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해학‥불만 표출의 마당극

● 토픽 2011. 11. 7. 23:08 Posted by SisaHan

저잣거리 서민감정 분출 통로

신랄한 뒷담화에 대중 공감

분노와 혐오, 관심과 배려 사이
한번 듣기 시작하면 이어폰을 뺄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이 방송의 인기를 주류 언론은 한동안 애써 무시해왔으나, 박경철·박원순·박영선·홍준표 등이 출연하고 김어준의 책 <닥치고 정치>(푸른숲 펴냄)가 출간 전 예약 판매만으로 베스트셀러에 등장하자 ‘다루지 않을 수 없는 불편한 감자’가 됐다.
 
사람들이 나꼼수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아이폰을 중심으로 스마트폰이 보편화되며 팟캐스트 시장이 활성화된 것을 꼽을 수 있다. 팟캐스팅(Podcasting)이란 개인이 동영상이나 오디오 파일을 MP3와 같은 미디어 파일 형태로 만들어 RSS 파일의 주소를 공개하는 방식으로 배포하고, 사람들이 애플의 아이튠즈와 같은 응용 프로그램을 통해 검색해,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재생해서 듣는 방송 형태를 말한다. 사람들이 찾아 듣는 ‘개인방송’(Personal On Demand broadcast)이라고 볼 수 있다.
 
자본과 인력으로 무장한 매스미디어에 비해 콘텐츠 완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개인미디어 콘텐츠가 기존 언론시장의 상품을 능가할 수 있는 파괴력의 핵심은 주류 언론이 다루기 힘든 정부에 대한 통렬한 비판, 풍자와 해학, 그리고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정보와 위험하리만치 매혹적인 음모론이다. 구독층, 광고, 국가권력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주요 언론사들이 다루지 못하는 내용이라도 용기 있는 개인미디어는 반정부적인 사실 폭로, 신랄한 풍자와 해학이 가능하다.
나꼼수는 그 핵심을 정확히 짚어내 만든 콘텐츠이며, 나꼼수 신드롬을 주목하는 이유는 개성적이면서도 불온한 콘텐츠로 가득 채워질 팟캐스트 시장이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인식된 첫 신호탄이어서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김영사 펴냄) 열풍, 안철수 현상, 반값 등록금·무상급식 시위, 도가니 신드롬과 나꼼수 인기는 무관하지 않다. 정부·정치·기업·언론이 모두 제 본분에 충실하지 않고 집단의 이익에 몰두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정의를 다시 묻고, 국가가 챙겨주지 않고 언론이 관심 가져주지 않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자발적 관심과 배려를 가지며 만들어진 현상이다. 나꼼수 인기도 현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한 극도의 분노와 혐오가 만들어낸 현상이다. 

마음대로 말할 수 있는 자유
나꼼수 인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는 출연자인 네 캐릭터들의 절묘한 조화다. 듣는 사람도 유쾌하게 만드는 호탕한 웃음소리, 어린아이처럼 천진한 잘난 척과 ‘싫으면 듣지 마’ 식의 객기, 주류 언론에선 절대 들을 수 없는, 권력층에 대한 깨알 같은 정보와 교묘히 얽힌 정치권력 관계, 뉴스 보도 너머에 담긴 정치적 의미에 대한 통찰, ‘우리 가카는 절대 그러실 분이 아니’라는 말로 대변되는 풍자와 뒷담화가 주는 재미, 아마추어적이지만 성의 있는 편집에 청취자가 만들어주는 창의적인 로고송까지, 나꼼수는 그 옛날 저잣거리의 마당극이 가진 매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 ‘21세기 스마트시대의 마당극’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나 주류 언론이 나꼼수를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은 나꼼수를 무책임하고(‘아니면 말고’ 식의 사실 확인이 안 된 정보를 마구 내뱉고), 위험하고(개인의 명예를 훼손할 만한 인신공격과 풍자가 난무하고), 불온한(반정부적 태도와 반기업적 정서를 선동하는) 콘텐츠라고 평가할 것이다. 대중을 현혹하고 현 체제를 뒤흔드는 이 프로그램을 앞으로는 심의하겠다는 발상이 나온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그러나 저잣거리의 서민들이 풍자나 해학의 방식으로 거대권력에 맞섰던 옛 전통을 계승한 나꼼수를 정색을 하고 바라보거나 그 영향력을 고려해 방송 심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국제적 웃음거리가 될 만한 일이다. 그것은 마치 소설가 이외수 선생의 트위터 팔로어 수가 100만 명이 넘는다는 이유로 그의 트윗글들을 심의하겠다는 발상과 같다. 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에서 각색 작업을 인정하지 않고 ‘사실 왜곡’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염려해 소설 심의를 하겠다는 것과 유사하다. (실제로 인화학교 청각장애인 성폭행 사건을 다룬 <도가니>에 등장한 담당 형사와 변호사 등이 영화가 실제 사건을 왜곡했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발언을 한 바 있다.) 개인 블로그와 마찬가지로, 인터넷 마당극 나꼼수의 폐해는 현존하는 ‘명예훼손 등에 관한 법률’로 규제하는 게 적절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꼼수 발언 내용의 정확성은 나꼼수 신드롬을 장수하게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다.)
 
냉정하게 봤을 때, 나꼼수 인기 비결의 핵심은 김어준이라는 걸출한 인물의 매력과 통찰력, 개똥철학이 주요했다. 1998년 <딴지일보>를 창간한 이후 지난 13년간, 어느 기업이나 권력에도 손 벌리지 않고 아쉬운 소리 안 함으로써 (그래서 경제적으로는 궁핍했지만) 얻은 ‘마음대로 말할 수 있는 자유’를 가졌다. 이것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거의 모든 집단이나 개인이 갖기 어려운 자유이며, 이 자유로운 관계에 기반해 통렬한 비판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김어준은 황우석 사태 때 ‘황빠’라고 불릴 만큼 황우석 교수 편에 선 사실이나, 2002년 월드컵 오심 논란 때 우리나라 편을 들어 객관적이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은 전력처럼 ‘우리 편’에 대한 애정이 깊은 사람이다. (그런 그가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 사건에서 진보 진영(진중권·조국)과 날을 세우며 곽 교육감 편을 든 것은 예측 가능한 상황이었다.) 
그의 ‘우리 편 철학’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만한, 그리고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논리이며, 나꼼수 인기 밑에 깔린 정서이기도 하다. 
이명박 대통령이나 한나라당, 민주당, 그리고 기독교 등을 ‘저들’이라 칭하고 ‘우리들’끼리 깔깔거리고 즐기는 술자리 뒷담화 같은 유쾌한 시간이 바로 나꼼수니까. 김어준의 ‘우리 편 철학’은 앞으로도 진보 진영 내에서 합리적인 진보 진영이나 이념적인 진보 진영과 계속 각을 세울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나꼼수 현상 관전 포인트
앞으로 우리가 나꼼수 현상을 재미있게 관전하는 포인트가 몇 가지 있다.
먼저 향후 팟캐스트 시장이 어떻게 다각화되고, 장르와 내용, 구성 등이 어떻게 다양하게 확대되는지, 그리고 그것이 스마트 디바이스들과 맞물려 어떻게 우리의 일상으로 파고드는지 관찰하는 것이다. 
둘째, 2012년 대통령 선거의 안철수-박근혜-문재인 구도에서 나꼼수가 얼마나 파괴력 있는 역할을 할 것인가도 관전 포인트다. 만약 나꼼수가 안철수, 문재인을 측면 지원할 경우 그 파괴력은 상상 이상이 될 테니까. 
셋째, 정부는 향후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 작은 꼬투리라도 잡아 교묘하게 나꼼수를 방해하고 심의하고 관련자를 법의 심판대 앞에 세우려 안간힘을 쓸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프로그램 폐지를 위해 치졸한 꼼수를 부릴 것이다. (이미 <딴지일보>를 해킹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지 않은가!) 그들이 앞으로 어떤 꼼수를 부릴 것이며, 김어준 일행이 그것에 어떤 방식으로 대응할지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끝으로, 가카가 퇴임하는 그날까지 계속된다는 나꼼수의 진화 또한 궁금한 대목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시절 <딴지일보>가 처음 등장했을 때 많은 네티즌들로부터 열광적인 호응을 얻었으나 13년이 지난 지금 다소 주춤한 안정기에 접어들었는데, 나꼼수는 포스트 MB 시대에 어떤 기발한 아이디어로 인기를 이어나갈지 궁금하다. (나꼼수 처지에선 문재인보다는 ‘풍자와 해학의 대상’이 될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흥행엔 도움이 될 것이다.)
가치전복적이고 불온한 팟캐스트 대세의 신호탄, 나꼼수에 대한 글을 오늘 ‘우리 시대 가장 경이로운 인물’ 스티브 잡스의 부고를 들으며 쓴다는 것은 우울하고 고통스런 경험이다.

<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바이오 및 뇌공학 >